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 종주 6구간(산줄기 161일째)
일 자 : 2003년 4월 9일
구 간 : 한치 ~ 서북산 ~ 여항산 ~ 발산재
날 씨 : 맑음
도상거리 : 22.5km
한치 - 2.1 - 봉화산(649.2m) - 3.5 - 서북산(738.5m) - 1.6 - 706봉 - 2.7 - 여항산(770m) - 0.9 - 743.5봉 - 0.6 - 미산재 - 1.1 - 557봉 - 0.7 - 오곡재 - 1.3 - 527봉 - 0.9 - 큰정고개 - 2.5 - 363봉 - 3.6 - 326봉 - 1.0 - 발산재(2번 국도)
산행시간 : 9시간 55분(휴식시간 포함)
가도 가도 끝이 없더라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가 함락되던 날, 마산시 진동면은 신무기의 공습으로 잠 못 이루는 밤 이였다고 한다. 누구누구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나도 깊은 잠에서 깨어난 새벽 3시부터는 함포사격의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시원한 해물 된장찌개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서둘러 한치로 향한다.
06시 10분 한치고갯마루 진고개휴게소 좌측으로 가설창고를 끼고 3구간 두 번 째날 종주가 시작된다. 12분 정도 가파르게 올라 방향을 남쪽으로 바꾸며 완만한 오름길이 되더니 4분 뒤 밋밋한 330봉에 넘는다. 정맥은 오른쪽으로 내리막길이 열린다.
힘이 남아돌 때 맘껏 고도를 올려보려고 했는데 다시 내리막길이 되다니 서운한 마음으로 안부에 내려섰다가 다시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아침을 노래하는 산새들이 유난을 떠는 정맥길은 마치 책을 포개 것 같은 바위지대를 지나 마당바위를 통과한다.
07시 05분 봉화산 능선분기점이다. 1:100,000 지도에는 정상이 북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다. 오늘 산행거리가 만만치가 않아 정상까지는 발걸음이 내키지 않는다. 3분 정도 숨을 고르고 왼쪽길로 들어선다. 안부를 가로지르며 서북산, 여항산과 눈팅을 한다.
안부에서 6분만에 올라선 봉에는 파릇파릇 돋아나는 풀잎사이에 받침이 없는 삼각점이 보인다. 높이 649.2m의 봉화산 남쪽 봉이다. 베어버린 나무들이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좌측으로 큰비라도 내리면 금새 늪이 되어 버릴 억새밭이 나타난다. 건너편 광려산 위로 아침햇살에 눈부시다. 외상없는 정맥길, 한없이 고도를 낮추던 하산길이 생각이 난다.
우뚝 서있는 송전탑을 보며 억새밭을 가르며 간다. 평지산(592m)으로 분기되는 능선분기점이다.(07:28) 정맥은 오른쪽이다. 한차례 고도를 팔아야 하는 가파른 내리막길은 바윗길이다. 시야에는 푸른 숲의 서북산이 어서 오라 손짓을 한다. 한차례 힘겹게 다리품을 팔아야 오를 것만 같다.
07시 39분 임도에 내려서서 한동안 임도를 따라간다. 좌우로 억새풀이 대단하다. 우측 아래 갈밭골이라는 지명이 유난히 많은 억새풀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안부로 내려서면서 보는 잣나무 조림지는 너무나 싱그러워 보인다. 덩달아 울어대는 산새들의 지저귐...
가파른 진흙길을 올라서며 만나는 넓은 공터에는 먼저 도착한 엄선배가 기다리고 있다. 잠시 다리 쉼을 하며 서북산 오름길을 대비한다. 정맥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우측의 잣나무 조림지를 따라간다. 그리고 임도를 버리고 능선에 붙는다.
