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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남도(홍성,청양,부여,논산,대전)
횡단 후기 -----
2001년 5월 27일 7시 ~ 2001년 5월 27일 23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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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가본곳 (* 밑줄 친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장소로 바로 이동합니다.)
1. 서울역
2. 홍성역
3. 청양읍
4. 장곡사(칠갑산도립공원)
5. 장곡사 상대웅전
6. 장곡사 북(鐘, 코끼리 가죽으로 만든
북)
7. 대치리
8. 정산(서정리)
9. 서정리9층석탑
10. 부여읍
11. 부여나성
12. 능산리고분군
13. 백제금동대향로출토지
14. 논산시내
15. 개태사
16. 개태사 철확
17. 양정(신도안입구)
18. 대전광역시
19. 서울강남고속터미널
* 이 후기는 작년 5월 말에 충남지역을 갔다와서 쓴 후기로 여기에 내용이 현재와
다를 수 있음
* 메모장에 택스트
형식으로 쓴 것을 다시 수정,보완함.
* 전라/충청도에서
개최한 충청도 지역 답사에 장곡사가 들어 있는지라 작년 장곡사에 갔던 기억이
다시 생각나서 올립니다.
* 논산,부여 부근
지도를 스캔해서 후기에 올리려고 했으나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관계(실력이 좀 딸린 관계로..
ㅋㅋㅋ)로 그냥 링크만 시켰습니다. (그런데 나올 때도 있고, 안나올때도 있더군요. 그냥
보시기를..)
1. 2001년 5월 27일 일요일. 그날은 날씨가
무척 화창했고 더웠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이리저리 준비하고 아침 6:20분에 집을 나섰다. 아침햇살이 대개 뜨겁군..
집앞 버스정류장(상계1동)에서 서울시내버스
15번(하계동↔신설동↔전농동↔공릉동↔하계동,
자세한 노선 보기)을
타고 도봉동,방학동,창동,쌍문동,수유리,미아리를 지나 미아리고개(돈암동과
길음동 사이에 있는 고개)에서 내려서
동아운수에서 운행하는 서울시내버스 25번(화계사↔종로↔서울역↔신림동↔시흥2동,
자세한 노선 보기)을 타고
돈암동,삼선교,혜화동,종로,미도파,숭례문을 지나 7:20분경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사(驛舍)로 들어가니 이번에 같이 가기로 한 여자선배가 기다리고 있군..
만나자 마자 표사는 곳으로 가서 예약한 철도표를 구입하고
열차타는곳으로 나간다.
서울역사(驛舍)는 이른아침이지만 사람들이 졀라 많다.
대부분 지방으로 놀러가는 사람들..
타는 곳으로 나가니 열차가 대기하고 있군..
열차에 탑승하여 지정된자리에 앉는다.
이번에 타는 열차는 서울발(7:40분출발)->장항행(11:14분도착) 무궁화호 제333열차이다.
좌석은 5호차7,8석 운임은 할인하여 6000원(2001년도 요금임)이다.
우리의 목적지인 홍성역에는 9:51분에 도착한다.
2. 7:40분이 되니 열차는 출발한다.
한강을 건너서 영등포역에서 수천명의 승객을 태우고 남쪽으로 달린다.
안양역에서 몇명의 승객을 태우고, 수원역에서 수백명의 승객을 태운다.
수원부터 천안까지는 복복선화공사와 전철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천안역에서 경부선을 버리고 단선에 장항선으로 진입한다.
장항선으로 진입한지 얼마안되서
경부고속전철공사현장을 지나고 얼마뒤 온양온천(아산시)역에 도착한다.
도고온천역을 지나 신례원,예산,삽교를 지나서
9:51분에 우리의 목적지인 홍성역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린 다음 열차표를 기념품으로 가져오고 역사(驛舍)를 나온다.
(-> 처음화면으로)
3. 홍성(洪城)은 3개월여만(당시 기준)에 와본다.
홍성의 옛지명은 홍주이다.
이곳 홍성은
만해 한용운선생과 김좌진장군의 고향이기도 하다.
홍성지역의 주요 관광지로는 홍주성,고산사,천수만,한용운선생 생가,김좌진장군 생가 등이 있다.
우리는 홍성역을 나와서 부근에 있는 홍성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여기서 청양으로 가기위해서...
터미널 건물로 들어가서 청양가는 버스시간을 알아보니 10:22분에 있군.
그때 시간 10:00..
홍성에서 청양까지는 직행버스가 20~30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으며,
청양으로 가는 직행버스는 청양,정산을 경유 공주,대전,청주방면으로 운행한다.
그외에 청양으로 가는 농어촌 군내버스가 거의 1:00 간격으로 굴러다닌다.
홍성터미널에서 운행하는 시외,군내버스 시간표는 ------>
(홍성시외버스터미널)
청양까지 버스요금은 1700원(2001년 당시 요금). 허걱~~
버스표를 사고 타는곳으로 나간다.
타는 곳에는 서울행 직행버스와 서산행 직행버스가 승객을 태우고 있군..
몇분 뒤 청양행 직행버스가 타는곳으로 들어온다..
이번에 타는 버스는 금남고속에서 운행하는 청양,정산,공주경유 대전행
직행버스이다. 차종은 am928이다.
우리외에도 10여명의 승객이 버스에 탑승했다.
10:22분이 되자 버스는 터미널을 출발..
홍성읍내에 있는 김좌진장군동상을 지나 홍성읍내를 가로질러 장항선철로를 건너서
29번국도를 졀라게 달린다.
신기리,대영리,비봉,신원리를 지나서
청양군청 3거리에서 왼쪽 길로 진입하여 잠시뒤 청양읍내에 이른다.
홍성을 출발한지 30여분만에 청양읍내에 위치한 청양터미널에 도착했다.
(-> 처음 화면으로 가기)
4. 청양(靑陽)은 충남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고을이다.
청양군의 주요 관광지로는 그 유명한 칠갑산도립공원(七甲山道立公園)이 있으며, 칠갑산 기슭에는 천년고찰
장곡사(長谷寺)가 있다.
그외에 서정리9층석탑, 칠갑산자연휴양림, 천장호, 우산성 등의 관광지가 있다.
청양읍내 중심에 위치한
청양터미널은 조그만하다.
여기서 운행하는 시외직행버스 노선은 서울,대전,홍성,보령,부여,공주,예산 등이다.
