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장수 논개 사당 의암사
2023.3.15(수) 장수군 번암면의 배용성 조사 죽림정사 및 호남 의병장 전해산 기념관 탐방후
남산공원에 위치한 논개사당 의암사를 찾아 2박 3일간의 전남 구례, 전북 장수 명소 탐방일정을 마무리한다.
14:00 논개사당 의암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약 30여분간 의암사를 참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주차장은 무료이다.
의암사 관리사무소
논개사당, 의암사(義巖祠)는 전북 장수읍 두산리 산 3-1번지에 있으며, 1981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됐다.
의암사(논개사당)는 1954년 장수군내 각계 각층에서 성금을 모아 남산공원의 아래봉우리 꼭대기에 창건하였고
1960년대 후반기부터 추진된 성역화사업은 1973년에 문화공보부 승인을 얻어 정화사업에 착수하였다.
장수읍 두산리에 2만여평에 이르는 부지를 조성하여 1974년 사우(祠宇)를 이건했고 삼문(三門)과 담장을 설치하였다.
주위 조경공사를 시행하고 관리사 및 광장을 조성하였으며, 주논개 수명비(竪銘碑)도 경내에 이건하였다.
의암사가 창건된 뒤에 주논개가 순절한 7월 7일을 택하여 추모대제(追慕大祭)을 지냈다.
1968년부터는 이날을 장수군민의 날로 지정하고, 군민의 날 행사와 겸하여 대제(大祭)를 계속하고 있다.
1981년 4월 1일에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논개사당 안내도>
의암사 표지석
의암이란 그가 진주 남강에 뛰어들 때 왜장을 껴안고 뛰어내린 바위의 이름이고, 이를 그의 사당이름에 붙인 것이다.
변영로 시인의 논개 시비석
경내에 들어서면 조경수로 심어진 적송 392그루가 아름다운 자태로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드넓은 잔디로 가꿔진 광장으로 걸어가면 계단과 함께 첫번째문인 외삼문이 나타난다.
의암사 외삼문에 있는 숭양문 현판
논개기념관
'촉석의기논개생향수명비' 비각
1846년 장수현감 정주석이 논개의 순절을 높이 찬양하고 논개가 장수태생임을 밝히는 글이 새겨져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고등계 형사에 의해 부서질 위기에 처했으나 장수 사람들의 기지로 땅속에 묻혀있다가 남산에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의암사 내삼문 휘광문 현판
의암사 입구의 충의문 현판이 걸려 있는 일각문
의암사 전경과 논개 영정
논개의 영정
논개 영정은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화백이 그렸다.
당시의 부통령 함태영(咸台永)이 친필로 휘호를 내려 현판을 각자(刻字)하여 걸었다.
주논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하여 부모의 가르침을 잘 따랐으며 나이에 비해 성숙하였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집에 맡겨졌는데 숙부가 몰래 민며느리로 팔고 달아났다.
모녀는 외가로 피신했지만 끌려가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재판관이 최경회 현감이었다.
17세 되던 해에 자기를 거두어 주었던 최경회와 부부의 예를 올리고 후처가 되었다.
최경회가 전라우도 의병장이 되어 무주의지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진주성 전투를 승리하도록 성 외곽에서 맹활약을 하였다.
이때 논개는 부인들을 모아서 의병들의 수발을 들었다.
그러나 진주성 2차 전투에서 패배한 최경회는 남강에 투신하였답니다.
승리한 왜군이 전승 축하연회를 할 때 관기로 분장한 주논개가 의암 바위에 서 있었는데
용맹스럽기로 유명한 맹장 게야무라 로쿠스케가 다가와서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낀 채로 그를 안고 남강에 투신하였다.
의암사에서 의암공원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일정을 정리한다.
의암사의 산수유
의암호의 오후 전경을 바라보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