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관계 주도권 잡았다" 자신감 넘쳐
대청해전 패전후 北 강경 전환 못읽어작년 8월 23일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북한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대통령 각하"라는 표현을 깍듯하게 반복하며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사를 전달했다. 시종일관 공손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을 '역도(逆徒)'라고 비난하던 북한 최고위급 인사가 계속 '각하'라고 부를 줄은 몰랐다"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각하'라고 불렀다.
이보다 하루 전 현인택 통일부 장관을 만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대남 정책총괄)도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남북관계 개선 의사를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인사를 처음 접촉하는 현 장관이 김 부장과 악수할 때만 해도 긴장한 표정이었는데, 김 부장의 공손한 태도에 여유를 찾은 듯 곧 소파에 등을 기대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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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8월 23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차 방남한 김기남 노동당 비서(왼쪽)를 맞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 비서는 이 대통령에게“각하”라는 호칭을 썼다. /청와대 제공
안보부서 당국자는 11일 "돌이켜보면 김기남 비서가 '각하'라고 머리를 조아린 뒤부터 '우리 대북정책이 성공했다' '드디어 남북관계 주도권을 잡았다'는 자신감이 정부 내에 넘치기 시작했다"며 "정상회담 추진까지 겹쳐 북한의 호전성을 잠시 잊어버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작년 10월 싱가포르 남북 접촉 때 정상회담 개최를 재촉했고, 작년 11월 7일 개성 비밀접촉 때는 정상회담 합의문 초안까지 들고 나왔다.
문제는 북한 분위기가 작년 11월 10일 대청해전 패전 이후 예사롭지 않게 변했는데도 정부가 이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점이다. 올해 1월 북한이 '보복 성전(聖戰)'을 거론하며 서해 북방한계선(NLL)으로 무더기 해안포를 쐈지만, 당시 정부 핵심당국자는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고 했었다. 특히 천안함 침몰(3월 26일) 초기에 정부 스스로 "예단하지 말라"며 북한을 용의 선상에 올리는데 주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북한이 설마…'라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 아니냐는 관측이다. 지난 3월 31일 청와대 관계자가 김정일 방중(訪中)설을 언급하면서 "천안함과 김정일 방중은 관련 없어 보인다"고 말한 것도 북을 천안함 용의선 밖에 두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4월 중순부터 이 대통령을 다시 '역도'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이명박은 천벌을 받아 싸다"(우리민족끼리)는 말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