자세한 시외버스 노선과 시간표는 ------>
(청양시외버스터미널)
그리고 청양군 관내를 운행하는 군내버스 시간표는 ----->
(청양교통 버스시간표)
(* 단 업데이트가 제대로 안되있음.. 자세한 시간표는 청양터미널에 문의 바람)
터미널에서 장곡사방면 버스시간을 알아보니 여기는 버스가 없다고..
시내로 들어가서 군내버스 타라고 그런다.
할 수 없이 터미널을 나와서 읍내로 들어간다.
청양읍내(靑陽邑內)는 조그만 도시이다.
좀 걸어가니 4거리가 나오는군.. 여기서 길 건너에 군내버스정류장이 보인다.
여기가
장곡사 방면 군내버스가 정차하는 곳인데 버스시간표가 없군. 이런..
버스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막연히 기다릴 수 도 없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군내버스터미널을 물어보니 4거리에서
남쪽으로 좀 가면 있다고..
4거리로 나와서 남쪽으로 가니 시장(市場)이 있다.
좀 가니 구석에 군내버스터미널이 있군.
들어가서 버스시간을 알아보니 12:30분에 있다.
그때 시간 11:20분..
아직도 1시간 이상이나 남았군..
그래서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하다가 택시를 타고 들어가기로 했다.
청양읍내에서 장곡사까지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다.
마침
군내버스 터미널앞에 택시 몇대가 짱박고 서있군...
그 중에서 1대를 골라서 장곡사까지 얼마냐고 물어보니 미터요금으로 계산한다고..
그래서
택시를 타고 장곡사로 간다.
청양읍내를 벗어나서 공주방면으로 좀 가니 대치(주정리)란 곳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편 645번지방도로 진입한다.
험한 고개를 몇개 넘으니 장곡사입구 3거리에 이르고
여기서 좌회전하여 칠갑산쪽으로 올라간다.
장곡사주차장,일주문을 지나서 2km정도 올라가니
어느덧 장곡사 경내에 이른다.
택시요금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10000원이라고 커헉~~
10km도 안되는 구간인데 10000원씩이나..
할 수 없이 그
운임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 처음 화면으로 가기)
5. 장곡사(長谷寺)와 칠갑산
도립공원에 대하여..
장곡사(長谷寺)는 칠갑산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고찰로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많은 귀중한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으며, 충남지역의 주요 사찰중 하나이다.
이 절은 신라 문성왕 12년(850년)에 보조법사가 창건했다고도 하지만 그것이 확실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절의 주요 특징이라면 대웅전(大雄殿)이 2개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며, 약사여래기도 도량으로 유명하다.
귀중한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천년 고찰로 전국에서 신도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이 절은 공주시에 충남 최대의 사찰 마곡사(麻谷寺)의 말사(末寺: 부속 사찰)이다.
이 절은 국보 2점과 보물 4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코끼리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북이
있어 눈길을 끈다.
그리고 장곡사를 감싸고 있는 칠갑산(七甲山)은 해발 561m의 높이로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계곡을 지닌 명산으로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을 지니고 있다.
칠갑산은 해발 561m의 높이로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계곡을 지닌 명산으로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을 지니고 있다.
1973년
3월 6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면적은 32.542㎢으로 4개면에 걸쳐 있으며 주요 명소로는
칠갑산 정상, 아흔아홉골, 칠갑산장(최익현동상, 칠갑산노래조각품등),천장호, 장곡사, 정혜사,
자연휴양림, 도림사지, 두률성등이 있다.
특히 칠갑산은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여 봄에는 산철쭉과 벚꽃으로 단장하여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고 여름에는 울창한 천연수림이 현대인들의 심신을
안정시켜주며, 또한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어우러지며, 겨울의 설경은 천상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으로 다가와 칠갑산은 사시사철
등산객들에게 독특한 묘미를 전해주는 명산이다.
칠갑산은 7개의 등산로가 개발되어 각각 특성을 자랑하고 있어 각자에 맞게 등산코스를 선택할 수 있어 꾸준히
관광객이 늘고 있는 가운데, 대중가요 「칠갑산」의 노래와 함께 전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 널리 알려져 있다.
* 이 칠갑산의 유래에 대해서는 옛날 백제시대 때 이 산을 사비성 정북방의 진산(鎭山)으로 성스럽게 여겨
제천의식
을 행하였다. 그래서 산 이름을 만물생성의 7대근원 七자와 싹이 난다는 뜻의 甲자로 생명의 시원(始源) 七甲山이
라 경칭하여 왔다.
또 일곱 장수가 나올 명당이 있는 산이라고도 전한다. 충남 중앙에 자리잡은 칠갑산은 동쪽의 두솔성지(자비성)와
도림사지, 남쪽의 금강사지와 천장호, 남서쪽의 정혜사, 서쪽의 장곡사가 모두 연대된 백제인의 얼이 담긴
천년사적지이다.
* 장곡사 접근 방법 :
①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
경부고속도로→청주나들목→조치원→1번국도
경유→종촌→36번국도 경유→공주시→우성→정산→대치터널→
대치(주정리)→장평,장곡사 방면 지방도 경유→광금리→장곡사입구→장곡사
서해안고속도로→대천나들목→보령(대천)시내→36번국도
경유→청라→화성→청양읍→대치(주정리)→
장평,장곡사 방면 지방도 경유→광금리→장곡사입구→장곡사
②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청양까지 직행버스가 1일 16회 운행. 운임은 10400원.
그외에 홍성,보령,대전,천안,부여,공주,아산에서 청양까지 직행버스가 운행한다.
운행횟수와 요금은 해당터미널에 문의 바람.
청양읍에서 장곡사까지 청양군내버스(청양교통)가 1일 2~4회정도 운행.
(정확한 운행 횟수를 모르겠음, 워낙 차가 안다녀서..)
시간이 안맞을 경우 작천리 경유 장평,부여 방면 군내버스를 타고 장곡사입구에서 하차.
거의 1~2시간 간격으로 운행.
청양읍내에서 택시로 갈 경우 15분 정도 소요, 요금은 10000원 이상 잡을 것..
*
(청양,장곡사 부근 지도 보기)
6. 장곡사주차장에서 내리니 바로 위에 장곡사가 보인다.
이곳은 칠갑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중 1곳이기 때문에
등산객들이 많다.
