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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 38:9-20
제목 : 히스기야왕의 감사
서론
히스기야 왕은 죽을 병에 걸렸지만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15년간 더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누구나 죽을 병에 걸렸다가 살게 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1. 죽을 각오를 하였던 사람입니다.
본문 12-13 "나의 거처는 목자의 장막을 걷음 같이 나를 떠나 옮겼고 내가 내 생명을 말기를 직공이 베를 걷어 말음 같이 하였도다 주께서 나를 틀에서 끊으시리니 나의 명이 조석간에 마치리이다" 하였습니다. 이는 히스기야는 자신이 병들어서 그 생명이 얼마 남지 아니하였음을 인식하고 죽을 각오를 가지고 준비를 하였던 것을 회상해보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장막(帳幕)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장막은 임시로사용하는 것인데 영구적인 것이 못 됩니다. 같은 원리로 인생의 생명도 그와 같음을 알고 베를 걷어 마는 것과 같은데 이는 자신의 생명은 전적 주의 권한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걷어가시면 순종할 것으로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 그래도 부르짖어 보았습니다.
본문 14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중보가 되옵소서" 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이 병들었을 때에 간절하게 기도하였던 것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날 짐승이 부르짖는 것 같이 울부짖었다는 말입니다. 그의 부르짖음을 보면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왕하 20:2-3)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병들거나 어려운 일이 많으면 히스기야 왕처럼 많은 기도를 드려서 고침 받는 역사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17) 하였습니다. 병만 고쳐 주신 것이 아니고 죄까지 사하여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렸습니다.
본문 18-20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 하리로다"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병고침을 받고 너무나도 감사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리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심도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는데 있고(사 43:7) 찬양을 받으신데 있습니다(사 43:21). 그리고 구속하여 주심도 같은 원리입니다(엡 1: 6-14). 그리고 찬송은 성도들의 입술의 열매입니다(히 13:15).
결론
히스기야는 육신의 병을 고침받고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병 보다 더 무서운 영의 병이 들어서 영원히 멸망을 면치 못할지경에 이르렀으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고쳐 주셨으니 우리들도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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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 39:1-7
제목 : 세상 것을 자랑한 결과
서론
본문 말씀은 히스기야 왕이 병 들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하는데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가 나았다함을 듣고 글과 예물을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보인 모든 것은 다 빼앗겼습니다.
1. 외국인에게 보이고 싶었습니다.
본문 1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가 나았다함을 듣고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히스기야는 외국 사신을 만나서 그에게 하나님을 전하지 아니하고 세상적인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외국 사신에게 하나님은 전하지 아니하고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 문제가 안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사람을 만날 때에 하나님을 먼저 증거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예나 권세 금은 보화 아니면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나 그외에 보통 사람이 가지지 못한 그 무엇을 자랑하지는 아니합니까.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부터 자랑을 해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고전 4:7)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십자가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2. 보물을 모두 보였습니다.
본문 2-4 "히스기야가 사자를 인하여 기뻐하여 그에게 공중 보물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와 보물고에 있는 것을 다 보였으니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은지라 이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왕에게 나아와 묻되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가로되 그들이 원방 곧 바벨론에서 내게 왔나이다 이사야가 가로되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들이 내 궁전에 있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하였습니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결국 보여주고 마는 실수를 한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이 먼저 움직이면 반드시 행동으로 연계되어지는 일은 자연적인 현상인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에 그 마음을 억제하고 보여주지 아니하는 행동을 취하였으면 매우 좋을 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제력이 약했습니다. 그리하여 보여서는 안 될 모든 것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모든 것은 매우 좋은 일이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자랑하는 것은 일종의 교만에서 나온 과시욕의 일종입니다. 그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여 주느냐 보여주지 아니 하느냐는 행동 여하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3. 보인 결과는 모두 빼앗겼습니다.
