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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의 하나님(창 28:10-19)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살다 보면, 인생의 노하우가 하나둘씩 생겨납니다.
하나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밝아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세상이 캄캄해지지도 않는다고 하는 것을 새삼 알게 됩니다.
되든, 되지 않았든, 사람들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이렇게 저렇게 살아갑니다.
과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는 끝났는데, 벌써, 6월 1일에 있을 지방선거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하고, 그 다음 대통령 선거에 다시 나올 것인가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들려옵니다.
강원도에 산불이 났습니다. 불이 쉽게 꺼지지 않고, 많은 물질적인 손해를 가져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미워한다”는 생각에 불을 질렀다고 하는 데, 그 피해가 너무 컸습니다. 정확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혹시 지나가는 차에서 담배꽁초를 던져서 불이 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가지고, 조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단 한 순간의 부주의하고 잘못된 선택으로, 다시 회복하기 힘든 엄청난 손해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금요일 오후, 충북대 병원으로 가는 길에 투썸플레이스가 있는데, 그 앞에 소방차 여러 대가 출동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산 아래에 작은 텃밭이 있는데, 그 텃밭을 하는 분이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모아, 태우고 있었습니다. 시커먼 연기가 산 위로 올라가니, 놀래 가지고, 신고를 하고, 그래서, 소방차가 출동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들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들이 본받아야 하는데, 그래서, 해야 할 일과 절대로 따라 해서는 안될 일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오늘은 야곱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축복의 우물을 파라”는 제목으로 이삭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야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야곱은 믿음의 가문에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다시피, 야곱의 할아버지는 아브라함이요, 야곱의 아버지는 이삭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믿음의 가문입니까? 믿음의 가문에서 태어나면, 믿음이 저절로 좋아질까요?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야곱은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어릴 때부터, 신앙의 교육을 잘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보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 목적을 이루려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를 속여,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나중에는,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야곱은 오직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서, 부정하고 거짓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고, 그것을 추구하는 수단이 나쁘면 안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아 그것을 나누어 주려고 한다면, 절대 안되는 것입니다. 홍길동은 소설 속에 존재해야지, 현실에서 홍길동이 되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옛날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좋은 사람이었고, 좋은 일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흐름이었는데, 요즘에는 주인공이 나쁜 도둑놈이고, 어떻게 도둑질을 잘 하는지, 그런 흐름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쁜 도둑놈으로 나오는 이가 유명한 배우이기에, 그 모든 것이 용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선한 삶을 살아감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끼쳐야 할 것입니다. 나의 유익과 행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든지,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거나, 손해를 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야곱은 훌륭한 믿음을 가진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신앙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야곱은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어릴 적부터, “축복을 우물을 파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축복의 우물을 판다는 명목으로,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긴 들었지만, 그 말씀을 잘못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진짜 축복이다.”
그런데, 야곱은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복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리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할지라도, 그것을 잘못 적용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한다면,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가 한 속임수와 거짓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야곱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의 뜻대로 되어져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야곱의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크게 나무라지 않았지만, 형 에서는 달랐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에는 동생 야곱이 한 행동에 대하여, 참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의 속마음은 부글부글 불타올랐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보는 순간, 이대로 있다가는 큰일날 것 같은 생각에, 멀리 도망쳐야 했습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삽십 육계, 줄행랑을 쳐야만 했습니다.
이삭은 가나안 땅에 기근이 왔을 때, 애굽으로 내려가고자 하여, 길을 나섰지만, 하나님께서 나타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하셔서, 어쩡쩡하게, 블레셋의 그랄 땅에서 잠시 살기도 했습니다. 이삭이 잘되는 것을 보고,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자꾸 우물을 메꾸어버리고, 괴롭히자, 다시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와, 브엘세바라는 곳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정든 브엘세바를 떠나야 했습니다. 한 마디로, 형을 피하여, 야반도주해야만 했습니다. 도망자의 신세였기에, 야곱을 따라나서는 이들도 없었습니다. 혼자였습니다.
해가 지자, 야곱은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안락하게, 평안하게, 푹 쉴 수 있는 밤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형 에서가 쫓아오지 않을까?”, “강도들이 목숨을 노리지는 않을까?”, “무서운 짐승이 공격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한 밤이었습니다.
그 불안과 두려움 속에 잠을 청했는데, 야곱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이 뭔가를 아주 잘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와, 칭찬하는 그런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잘못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으로, 지금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책망과 벌을 받아야만 하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을 찾아온 하나님은 야곱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껏 야곱에게 되어진 일들을 모두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침묵하십니다. 야곱이 저지른 일에 대하여,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첫 번째 꺼낸 말씀이,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인 것처럼, 나는 바로 너 야곱의 하나님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할아버지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가장 힘들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죄악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죄악 중에 있는 야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또한, 그에게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무리 멍청하다고 할지라도, 사리분별을 못한다고 할지라도, 야곱은 그가 형 에서에게 한 행동이나, 아버지 이삭을 속인 일이 잘못이라고 하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잠언 28:1절을 보면,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성격상, 자기가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면, 그는 집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형 에서에게 정정당당하게 따졌을 것입니다.
정든 고향 집을 떠나, 길을 나선 것은 그가 한 행동이 잘못이라고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도망친 것은 그가 잘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잘못을 하고, 도망치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왔을 때, 야곱은 얼마나 놀라고, 두려웠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을 책망하지도 않으시고, 그를 심판하지도 않으십니다. 단지 처음 꺼낸 말씀이 “나는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인 것처럼,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첫 말씀을 들었을 때, 야곱은 얼마나 안도했을까요?
“하나님이 나를 알고 계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구나”
여러분! 집 나간 둘째 아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그를 모른 척 한다고 해도, 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오는 둘째 아들을 보고, 달려와 입을 맞추고, 그를 직접 집에 데리고 들어갑니다. 그를 아들로서 인정해줍니다.
그 둘째 아들은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했을까요?
“나는 너를 모른다.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데, “너는 내 아들이다.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았다.”라고 반갑게 맞아주시는 아버지를 보고, 얼마나 감격하여, 울었을까요?
여러분! 하나님은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악을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더러운 악과 함께 할 수 없는 너무나도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한 사람을 결코 버리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말라기 1: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9:12-13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사랑하셨습니다. 그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택하시고, 사랑하시기에, 야곱을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도망치는 야곱을 찾아온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잘못을 범하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을 버리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3:14-15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어하십니다.
로마서 8:3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잘잘못을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묻고, 그때그때마다, 일일이 벌 주는 분이 아니십니다. 물론, 벌 주실 때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알면서도 눈 감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악을,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다 덮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가 하늘과 땅을 덮을만큼 많을지라도 사랑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죄를 지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죄 용서함을 받았기에,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짓는 생활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케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야곱과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야곱을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고향 땅으로 되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잠이 깬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벧엘은 어떤 곳입니까?
벧엘은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시고,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벧엘이 있어야 합니다.
가장 힘들 때, 하나님을 만나면 힘이 납니다.
가장 어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위로가 됩니다.
벧엘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가 머무는 그곳이 벧엘이 되어야 합니다.
벧엘을 찾아 헤맬 것이 아닙니다. 벧엘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있는 바로 이곳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벧엘이 될 수 있도록, 늘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어떤 마음을 품든지, 벧엘의 하나님을 만남으로, 위로받고,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항상 함께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또한 늘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을 버리지 않고, 늘 주님과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은총과 사랑과 축복 아래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가 머무는 곳이 벧엘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