좀 올라가니 장곡사 경내이다.
장곡사는 2곳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상대웅전이 있는 위쪽(건물이 3동정도 있음)과 하대웅전이 있는
아래쪽(요사를 비롯하여 건물5-6동정도 있음)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하대웅전(下大雄殿)지역으로 갔다.
문(문이름 까먹음..)을 지나니 설선당(設禪堂) 이란 건물이 나온다.
이 건물은 조선 중기에 지어진 건물로 하대웅전 왼쪽에 동향하여 세워진 스님들의 거처이다. 건물 앞면에 '설선당’
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어 말씀을 논하고 참선을 위한 곳인 동시에 비구니 스님들이 수도하는 곳임을 나타낸다.
건물 앞쪽에서 보면 오른쪽 3칸은 기둥이나 지붕을 받치는 공포가 정교한 구조와 양식을 보여 원래의 건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왼쪽으로
이어지는 2칸은 그 구조와 양식이 변형을 보이고 있어 이는 후에 보수되었거나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은 충남 지방유형문화재 151호이다.
* 장곡사 설선당
설선당 마루에는 신도들로 보이는 아줌마들이 잡담을 하고
있었다.
설선당을 둘러보고 위쪽에 있는 하대웅전으로 갔다.
이 하대웅전(下大雄殿)은 상대웅전보다 훨씬 낮은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대웅전은 조선 중기 때 만든 것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소박한
맞배지붕에 화려한 다포 양식을 가미한 것은 보기 드문 예이다.
건물 안쪽에는 상대웅전이 전돌을 깐 것과 달리 마루를 깔았고 불단에는 금동약사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이 하대웅전은 보물 181호이다.
* 장곡사 하대웅전 (보물 181호)
하대웅전 안에는 불상 하나가 모셔져 있다.
그 불상은 바로 금동약사여래좌상(金銅藥師如來坐像)이다.
이 불상은 머리에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넙적한 머리(육계)는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갸름한
타원형의 얼굴은 단정하고 우아하지만 통일신라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미소는
사라지고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두터워 보이며 어깨는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보인다. 옷자락에는 굵은 주름이
듬성듬성 새겨져 있고, 배에 있는 띠매듭은 율동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있으며, 왼손은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데 손톱 모양까지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불상의 신체는 늘씬하게 균형이 잡혀 있으며 넓은 무릎으로 인해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다.
1959년 불상 밑바닥을 열고 조사하다가 불상을 만들게 된 이유와 연도를 적은 축원문(祝願文)과 금강경,화엄경등이
발견되어, 고려 충목왕 2년(1346)에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고려시대 불상임이 확인되었으며
충청도 지역에서 유행하던 고려 후기 불상양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불상은 보물 337호이다. 불상 뒤에는 탱화가 걸려 있다.
불상이 앉아있는 불단(佛壇)앞에는 신도들이 예불을 올리고 있군..
* 하대웅전안에 있는
금동약사여래좌상 (보물 337호)
7.
하대웅전과 금동약사불을 보고 옆에 약사전(藥師殿)으로 갔다.
이 건물은 근래에 보수한 건물이라 그렇게 언급할 필요는 없다.
하대웅전을 뒤로 하고 위로 올라간다.
5월 하순인데도
날씨가 졀라 덥다.
올라가는 계단주위에는 이름모를 풀들과 꽃들이 우리를 반긴다..
위로 올라가니 상대웅전(上大雄殿)이 있다. 장곡사의 위쪽 부분이다.
(-> 처음 화면으로 가기)
상대웅전(上大雄殿)은 이 절은 지형을 따라 위아래에 2개의 대웅전이 있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다. 상,하 대웅전은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었는데, 상대웅전은 하대웅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상대웅전은 상(上)에서 말해주 듯 위에 있는 대웅전을 뜻하기도 하는군..
상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특이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건물
안쪽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그 중에는 통일신라 때 것으로 보이는 잎이 8개인 연꽃무늬를 새긴 것도 섞여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의 짜임수법이 특이하여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대웅전 안에는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국보58호)와
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보물 제174호)등의 귀중한 문화재가
모셔져 있다.
상대웅전은 보물 162호이다.
* 장곡사
상대웅전 (보물 162호)
상대웅전 안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불상3개가 모셔져 있다.
불상 모두 대좌(臺座)에 앉아있군.
불상을 바라보고 있는데 여승(머리는 삭발안하고 승려복만 입었음)하나가 상대웅전 안으로 들어가는군..
이때 상대웅전을 둘러보던 관광객 2명이 여승(女僧)에게 어느것이 국보고 어느것이
보물이냐고 물어본다.
그저라
여승 왈 "불상을 가르킬 때는 이것,저것이라 하지 말고 저분,이분이라고 부르세요"라고 그런다.
우리도 여승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불상 3개중 제일 오른편에 불상이 국보58호인 철조약사여래좌상이고,
중간에 있는 불상이 보물174호인
철조비로사나불좌상이고
왼편에 있는 불상은 비지정문화재인 불상(불상이름 까먹음~~)이다.
여승은 불상과 불상을 받들고 있는 석조대좌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해줬다.
불상 3개모두 고려시대에 만든 미술품 들이다.
석조대좌는 화강암으로 만든것으로 조각솜씨가 매우 우수하다.
불상은 모두 조그만하다. 불상뒤에는 탱화가 그려져있다.
한참동안 불상과 석조대좌를 감상했다.
장곡사는 비록 작은절이지만 규모에 비해 보물이 아주 많은 절이다.
* 상대웅전안에
있는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 (국보58호)
* 상대웅전안에
있는
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보물 제174호)
8.
상대웅전 안으로 들어가서 위에 불상들을 관람하면서 여승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 내용은 아쉽게도 기억이 안난다)
상대웅전을 그런데로 둘러보고
상대웅전을 뒤로 한 채 하대웅전 쪽으로 내려갔다.
하대웅전으로 내려가니 외지에서 온 신도 수십명이 장곡사를 둘러보고 있다.
설선당 뒤에 있는 누각에 유명한 것이 있다고 해서 그 쪽으로 가봤다.
그 누각에는 종과 북이 있는데 종은 철로 만든 동종(銅鐘)이다.
(-> 처음 화면으로 가기)
그런데 북은 코끼리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코끼리 가죽으로???
