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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나 본 설봉스님은 참으로 소박하시고 불심이 깊으신 분입니다.
벌써 세납이 67세의 노스님께서는 아는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요, 한국이 낳은 유명한 감독이신
신상옥 감독밑에서 조연출생활을 하셨고 외국배우들에게 영화 무술지도도 해 주신 이력이 계신분입니다. 스님의 속가 부친께서 남노당 간부였다는 이유로 연좌제에 걸려서 해외출국도 못 되고 취업에도 많은 불이익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스님은 해병대 144기로 군복무를 마치시고 늦은 나이게 범어문중 김해 은하사에서 71년도에 출가를 했답니다. 요사이 은하사는 '달마야 놀자' 촬영지로 유명해졌죠.
암튼 설봉스님의 은사께서는 처음에 스님의 출가를 반대하셨답니다.
"너는 재주가 많아서 중노릇 못한다."라는 은사스님의 말에 스님께서는 "제가 가지고 있는 재주는 죽일 수 없습니다. 다만 제 자신을 죽이겠습니다."라고 응답을 하시자. 은사스님께서" "약속할 수 있냐? 니 자신을 죽인다는 걸"하고 물으셨고 스님은 재차 "물론입니다."라고 답을 하시자. 그때서야 출가를 허락하셨다고 합니다.
스님은 출가 후 서울 신길동에서 부모가 일나간 후 방치된 아이들을 방에 모아서 공부도 시켜주고, 사물놀이도 알켜주고 주로 아이들의 방과후 생활을 지도해 주시는 일을 맏아셔 하셨지요.
그러나 인연이 닿아서 강화도에 오래된 석재공장을 어렵게 인수하면서 도예공방으로 운영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스님 자신이 방치되다 시피한 석재공간에 도예를 통해 생명력을 살리셨고, 또 아무도 신경써 주지 않던 해병대, 군인포교에 헌신적으로 몸을 던지셨습니다.
매일 저녁9시~새벽3시까지 스님은 노구에 커피보온통과 초코파이가 든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북한땅이 지척인 해병대 인화리 각각의 초소를 다 다니십니다. 거진 600명의 병사들을 일일이 그 야심한 밤에 만나서 격려하시고 손을 꼭 잡아주십니다. "추운데 고생많구나 고맙구나 이렇게 우릴 지켜주고 있으니. 네가 자원해서 온 군대니까 힘을 내서 나라 잘잘 지키고, 딴 생각 먹으면 안된다." 하시며 격려를 해주신다.
스님은 절대 "불교 믿어라, 절에 나와라, 불교에 구원있다."라는 말일 20여년간 한 번도 말씀하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요일법회에 150여명의 병사들이 강화법당인 기룡사에 모이고, 2개 중대는 정원40명중 38명이 불자가 되었다. 개중에는 기독교를 믿다가 불교로 개종한 놀라운 주인공들이 허다하다.
부친이 목사인데도 스님의 법문을 들으로 온다니 설봉스님의 포교력은 정말 놀라울 뿐이다.
기무사와 헌병대에서 이런 설봉스님의 포교력을 자칫 종교압력과 술책이 아닌가 조사를 나온 적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직접 스님의 법문을 들은 군관계자는 "이런 좋은 법문을 듣지 않는 사병이 더 이상하다며" 스님의 법문에 애국심과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또한 예절에 대한 얘기들이 아무 적절하게 묻어 있음을 고백한 셈일 것이다.
스님은 교구본사에 계셨다면 벌써 주지를 하시고 큰스님 소리에 귀가 빠질 정도로 섬김(?)을 받으셨을것이지만, 스님은 그런 형식적인 공경심과 용어를 싫어하신다.
젊은 시절 그 당시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신 인텔리 스님께서는 그림, 인테리어, 건축, 도예 , 서각 등 모든 미술관련 예술 분야에 놀라운 재능과 자신감이 있으시다.
그런 스님이 해병대 포교에 자신을 헌신함으로써 해병대 청년불교, 군포교는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중화 되었지만 정작 스님께서는 가난해지게 되셨다.
