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8:6]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저희가 물러가서...엎드러지는지라 - 예수가 '내가 그이다'라고 말하자 나타난 반응을 묘사한 것으로 예수의 신적 권위를 묘사해 주고 있다. 즉 이 말이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인 '나는 스스로 있는자'라는 출 3:14의 70인역을 연상했기 때문에 적대자들이 두려워 물러서며 엎드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하여 예수의 신적 권위가 강조됨은 물론 예수의 승리자의 모습으로 죽으셨음이 확인된다.
[요 18:7]"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물으신대...하거늘 - 4절과 동일한 질문이 반복되고 5절과 똑같은 대답이 반복되고 있다. 이것은 예수의 독자성, 즉 예수가 다른 사람으로 오인되어 체포된 것이 아님을 거듭 확인해 주고 있으며 동시에 예수의 권위있는 위엄을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깔려 있다. 한편 요한은 5절의 '대답하되'를 본절에서는 '말하되'로 바꾸어 표현했다. 이는 같은 말의 반복을 싫어하는 요한의 습관에 따른 것이다.
[요 18:8]"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이 사람들의 가는 것 - 예수는 적들이 찾고 있는 예수가 자신임을 거듭 확인시키고 대신 자신과 함께 있던 제자들은 자유롭게 갈수 있도록 하라는 제안을 하고 있다. 즉 자신을 내어 놓고 제자들의 안전을 보장받고자 한다. 이것은 요한의 독특한 자료로 막 14:50에서 언급되는 제자들의 도주와 대조되고 있다.
요한이 공관복음서 저자와 달리 제자들이 도망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밝혀 제자들을 호의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예수의 이같은 행동은 10:11에서 예견된 바로서 이는 예수의 자신이 자발적으로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아간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요 18:9]"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 예언의 성취를 나타내는 본문의 어투는 본서에서 자주 언급되는 문구이다. 여기서 성취된 예언은 17:12을 가리킨다. 특히 17:12에서 언급된 멸망의 자식이 여기서 언급되지 않는 것은 이미 유다가 악의 세력에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이와같이 예언의 성취에 관한 언급은 예수 자신의 말을 성경적 권위와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요 18:10]"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시몬 베드로 - 본절에서 베드로의 이름이 히브리식 이름과 함께 쓰이고 있다. 즉'바요나 시몬' 또는 '요한의 아들 시몬'으로 언급되지만 주로 '시몬'이란 말만을 덧붙여 '시몬 베드로'라고 호칭하게 된다. 여기서 베드로가 칼을 사용하여 적들에게 대항한 인물로 묘사되는데 공관복음서에서는 칼을 사용한 자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공관복음서는 칼을 사용한 자의 신분에 해가 돌아가지 않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요한 복음은 공관복음서보다 훨씬후대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이름을 밝혀도 본인에게 아무런 영형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하여 베드로의 이름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검을 가졌는데 - 눅 22:36-38에 따르면 예수가 제자들에게 검을 휴대하도록 지시하였고 제자들 중에서 검 두 자루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공격용으로 준비된 것으로 보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칼 두 자루로 무력에 해당한다는 것은 상식 밖이기 때문이다. 한편 당시 유월절에는 무기를 휴대할 수 없도록 규제되었으므로 베드로가 무기를 소지한 것은 불법이었다. .
그렇다고 이 사실이 베드로가 열심당원이었다고 할 증거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이 칼은 아마도 위험한 순간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감지한 베드로가 호신용으로 준비해 둔 단검으로 보인다.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 마태와 마가는 어느쪽 귀인지 언급하지 않지만 누가와 요한은 동일하게 오른쪽 귀를 잘랐다고 언급한다.
누가는 역사가로서 당시의 정황을 정확하게 기술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통해 '오른편'이란 형용사를 사용했으며 요한은 귀를 자른 장본인으로 '시몬 베드로'라는 이름을 밝힌 것처럼 잊을 수 없는 그 밤의 사건을 세밀하게 전달하기 위해 그 형용사를 사용했던 것같다. 한편 본서에서는 '베어버리니'가 '아페콰센'으로 언급된 반면 공관복음서에서는 '아페일렌'으로 기록되었다.
이 차이는 요한이 공관복음서에서 그의 사용되지 않는 독특한 용어를 종종 언급하는 데서 발생한 것이므로 의미상의 차이는 없다.아무튼 눅 22:49에서는 한 제자가 예수에게 칼을 사용해도 되느냐고 물었던 것으로 진술되고 있으나 본서에서의 베드로의 행동은 예수의 의사와 무관하게 갑자기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말고 - 귀가 잘려나간 대제사장의 종을 가리키는 이름인데 공관복음서에서는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본서에만 언급되고 있다. 이것도 역시 사건 현장을 사실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신뢰성을 높이고 당시의 정황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요 18:11]"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검을 집에 꽃으라 - 칼을 사용한 베드로에게 보인 예수의 반응은 칼을 놓으라는 명령인데 공관복음서에서는 마태복음만 이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 표현대신 누가는 잘리워진 귀를 만져 낫게 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마태복음은 칼을 사용한 사실에 대해 채강하고 훈계하는 장면을 관심 깊게 묘사하고 있는데 반해 누가복음은 원수를 치료하고 싸매는 모습을 통해 사랑과 화해의 실천자로서의 예수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본서는 메시야적 사역에 깊은 의미를 두었으므로 칼 사용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 - 본서에서 '잔'이라는 말이 본절에서만 나타나고 있으며 공관복음서에서 언급된 잔의 의미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본서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공관복음서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행해졌던 예수의 기도가 본절에서 함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잔이 의미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가 겪어야 할 수난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수난의 잔이 우연히 발생된 것이 아니라 죄악된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임을 강조하기 위해 예수는 '아버지께서 주신'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하여 공관복음서에 비해 하나님의 예정을 매우 강조하는데 여기서도 그리스도의 운명이 하나님의 예정에 따른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 본문은 공관복음서의 겟세마네 기도 내용을 함축한 듯하다. 즉 아버지의 뜻이라면 잔을 마시겠다고 하는 예수의 결단을 좀더 담담하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미 예수는 이 수난의 길이 필연적으로 걸어가야 할 자신의 길임을 확신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자신을 내어 맡기어 순종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예수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칼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길을 막는 것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