물론 우리나라에는 코끼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옛날 고려시대 때는 송나라,거란(요),여진(금),왜(일본),동남아,인도,이슬람세력과 활발한
무역을 했었다.
이 코끼리 가죽은 아마 인도에서 수입한 것 같다.
나는
코끼리가죽으로 만들어진 북을 열심히 두드려 봤다.
별 느낌은 없었다...
동종도 한번 칠까하다가 관두고.. 누각(樓閣)을 나왔다.
* 그 외에 장곡사 경내에는 국보 300호로 지정된 미륵불괘불탱이 있다, (비공개)
장곡사 오른편에 있는 약수터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장곡사를 나온다.
장곡사에서 뒤로 넘어가면 칠갑삽 정상이 나온다..
이때시간 12:00경
9. 장곡사 주차장을 지나 일주문(一柱門)을 통과하여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간다.
걸어가면서
어디로 갈까 의논을 했는데 공주로 가기로 했다.
공주로 갈려면 우선 청양으로 나가야 되는데 버스편이 마땅치가 않다.
장곡사입구에서 청양가는 군내버스가 1:00간격으로 굴러다닌다.
우선 입구로 나가야 된다.
1km정도 내려가니 장곡사관광단지와 대형버스주차장이 나온다.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 (2001년 당시)
지금 개발중이다. 장곡사로 들어가는길도 현재 2차선포장도로로
확장,포장중이다. (2001년 당시)
좀 내려가니 차 1대가 우리옆에 서더니 타라고 손짓을 한다.
음 이게 왠 떡이냐..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 차에 탔다.
그 차를 운전하는 아저씨는 칠갑산도립공원(七甲山道立公園)을 관리하는 관리소장이었다.
장곡사출장소에서 도립공원본사로 가는 중이라고..
관리소장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이야기한 내용은 칠갑산에 대해서..
이야기 내용은 1급?비밀이므로 생략한다.
칠갑산에 유난히도 남파간첩들이 많은 찾아 오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험한고개를 구비구비 돌아서 공주로 가는 국도와 만난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대치리로 간다.
국도옆에는 우회도로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다. (2001년 당시)
광대리를 지나서 대치터널 입구에서 내렸다.
(-> 처음 화면으로)
여기서 공주,청양,대전가는 직행버스가 정차한다고 해서..
관리소장아저씨는 우리를 내려주고 도립공원 휴게소쪽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우리말고도 애들4-5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청양군 대치면 대치리이다.
조그만 마을이나 칠갑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중 한곳이다.
최근에 이곳에 터널(대치터널)이 뚫려서 고개를 힘들게 넘을 필요가 없다.
기다린지 얼마뒤 청양 쪽에서 직행버스가 하나 오는군..
그래서
그 버스를 잡았으나 핵 지나간다..헉~~
그 차량은 충남고속에서 운행하는 대전행 직통버스였다.
직통버스는 여기 안서는 모양이다.
잠시뒤 정산쪽에서 직행버스가 와서 애들4-5명을 태우고 청양쪽으로
가버린다. 이때시간 1:00경
기다린지 20분이 지나서 청양쪽에서 직행버스가 온다.
금남고속에서 운행하는 대전행 직행버스이다.
우리는 그 버스를 잡아 타고..
대치터널을 지나서 칠갑산휴게소를 지나 고개를 구비구비 돌면서
10분정도 가니 어느덧 정산에 이르렀다.
정산은 충남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이다.
우리는
정산터미널에 도착하여 내렸다.
버스요금은 1인당 700원이다. (지금은 750원)
10. 정산(서정리)은 평범한 시골동네로 정산면의
중심마을이다.
이곳에 유명한것이 하나 있어서 내린 것이다.
터미널에서 내리니 가까이에 그것이 보인다.
좀 걸어가니 4거리가 나오는군.. 여기서 아산,유구(4거리에서 북쪽),청양,보령(4거리에서
서쪽),공주,대전
(4거리에서 동쪽),부여(4거리에서 남쪽)로 갈 수 있다.
4거리를 건너서 그곳으로 간다.
길가에 옥수수 파는 아줌매가 있어서 옥수수 2개를 샀다.
터미널에서 걸은지 4~5분만에 그곳에 도착하니 바로 서정리 9층석탑이다.
(-> 처음 화면으로)
11. 이 서정리 9층석탑(西亭里
九層石塔)은 청양에서 공주로 빠지는 길가 논 한가운데에 있는 탑이다.
부근에 고려시대 백곡사(白谷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주위에 기와조각 등이 흩어져 있을 뿐 다른 유물들은
찾아볼 수 없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돌려 새겼는데, 바닥선이
꽃모양으로 솟아올라 있어 고려시대의 양식상 특징을 드러낸다. 윗층 기단에는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그 위로 알맞은 두께의 돌을 덮어 안정된 모양새를 띠고 있다. 탑신 1층이 큰 점이 특징적인데,
2층부터는 높이가 뚜렷하게 줄어들지만 넓이는 크게 좁아지지 않아 우아한 느낌이다. 지붕돌은 아랫면에 1층은
5단, 나머지 층은 3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가 약간씩 치켜올라가 있다.
전체적으로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석탑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9층이나 되는 층수로 인해 형태가 매우
높아져 안정감이 부족하다. 각 부분의 세부적 조각양식이나 기단의 안상을 새긴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은 보물 18호로 지정되있다.
우리는
탑을 한바퀴 돌면서 탑을 이리저리 바라본다.
진짜 멋있군..
* 서정리 9층석탑
(보물 제18호)
* 서정리 9층석탑 접근 방법 :
①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
* 경부고속도로→청주나들목→조치원→1번국도
경유→종촌→36번국도 경유→공주시→우성→정산
* 서해안고속도로→대천나들목→보령(대천)시내→36번국도
경유→청라→화성→청양읍→대치(주정리)→대치터널
→정산
②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
청양,공주,대천,홍성,아산,대전동부에서 정산(서정리)가는 직행버스 이용.
12. 우리는 탑을 보고 다시 정산터미널로 갔다.
마침 점심을 안먹은지라 부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어디로 갈까 의논을 했는데,
처음에는 공주(公州)로 가기로 했으나 부여 쪽으로 가자는 의견이
있어서
부여(扶餘)로 가기로 했다.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터미널로 와서 버스시간을 알아보니 부여가는 군내버스가 2:40분에 있군.
