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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7일(주일) 로마서 1:18~32 죄를 멸하러 오신 예수님
오늘은 로마서 1:18~32 본문을 중심으로 ‘죄를 멸하러 오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살펴보고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나무위키] 2022년 12월 부산광역시 금정구에서 만 4세 아동 ‘가을이’가 아동 학대를 당한 끝에 숨진 사건으로, 성매매 강요(가스라이팅)가 배경이 됐다. 가을이는 장기간에 걸친 아동 학대와 굶주림으로 인해 사망 당시 실명한 상태였고 체중이 7㎏에 불과했다. 실제 사진을 보면 살점이 없는 미라 수준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죽음이었다. 본명은 여름이다. 처음에는 친모가 딸을 학대하고 때려죽인 단순 아동 학대 사건으로 보였으나 친모가 남편의 폭력에 딸와 집을 나와 동거녀로부터 성매매 강요를 받고 억대의 성매매 대금을 동거녀에게 준 것으로 확인됐다. 아동 학대, 가스라이팅, 성매매, 기묘한 동거 등이 결합한 비극적이면서도 복잡한 21세기 최악의 아동 학대 사건 중 하나다. 2022년 12월 20일,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5세 아동이 학대를 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죄의 심각성을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라가 된 가을이" 아동학대로 숨진 '87cm·7kg' 5살 아이(2023-06-12, MBN뉴스)
[뉴스 내용 전문]
친모의 학대로 한 아이가 기아 상태로 사망했고, 이 과정에서 동거인이 친모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누리꾼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프로그램은 ‘살아서 미라가 된 가을이, 누가 비극 속 진짜 악역인가?’라는 부제로 아동학대로 사망한 가을(가명)이의 사건을 조명했습니다. 당시 생후 만 4년 5개월이던 아이의 키는 87cm, 몸무게 7kg으로 생후 4개월 영아와 비슷한 수준의 몸무게였습니다. 학대 사실은 지난해 12월 14일 친모 A 씨가 딸을 안고 응급실을 찾아오며 드러났습니다. 가을이는 바로 집중치료실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가을이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친모의 폭행으로 드러났습니다. 검찰의 공소 내용에 따르면 친모 A 씨는 이날 오전 6시부터 자신의 물건에 손을 댄다는 이유로 딸의 머리를 침대 프레임에 부딪히게 하는 등 폭행을 가했습니다. 오전 11시쯤에는 딸이 발작을 일으켰지만 친모 A 씨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지난 3월 10일 부산지법 형사6부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친모에게 무기징역과 벌금 500만 원을 구형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친모는 밥을 달라는 아이에게 6개월간 하루 한 끼 물에 분유만 타 먹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숨진 딸은 생전 친모의 폭행으로 사시 증세를 보였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물의 명암 정도만 겨우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증세가 악화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 과정에서 A 씨 모녀와 함께 살고 있던 동거인 문씨부부는 A 씨에게 성매매를 강요해 수익을 얻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지난 2020년 8월 A 씨는 남편의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딸과 함께 집을 나왔습니다. 이후 아이 식단을 공유하는 채팅방을 운영하던 B(28·여)씨 부부를 찾아가 같은 해 9월부터 함께 살았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B 씨는 동거가 시작되자 태도를 바꿔 A 씨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압박하며 성매매를 강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얻는 수익은 모조리 B 씨가 차지했습니다. 검찰 조사 결과 B 씨는 2021년 7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A 씨에게 무려 2400여 회에 걸쳐 성매매를 강요했습니다. 하루 평균 4~5회꼴로 강요한 성매매로 번 돈 1억 2450만원은 그대로 B씨에게 돌아갔습니다. 또 B씨는 A씨 생활 전반을 감시했고, 이에 A씨는 점점 딸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 짜증을 내고 폭행을 일삼았습니다. 검찰은 B씨(아동학대살해 방조·성매매 강요 등의 혐의)뿐만 아니라 B씨 남편(29)도 아동복지법 위반(상습아동유기·방임)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재판결과 친모 김씨는 무기징역을, 2023년 12월 14일 2심에서 검찰은 문씨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하고 추징금 1억 2450만 5천원,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 취업제한 5년을 요청했으며 박씨에게는 징역 5년을 구형하고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 취업제한 5년을 요청했다.
이 땅에 만연하는 ‘죄의 심각성’은 다음과 같은 사례들로 나타납니다.
아동학대, 성폭행, 가정폭력 등과 같은 폭력 범죄의 증가
살인, 강도, 절도 등과 같은 강력 범죄의 증가
부정부패, 횡령, 배임 등과 같은 경제 범죄의 증가
환경 오염, 기후 변화 등과 같은 환경 범죄의 증가
이러한 범죄들은 모두 죄의 결과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삶과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줍니다.
1. 핑계를 대며 하나님을 외면하는 인간(18~20절)
하나님은 세상 모든 만물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자신의 불신앙을 합리화하거나 핑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른다고 자꾸 핑계를 댑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18절에 ‘타락하고 불의한 자들’이 그런 핑계를 댑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입니다(18절). 그런 자를 하나님이 어떻게 대우하십니까? 하나님의 진노(18절)가 임합니다.
