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춘-차동민 염두에 둔듯
“장비는 쓰러지고 제갈량은 떠나는 형국이다.”
지난달 31일 김준규 검찰총장(사진)이 대검찰청 고위 간부들과의 정례회의에서 한 얘기다. 며칠 전 단행된 고검장급 전보인사를 중국의 고전소설인 삼국지연의에 비유한 것. 김 총장의 발언 직후 회의장은 일시적으로 침묵과 긴장감이 감돌았다고 한다.
김 총장의 발언이 조금씩 퍼지면서 검찰 내에서는 ‘장비’와 ‘제갈량’이 누구를 얘기한 것인지를 놓고 갖가지 추측이 나돌았다. 검사들은 김 총장이 언급한 ‘장비’는 한화그룹 수사를 지휘하다 교체설이 나돌자 돌연 사퇴한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을 지칭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한 수사목표를 향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남 전 지검장의 수사 스타일을 장비에 빗댔다는 얘기. 또 ‘제갈량이 떠난다’는 표현은 김 총장이 취임한 이후 1년 6개월 동안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해 왔던 차동민 당시 대검 차장이 서울고검장으로 전보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했다. 대검 공보관과 대검 수사기획관 등을 지내 검찰 안팎의 민감한 현안을 세밀하게 보좌해온 차 고검장이 떠나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는 것이다.
결국 김 총장이 이런 언급을 한 것은 당시 인사 내용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토로한 것이었다는 게 검찰 내부의 시각이다. 당시 김 총장은 고검장급 전보 인사에 반대했으나 자신의 뜻과 달리 인사가 단행됐다. 실제로 인사 발표가 난 지난달 27일 김 총장은 오후 3시경 무거운 표정으로 일찌감치 퇴근해 버려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남 전 지검장의 사퇴도 김 총장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었다. 지난해 8월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을 대검 중앙수사부에서 검토하다 남 전 지검장이 지휘하던 서울서부지검에서 수사하도록 내려보낸 것은 바로 김 총장의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과잉수사’ 논란이 일자 김 총장은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지난달 31일 대검 회의는 장비와 제갈량 발언으로 분위기가 무거웠지만 회의 말미에 김 총장이 ‘검찰의 역할론’을 역설하면서 다시 고조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