부여까지 버스요금이 무려 1860원 커헉~~ (2001년 당시 요금)
정산터미널에서 운행하는 주요노선은~~
*
공주가는 공주시내버스 6번이 20-30분 간격으로 운행
*
청양가는 직행버스는 10-20분 간격으로 운행
*
공주,대전가는 직행은 10-20분 간격으로 운행
*
부여가는 군내버스는 1:00간격이다.
2:20분이 되자 시내버스 1대가 터미널로 들어온다.
그 버스가 바로 부여로 가는 버스군.
2:30이 되자 버스에 탑승.. 이때
운전사는 뒷좌석에 누워있었는데 우리가 타자 부랴부랴 일어난다.
우리말고도 승객1명이 탔다.
이번에 탄 버스는 부여여객에서 운행하는 장평,은산
경유 부여행 부여군내버스이다.
ac540sl 냉방차량이다. (날씨가 더움에도 불구하고 냉방은 끝까지 틀지 않았다..)
2:40분이 되자 버스는 정산터미널을 출발..
정산시내를 나와서 4거리에서 부여쪽으로 간다.
고개를 넘고 들판을 지나고.. 10km정도 가니 장평이다.
여기서 승객이 몇명탄다..
장평을 지나
좀 가니 '부여군'이란 이정표가 나오고 얼마뒤 은산에 이른다.
은산은 은산별신제(恩山別神祭, 중요무형문화재 9호,
은산별신제에 대하여)로 유명한 곳이다.
은산시내에서 승객을 좀 태우고 규암을 지나
백마강(白馬江, 금강의 부여부분)위에 걸린 백제대교를 건너서
3:30분경에 부여읍내에 도착하여 내린다.
(정확히 내린 곳은 부여시외터미널앞)
(-> 처음 화면으로 가기)
13. 부여는 3달여만에 와본다.
(2001년 5월 당시)
부여는 백제시대 3번째 국도(國都)로 123년간 백제의 중심도시였다.
가구수가 15만호에 인구 80여만명에 대도시였다.
지금은 거기에 1/10도 안되지만.,..
버스에서 내려서 음료수 좀 사먹고 능산리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능산리로 갈려면 논산방면 버스를 타면 된다.
마침 버스정류장에 논산역으로 가는 버스가 정차하고 있군.
(여기가 논산방면 버스종점이다.)
기다리고 말것도 없다. 바로 버스에 탔다.
이번에 탄버스는 덕성여객에서 소속 '부여읍↔능산리↔석성↔논산역'을
운행하는 논산시내버스로서 am937이다.
요금은 650원이군. 부여구간은 부여군내버스 기본 요금인 650원을 받고,
논산구간은 논산요금인 750원을 받는다.
시계(市界)를 넘을 경우 시외초과요금을 받는다.
부여↔논산간 시내,군내버스는 15~20분 간격으로 운행..
몇분뒤
버스는 부여읍을 출발..
궁남지입구를 지나서 정림사지(사적9호)를 지나 부소산성 입구를 지나서
부여읍내를 벗어나고...
10여분뒤 능산리고분군에 도착하여 내린다.
능산리고분군에서 내리니 앞에 주차장과 관리사무소, 매표소가 있다.
그리고 왼편에 무슨 토성같은 언덕이 있고 주차장에 문화재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가서 보니 그 언덕은 바로 부여나성(扶餘羅城)이다.
(-> 처음화면으로 가기)
나성(羅城)은 곧 외성으로 성밖에 겹으로 쌓은 성이다.
이성은 백제 성왕(재위523-554년)때 백제수도를 호위하기 쌓은 성으로 보인다.
나성은 흙으로 쌓은 토성(土城)이기 때문에 무너진 부분이 많다.
나성은 부소산성동문자리인 영월루앞에서부터 동쪽으로 펼쳐지는데
청산성에서 남쪽으로 구부러져서
석목리->동문다리->능산리->필서봉->염창리백마강가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구아리->장성백이->성말리에 이른다.
이 성은 청산성,청마산성과 더불어 백제의 국도(國都)인 사비를 수비하는 외곽방어시설이다.
이 부여나성은 사적 58호이다.
* 부여 나성의 일부 모습
(사적 제58호)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나성을 바라보고(토성까지 가지 않았다) 매표소로 갔다.
매표소에 아무도 없어서 그냥 들어갔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매표소 직원이 입장료내라고 소리친다.
매표소 옆에 매점이 있는데 매점주인이 매표소도 같이 운영하는 모양이다.
능산리고분군 입장료가 1000원 커헉~~ 비싸다.
어쨌든 입장권을 구입하고 공원안으로 들어갔다.
능산리고분군은 공원으로 잘 조성되있다.
그늘진 곳에 행랑객들이 자리를 잡고 놀고 있군.
14. 능산리고분군에
대하여 (사적 14호)...
부여 능산리산의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는 백제시대 무덤들이다.
무덤은 앞뒤 2줄로 3기씩 있고, 뒤쪽 제일
높은 곳에 1기가 더 있어 모두 7기로 이루어져 있다. (-> 처음 화면으로
가기)
이 고분군은 백제시대 황족들이나 귀족들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으로 일제시대에 1∼6호 무덤까지 조사되어 내부구조
가 자세히 밝혀졌고, 7호 무덤은 1971년 보수공사 때 발견되었다. 고분의 겉모습은 모두 원형봉토분이고, 내부는
널길이 붙은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뚜껑돌 아래는 모두 지하에 만들었다.
이 고분군은 백제시대 유일의 벽화분(壁畵墳)..
1호분 : 1915년 조사된 1호분은 벽화고분으로 봉토(封土) 밑지름이 27m이며 주변에는 2∼3단의
호석(護石)이
돌려져 있다. 현실(玄室)의 구조는 325cm×151cm의 크기에 높이는 194cm이며, 바닥에는 장방형의 관대(棺臺)를
설치하고 있다. 네벽면에는 주·적·황·흑색으로 사신도(四神圖)를 그렸고 천정에는 연화운문(蓮花雲文)이
그려져 있다.
* 능산리 고분군 1호분의 모습 (오른쪽은
1호분 내부 벽화 -
사신도四神圖가
보인다)
2호분 : 다듬은 석재를 맞물려 쌓아올려 터널형 천정을 꾸미고 있다. 현실의 규모는 5호분과 비슷하나 연도는
좁고 낮으며 길이는 길다.
