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5.01.16 18:02 31' / 수정 : 2005.01.16 19:08 38'
‘죽었던 굿모닝시티가 부활한다.’ 서울 을지로6가 쇼핑몰 ‘굿모닝시티’ 부지 2362평(28필지). 다음달 20일 계약자 3400여명이 이곳에 모여 한바탕 막걸리 잔치를 벌인다.
지난 1년6개월 동안 절규와 눈물, 혈서(血書)로 얼룩진 땅이다. 벼락 같은 부도 소식, 정치꾼과 모리배들에게 철저히 짓밟힌 서민 계약자들…. 이들이 들풀처럼 꼿꼿이 일어서 ‘굿모닝 게이트’를 ‘굿모닝 드림’으로 바꿔놓았다.
잔칫날인 20일은 굿모닝시티 착공일이다. 윤창열(50·전 대표·복역 중) 사기극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공사가 비로소 시작되는 날이다.
‘우리가 어떻게….’ 결과에 가장 놀라는 것은 전 재산을 날리고 인생의 벼랑 끝에 몰렸던 당사자인 서민들이다. 굿모닝시티 금싸라기 땅을 모두 사들인 것은 작년 세밑인 12월 31일. 이번주 꿈에 그리던 건축 허가를 얻으면, 시공사 선정, 착공식 등 공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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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세상을 뜬 사람이 4~5명, 이혼한 부부도 10여쌍이 될 거예요. 밤새 울다가 암에 걸린 사람들도 많아요”(피해자 모임인 ‘굿모닝시티계약자협의회’ 조양상 회장).
부도 당시 계약자 3442명의 평균 나이는 58세. 투자금은 대부분 일생 행상·포장마차로 모은 저금, 공무원 퇴직금, 경찰관 남편의 순직 보상금 등 목숨같은 재산이었다. 2003년 6월 19일 날아온 부도 소식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굿모닝시티 직원의 멱살을 잡고 부르르 몸을 떨었고, 어떤 이들은 “내 돈 돌려내라”며 소리 지르다 기절해 병원에 실려갔고, 어떤 이들은 손가락을 그어 혈서를 썼다.
하지만 ‘굿모닝시티’란 판도라상자의 속사정은 심각했다. 계약금 3800억원으로 사둔 땅은 필요한 부지의 60%에 불과했고, 이조차 금융회사에 담보로 잡혀 빚 2000억원을 껴안고 있었다. 나머지 계약금도 윤창열을 통해 정치자금, 공무원 뇌물로 날아간 상태였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한밤중 정치인 집 앞에 몰려가 시위를 벌이고, 트럭을 타고 동네를 행진했다. 당사자가 자취를 감추면 꼼짝을 않고 기다렸다. “지독하다”는 소리가 터져나왔지만 여론은 역시 서민들 편이었다. 정대철 당시 의원에게 4억2000만원, 한양건설에서 5000만원, 연세대에서 7억원 등 6개월 만에 620억원을 찾았다. 허운나, 조배숙, 김한길 의원 등은 후원금을 자진 반납했다.
이어 채무를 동결하기 위해 굿모닝시티를 법원에 법정관리 신청했다. 금융회사가 담보(부지)를 처분할 경우,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지기 때문이다. 분양 피해자의 법정관리 신청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이들은 법원과 금융회사를 온몸으로 설득했다. 2차 중도금을 납부해 ‘스스로 돕는다’는 모습을 보이고 정치자금을 회수해 나머지 땅을 살 자금을 마련했다. 이런 노력에 금융회사도 법정관리에 동의했고 법원은 법정관리를 허가했다.
서민 계약자들은 승리했다. 15일 계약자협의회에서 만난 박형원(75) 할머니는 주위 사람들 손들을 꼭 잡으며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고 말했다. 박 할머니는 30년 동안 노점상으로 모은 8500만원을 몽땅 투자했었다. 따뜻한 실내에서 물건 팔아보자는 소원을 죽기 전에 이루기 위해서.
연수진(여·37)씨는 10개월 된 아들을 안고 굵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작년 7월 3일 남편 장기수(당시 32)씨는 법정관리 인가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돌아와 잠이 들었다가 다음날 눈을 뜨지 못했다. 사인(死因)은 뇌출혈이었다.
작은 지팡이에 몸을 싣고 사무실을 찾은 이영석(84) 할아버지. 구청 공무원 퇴직금 8000만원을 자식 몰래 투자했었다. 자식들에게 짐 되지 않고 혼자 살아보려던 계획이었다. 할아버지도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순직한 경찰남편 보상금으로 아이들 대학까지 보내려 했던 이영주(여·38)씨, 26년 동안 동대문구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며 모은 돈으로 양복점을 내려했던 박광원(64)씨,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위해 작은 점포 하나 마련해 주고 싶었던 오모(72) 할머니…. 계약자 3400명의 꿈이 다시 솟아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