흔히 말하길 내일 모레면 70인 스님께서 방이 없으시다. 요사채라고 가봤더니 창고에 옷 몇벌 있는 방에
춥기까지 하다. 스님이 말씀 하시길 "나는 방이 없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지금 저 창고는 옷 갈아입는 탈의실 입니다. 주로 도예매장 사무실 지금 앉아 계신 긴소파에 제가 주로 잡니다. 이따가 저녁에 거기서 잘겁니다."
70이 다 되신 노구에도 아직도 쇼파에서 난로를 켜고 주무시다니.........
그리고 그 연세에 커피통과 초쿄파이를 짊어지고 하루 6시간이 넘는 도보로 각 초소를 다니시며
강과 바다가 만나서 더욱 매서운 바람으로 유명한 인화리 (일명, 똥바람)에 얇은 스님의 옷에는 냉기가 가득하시다. 죽을 때까지 이 길을 가시겠다는 스님..........,
그간 종단에서 많은 분들이 스님이 "부자라느니. 도예 전시회를 자주한다니........... 포교에 미쳤다느니." 온 갖 비방을 하셔도 스님은 오직 석가모니불에 의지해서 삿된 비방에 맞서질 않으셨다.
예전 종단 분열시 출가했던 강패 승려들이 무애원에 자주 찾아와서 스님에게 갖은 행패와 모욕과 삥을 뜯겠다고 협박을 해도 스님은 오히려 초쿄파이 살 돈에서 10만원을 끄내서 준 일도 여러번 있으시단다. 그래도 못 된 깡패사이비 승려들은 "자신을 우습게 안다고 더 달라고 스님께 침밷고 욕하는게" 예사였다. 그래서 스님이 예전에 배운 무술을 좀 보여줘야 그때서야 정신 차리고 도망을 간다니, 어찌 포교에 힘쓰시는 스님을 돕지 못 할 망정, 돈을 뜯어내려고 그 먼 강화도 까지 강패잡배 승려들이 온다니......
한편으로 정화개혁의 후유증이 여전이 상존하고 있는게 아닌가 씁쓸하기 까지하다.
스님은 1년에 해병대 포교비용에 1억원의 비용이 드신다고 하신다. 돈이 많아서 1억원의 사찰수입이 있는게 사실 아니다. 매일 초쿄파이와 커피를 부지기수로 전해주고, 아이들 법회 때 라면이라도 해 줄려면 스님은 그 춥고 어두운 밤에도 도예를 하실때가 많으시다. 1년에 1억원의 포교비용이 지출되지만, 무예원 살림에서 수익금이 겨우 7천-8천만원 밖에 생기지 않기에 자주 직원 월급들 못 주고, 빚만 지게 되는 형국이다. 해병대 포교만 안했다면 스님도 번듯한 요사채와 법당이 있었을 것이다. 당연하다.
그리고 스님이 제사 중심의 현 조계종 사찰 운영방식을 수용하셨다면, 그 절에서 자주 천도재를 비롯한 제사를 통해 사찰 운영을 하시며 평범한 수행을 하시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스님은 기독교인이 모두 독점한 청년전도를, 청년포교로 바꾸시려고 수 많은 세월 종단의 무관심과 냉대, 폄하발언을 참으셨고, 기독교인의 수천번의 중상모략과 음해와 비방에 홀로 맞서서 버티셔야했다. 결국 스님과 석가모니부처님의 정법으로 만나셨기에 그 안과 밖의 투쟁에서 스님은 자유로우셨고 결국 이기셨다.
이제 기독교사단장도 스님을 존경하신다. 그래서 유일무일하게 민간인이 스님에게 군종병과 운전병을 주셨고, 스님이 행사에 필요하면 얼마든지 병사들을 착출할 수 있는 공적 특권도 생겨셨단다.
이런 스님의 누더기 옷과 마른 기침은 오랜 역경에서 얻어온 스님의 유품과 같다.
너무나도 청렴하고, 부지런하고, 빛나는 눈빛을 가지신 스님께서 홀로 이뤄내신 포교!의 원력에
이제 우리가 동참해야 하는게 아닐런지? 불자라면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만약 여러분의 부모이 70 노구에 쇼파에서 주무셔야 할 정도로 열악한 곳에 사신다면 그대들은 진정 행복하실런지요? 여러분이 미래에 그 연세에 그런 삶을 사신다면 행복하시겠는지요?