5호분 : 다듬은 석재로 고분 단면이 6각을 이루도록 구축하였다. 도굴된 고분으로 규모는
325cm×145cm에
높이는 170cm이다. 연도의 길이는 110cm이며 현실과 연도를 판석으로 막고 있다.
7호분(號墳) : 5호분에서 북쪽으로 54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현 지표하 200cm에 토광을
파고 안에
판석조석실(板石造石室)을 조영하였다. 현실 북벽은 장방형의 판석을 횡으로 세우고 그 위에 단면 육각형의 판석을 올려 놓고 평사형(平斜形)으로
천정을 만들었다. 천정부분의 개석도 4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졌는데 벽이나
바닥의 판석과 크기가 같다. 석실의 길이는 362cm, 현실의 길이 279cm, 너비 125cm, 천정높이 142cm, 벽높이 101cm,
연도길이 57cm이다. 유물로는 관식금구(棺飾金具), 도금원두정(鍍金圓頭釘), 청동병(靑銅甁), 철정(鐵釘), 금사
(金絲), 금박편(金箔片), 목관편(木棺片), 목탄편(木炭片)등이 있다.
8호분(號墳) : 1호분과 2호분의 중간지점에서 약간 북쪽 지표하 2m에 위치하였다. 판석으로 짠 장방형
석실이며
연도가 없는 평천정으로 1호분과 같다. 1호분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전석을 바닥 중앙에 2열로 배치하여 시상을
만들었다. 석실의 크기는 길이 174cm, 너비 76cm, 천정높이 90cm이다. 유물은 석실바닥에서 도금정(鍍金釘) 5개만
출토되었다.
* 능산리 고분군의 전경
* 능산리 고분군 접근 방법 :
①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
* 경부고속도로→논산나들목→연무읍→논산시내→4번국도 경유→능산리고분군(부여)
* 대전→1번국도 경유→연산→논산시내→4번국도 경유→능산리고분군(부여)
②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
서울,수원,천안,서대전,익산,광주,목포,여수,진주,순천에서 논산역까지 열차 이용.
자세한 열차 시간표는 ->
(열차시간표 안내)
논산역(논산터미널)에서 부여읍으로 가는 논산시내버스,부여군내버스를 이용 (20분 간격, 소요시간 30분 정도)
또는 서울남부,대전서부,공주,서천,군산,홍성,청양에서 부여까지 직행버스 이용, 부여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논산역으로 가는 부여군내,논산시내버스 이용 (20분 간격, 10분 소요)
15. 능산리 고분군내에
공원산책로를 따라서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니
잔디로 덮여 있는 넓은 평지가 보이고
위쪽에는 7기의 고분군이 보인다.
평지를 지나서 고분쪽으로 갔다.
고분은 둥그런형태의 무덤이다.
조그만 언덕같군..
7기 고분군중 제일 오른편에 있는 봉분이 벽화고분(壁畵古墳)이다.
그러나 출입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들어가고 싶어도 못들어간다.
고분군을 둘러보고 그 중 제일 큰 것으로 생각되는 고분으로 올라갔다.
(무덤위로 올라갔다는 이야기...)
봉분 꼭대기에 올라가니 앞쪽으로 부여-논산간 국도가 보이고 뒤로는
6기의 봉분이 가까이에 보인다.
마치 산꼭대기에 올라온 느낌이군..
봉분에서 내려와서 왼편 길로 좀 가니 의자왕의 가묘(假墓)와 비가 있다.
가묘는 가짜묘를 말한다.
* 이 가묘의 주인공인 의자왕(義慈王)은 백제 31대왕이다. (백제의 마지막 왕이다)
30대왕인 무왕(재위600-641년)의 아들이다.
의자왕은 대개 총명하고 학식이 풍부했다.
왕이 되자마자 국력을 길러서 신라와 맞짱을 뜨는데..
642년 대야성(경남 합천군 합천읍)을 공격하여 김춘추(태종무열왕)의 사위와 딸을
죽이고 대야성을 점령하여
신라를 긴장시켰으며
북쪽으로는 당항성(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을 비롯하여 한수유역에
40여개의 성을 차지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의자왕은 약간 정신이 오락가락 하기 시작..
향락에 빠지게 되면서 나라가 기울기 시작한다.
결국 660년에 나,당연합패거리가 백제를 공격, 계백이 논산 황산벌에서 신라군 5만명과 처절한 맞짱을 뜨지만
결국 전멸한다.
나당연합패거리는 사비성(충남부여)을 점령하고 웅진(충남공주)으로
도망간
의자왕은 태자 융과 함께
660년 7월에 항복한다.
의자왕과 태자,고위관료93명과 백제백성 12870명은 당나라로 강제 이주를 했다.
당나라로 이사온지 얼마 안되서 의자왕은 병사한다. (660년 겨울)
당나라 왕인 고종은 의자왕(義慈王)을 오나라 마지막 왕인 손호의 묘 옆에
장사지내주었다.
손호는 오나라(222-280년)에 마지막 왕으로,
오(吳)나라는 손권(孫權)이 세운 나라다. (삼국지에 나옴)
의자왕의 가묘를 지나서 아래로 내려가니 고분모형들이 있군.
고분모형들은 백제시대 고분군의 여러형태를 모형으로 만든 것들이다.
앞쪽에는 무슨 건물유적지가 있는데 발굴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고분모형전시관으로 들어갔다.
그안에는 서울석촌동고분, 부여능산리고분, 나주반남고분의 모형이
전시되어있다.
옹관들도 전시되있고 백제금동대향로의 모조품도 전시되어있다.
모형전시관을 나와서 매표소 쪽으로 간다.
전시관앞에 건물유적지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287호)가 발견된 유적지다.
유적지는 못들어가게 되있다. (2001년 당시)
건물유적지는 대개 넓었다. 지금도 발굴조사를 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매표소에서 아이스크림하나 사먹고 밖으로 나온다.
16. 그날 따라
날씨가 졀라 더웠다. rest room에서 세수를 열나게 하고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갈까 생각을 하다가 논산에 있는 개태사(開泰寺)에 가기로 했다.
논산은 능산리고분군 앞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 (20분간격으로 운행)
버스정류장부근 그늘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린다.
