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특권
2024년 2월 11일 요 1:9-13
1. 하나님의 자녀
(1)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진대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권리를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권리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땅위의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입니다. 악한 영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삶을 누리지 못하도록 갖은 수단을 동원해 방해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부리는 수작 가운데 가장 요긴한 것이 뭔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걱정입니다. 염려하는 겁니다. 우리로 하여금 늘 걱정근심에 빠지게 하는 것이 사탄의 주된 공격방법입니다. 이런 사탄의 수작에 걸려든 분들은 노다지 걱정, 근심, 염려가 입에 붙어 있습니다. 입에 붙은 게 아니라, 사실은 마음에 붙은 것이지요. 낮에도 그렇고 밤에도 잠을 못 이루지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교우들 가운데는 그런 성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걱정근심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제가 한 카드를 오래 썼더니 카드사에서 고객등급을 올려주었습니다. 등급이 올라가니 송금수수료가 붙지 않습니다. 돈도 얼마까지 빌려준답니다. 이런 권리들에는 우리가 익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들에게는 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더 이상 걱정 속에 살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말합니다. “목사님, 사람이 어떻게 걱정 안하고 삽니까? 인생살이에 걱정은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아닐까요?” 아니죠. 아닙니다. 그것은 인생등급에 따라 다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 비용을 지불하며 살아야 합니다. 늘 걱정 가운데 살지요. 그런데 인생 일등급, 프리미엄 등급인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걱정이란 비용이, 수수료가 붙지 않습니다. 이 인생 프리미엄 등급들은, 일반인들과 똑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러나 근심걱정 무거운 짐은 다 십자가 앞에 내던지고, “내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송하며 살아갑니다.
(2) 두려워 말라.
궁극적으로 사람을 겁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 아닙니까? 가장 큰 공포가 죽음의 위협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을 이긴 분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에서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죽음을 이겼다는 말은, 어떤 몰지각한 신앙인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육체적으로 죽지 않는단 말이 아닙니다. 죽음을 이겼다는 말은 죽음의 권세를 이겼다는 뜻이고, 이는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입니다. 누구도 우리를 죽음의 권세로 위협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처럼 고백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사자 굴의 위협에도, 참수형의 위협에도, 나치의 학살에도 무릎 꿇지 않았던 것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우리 몸에 발생하는 질병 하나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인은 죽음을 넘어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그리고 죽어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장중(掌中)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왜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백조인 줄 모르는 미운오리새끼처럼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요, 우리가 연락만 하면 아버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연락만 하면 되는데, 전화기만 들면 되는데 전화기를 안 들어요. 그러니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리지요. 아버지한테 연락하세요. 다 됩니다.
2. 요한복음 1:9-13
요 1:12입니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은 누가 얻는다고 되어있나요? 그것은 바로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를 맞아들이는 것과 그 이름을 믿는 것은 똑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만 기억해도 됩니다. ‘맞아들인 사람들!’ 개역성경의 표현으로는 ‘영접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립니다. 13절입니다.
이들은 혈통에서나, 육정에서나, 사람의 뜻에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났다.
“하나님에게서 났다!” 이런 믿음의 자녀들은 다른 어떤 생물학적인, 자연적인 원리에 따라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의 섭리로 태어나게 된 것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났다! 하나님에게서 났다! 믿음의 자녀들은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입니다.
3. 자녀의 특권
(1) 누리지 못하는 인생
불안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왜 그리 걱정이 많은지 늘 맘이 편하지 않습니다. 빈둥빈둥 노는 것도 아니고, 해야 할 일 다 하면서 열심히 사는데 뭔지 모를 불안감이 늘 주위를 맴돕니다. 많은 이들이 술을 마십니다. 친구를 찾습니다. 어떤 이들은 마약을 투약하기도 합니다. 어리숙한 신앙인들 가운데도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알 수 없는 근심, 걱정, 불안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딱한 노릇입니다.
한 아이가 입양됩니다. 이제 새로운 부모를 만납니다. 이 부모는 매우 인자하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분들입니다. 그런 이들이 이 아이를 자녀로 맞이한 겁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묻습니다. 제게 아침 점심 저녁마다 밥을 주실 건가요? 제가 잘 방을 주실 건가요? 제가 입을 옷을 사주세요. 학교도 보내주세요. 용돈도 주셔야 돼요. 이런 식으로 계속 요구한다면 이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닙니까! 몰라도 이리 모를까요? 아직 어리니 그렇다고 이해하지만 나이 들어서도 이런다면 어떨까요? 부모로서 기가 막힐 것입니다. 자녀로 맞아들였을 때 끝난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까지도 다 책임져주는 것이지요. 부모의 것이 다 그의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계속 달라고 하다니요…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모습이 꼭 이 입양된 애와 같지 않은가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로 삼아주셨는데 자꾸만 걱정한단 말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공중의 새를 보아라. 들에 백합화를 보아라. 심지도 않고 뿌리지도 않고 거두어들이지도 않지만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이것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하신 것은 바로 우리의 이런 철없고 미련함을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한번은 텔레비전을 보는데 산속 깊은 절에서 단체로 옹심이를 만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팥죽에 쓰려는 지 한 겨울에 매우 많은 불자들이 둘러 앉아 열심히 옹심이를 빚는 것을 보았습니다. 취재 나간 리포터가 한 아주머니(보살님?)에게 물었습니다. “이 옹심이를 빚으면서 뭘 기도하세요? 부처님께 어떤 걸 비세요?” 이 물음에 아주머니 보살님이 한 대답을 듣고 제가 한 방 얻어맞아 멍해졌습니다. 이 보살님 대답하시기를, “이것, 저것 달라지 않게, 그런 기도 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어요.” ‘공중의 새를 보아라. 들에 백합화를 보아라. 심지도 않고 뿌리지도 않고 거두어들이지도 않지만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이것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는 예수님 말씀에 딱 들어맞는 대답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2) 전화하세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걱정하지 않는 것, 염려하지 않는 것, 두려워하지 않는 것 하나님 자녀의 특권이라고 했지요? 이 특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늘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 가운데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신앙의 위대한 선배들은 하늘로 전화를 많이 하신 분들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화를 많이 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땅에 살지만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화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하늘 아버지께 전화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늘 기도하는 가운데 자녀의 특권인 행복한 삶을 누리는 하늘샘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