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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Key Word, 『法華經』을 관통한다
1. <法華經 敎菩薩法 佛所護念>
2. <敎化菩薩>
3. <爲諸菩薩>
위의 세 구절은 대승경전의 취지와 의미를 결정짓는 중요한 구절들이다.
『法華經』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번역서(아마 전부일 것이다)는 이 구절의 번역에 중대한
실수를 하고 있다. 결과는?
번역서로 공부하고 있는 후학들에게는 혼란 그 자체다. 그들은 『法華經』 번역본을 안고 끝없이
헤맨다. 그러다가 『法華經』을 떠난다. 영원히.
또 이런 오역의 당사자들은 어떤가? 이어지는 『法華經』의 내용들 가운데 이런 오역으로 인해 앞과
뒤가 어긋나는 부분을 덮어씌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온갖 어려운 불교이론을 동원하는가
하면, 자신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문장으로 『法華經』 독자들을 자신들의 노리개 정도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그저 답답할 뿐이다. 한번 구부러지면 영원히 구부러진 채로 사는 것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또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우겨야 제대로 된 불자라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그런 분들은 이 글을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런 분들이 아래의 글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 첫 번째 Key Word, <法華經 敎菩薩法 佛所護念>
이 구절에서 필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이 <敎菩薩法>에 대한 번역이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번역서는 이 부분을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라 번역한다. 말하자면,
<가르침의 대상이 보살들이다>라는 번역이다.
정말 그런가? 『法華經』이 보살만을 대상으로 펼치는 부처님의 가르침인가? 『法華經』의 어디에
보살만을 대상으로 부처님이 가르침을 펼치는 그림이 있는가? 『法華經』은 첫 자부터 끝 자까지
일체중생을 대상으로 펼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敎菩薩法>은 <보살법을 (일체중생을 대상으로) 가르친다>로 번역되어야 마땅한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菩薩法>은 <菩薩道>와 동의어다. <보살의 법도>, <보살의 이치>, 혹은 <보살의 길> 정도로 풀 수 있다.
또 이 부분, <敎菩薩法>을 눈에 보이는 글자 그대로 한번 살펴보자.
<菩薩法>은 불교에서 늘 사용하는 <生滅法>이나. 우리의 일상에 늘 쓰이는 <交通法>과 同類의
용어다.
<敎菩薩法>을 <보살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법>이라고 번역한다면, <敎生滅法>은 <생멸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법>으로, <敎交通法>은 <교통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법>으로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오역의 당사자들은 이런 번역이 당연히 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이 <전통>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온갖 어려운 불교이론을 동원할 것이다. 그러고도 모자라면 <문자에 얽매이지 마라>고 말할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게 되면 <法華經 敎菩薩法 佛所護念>은 <『法華經』은 보살법을 가르치는 經이요, 부처님이 항시 마음에 담고 계시는 經이다>로 번역되어야 『法華經』의 취지와 방향에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오역의 당사자들은 바로 이해할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니까.
2. 두 번째 Key Word, <敎化菩薩>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번역서는 이 구절을 <보살을 교화한다>로 번역해 놓고 있다. 이 구절,
<敎化菩薩>은 <敎菩薩法>의 번역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敎菩薩法>을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라 번역하게 되면, <敎化菩薩>은 <보살을 교화한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이 번역 외는
다른 번역이 있을 수 없다.
여기서 필자는 <敎化>라는 단어의 뜻을 단순하게 글자로 풀어본다.
이 단어, <敎化>는 불교에서만 쓰이는 특수한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문자에 얽매이지 마라>는
불교의 깊숙한 가르침을 염두에 두지 않고도 쉽게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敎化>는 크게 세 가지 뜻으로 풀 수 있다.
첫째, <교화하다>라는 의미의 동사다. <가르친다>라는 뜻으로 우리가 늘 쓰는 용어 가운데 하나다,
둘째, <교화>라는 명사다. <가르침>이라 풀 수 있는 추상명사다.
셋째, 글자 하나하나를 풀면, <가르쳐서 ~가 되게 한다>는 의미다.
『法華經』에서는 세 가지 의미 가운데 하나로 제각기 사용하고 있지만 현재 시중의 법화경은
전부 첫째 혹은 둘째 의미로만 풀이하고 있다.
법화경에 보이는 <敎化菩薩>이라는 구절은 거의 전부가 <가르침을 펼쳐 보살이 되게 한다>는
뜻으로 쓰였지만, 시중의 법화경 한글번역본뿐 아니라 일본어, 영어번역본을 통 털어 이런 뜻으로
번역된 번역서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서 <敎>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가르친다>는 뜻이고, <化>는 <~로 바꾼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敎化菩薩>은 <가르쳐서 보살로 바꾼다(보살이 되게 한다)>라는 뜻이다.
