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요한 12,26)
교회는 오늘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를 기억합니다. 라우렌시오 성인은 스페인의 우에스카에서 출신으로서 로마 교회의 일곱 부제 중 수석 부제였다고 합니다. 라우렌시오는 교황 식스투스 2세를 돕는 부제였는데, 식스투스 교황은 로마로부터 박해를 받아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교황은 죽음의 순간을 앞두고 라우렌시오 부제에게 부제 역시 3일 안에 자신을 따라 오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을 하는데, 라우렌시오는 그 말을 듣고 너무나 기뻐하며 교회의 모든 소유물들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로마 집정관은 라우렌시오에게 그 같은 행동을 중지하고 교회의 모든 소유물을 황제에게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이 때 그는 모든 재산을 모으려면 3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말하고 돌아와 그 시간 동안 교회의 모든 재산을 맹인과 절름발이, 고아와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이에 분개한 집정관은 그를 체포하여 온갖 고문으로 괴롭히다가 달구어진 석쇠에 눕혀 구워 죽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순교한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인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자세에 관하여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밀알의 비유를 들어 예수님을 따르려는 이들에게 필요한 자세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예수님의 이 말씀은 밀알을 통해 드러나는 자연의 진리를 이야기합니다. 작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선 죽음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합니다. 밀알의 껍질이 벗겨져 땅과 하나가 되어 밀알 속의 씨앗들이 땅 속에 묻혀 적당한 시간과 기후의 과정을 거친 후, 커다란 나무로 자라나야만 무수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밀알의 입장에서는 죽음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만, 보다 더 큰 거시적 자연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밀알의 죽음은 그 죽음을 통해 무수한 열매를 탄생케 하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죽음을 통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의 과정이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라 말씀하시며 그 길의 모범을 자신의 삶을 통해 제자들에게 알려주십니다. 그러면서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자신을 죽이는 삶을 살기를 다음의 말로 당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줄 것이다.”(요한 12,26)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허무의 끝이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삶이 다시 시작되는 부활의 시작임을 알려주십니다. 죽음이 단순한 삶의 끝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 시작은 그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에서의 완전한 삶임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죽음을 통한 부활의 삶. 그 삶은 바로 하느님과 함께 함으로 가능해지며 예수님은 그 삶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심을 오늘 복음은 이야기합니다.
한편, 오늘 독서의 바오로 사도 역시 오늘 복음과 같은 의미에서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나누고 자신의 욕심을 버릴 수 있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다음의 말로 전합니다. 바로는 코린토 2서의 말씀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6-7)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내어 놓음으로서 삶의 죽음을 체험한 이에게 더 이상 세상의 모든 재물과 재화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을 아까워하면서 나누지 못하는 작은 마음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하느님 안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마음으로 자신의 주위에 있는 가난한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 같은 사랑의 나눔을 기뻐하신다고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7ㄴ)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꼭 새기십시오. 주님을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된다는 진리. 만일 지금 여러분의 삶이 칠흑과 같은 어둠 속과 같이 느껴지신다면 오늘 말씀이 이야기하듯 생명의 빛이신 그 분을 찾고 그 분이 일러 주시는 길을 걸어 나가십시오. 비록 그 길이 험난하고 시련의 연속인 것처럼 비쳐져 죽음으로 가는 길처럼 보인다할지라도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처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그 한 알이 무수한 열매를 맺게 되듯이 여러분 역시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동반되는 죽음을 통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죽어야 살 수 있으며, 비워야 채워질 수 있다는 진리. 오늘의 말씀은 바로 지금 우리들에게 이 진리를 알려줍니다. 또한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성 라우렌시오 부제는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나눔의 실천을 통해 그 모범을 우리에게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교회의 보물이라고 여긴 성인의 예화는 우리 주위의 가난한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행한 사랑의 나눔을 통해 주님께서 약속해 주신 영원한 삶의 보증임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역시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성인의 모범을 따라 오늘 하루 어둠 속을 걷는 이가 아닌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있는 하루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 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