얼마 뒤 버스가 한놈 오는군. 바로 논산역 가는 부여여객 군내버스 royal midi이다.
그 버스를 잡아 타려고 했으나 석성으로 우회해서 간다고..
버스가 곧 올거라고 해서 그냥 안탔다.
기다린지 10분정도 지나니 버스가 한 넘 온다.
부여여객에서 운행하는 부여->논산역 가는 부여군내버스 bs106 royal city이다.
우리는
그 버스를 잡아탔다.
논산까지 요금이 1200원 커헉~~
증산리,원북리를 지나서
논산시에 진입. 20분정도 가니 논산천(論山川)이 나오고 논산천을 건너니 논산시내에
이른다. (-> 처음 화면으로 가기)
논산시내를 가로질러 논산터미널에 도착하여 내렸다.
논산시(論山市)은 2개월여만에 와본다.
도착한 시간은 5시가 좀 넘었다.
논산터미널에서 개태사에 갈려면 두마,신도안,동학사가는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시간을 알아보니 곧 올 시간이군..
20분정도 기다리니 두마(두계역)행 버스가 왔다.
이번에 탄 버스는 덕성여객에서 운행하는 두마(두계역)행 논산시내버스 bs105이다.
논산시내버스요금은 750원.
버스는 약간의 승객을 태우고 출발한다.
논산시내를 벗어나서 호남선철로와 나란히 달린다.
부적을 지나니 옆으로 계백장군묘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나온다.
어느덧 연산에 이르고 연산을 지나 4차선도로로 졀라게 달린다.
얼마뒤 오른편으로 개태사가 보이는군..
그래서
세워달라고 했으나 운전사는 몇백미터를 더가서 개태사역(호남선철도역)에서
세워준다..
이런 ec ..
개태사역에서 내려서 개태사 쪽으로 걸어갔다.
5-6분정도 걸어가니 드디어 개태사입구에 도착..
개태사 정문을 통해 개태사 안으로 들어간다.
17.
개태사(開泰寺)에 대하여......
개태사(開泰寺)는 대전-논산간 1번국도변에 위치해있다.
호남선 개태사역과 아주 가깝다. (-> 처음 화면으로)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킨 기념으로, 태조 23년(940)에 세운 절이다.
당시 절 안에는 태조의 초상화가 있어서 나라에 전쟁의 기미가 있으면 그 앞에 기원문을 올려 나라가 태평하기를
빌었다고 한다.
그 후 이 절은 대홍수등의 재앙과 왜구(쪽발이 해적집단)들의 공격으로 인해 점점 쇠퇴해지기
시작하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완전히 문을 닫고 말았다.
개태사의
현재의 위치는 세종 10년(1428)에 옮겨진 것으로, 개태사 안에는
개태사지삼존불상(보물 제219호)이 있고,
이외에
도 석탑과 쇠솥이 있다. 전성기에 장국을 끓였다고 전해지는 이 쇠솥은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에
이를 정도여서 수백명의 승려가 기거했다는 전설을 사실로 뒷받침하고 있다. 건물 자리와 주춧돌, 석조, 불상의
대좌, 죽대들이 남아 있으며, 이곳에서 출토된 청동제 반자는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절터에 있었던
석조불좌상
1구는 상방산의 한 암자에 안치되어 있다.
현재 들어서 있는 절의 건물들은 모두 최근에 세운 것들이다.
한때 대규모를 자랑했던 이
절의 현재 규모는 작다. 그러나 지금 한참 복원공사가 진행중이다.
이 개태사터는 충남지방기념물 44호로 지정되어있다.
원래 개태사는 여기에서 좀 떨어진 밭에 있었다. 지금도 그 터가 약간 남아있음..
지금부터 개태사 경내를 살펴보기로 한다.
* 개태사 접근 방법 :
①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
* 호남고속도로→서대전나들목→양정(두마면)→개태사역→개태사(1번국도변에 위치)
* 부여→능산리→석성→논산시내→1번국도 경유→연산→개태사
②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
1.
서울역에서 10:05분에 목포가는 무궁화호 407열차가 개태사역에 정차. 2:20분 소요
주요 정차역 -> 영등포,수원,평택,천안,조치원,서대전,논산,강경,익산,정읍,송정리,나주,함평,목포..
자세한 열차 시간표는 ->
(열차시간표 안내)
2. 또는 서울,영등포,수원,익산,목포,여수,광주,진주,보성,전주,경주 등에서 논산역까지 열차 이용
논산역에서 내린 다음 동쪽으로 200m정도 걸어가면 논산시내버스터미널이 나온다.
여기서 두계,신도안,동학사 방면 논산시내버스 이용. 배차간격은 40~60분 간격. 요금 750원
3. 대전까지 고속버스나 열차를 이용, 대전고속터미널앞과 대전역에서 대전좌석버스 201,201-1번을 이용.
양정에서 하차하여 논산시내로 가는 논산시내버스 이용. 양정에서 개태사까지는 버스 5분 거리.
*
(부여,논산 부근 지도 보기)
18. 개태사 정문을 통해 개태사 경내로 들어가니 제일 먼저
개태사 5층석탑이 우리를 반긴다.
이 석탑은 개태사 옛 터에 남아 있었는데, 절을 새로 지을 때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옮길 당시 아래 부분
이 일부 없어져 완전한 제 모습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높직한 바닥돌 위로 기단(基壇)이 없어진 채, 5층의 탑신
(塔身)만이 차례로 쌓여 있다.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고,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에
는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비록 일부가 없어져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나, 조각 기법이 소박하고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탑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이 석탑은 충남 지방문화재자료 274호이다.
*
개태사 5층석탑
5층석탑 뒤에는 큰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 건물안에 3존석불입상(三尊石佛立像)이 모셔져있다.
이 3존석불입상은 개태사 창건과 더불어 조성된것으로 추측된다.
중앙의 본존불은 민머리에 얼굴이 둥글지만 평면적이고 귀는 길게 늘어졌다. 어깨와 가슴은 투박하게 만들었으며,
오른손은 가슴에 들고 왼손은 배에 대어 무엇을 잡은 것처럼 만들었는데 지나치게 둔중하다.
본존불(가운데있는 석불)의 높이가 4.15m이다.