다른 이유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보다 많이 커피와 초코파이와 라면을 주고 싶기에 스님은 일체 절에 공사도 하지 못하시고 그 돈으로 빚을 내가면서 아이들을(해병대원) 살피고 계십니다.
이제 더 이상 스님이 홀로 어려운 길에 나서신 것을 스님 업보라고 조롱하고 저주하지 마시고,
아주 작은 성의만이라도 동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듭니다.
스님의 절에 라면도 좋고, 초코파이 한 박스도 좋고요, 커피 180개 분량 한 박스도 좋습니다.
다 뜯어진 옷과 한 겨울에 누비옷도 아닌 여름에 입는 적삼을 입으신 스님........,
게다가 안에 입으신 폴라 티는 헤져서 보온 기능도 없더군요.
저는 아버지 생각이 들어서 스님께 양말과 보온성이 좋은 겨울 등산티셔츠 강제로 안받겠다는
스님의 두 손에 떨궈두고 도망나왔습니다.
이제 스님의 오래 된 조립식 법당에 희망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여생, 스님이 육체가 좀 더 따뜻한 방에서 피곤을 잠재 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예를 통해 변변한 옷도 사 입지 못하시고, 늘 그 돈으로 아이들과 여러 불교단체에 오히려
후원을 해주는 스님의 참 된 마음씨에 저는 너무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무애원에 단 천원이라도 후원해 주실 불자들은 안계신지요?
단, 1달라도 북한이 눈에 보이는 그 추운 철책선에서 조국의 안전을 지키려고 자원한 우리 동생 자식같은 해병대원들에게 새벽에 커피 한잔과 초코파이 두개를 주실 수는 없는지요?
다는 누구의 이름이 아닌 여러분의 도움으로 그 일에 나서실 수는 없는지요?
도예작품이라도 구입해서 무애원 포교에 동참해 주시면 안되런지요?
스님은 이번 달에 '한국불교박람회'에 대불련에 간곡한 요청을 수용하셔서 대불련 기금을 마련해 주시려고 이 엄동설한에 밤을 세우시며 도예작품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종단에서 대불련을 도와주는게 아니라, 오히려 가난하고 빚이 많은 스님께서 대불련을 돕고 있다니.....저는 어이가 없었지만 스님이 "뭔가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씀에 눈물만 나왔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십시요.
하지만 여러분의 행복은 조국의 안보를 매일 매 순간 긴장 속에서 보내는
우리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란 걸 잊지 마십시요.
그 아이들은 커피, 초코파이2개 보다 설봉스님의 사랑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설봉스님 보려고 새벽근무가 끝나도 스님 기다리냐고 부대 복귀도 않하고 언 발을 녹여가며
스님 언제오시냐고 서로 물어가며 기달리는 그 아이들의 사랑 속에 불교의 미래와 조국의 미래가 있습니다. 만약 커피와 초코파이 살 돈이 점점 줄어들면 스님도 그 아이들을 방문 하는게 쉬워지지 않습니다. 몇 해전에는 새벽에 초소를 다니시다, 낙사를 하셔서 발 목에 금이 가셨지요.
그 부운 발로도 그 날 저녁 수백명의 아이들의 손을 잡아 주시고 스님은 그 다음날 병원에 누으셨고
한달 보름 스님이 못 찾아 가는 걸 아이들이 뒤 늦게 알고, 외박나와서 면회를 온 사연은 정말,
사랑하는 두 인격체간의 만남이 주는 훈훈한 실화입니다.
조금만 도와 주십시요.
1만원이면 300명이 커피를 한잔씩 마실수 있습니다.
1만원이면 20명이 라면을 먹을 수 있습니다.
1만원이며 70명이 초코파이를 한개씩 먹을 수 있답니다.
스님 모르게 돕고 싶어서 저도 동참하는 마음에
이런 사연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부담이 되셨다면 죄송합니다.
스님에 대한 자료 http://blog.naver.com/enter5525?Redirect=Log&logNo=100030660613
무애원 홈피 http://www.muaewon.org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수고가 많으시네요 원하는 바 되시기를 기원 합니다 항상 밝은 미소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