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
창1:26-28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2024년 교회 표어와 실천 사항을 읽어보겠습니다.
*표 어 : 새로운 마음 새로운 인생 새로운 부흥(고후5:17)
*실천사항 : 행복과 웃음이 넘치는 공동체 세우기
(시끌벅적 공동체, 요일3:18)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는 성도되기
(달라졌어요, 갈5:19-26)
삶과 일터를 교회로 세우는 성도되기
(발바닥으로 밟는 곳마다, 수1:3)
삶의 부흥으로 교회의 부흥을 이루는 성도
(누군가 보고 있어요. 행2:27)
핵심은 새로운 마음입니다. 새로운 마음이 새로운 인생을 만들고, 새로운 부흥을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깨닫고 기억해야 할 것은 새로운 마음이란 것이 이전에 없던 것이나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새로운 마음이란, 다르게 표현하면 원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회복해야할 원래의 마음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나누며, 은혜 받고자 합니다.
첫째, 원죄(riginal sin)를 넘어 원복(original blessing)으로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성경은 인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이 마치 인간처럼 팔다리가 있고, 얼굴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성경 사전에 기록된 설명입니다.
“여기서 형상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구체적인 닮은꼴을 말한다. 사람은 전존재가 하나님의 성품의 영향을 받아서 이성적, 윤리적, 종교적 능력을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으며, 영이신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한국말인데도 참 어렵죠.
쉽게 말해 우리는 하나님과 인격과 마음이 닮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 하나님의 인격이나 성품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28)
다른 창조물은 창조로 끝났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을뿐만 아니라, 그 위에 하나님의 창조물을 다스리게 하시는 축복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잃어버렸고, 축복마저 상실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읽어버린 인간에 대한 설명입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롬5:12)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이같은 인간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고 구원의 베푸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함께 외워서 선포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권세 아래의 인간이 본래의 복받을 존재로의 회복을 위하여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은혜가 복음입니다. 또한 원죄로 인하여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를 원하셔서, 이 땅에 보내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하는 벤츄라교회의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우리가 회복해야 할 하나님의 성품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지만, 하나님은 영이시라 우리가 생각하는 형체나 모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하나님의 인격이나 성품이 드러나는 말씀이 성경에 수도 없이 많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에 나타난 모습을 묵상해보고, 찾아 보았습니다. 그정 첫째가 하나님은 기쁨 충만한 분이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무려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7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인간을 창조하시고, 창조를 마치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좋았더라”의 히브리어는 '토브'(טוב)인데, 명사로 행복(幸福)이라는 뜻이 있습니다.(신10:13 "내가 오늘 네 행복(토브)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동시에 형용사로서 ‘선한' '기뻐하는'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축하와 축제와 잔치의 가장 기쁜 상황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면 너무 기쁘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를 정도로 행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주일예배를 마치는 순간에 받는 감동과 느낌이 있습니다. 1부 예배를 마치고, 2부 예배를 마치고,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는 순간, 뭔가 와하는 느낌이 일어납니다. 은혜 받고, 성령 받고 기뻐하는 마음들이 파도처럼 일어나는구나. 그 느낌이 오면 제가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몰라요.
감히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지만,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끼며 사는 것 같아 정말 감사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해야할 최고의 품성이 바로 기쁨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갈5:22-23을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순서로 매길 수는 없겠으나, 기쁨이 두번째에 위치하고 있더군요.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벤츄라교회는 구원받은 자들이 모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하니, 모일 때마다 시끌벅적한 교회되기 원합니다. 금년도 실천 사항 첫번째가 행복과 웃음이 넘치는 공동체 세우기입니다.(요일3:18) 이것을 한마디로 말해서 시끌벅적 공동체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모이면 시끄럽지 않고 시끌벅적해서 좋습니다. 사랑의 언어, 기쁨의 웃음소리, 축복과 칭찬, 기도와 찬양이 가득하면 소리가 커도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시끌벅적합니다. 이와같은 소리들은 화음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질서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세상은 카오스, 즉 혼돈의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혼돈을 물리치시고,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셨습니다. 수많은 별들이 있지만, 질서가 있으니 충돌하시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질서는 생명세계가 서로 협력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기가막힌 질서를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가득하며, 질서가 충만하면 아무리 소리가 켜도 화모니를 만들어 냅니다. 듣기에 좋습니다. 시끌벅적해집니다.