왼쪽의 보살상은 머리 부분이 없어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본존불보다 조각이 화려하고 섬세한 편으로, 어깨와
가슴이 좀더 부드럽고, 팔찌와 천의(天衣)자락에 장식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의 보살상은 왼쪽의 보살상과
거의 같은 수법으로 얼굴이 역사다리꼴이고, 목에는 두터운 삼도(三道)가 있다.
단정하면서도 통통한 몸집, 큼직한 두 손과 부피감 있는 팔, 다소 두꺼워진 천의와 선으로 새긴 옷주름 등은
후기신라보다 진전된 고려 초기의 새로운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후삼국 통일을 기념하여 만든
작품이며, 고려 초기 지방 석불상으로는 우수한 작품에 속하고 있어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표적인 작품이다.
이 3존석불입상은 보물 219호이다.
* 개태사 석불입상
19. 석불입상 앞에는 신도 몇명이 소원을 빌고 있었다.
나도 빌어볼까 했으나 다음에 하기로 하고..
석불입상을 몇분동안 바라보다가 앞쪽 마당으로 갔다.
(-> 처음 화면으로 가기)
앞쪽 마당에는 한쪽 구석에 보호각 같은 것이 세워져 있는데 그 안에는 큰 가마솥이 하나 있다.
이 거대한 가마솥을 철확(鐵穫)이라고 한다.
이 가마솥은 지름 3m, 높이 1m의 큰 솥이다.
개태사가 유실되던 대홍수 때 이 가마솥도 떠내려가서 여기서 4km나 떨어진
연산에 있던것을 1981년에 다시
개태사로 옮겨왔다.
이것은 개태사승려들이 국을 끓이던 솥이라고 하는데
가마솥이 어찌나 큰지 요리를 하던 사람이 국을 퍼서
담을 때는
작은배를 타고 솥안에서 왔다갔다했다는 전설이 있다. (진짜 그럴까??)
어쨌든 진짜 큰솥이다.
솥안에는 사람들이 던져놓은 동전들이 널려있군..
마침 10원짜리가 있어서 솥안으로 던지면서 소원을 빌었다.
이 철확(가마솥)은 충남지방민속자료 1호이다.
* 개태사 철확(거대한
가마솥)
가마솥을 보니 개태사의 규모가 어느정도 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조그만 사찰에 지나지 않으니... 세월무상...
현재 개태사 지역은 복원공사가 한참 진행중이다. (2001년 당시)
개태사의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니 논이 넓게 펼쳐져 있다.
시골풍경을 바라보면서 논길을 따라 개태사버스정류장으로 나왔다.
20. 버스정류장으로 나오기는 했으나 언제 올지는 모른다.
그래서 막연히 버스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날따라
날씨가 졀라 더웠다.
마침 정산(충남청양군)에서 구입한 옥수수가 있어서
옥수수를 먹으면서 버스를 기다린다.
옥수수를 다 먹고 10분쯤 지나니 버스가 한놈 오는군..
이번에 탄 버스는 덕성여객에서 운행하는 논산역->신도안,동학사 방면으로 가는
논산시내버스 bf105이다.
요금을 내고(750*2=1500원)버스에 오른다.
이제는 대전으로 들어가야지..
도곡리입구를 지나니 멀리 아파트단지가 보이는군
바로 엄사지구 아파트단지이다.
(-> 처음 화면으로)
신도안입구3거리를 지나 양정에서 내렸다.
여기서 대전으로 들어가는 대전시내버스가 등장한다.
양정은 북쪽으로 신도안과 엄사지구,계룡대가 있고 동편으로는 두마면의
중심인 두계리가 있다.
양정에서 내려서 음료수좀 사먹고 버스를 기다린다.
여기서 대전시내로 들어가는 노선은
*
대전좌석201,201-1 (비래동,고속터미널-신도안 배차간격 10~20분)
*
대전245,246번(농수산시장-도곡리,신도안 배차간격 2:00 이상)
*
논산<->대전서부간 직행버스(배차간격 10-15분)가 있다.
그중 우리가 탈노선은 좌석201,201-1번이다.
기다린지 10분정도 지나니 대전좌석버스201-1번(비래동↔대전역↔가수원↔두계역↔신도안)이
오는군..
대전버스요금은 600원, 좌석버스는 1200원이다.
그넘을 잡아타고
두마,두계역을 지나니 이제부터는 대전광역시(大田廣域市)이다.
방동,진잠,가수원,서대전,도청,갤러리이,대전역을 지나 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때시간 7:40분경)
날은 이제 어둑어둑해지고..
21. 우리는
고속터미널로 들어갔다.
대전에서 서울가는 고속버스는 5-10분간격으로 운행한다.
일반고속은 6500원, 우등고속은 9500원이다. (2001년 당시 요금)
우리는
돈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일반고속을 타기로 했다.
버스시간을 알아보니 8:40분에 있군.
2장 구입하고 고속터미널앞 식당가로 가서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여행을 정리하고...
8:30분에 고속터미널로 들어가서 버스 타는곳으로 나갔다.
타는곳에는 승객 수십명이 버스를 기다리거나 타고 있군.
몇분 뒤 우리가 탈버스가 들어오고.. 우리를 포함하여 40여명정도가 버스에 오른다.
이번에 타는 버스는 중앙고속에서 대전->서울강남행 일반고속버스로
운임은 6500원 좌석은 43,44이다.
버스는 승객을 만땅으로 채우고 8:40분에 출발한다.
대전I.C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졀라게 달린다.
나는 피곤한지라 잠이 들고..
잠에서
깨보니 어느덧 서울...
대전을 출발한지 1:50분만인 10:30분에 서울강남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일행과 작별하고 7호선 고속터미널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니 11:50분...
이로써 여행 끝..~~
22. 마무리..
이번 여행은 충남홍성,청양,부여,논산,대전광역시를 방문했으며
가본 관광지는
1. 칠갑산,장곡사(국보2점 보물4점)
2. 서정리9층석탑(보물18호)
3. 능산리고분군(사적14호),나성(사적58호)
4. 개태사(보물1점)
기념품으로 가져온것은
1. 서울->홍성 무궁화호 승차권
2. 능산리고분군 입장권
3. 대전->서울 고속버스승차권
충남지역을 거의 횡단했다.(서쪽에서 동쪽으로 횡단..)
2001년 6월 8일 작성하여 2001년6월12일 0시에 완성했으며,
2002년 9월 10일에 다시 보완,수정하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