<敎菩薩法>을 <보살을 가르치는 법>으로 번역하게 되면 『法華經』의 취지나 방향이 전혀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敎化菩薩>을 <보살을 교화한다>고 번역하면 『法華經』의 취지나 방향은 사뭇 달라지게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구절이 <但敎化菩薩>로 바뀌면, 시중의 모든 번역서에서 볼 수 있듯 <오로지
보살만을 교화한다>로 번역된다. 말하자면, <오로지 보살만을 교화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번역이
다. 정말 그런가? 『法華經』이 보살만을 대상으로 펼치는 부처님의 가르침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法華經』은 보살을 포함한 일체중생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法華經』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보살의 경지에 이른 이에게
는 보살행을 실천하도록 가르침을 펼쳐 부처가 되게 하고, 보살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이에게는 보
살의 이치를 가르쳐 속히 보살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는 가르침이 바로 『法華經』에 담긴 내용이다.
그래서 보살의 경지에 이른 모든 이들은 그들이 실천하는 첫째 덕목으로 <上求菩提 下化衆生>을 꼽는다. 또 보살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이에게는 삼승이라는 방편을 펼쳐 보살이 되도록 가르친다.
<敎化菩薩>은 <가르침을 펼쳐 보살이 되게 한다>로, <但敎化菩薩>은 <오로지 가르침을 펼쳐 보살이 되게 한다>로 번역되어야 마땅함을 설명하는데 더 이상 어떤 설명이 필요한가.
3. 세 번째 Key Word, <爲諸菩薩>
이 구절, <爲諸菩薩> 또한 <敎菩薩法>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敎菩薩法>을 <보살을 가르치는 법>
이라 번역하면, <爲諸菩薩>은 <모든 보살을 위하여>로 번역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敎菩薩法>의 번역은 고장 난 상태다. <모든 보살을 위하여>라는 번역은 더
이상 자연스럽지도 않다. 법화경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여기서 <爲諸菩薩>은 <무릇 보살이 되라>는 명령문이다.
<爲>는 <~이 된다>는 의미의 동사이다. 여기서는 <~을 위하여>라는 뜻이 아니다.
또, <諸>는 <무릇> 혹은 <대저>라는 의미의 부사다. 여기서는 <모든>이라는 의미의 형용사가
아니다.
<爲諸菩薩>을 <모든 보살을 위하여>로 번역함으로써 들려오는 『法華經』의 비명 소리는 한 두 곳
에서 감지되는 것이 아니다. 그 가운데 가장 처절하고 절망에 가까운 비명소리를 내는 곳이 바로
신해품 중 아래 두 부분이다.
A. 첫 부분
世尊以方便力 說如來知慧 我等從佛 得涅槃一日之價 以爲大得
於此大乘 無有志求
我等 又因如來知慧 爲諸菩薩 開示演說 而自於此 無有志願
所以者何 佛知我等 心樂小法 以方便力 隨我等說 而我等不知眞是佛子
(신해품 중에서)
필자의 번역
<세존께서 방편의 힘을 빌어 여래지혜를 설하셨을 때, 저희들은
부처님께서 펼치시는 방편을 통해 하루치 품삯 정도에 불과한
열반을 깨치고는 이미 더없이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여겼으니
이 대승의 가르침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희들은, 또 (세존께서) 무릇 보살이 되어야 한다며
여래지혜를 직접 펼쳐 자세히 설법하셨을 때에도
이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왜 관심이 없었는가.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이 소법에 만족하고 있다는 점을 아시고
각자가 지닌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방편을 펼쳐 설하셨지만,
저희들은 참된 불자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필자가 올린 글 “법화경, 일본의 <뗀뿌라>
번역과 조선의 <무개념> 베끼기(17)”를 참고하시라.
B. 둘째 부분
佛勅我等 說最上道 <修習此者 當得成佛>
我承佛敎 爲大菩薩 以諸因緣 種種譬喩
若干言辭 說無上道
諸佛子等 從我聞法 日夜思惟 精勤修習
是時諸佛 卽授其記 <汝於來世 當得作佛>
一切諸佛 秘藏之法 但爲菩薩 演其實事
而不爲我 說斯眞要
如彼窮子 得近其父 雖知諸物 心不希取
我等雖說 佛法寶藏 自無志願 亦復如是
(신해품 중에서)
필자의 번역(경문이 게송이라 필자도 게송형식을 따랐다)
부처께서 우리들을 다독이고 타이르며
<이 가르침 갈고 닦세 틀림없이 성불한다.>
무상심심 미묘한 법 최상도를 설하실 새.