초대교회 예배는 축제였다고 합니다. 창조와 부활의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하며, 말씀을 전하면, 아멘으로 맞장구치는 축제,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를 기억하고 다시 오심을 기대하며 사회적 신분의 격차를 뛰어넘어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축제였다고 합니다. 찬양한곡에도 축제적 분위기가 넘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움과 원망과 짜증과 분노가 섞이면 작아도 귀에 거슬리고 시끄러운 교회가 됩니다. 제 친구 목사가 울릉도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해마다 많은 목회자들 단체에서 다녀간다고 합니다.
울릉도는 일기가 수시로 변해서 일정대로 오는 것도 힘들지만, 일정대로 떠나는 것도 힘들다고 합니다. 태풍이나 높은 파도로 인해 정해진 시간에 떠나지 못하면 주일이 걸려있는 목회자들이 곤혹을 치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든 시간에 어떤 목회자들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더욱 평화로운 모습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어떤 목회자 단체들은 서로 원망하고, 다투고, 갈등한다고 합니다. 좋을 때는 시끌벅적했던 공동체가 문제를 만나면 시끄러운 공동체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떤 모습되기를 원하십니까? 제가, 우리가, 교회가, 여러분 각자가 갈 길은 정해졌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성품을 따라 기쁨의 존재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살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양선, 자비)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0-21)
아담이 홀로 있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안타깝게 여기셔서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드셨다는 너무나도 잘 알고, 익숙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번주에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이같은 마음으로 충만하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아름다울까? 얼마나 평화가 넘칠까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은 보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약자의 약함을 살피시고, 부족함을 살피시고, 고난 당할 때에, 힘들 때에 살피시고 보살피시는 하나님,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 여러분도 마음껏 체험하시고 하나님의 그 마음을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새벽에 나누었던 사무엘상의 29장을 보면, 다윗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가막힌 섭리로 해결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살피시고 계십니다. 이같이 살피시는 하나님의 품성이 저와 여러분 마음 가운데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보살피고, 기도로 응원하고, 약함을 채워주고, 부족함을 채워주는 공동체는 복된 공동체입니다.
오늘 밴쿠버 한인교회 임덕규 목사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오늘 일정상 어려운데저를 사랑하시고, 벤츄라교회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제가 좋은교회를 이임을 준비할 때부터 이임 후에 주일예배를 어디서 드려야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의 사정을 다 아시는 목사님께서 이임예배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한마디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로 와” 제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밴쿠버한인교회 부목사로 사역을 이어갔기에 종교비자를 발급받을 때도 큰도움이 되었습니다.
다 아실말한 예화 한가지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신이 나타난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먼저 지옥에 가보니 불이 활활타고 연기가 피어 오를줄 알았는데, 식탁이 있었고, 귀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 기다란 숟가락이었습니다. 긴 숟가락으로 식탁의 음식을 떠서 자기 입으로 가져가느라고 식탁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숟가락을 입속에 넣으려고 팔을 움직이고 몸을 비틀다 옆 사람의 얼굴을 때리게되고, 음식이 튀어 주변 사람들의 머리나 옷에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먹다가 쌈박질이 나서 더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합니다. 긴 숟가락은 칼처럼 무기가 되었고,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옆에서 울며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답니다. 말 그대로 지옥이었습니다.
천국에 가보았습니다. 꽃이 만발하고 아름다운 곳일줄 알았는데 지옥과 똑같았습니다. 식탁이 있고 숟가락도 길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싸우지도, 다투지도, 음식이 튀기지도 않았습니다. 기다란 숟가락으로 서로 먹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먹여주며 감사했고, 칭찬했고, 즐거워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환경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속에 속한 사람들의 마음과 성품이 달랐던 것입니다.
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