08시 솔밭사잇길로 내려선 임도를 가로지른다. 잣나무 숲길로 완만한 오름길이 돌담을 쌓아 올린 묘지를 지난다. 연이어 가파르게 올라 바위지대에서 영양공급을 한다. 먹는 만큼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08시 34분 코가 닿을 듯이 한차례 힘겹게 묘지를 통과하며 올라선 곳이 높이 738.5m의 서북산이다. 진동면의 서북쪽에 위치해 서북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넓은 헬기장이 자리잡고 있다. 헬기장 끝으로 자연석의 표지석이 서있다.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멋지다. 먼저 봉화산 줄기를 확인해 본다. 봉화산 능선분기점에서 좌측으로 가보지 못한 주봉이 못내 아쉬워서...
그리고 여항산으로 굽이치며 이어가는 정맥의 능선들은 정말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조금 내려선 곳에는 서북산 전적비가 특공대를 기다린다. ‘이곳 서북산 전투는 6.25 한국전쟁 중 낙동강 방어전투가 치열하였던 50년 8월 미 제25사단 5연대가 북괴군을 격퇴하여 유엔군의 총반격 작전을 가능케 하였던 격전지며 이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중대장 티몬스 대위 외 100여 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주한 미 8군사령관 리차드 티몬스 중장과 제 39사단장 하재평 소장을 비롯한 사단 장병 및 지역주민들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라고 적혀있다.
전적비를 뒤로 완만한 능선길은 참나무 숲의 날등으로 이어진다. 시야가 옅은 안개로 조금은 아쉽지만 맑은 날씨라 마냥 상쾌하기만 하다. 바람만 조금 불어준다면 데길(마산시 진전면 양촌리 온천에 갔을 때 온천장 주인 말이 건물은 허술해도 물은 데길이다.)인데...
08시 49분 안부에서 바윗길은 이내 다시 내리막길로 바뀌고 참나무와 진달래가 어우러진 좁은 날등을 걷다보면 여항산의 암봉이 아직 멀기만 하다. 좌측의 양지와 음지마을이 우측으로 여러 마을들이 평화롭게 자리잡고 있다. 능선길은 완만한데 좌우 측 어디를 보나 급사면을 이루고 있다.
암릉을 우회하며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 전망대 바위에 선다. 뒤돌아보는 지나온 좁은 날등의 정맥길, 우리가 걸어온 길이 정말 아름답다. 봉화산 줄기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그리고 1분 거리의 능선분기점으로 올라서며 눈길을 끄는 철쭉 한 그루...
09시 10분 능선분기점을 지나 다시 암릉이 나타난다.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는 뜀바위는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정맥의 노란꽃, 덩달아 새들의 지저귐도 유별나다. 불청객에 놀란 장기 한 마리가 특공대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706봉을 통과한다.
09시 16분 안부 전망대바위에서 좌측으로 내려다보는 마을의 푸른 물결, 누구는 마늘밭이라고 누구는 시금치 밭이라 한다. 저수지의 푸른 수면도 아름답다. 어느새 서북산이 멀어만 보인다. 정맥은 북쪽을 향하고 있다. 여항산 바위봉은 또 다른 모습으로, 그리고 2미터정도의 수직의 바위길이 미끄럽다. 좌측으로 흐르는 암릉이 보기 좋아. 여유만 있다면 밟아보고 싶다. 바윗길 여기저기 분홍빛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09시 30분 헬기장을 가로지른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다. 5분 뒤 암벽이 가로막는다. 우회길을 버리고 암벽을 기어오른다. 아기자기한 암릉을 타고 내려서는 길에는 마산소방서의 위험하니 돌아가라는 안내판 쓰러져 있다. 펑퍼짐한 봉에 올라 허기를 채운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허기가 몰려올까? 어느새 수직의 암벽을 이룬 여항산이 앞을 막는다. 슬그머니 겁부터 난다.
10시 06분 이정표(정상: 0.2km, 서북산: 5.9km)를 뒤로 암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쇠줄과 밧줄이 늘어져 있다. 7분 가량 자연과의 싸움, 드디어 여항산 정상에 선다. 함안의 주산인 높이 770m의 여항산은 본래의 지명은 알 수 없으나 조선 선조16년 함주도호부사가 풍수지리학적으로 남고북저의 함안 지명을 배가 다니는 낮은 곳을 의미한다 하여 남쪽에 위치한 이 산을 배 여(艅) 배 항(航)자로 하여 여항산이라 했다고 전하고 있다.
