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원된 영사정의 안마당 모습(대자보, 2014. 9. 3 김영조 사진)

복원된 영사정. 우측면에서 본 모습 (대자보, 2014. 9. 3 김영조 사진)
우리는 영사정을 지은 김주신(金柱臣)의 처신과 공인으로서의 정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주신이 어떤 인물이었는가는 죽은 다음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그의 졸기(卒記)가 잘 요약하고 있다.
“공은 청아하고 간결하며 거동에 법도가 옥처럼 깨끗하여 한 번 그를 보고도 단정하고 정직한 선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말을 할 때에는 온화하고 순수하며, 일을 처리할 때에는 치밀하며, 몸이 옷을 이기지 못하듯 행동을 조심하였고, 곧은 절개는 뺏을 수 없는 지조를 가졌으며, 성품은 지극히 효성스러워 태석인을 섬김에 공경이 지극하였고, 목소리는 온화하고 안색은 항상 부드러워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김주신의 처신과 공인정신
인원왕후는 앞의 두 왕비들이 단명했던 데 비하여 15세에 왕비가 되어 70세까지 장수했다. 인원왕후는 왕비로서 19년, 경종이 숙종에 이어 즉위하자 34세에 왕대비가 되어 4년, 경종이 일찍 죽자 이복동생 영조의 즉위를 도와 대왕대비로서 33년간, 그리하여 1757년 사망할 때까지 도합 55년간 왕실을 지켰다. 그러므로 왕후 또는 왕실의 어른으로서 인원왕후의 지위는 오래도록 확고했다. 더구나 친정 부친 김주신과 함께 영조의 즉위에 절대적인 공을 세웠다. 그러므로 왕비의 아버지 김주신은 외척으로서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고, 청탁이 밀려들 수 있는 막강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런 위치에 있는 만큼 김주신은 극도로 행동에 조심했다. 그는 대궐에 들어서면 숨을 죽이고, 고개 숙이고 걸으면서 조금도 주위를 돌아보지 않았다.
김주신은 청빈했다. 딸이 왕비가 되어 신분이 귀하게 된 후에도 김주신은 가정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봉양을 매우 간소하게 했다. 김주신은 관복의 띠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서 사용하고 임금이 하사한 초관(貂冠, 담비꼬리로 만든 고관의 관)을 10년 동안이나 바꾸지 않았다.
항상 사치를 금지하여 부녀자들도 현란한 홍자색(紅紫色) 옷을 입거나 기괴한 물건을 차지 못하도록 하였다. 4살 때 부친을 여의고 부모를 기리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영사정을 지었으나, 그 규모나 양식을 보면 조금도 사치스럽게 집을 짓지 않고 다만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효성만을 담아서 소박한 재사(齋舍)를 마련하려고 했음을 알 수있다. 김주신은 청탁도 사절하고 혐의스러운 일을 멀리 피하였으므로 집안이 물처럼 깨끗하였다.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감사감사 좋은글 자주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