모든 인연 온갖 비유 많은 언사 펼치시어
대보살이 되라시며 무상도를 설하시니
부처님의 이 가르침 우리들이 이어 받고
모든 불자 우리 따라 이 가르침 듣고 나서
밤낮으로 사유하고 열심 수행 정진할 적
<다가오는 미래세에 틀림없이 성불한다.>
때맞추어 모든 부처 우리들게 수기한다.
모든 부처 비장하신 가르치심 하나하나
애오라지 보살되라 그 실상을 펼침이요
내 한 몸만 잘 챙겨서 아집덩이 만들고자
그 가르침 참된 요체 설법한 게 아니었오.
제 아비를 앞두고도 몰라봤던 궁자아들
비록 재물 맡고서도 취할 마음 없었듯이
불법(佛法)이다 보장(寶藏)이다 비록 입에 걸쳤지만
취할 마음 없었으니 궁자아들 따로 없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필자가 올린 글 “법화경, 일본의 <뗀뿌라>
번역과 조선의 <무개념> 베끼기(18)”를 참고하시라.
4.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부분은 바로 잡으면 된다.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는데 늦고 빠름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잘못된 것이 뻔히 눈에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적당한 방법으로 덮어두려는 시도이고, 그것이 모자라면 <전통>이라
는 칼을 時所를 가리지 않고 휘두르는 것이 문제다. 또 그것이 스승이 할 일이고 제자는 그런 스승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썩은 계란은 평생을 품고 있어도 부화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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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마치 일곱빛깔 <무지개>처럼 가끔 모습을 드러내 저의 글을 말없이 지켜봐주시는 님에게
_()_ 드립니다.
아이구 공감이 가는듯합니다. 그리고 거사님! 그곳에만 법화경 전역 게제하지말고 여기에도 게제하세요... 거기만하면 미루고미루고하여 찾아가지 않습니다. 이 부분도 제본위하여 거두어 들입니다
아수라님, 오랫만입니다. 글을 보니 님의 건강이 보이고, 내용을 보니 님의 열성이 보입니다.
건강한 법화경의 장래가 온 세상을 열성으로 가득 채울 겁니다, 우선 서품부터 순서대로 올려 놓겠습니다.
관심 가져주시는 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얼핏 다른 글 한편보고 별차이 없다 했는 데 나성거사님의 교보살법에대한 번역은 그럴듯도 하나우리가 방편품을 보면 삼승이 다 일승을 설하기 위함이다 그러면 일단 우리는 삼승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느다 그냥 중생이다 그러나 약초유품 법사품 보현품 여래수량품 여래신력품 전부 다 중생이라도 법화경을 수행하면 보살정도가 아니라 다 부처로 만들어주겠다 이것입니다중생이라도 법화경을 신행하면 다 부처로 만들어 주겠다 이말씀입니다 보살이 되게 해주겠다가 아니라 다부처가 되도록 하겠다는 게 법화경입니다 일련대사의 말씀 처럼 법화경을 끝에서 부터 읽으면 모두 중생을 위함이지 보살만을 위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법화경을 아끼고 공부하시는 님의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님과 같은 분들의 마음이 합쳐지면 더 멋지고 정확한
한글법화경이 우리들의 후배들에게 전달되지 않을까...생각합니다, 계속 관심 가져 주시면 저의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고마워요.
