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마음 한구석에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는 짐을 털어내는 심정으로 이른 아침 발걸음을 재촉했다. <교단자정과 그릇된 관행타파>를 선언하며 창간한 불교포커스가 ‘종교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수감중인 불자’에 대한 취재를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어 왔음이 항상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영등포구치소에도 부처님 오신날을 반기는 연등이 달려있다.
1호선 개봉역에 내려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
영등포구치소.
먹구름 낀 하늘빛이 구치소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만큼 잿빛이다.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연등이 낡고 높은 담벼락 위에 걸려있다.
“10시 이전에 면회신청을 하면 10분이고요, 그 이후부터는 7분입니다”
3분의 면회시간을 더 얻기 위해 이른 아침잠을 설쳐 도착했지만, 막상 주어진 시간동안 무엇을 이야기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참 하다가, 여기저기서 수집한 면회자의 정보를 다시 한번 흛어 본다.
(김 도형. 28세.
종교적 양심에 따라 집총을 거부한 불자.)
법명은 덕봉. 전남 목포출생인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님 손에 이끌려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불교학생회 활동을 시작했고, 한국대학생 불교연합회 목포지부장을 거쳐 2002년부터는 대불련 중앙포교부장으로 활동했다. 각종 법회와 수련회 참여를 통해 신심을 다졌고, 북녘동포돕기, 통일순례단, 반전평화운동 등 우리사회와 민족의 모순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신심 돈독한 청년불자다.
그런 그가 2003년 4월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기를 서원한 불자로 불살생 계를 지키기 위해 총들기를 거부한다’며 병역을 거부했다. 이후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영등포구치소에서 복역 중 이다.
내안에 내재된 폭력성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평화는 시작
투명한 벽을 사이에 두고 저편에 앉아 있는 김도형의 모습은 밝고 편해 보였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인데요.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까 몸도 좋아졌고, 무엇보다도 지난 일을 조용히 되돌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얼핏 들으면 어느 선방의 수행자 생활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하루 일상을 물으니 더 더욱 그렇다.
“ 틈나는 대로 경전을 읽고 규칙적으로 명상하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이 시간이 너무 좋습니다. 종교활동은 한달에 한번씩 있는데 취사반 일을 맡고 있어서 잘 가지는 못해요.”
길지 않은 면회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질문을 했다. 병역거부를 왜 했냐고? 후회하지는 않느냐고...
“후회라니요... 아니요. 이곳에 와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으면서 더 더욱 제 행동이 옳았음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 병역거부를 했을 때는 주변에 그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려웠어요. 분명 충동적인 것이 아니었는데, 막상 정리해서 이야기 하려 하니 추상적인 표현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꿈꾸는 정토세상은 내안에 내재된 폭력의 기운을 버리는 것으로부터 이루어진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남으로부터 문제되거나 강요할 문제가 아닌 온전하게 내 자신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고요, 제게는 그 출발점이 생명을 빼앗기 위해 훈련하는 집총에 대한 거부였습니다.”
병역거부를 한 이유를 설명하는 그의 말투는 단호하면서도 확신에 차 있었다.
김도형은 자신의 선택이 옳은 길임을 확인하고자 만행(?)에 나서기도 했다.
불구속상태로 재판을 받던 기간 중 그는 당시 새만금갯벌 살리기 삼보일배 정진중이던 일행에 동참해 ‘생명’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졌고, 이후 실상사에 한동안 머물면서 ‘평화’에 대한 의미를 정리했다고 한다.
수감되기전 어느 모임에서 발표한 글을 통해 그는 이 기간의 경험을 통해 얻은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평화의 문제도 내 밖에 있는 쟁취해야 할 어떤 것이라기보다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병역거부, 평화에 대한 고민 또한 누군가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물음일 뿐입니다. “세상에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먼저 평화가 되자!” <내안으로부터의 생명-평화이야기>
불교계 병역거부 문제 무관심... “서운하지 않다”
낮게 고정된 스피커 볼륨으로 인해 잘 들리지 않는 음성에 귀 기울이며 ‘불교계에 서운한 점이나, 바라는 것이 없느냐’는 물었다. 그는 지난 2003년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 발표한 <병역거부 소견서>라는 글을 통해 ‘불교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문제가 적극적으로 논의 되었으면 합니다’라는 바램을 밝힌 바 있었다. 그러나 몇몇 불교단체들이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고, 그가 바랐던 ‘논의’는 이후 단 한차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자신의 몸짓이 계기가 돼 불교계에서 병역거부 문제가 활발히 논의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으리라는 짐작에 던진 질문이었다.
“철저히 개인적 양심과 믿음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불교계가 이 문제를 조직적으로 관심 갖지 않는다고 해서 특별히 서운하거나 하는 일은 없어요. 다만,복역 후 대체복무를 고민하는 후배들을 위해 일 해볼 생각도 해 봤는데, 너무 벽이 높아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이 부분에 있어 말을 아끼는 것 같았다. 서운하지 않고, 철저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이야기 하는 이면에는 제도권이라는 틀에 얽매여 있는 한국불교의 현실에 대해 어느 정도는 체념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지 않은데 ‘면회시간이 2분 남았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수감생활 마치고 나면 뭐 할 거냐고 물었다. 수감되기 전 마음먹었던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후배들을 위해 살아보겠다는 생각이 흔들린다니 더 더욱 궁금했다.
“빠르면 내년 1월이나 3월경에 가석방으로 출감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복역 마치고도 한 3년은 사회봉사 해볼 생각이었습니다. 대체복무제 도입과 상관없이...시간이 지날수록 의지가 약해지는 것 같아요.(웃음) 다음주에 영등포교도소로 옮길 것 같아요. 제가 한식요리를 배우고 싶어서 교육생신청을 했거든요. 무엇을 할 건지는 구체적으로 정하지 못했지만 생명과 평화의 문제를 고민하는 삶을 살겠다는 뜻은 확실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너무 식상하거나 통속적인 질문이었나 보다. 그냥 멋쩍게 ‘씨익’ 웃는다. 질문한 나도 그냥 웃었다.
면회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부드러운 차임벨 소리가 면회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건강 잘 챙기라’는 말을 건네고 ‘선배님도요’라는 인사를 받았다.
10분의 면회시간을 마치고 나서는 영등포구치소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다. 높고 낡은 구치소 담벼락위에 대자대비하신 인천의 사표,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알리는 연등이 달려 있다.
김도형불자는 현재 영등포구치소에 복역중입니다. 면회나 문의사항이 있으신 분들은 http://club.cyworld.com/dong2e 를 이용하시거나,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홍지연 간사(011-7575-2356)에게 문의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