주위에는 써릿발 같이 생겼다는 싸리봉, 바위색이 붉다 하여 피바위 등, 6.25때 치열했던 격전지로도 알려진 곳이다. 좁은 날등의 정상, 사방이 탁 트여 쾌청한 날이면 지리산이 저 멀리 안개 속에 떠있으며, 남해의 푸른 물결이 손에 잡힐 듯 내려 보인다는데 조금은 아쉽다. 지나온 봉화산 능선도 서북산에서 이어온 정맥의 능선도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그리고 가야할 능선들을 눈팅한다. 적당한 자리에서 조금은 이른 시간이지만 도시락을 푼다.
10시 32분 출발한다. 날등을 타고 간다. 암릉길을 벗어나면서 3분 뒤 헬기장을 통과한다. 석촌 1.4km를 가리키는 이정표에서 3분 가량 걷다보면 옛 성터 같은 돌무더기 바윗길이 나타난다. 다시 5분 뒤 돋을샘으로 내려설 수 있는 갈림길을 지나 7분 뒤 돌탑봉에 오른다. 돌탑봉을 뒤로 완만한 정맥길은 돌밭길이라 걸음을 더디다.
10시 59분 바위봉에 올라선다. 여기가 747.5봉인가 그런데 삼각점을 찾지 못했다. 119 조난 신고 안내판이 있는 곳이다. 이어 만나는 돌탑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하다. 내리막길이 시작되면서 미산재가 빤히 내려다보인다. 한차례 돌밭길을 지나 암릉을 넘는다. 뚝 떨어진다. 다시 한차례 오름 뒤에 이 곳 주민들과 마주치면서 내려선 곳이 임도가 나있는 미산재다. 오곡재로 오판하기 쉬운 곳이다. 사실은 우리도...
11시 20분 작은 안내판에는 의상대를 가리키고 있는 이정표, 우측으로 길이 끊겼으니 진입하지 말라는 안내판, 완만한 오름길로 10여분 올라치면 전망대 바위에 닿을 수 있다. 좌측으로 여양리가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잠시 후 의상대로 이어지는 능선분기점을 만나면서 정맥은 왼쪽으로 급경사로 안부까지 10분 가량 고도를 팔아야 한다.
옛 참호가 있는 봉에 오른다. 우측으로 조금 멀찌감치 보이는 수십m 수직의 바위벽이 의상대가 같다. 이어 올라선 봉우리가 557봉, 내리막길은 완만한 솔밭길이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좌측으로 오실골 마을과 여양저수지, 바위지대를 통과한다.
11시 58분 정맥을 벗어나는 듯한 내리막길로 뚝 떨어진다. 10분 가량 끝없이 떨어지는 듯하다 멈춘 안부, 오름길에는 군데군데 웅덩이들이 많이 보인다. 좌측으로 파란지붕도 가깝게 보인다.
12시 17분 임도가 나있는 오곡재다. 또 다른 지명은 비실재다. 좌측으로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오실골로 내려설 수 있고, 우측으로 함안군 군북면 오곡리로 내려설 수가 있다. 오곡재를 뒤로 군데군데 진달래 꽃길이 아름답다. 돌무더기도 보인다.
잠시 다리 쉼을 하며 배낭에서 건빵을 끄집어낸다. ‘배가 고팠던 그 시절 어머님이 집어주던 추억의 건빵’이란 글귀에 가슴이 찡해 온다. 그 옛날 훈련병 시절(제2훈련소 26년대 93기)이 생각난다. 불침번 군무를 하며 난로에 건빵을 올려놓고 하나씩 먹어가며 졸음을 참았던 시절이 있었다. 먹기 위해 가는지 가기 위해 먹는지...
12시 28분 어느새 10여분 훌쩍 지나 버린다. 김수인씨가 “선배님 우리 놀매 팀으로 합시다.” 하긴 오늘 내내 너무 여유를 부리는 것 같다. “놀매 팀 출발” 진달래 꽃길이다. 뚝 떨어지는 듯해 깜짝 놀랐는데 왼쪽으로 정맥의 능선이 선명하게 이어진다. 한차례 가파른 오름길이 힘에 겹다. 고도계가 505m를 가리키는 봉(12:51)에 올라 오른쪽으로 잠시 평탄하게 이어간다.