@나성거사 법화겨을 바르게 번역하여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고자 하는 나성 거사님을 찬탄합니다 그런데 교보살법을 보살이 되게하게 위하여 라고 번역함은 법화경의 취지에 좀 어긋나지 않나 라고 생각해 봅니다법화경의 키워드는 일불승 입니다오직 일승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진실이 아니다 입니다보살을 가르쳐야 부처가 될것 아닙니까 여기서 교보살이란 별교보살을 말합니다 별교보살은 원교를 모릅니다 법화경만이 원교입니다 그래서 보살을 가르친다 교보살법입니다 보살이 되게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런 번역은 법화경의 본취지를 상실케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일심청정 다시 강조하면 법화경은 부처가 되게 하는 법이지 보살이 되게하는 법이 아닙니다 보살이 되게하는가르침은 다른 대승경전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사람.아수라 천상 성문 .연각,통교보살 .별교보살 이런 부류를 진실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칠방편이라 합니다 이런 존재들을 모두 일승에 들게 하여 부처가 되게 하는 가르침이 법화경입니다 관세음 문수보살 등 이런 보살들은 원교의 대보살들입니다 이런 원교의 대보살들이 법화경에 나오는 것은 부처님 법화경 설법을 도우기 위해 출현하신 영향중입니다
법화경의 뜻과 목적이 나성거사님도 잘아시다 싶히 9법계가 다 성불하는 가르침입니다그러기에 법화경이 최고 경이라는 것이지;요 나성 거사님의 문제제기도 일리가 있습니다 거사님의 글을 다 앍어 보지않아서 시간두고 읽어보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읽어보신 후, 님의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저의 글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성거사 위에 다시 저의 의견을 달았습니다 거사님께서 법화경을 바르게 전하자하는 그 취지는 찬탄합니다 훌륭하신 법화행자이심을 찬탄합니다 그러나 견해차이는 서로 논쟁이 아니라 의견 교환차이에서 말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사님을 네이버 묘법연화경 오종법사회에 정중이 초대합니다
다시 보니 저가 지적한 것외에 또다른 (저가보기에는)오역이 보이네요 그렇지만 말하지 않겠습니다 말을 하면 마치 저가 거사님을 나무라는 형식 이 될것 같아서 괜히 논쟁거리를만들까봐 구체적으로말하지 않으나 저가 보기엔 분명 잘못 번역 된 부분이 있습니다 성불하십시요 나무 묘법연화경
일심님, 꼭 저에게 해야할 말은 아낄 필요가 없어요. 논쟁이 없으면 발전도 없습니다. 그리고 일련대사(일본의 니치렌대사?)나 천태대사의 말은 그분들에게 하시고요. 저는 지금 법화경 번역을 두고 글을 씁니다. 이 나성거사가 팔만대장경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주시는 것은 고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도 이해하시고요. 또 글을 쓰실때는 구체적인 지적이 필수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팔만대장경을 다 동원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논쟁은 논쟁이 아니라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분명 잘못 번역 된 부분>을 말씀하시지 않으면 님의 말장난 정도로 여기겠습니다. 저의 번역이 100% 다 맞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습니다.
고쳐야할 부분은 당연히 고쳐야지요. 이 댓글난은 300 자 이상 쓸수가 없으니, 답글 형식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정확하게 알아야 이 글을 올리는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말하지 않겠다>고 더 이상 회피하시면 님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자신이 없어 꼬랑지를 내리는 걸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저가 못보고 있는 저의 오역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한번 더 말씀드리지만, 논쟁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저가 올린 글, 오역에 관한 글은 전부 구체적입니다.
지적사항은 저의 글 어느 부분인지, 그 부분에 대한 님의 생각은 어떤지(즉, 일련대사나 천태대사의 생각이
아니라) 정확하게 밝혀 주셔야 논쟁의 의미가 있을 겁니다. 또 시간도 절약할 수 있지요.
저의 글에 대한 일심청정님의 깊은 관심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님의 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성거사 무릇 보살이 되어야한다며"바로 이부분입니다 왜 그런가하면 뒤의 글도 보면 아실것이고 ..설명하자면 아라한들이 부처님의 가피로 보살들에게 즉 여래의 지헤로 말미암아 보살들에게 대승법을 아라한인 자신들이 설해/ㅅ으면서도 우리들은 작은 법을 좋아해 스스로 대승법에 뜻이 없었다 그래서 방편법으로 저희들에게 설하셨고그래서 우리가 참으로 본디 불자인줄모랐습니다 바로 이이야기입니다 번역하신 한문 경문 의 뜻이그렇게 되어 있는 데도 왜 이렇게 번역을 하십니까 아직 저의 말이 혹시라도 이해가 안되십니까
@일심청정 부처님의 명령(勅)으로 대보살들에게 최상도를 설했다(佛勅我等 說最上道)는 구절은 신해품에 있지요. 물론 엉터리번역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부처님의 <가피>로 보살들에게 일승도를 설했다는 구절은 어디에 나오나요?