본문 5-7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고 세상적인 보물을 자랑한 결과로 자기가 보인 모든 것은 빼앗기고 맙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자랑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만 자랑하면 결국에는 그것들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세째 하늘에 올라갔다가 와서도 그는 14년 동안이나 말하지 아니하고 있다가 14년 후에 말을 하면서도 매우 조심성있게 말하였습니다(고후 12:1-5). 자신은 약한 것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여하간 히스기야 왕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만 자랑하다가 그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결론
예레미야 선지자는 기록하기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는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림 9:23-24)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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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 40:1-5
제목 :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서론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죄를 짓고 그 죄값으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죄값을 치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로하라고 말씀을 하십ㄴ다. 그 이유는 이제는 죄로 인하여 벌을 받는 기간도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영광을 본다는 것은 가깝게는 바벨론에서 구원 받을 날을 말하고 멀리는 신약의 메시야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고생을 한 그들은 서로 위로할 만 합니다.
1. 복역의 때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본문 2 "너희는 정다이(예루살렘 사람들의 마음에 감화되도록)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하였습니다. 즉 70년간이라는 긴 세월의 포로 생활을 청산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라 그의 백성들이 죄를 지어서 죄 값으로 장기간의 벌을 받게 하셨지만 그래도 그들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벌을 받게는 하셨지만 버리시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징계의 기간을 주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목적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이 벌을 받는 동안에도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하며 너희 딸로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생산케 하여 너희로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렘 29:4-7) 하였습니다. 이는 복역의 때를 바라보고 쇠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2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를 범하여 죄 값으로 바벨론 포로가 되어 70년간이나 포로생활 하였으니 그 죄 값은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그들의 죄가 70년이라는 기간을 통하여 형기를 마쳐서 사면된 것이 아니고 그것과는 관계 없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속죄관은 형기만 마치면 면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하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그들의 죄가 사하여졌다고 말씀을 하셨으니 매우 기쁜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죄함을 받은 백성들은 서로 죄악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서로 위로하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입니다.
본문 3-5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는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하였습니다. 지금은 높은 산과 같은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지만 고르지 않는 심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게 하며 믿음을 가지는데 많은 지장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낮아져서 겸손한 마음으로 마음의 평정을 되찾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저자는 말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시므온은 말하기를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눅 2:28-33). 외치는 자는 세례요한을 말하고 믿음으로 예비한 자는 하나님의 영광인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복음사역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
성도가 서로 위로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손을 거두시고 그로부터 죄 사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업에참예하여 주의 재림을 대망한다면 이는 매우 기쁜 일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고 서로 위로하라 하였습니다(살전 4: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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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 41:8-14
제목 : 하나님의 약속
서론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보호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오늘의 성도들에게도 해당되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이행치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만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에게 약속을 받은 자들이 지켜야 할 것은 바울사도가 말하기를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 하였습니다. 그럼 무엇을 약속하셨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본문 8-9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통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싫어하지도 아니 하시지만 버리지도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변함 없으신 약속입니다. 얼마나 마음 든든한 약속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약속은 잘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는 이행치 아니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드리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너무나도 철저하게 지키시지 때문에 인간들이 약속하고 지키지 아니하면 그것을 반드시 지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전 5:2-7, 신 23:21-23). 그리고 우리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오래동안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본문 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13-14)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도와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렇게만 되면 아무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만 도와 주시면 무엇이나 만사가 형통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와주시니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되었고 광야에서 만나를 먹게 되었으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함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가나안 족속들도 물리쳐 주시고 가나안에 안주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 이행과정이었습니다.
3. 이기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본문 11-12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던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하였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을 박해하던 바벨론과 그의 속국들이 멸망 당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들에게 대한 약속도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시대 사람들에게만 약속을 이행하시고 어느 한 시대 사람들에게는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는 일은 없습니다. 택하여 구속하신 백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사랑하시고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성도들은 재림을 대망하면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셔서 승리할 수 있게 도와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고전 15:57)
결론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두려워 하지 말고 담대하게 신앙생활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