시편 14:1과 시편 53:1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이 무신론자는 ‘어리석다’. 즉 ‘지능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꼭 그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 본문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종종 윤리적이거나 종교적인 진리에 대한 인식이 없는 무례한 사람을 일컫는 ‘나발’ 시편 14:1에 나오는 '어리석은'이라는 히브리어 원어는 나발(נָבָל)입니다.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미련한 사람/우둔한 사람/무지한 사람/불경한 사람/악한 사람 시편 14:1에서 나발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시편 기자는 이러한 사람들을 '어리석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나발’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총 64번 사용됩니다. 그 중에서 시편에만 36번 사용됩니다. 시편에서는 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의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됩니다.
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는 ‘우둔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가 아니라, ‘죄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사악한 짓’이고, 하나님에 대한 부인은 종종 ‘사악한 생활방식’을 동반합니다. 시편 14:1은 계속해서 경건하지 못한 또 다른 특성들을 나열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많은 무신론자들은 매우 똑똑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는 것을 거부하게끔 하는 것은 지능이나 지능의 부족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믿는 것을 거부하게끔 하는 것은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창조자가 당신의 일에만 신경쓰고 자기들을 그저 내버려두는 한, 창조자의 개념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은 피조물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창조자의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과 싸우기 보다는, 하나님의 개념을 전적으로 거부합니다. 시편 14:1은 이런 유형의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고 부릅니다.
시편 14:1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보통 사악한 삶으로 이끄는 욕망에 기반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몇몇 무신론자들은 이 것이 사실임을 인정했습니다. 작가 알두스 헉슬리와 같은 사람들은 도덕적 속박을 피하려는 욕망이 불신에 대한 동기였다고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나 뿐 아니라 의심의 여지없이 대부분의 내 친구들에게도 무의미철학은 근본적으로 어떤 도덕 체계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도덕이 성적자유를 방해했기 때문에 거부했습니다. 도덕체계를 지지하는 자들은 도덕체계가 세상의 의미, 즉 그들의 고수하는 기독교적 의미를 구현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틀렸음을 입증하고 우리의 에로틱한 반란을 정당화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었습니다. 즉, 무엇이건 간에 세상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알두스 헉슬리, 목적과 수단)
신적인 존재를 믿는 것은 그 존재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각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양심의 가책으로 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세상의 감독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판의 날은 없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양심의 도덕적 가책은 보다 쉽게 무시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는 성경구절의 요점은 하나님을 부인하도록 하는 것은 무례하고 죄 많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무신론자의 하나님께 대한 부인은 자신의 양심과 자기가 살고 있는 우주를 포함하여 반대되는 많은 증거 앞에 부딪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 부족은 무신론자들이 하나님 믿는 것을 부인하는 진정한 이유가 아닙니다. 그들의 거부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도덕적 통제 없이 살고 싶은 욕망에 의한 것이고, 또한 그러한 통제를 위반함으로서 오는 죄책감에서 도망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18~20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적용) 끊지 못하는 죄에 대해 내가 주로 하는 핑계는 무엇입니까?(20절). 나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의 요구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계십니까? 부정적으로 반응하십니까?
2.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특징(21~32절)
오늘 본문 21~31절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특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그 생각이 허망해지고 마음이 어두워진다(21).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가운데 태어난 모든 인간은 살아갈수록 생각이 허망해지고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여기서 사용된 '허망한'이라는 단어의 원어는 κενός(케노스)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고,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마음은 텅 비고, 공허하며, 무의미합니다.
케노스(κενός)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총 100번 이상 사용됩니다. 그 중에서 로마서에는 6번 사용되었는데, 로마서에서는 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짓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키는 데 사용됩니다. 즉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감사해야 하는데,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21절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죄는 사람을 하나님과 분리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잃게 합니다. 따라서 죄를 지으면 사람의 마음은 어두워지고, 미련해져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게 됩니다.