@나성거사 마지막으로 거사님께 글 올립니다 법화경을 설하기 전까지의 사정을 몰라서 이런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방등경 설할 때는 아라한들을 소승법만 좋아한다고 꾸지람을 받았고 반야시에는 부처님이 아라한들을 격려하기 위해 부처님그들에게 가피해서 소승 아라한이 보살에게 오히려 설법을 합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대승의마음 을 내라고 격려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라한들이 저희들에게가르쳐주시어 보살을 향해 설법하자보살들이 이를 듣고 부처님께서 보살들에게 수기주셨으나 그러나 우리들은 대승법을 좋아하지아니하였습니다 이것도 법화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저는는 타고난 성격이 꼬랑지 내리는 법이 없습니다 잘못했을 대는 당당히 남자답게 내가 잘못했다고 솔직히 말하는 성격이고 내가 분명 바른데도우기면 끝가지 끈질기게합니다 오종 법사회에서 실시간으로 불교책을 펴낸 분과 실시간으로 검증 토론 했고 참으로 여러 사람과 논쟁을 많이 해서 이젠 이게 진절머리가 나고 그리고 논쟁에서 한번도 져본적이 없습니다 이건 저자랑이 아니고 상대가 너무 모르니까 자연 저가 이기게 되는 것이지 저가 뭐 똑똑한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나의 약점은 독수리 타법이라 글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그래서 그만 둔다고 한 것입니다 내공부도 바쁜 데 시간낭비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가 위의 글에서도 교보살법 번역이 잘못되엇다고 말슴 드려습니다 이에대한 답변은 왜 없으신지요 그러나 답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관심이 없어졋습니다 분명히 말슴 드리건데 저는 비겁하지 않고 그래서 성질이 부드럽지 못한 점도 많습니다
<敎菩薩法>을 <보살에게 법을 가르친다>로 번역한다면, <敎生滅法>은 <생멸에게 법을 가르친다>로
번역할 수 있어야 하고,
또 <敎交通法>은 <교통에게 법을 가르친다>로 번역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맞습니까?
<敎菩薩法>을 <보살을 가르치는 법> ---> 부잣집 아가씨에게 왜 자꾸 화장품을 줘요... 가난한 집 아가씨게게 줘야지요. 보살 보다는 무지한 중생을 가르쳐야지 ---> 이렇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보살에게 법을 가르친다>는 것은 틀린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옛날 선지식들이 그런 식으로 번역했으니 무슨 곡절이 있는지?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최근에 지인을 통해 구한 <국역장경>이라는 두꺼운 책을 지금 보고 있어요. 세종대왕 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아마 님도 가지고 계실거라 보는데요. 저가 제기한 문제 50 가지를 거의 다 훑어 보았어요.
지금 시중의 번역 내용과 거의 같습니다. 법화경을 좀 안다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진짜 신주 모시듯 하는가봐요.
<전통>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요. 문제를 제기하면 <이것 봐라>는 식으로 내 놓는 책이 바로 이겁니다. 저도 <전통>에는 엄청 약합니다. 7-8 년전에 이 책을 보고 법화경을 시작했다면 별 수 없이 저도 그 책을 베꼈을 겁니다. 시간, 노력 안들이고 쉽게 공부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합니까.
그런데 이 책은 전혀 아닙니다. 아마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 아마 나는 죽일 놈이 될겁니다. 감히 <전통>에
대드는 놈을 그냥 두겠어요? 특히 불교처럼 <전통>이다 하면 자다가도 차렷 자세를 취하는 분위기인데. 그런데
저는 다행히 그런 <전통>동네와는 멀리 떨어져 있으니, 돌 맞을 걱정은 아직 안합니다. 세종 때 나온
우리말 불경을 주제로 어느 학자가 쓴 논문이 있어요. 그 내용 중에 <국어학자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제대로 번역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구절이 있어요. 번역 내용에 의심가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
이지요. 그 분도 불교인들의 <전통>에 도전하면 최소한 중상이라는 것을 안 거지요.
그 당시의 사람이라면, 특히 불교관계자라면 한문 하나만은 지금의 우리가 감히 얼굴이라도 바로 볼 수 있겠어요?
근데, 내용을 뜯어버면 전혀 그게 아닙니다. 좀 무엄하게 말하자면, 한문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더라는 겁니다. 글자를 잘못 본 경우가 있는가하면, 경전의 문장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 부분은 제가 공개할 겁니다만. 그래서 저도 왜 그렇게 번역했을까...의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어요. 누군가는 밝혀 내리라 봅니다. 하여간...그런 이야기 올시다.
세종때 국역장경??? 처음 듣씁니다. 아이구 7년인가 이것 한가지로 연구를 하셨다니 ... 대단합니다. 거사님의 번역... 한문문법자체는 거론않더라도
그냥 뜻으로 보아도 상당히 공감이 갑니다. 邁進바랍니다. (그러나 한문 문법 많이 거론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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