12시 54분 마산시 진전면, 함안군 군북면과 진주시 이반성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527봉에 오른다. 삼각점(함안 414, 2002년 복구)을 시설하면서 베어놓은 나무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우측으로 오봉산(524.7m)으로 이어지는 능선분기점이다. 정맥은 왼쪽이다. 다시 잠시 떨어진 안부에서 완만하게 바위봉을 통과한다. 평탄한 정맥길, 이장한지 얼마 안 돼 보이는 묘지 공터를 지난다.
다시 정맥은 왼쪽으로 내려서는 길에 돌밭에 미끄러져 땅 한 평을, 그리고 내려서며 큰정고개는 알 듯 모를 듯 지나간다. 진달래 꽃길을 김소월님의 진달래꽃을 떠올리며 사뿐히 즈려 밟고 간다.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진달래꽃길을 여유롭게 걷는다. 놀매 놀매 간다.
가끔은 쓰러진 나무들이 거치적거리고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527봉에서 50분 거리의 공터 밋밋한 묘지를 통과하며 안부에 내려서기 직전 정맥꾼들은 발 밑에 깔려있는 철조망을 조심해야 한다. 통과할 당시는 여기가 큰정고개(?)...
13시 51분 긴 오르막길을 올라서니 좌측으로 도로가 내려다보인다. 시야에는 높다란 봉이 하나 선 듯 다가선다. 꽃길엔 새들이 나르고 소나무 숲도 푸르지만 끝이 보이지 않아 지루하기 만하다. 고목이 서있는 십자로 안부를 가로지른다. 좌측으로 임도가 나타난다. 우측으로 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돌부리에 걸려 곤두박질을 칠 뻔하고 나니 또 허기가 밀려온다. 다리의 힘은 빠지고, 이럴 때 메뉴는 무엇을 얻으려고 왜...
14시 22분 넓은 공터의 커다란 묘지를 통과한다. 8분 뒤 우측의 묘지를 확인하며 왼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한용수씨가 “발산재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몽땅 배낭에 있는 거 떨어버립시다.”한다. 길을 가로막고 편안한 자세로 허기를 메꾼다. 배에 거지가 얼마나 들어있기에 이렇게 먹고 또 먹어도 허기가 몰려올까?
14시 42분 놀매 팀 출발, 작은 봉을 넘으며 방향을 왼쪽으로 조금 틀며 내려선다. 오른쪽의 능선을 무시하고 한차례 뚝 떨어진다. 능선 좌측으로 임도가 나타난다. 가도 끝이 없는 길, 작은 오르내림으로 이어지던 정맥길이 한차례 오름길이 시작된다. 여기저기 간 벌한 나뭇가지들이 거치적거린다. 묘지를 통과한다.
15시 24분 송전탑을 통과한다.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사실은 오늘 오곡재에서 끝날 줄 알고 지도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눈 뜬 장님과 진배가 없지. 옛 산판길을 가로지른다. 힘겨운 오름길 끝에 묘지를 지나 한차례 더 올라선 곳이 그렇게도 찾고 찾던 능선분기점인 326봉이다.
15시 36분 여러 줄기가 엉킨 소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오른쪽으로 팍 꺾으며 간다. 다시 작은 오름 뒤에 봉을 넘어서니 반갑게 자동차의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정맥꾼들은 왜 자동차의 소음이 반갑기만 할까. 내리막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날 즈음 묘지대가 나타난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내려선 곳이 발산재다.
16시 05분 마산시 진전면과 진주시 이반성면을 경계를 이룬 2번 국도가 지나는 고갯마루에는 휴게소가 자리잡고 있다. 자연보호헌장탑과 로타리클럽에서 세운 마을경계 표지석이 있다. 2일간의 정맥종주를 마치고 나니 몸도 마음도 무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