2)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썩어질 피조물을 우상삼아 섬깁니다(22~27절). 죄로 인해 생각이 허망해지고 마음이 어두워진 결과는 썩어지지 않을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게 되고, 그 결과, 마음의 정욕이 육체의 방탕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그 마음의 정욕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십니다. 성적 타락 중에서도 동성애야 말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죄입니다(24~27절). 성경에서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동성애의 해악을 언급하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레위기 18:22 "너는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다." 레위기 20:13 "누구든지 남자와 동침하는 자는 그와 함께 죽을지니라." 로마서 1:26-27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들의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운 짓을 하도록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몸을 서로 바꾸어 버렸느니라. 이는 창조주 하나님의 본래의 도를 버리고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우상들을 섬김으로써 자기 몸을 서로 더럽힌 까닭이니라." 고린도전서 6:9-10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니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강포를 끼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갈라디아서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움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음과 분쟁과 시비와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고한 것 같이 내가 이제도 다시 경고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한 가족을 이루도록 의도하셨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동성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를 거역하는 죄입니다. 동성애를 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과 분리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또한, 동성애는 사회의 혼란과 타락을 가져옵니다. 동성애는 정상적인 가족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사회의 질서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동성애는 개인의 불행과 고통을 가져옵니다. 동성애는 성적 욕구의 만족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3)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28~32). 하나님의 영광을 우상과 바꾼 사람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28절). 이들은 21가지의 죄를 짓게 되는 데, 하나님은 이 죄를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십니다(32절). 그리고 그 어떤 사람도 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고, 진리를 싫어하는 자들, 하나님의 영광을 우상과 바꾼 사람들이 짓는 21가지의 죄는 무엇입니까? 이들 안에는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사기, 악독이 가득합니다. 또한 그들은 수군수군하고 남을 비방합니다. 또한 하나님(교회, 성도, 기독교)을 미워하고, 능욕하며, 교만하며, 자랑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악을 도모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우매하고 배약하고, 무정하며 무자비한 자입니다. 이런 죄들은 모두 하나님이 사형에 해당한다고 정하셨기 때문에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적용) 부끄러운 욕심이나 음란으로 나의 몸을 욕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더듬이의 회개 권영미 님의 큐티인 간증]
저는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었습니다. 내 힘으로 이것을 극복하려고 많은 노력을 해보았지만, 긴장할수록 그 증상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어릴 적 함께 놀던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우상 삼아 마음의 정욕대로 살 뻔 한 저를 하나님이 언어장애와 왕따 사건으로 학생의 때를 성실히 살도록 인도해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23~24절). 그러다 저는 대학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를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다가 그만 혼전순결을 지키지 못했습니다(25절). 그리고 혼전임신이 되어 하던 일도 그만두고 결혼했습니다.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는다고 하셨는데, 아들은 예민하고 잔병이 많아 밤낮으로 울어댔습니다(27절). 또 몇 년 후에 둘째를 낳았는데, 둘째는 아토피가 심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아이가 다단계 제품을 먹으며 좋아졌습니다. 그러자 저는 내게 맞는 일을 찾았다며 다단계 일을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이 여러 방법으로 막아주셨지만, 제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니 하나님은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28절). 이후 6년간 그 일을 하면서 제 안의 스물 한 가지의 죄악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29~31절). 그 뒤로는 남편의 외도와 두 아들의 방황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광풍 같은 사건 속에서 저의 죄가 사형에 해당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눈물로 회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32절). 그렇게 회개하며 공동체에 속해 있었더니 남편이 공동체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7년 동안 방 안에만 있던 큰 아들도 지금은 남편의 운전기사로 일하며 예배와 소그룹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형수로서 죽을 수 밖에 없던 저를 구원해주시고 저희 가정을 회복시켜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적용하기 1) 청년이 된 두 아들에게 저의 죄를 고백함으로 혼전순결의 중요성을 가르치겠습니다. 2) 교회 소그룹에서 온, 오프라인으로 날마다 저의 스물한가지의 죄악을 나누겠습니다.
3. 죄를 멸하러 오신 예수님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간이신 분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죄를 멸하시러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귀는 죄의 근원이며,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죄를 없애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멸하신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죄인인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2) 십자가의 죽음: 죄 없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이며,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3) 부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죄와 저주와 사망의 승리을 의미하며 구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4) 성령의 임재: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성도들 안에 거하시며, 성도들을 죄에서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이제 성탄절이 한 주 정도 남았는데,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멸하시러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구체적으로, 성탄절의 예수님이 죄를 멸하러 오셨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1) 죄의 속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속죄하시는 것입니다. 죄의 속죄는 죄의 형벌을 면제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 죄의 용서: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죄의 용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3) 죄의 정화: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의 임재는 우리를 죄에서 정화, 즉 깨끗케 하시는 것입니다. 죄의 정화는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고, 새롭게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적용) 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매일 말씀으로 내 죄를 깨달아 하나님과 화목된 자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룩함을 이루어가고 있습니까?
결 론
오늘 읽으신 본문, 로마서 1:18~32절은 인간의 죄로 인한 타락함을 설명하는 본문입니다. 바울은 이 본문에서 인간의 죄가 세 가지 측면에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첫째, 인간의 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둘째, 인간의 죄는 타락한 도덕성으로 나타납니다. 셋째, 인간의 죄는 타락한 삶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성탄의 예수님이 죄를 멸하러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며 성령을 주심으로 우리를 죄와 저주와 사망에서 구해주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제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더 이상 거역하지 말고, 창조주이자, 주권자로 인정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구원받은 우리는 타락한 본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본성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또한 구원받은 우리는 나 스스로의 힘으로 죄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늘 주인으로 믿고 섬김으로 죄에서 자유를 얻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탄절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멸하러 오셨다는 하늘의 기쁜 소식을 듣고 전하는 날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이 기쁜 소식을 듣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할 뿐 아니라 우리도 성탄의 주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며 진실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죄에서 자유를 얻고, 구원받은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