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마취제가 없던 시절의 외과수술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을 것이다. 환자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을 무릅쓰고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사나, 환자가 요동을 치지 않도록 곁에서 억세게 붙잡는 역할을 하던 힘 좋은 남자 간호사들에게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대마나 아편과 같은 자연산 마약이 고통을 덜기 위하여 쓰이기는 하였고, 알코올 함량이 높은 독한 술을 마셔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드는 방법도 있기는 하였으나 그다지 우수한 마취제 구실을 하지는 못하였다.
수술 도중 환자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쇼크로 죽는 경우도 많았고, 수술을 하기도 전에 “저런 고통을 당할 바에야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게 낫겠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마취제다운 마취제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도 개발되지 않았다.
웃음가스 아산화질소의 효능을 발견한 험프리 데이비 ⓒ Free photo
영국의 과학자 험프리 데이비(Humphrey Davy; 1778-1829)는 여러 기체의 특성에 관해 연구하던 중, 웃음가스로 알려진 아산화질소(N2O)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스스로 이 기체를 마셔본 결과, 기분이 좋아지고 술에 취한 듯 몽롱해지고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학회에 발표하였다.
다른 학자가 어느 젊은 부인에게 그것을 마셔 보도록 시험한 결과, 품위 있고 점잖기만 하던 부인이 갑자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 밖으로 뛰쳐나가 길가를 뛰어다니는 등, 평소와는 너무 다른 행동을 서슴지 않아서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데이비가 이 기체를 수술의 마취제로 이용하려 했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그 후 웃음가스는 의료용이 아니라 오락용으로 자주 이용되었다. 마치 가면무도회를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파티에 손님들을 모아 놓고 장난삼아서 웃음가스를 함께 마시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다만 다들 기분이 유쾌해지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장난이 지나쳐서 불상사가 생기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아산화질소를 발치용 마취제로 시도했던 웰즈 ⓒ Free photo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던 웰즈(Horace Wells; 1815-1848)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웃음가스 아산화질소를 마시는 장난을 하였는데, 한 청년이 들떠서 소란을 피우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에 부상을 입게 되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상당한 피를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통증을 느끼지 못하다가, 웃음가스의 효과가 다한 후에야 비로소 통증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것을 본 웰즈는 치과의사답게 발치(拔齒)시에 이 기체를 이용하면 통증 없이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충치를 통증 없이 뽑아 웰즈는 한 종합병원에서 이 실험을 공개적으로 실시하여 어느 충치환자의 이빨을 뽑았는데, 웃음가스의 양이 적었는지 아니면 너무 서두른 탓에 마취효과가 돌기 전에 발치한 때문이었는지 그 환자는 고통을 호소하며 아우성쳤다. 이로 이하여 웰즈는 도리어 사기꾼으로 몰리고 치과 일마저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실험을 지켜 본 다른 치과의사 모튼(William T. G. Morton; 1819-1868)은 마취제를 이용하여 발치하는 연구를 계속하기로 하였고, 친구의 조언을 듣고 아산화질소 대신 에테르를 마취제로 이용하기로 하였다. 1846년 9월30일, 모튼은 에테르를 이용하여 환자에게 통증을 느끼게 하지 않고 발치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목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에도 에테르로 마취하는 실험을 하여 공개적으로 검증을 받았다. 그 후 에테르는 우수한 마취제로 소문이 나서, 큰 외과수술을 할 경우에도 널리 이용되었다.
에테르를 수술용 마취제로 공개 검증하는 모튼(가운데 5번) ⓒ Free photo
에테르를 이용한 수술법은 영국에도 전파되었는데, 외과 의사였던 심프슨(James Young Simpson; 1811-1870)은 에테르를 이용하여 여성들이 고통 없이 분만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에테르에는 적지 않은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부작용이 덜하면서도 우수한 효과를 지닌 다른 마취용 물질을 찾게 되었는데, 여러 물질들을 시험해 본 결과, 클로로포름이 좋은 마취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심프슨은 왕립병원에서 이를 시험하여 클로로포름으로 마취하는 외과수술을 성공리에 마쳤고, 이것을 발전시켜서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무통분만법을 제시하였다. 심프슨의 무통분만법은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그는 지지 않고 마취제 사용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그 보급에 힘썼다.
나중에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도 분만 시에 클로로포름을 쓰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클로로포름에도 부작용과 위험성 등이 발견되면서 오늘날에는 마취제로는 잘 쓰이지 않고, 살충제나 곰팡이 제거제, 공업용 용제 등 다른 용도로 더 많이 쓰인다.
처음에는 파티의 흥을 돋우어 주는 엉뚱한 장난으로 이용하였던 마취작용 물질들이 수술 시에 통증을 없애 주는 귀중한 물품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동안 성능 좋은 마취제들이 많이 개발되었는데, 전신마취용과 국소마취용이 있고 투여방법도 흡입, 정맥주사 등으로 구분되며 작용양태와 적용방법에 따른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마취제의 이용과 더불어 의학기술 역시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고, 마취제는 인류의 은인으로서 오늘날에도 크고 작은 수술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클로로포름을 마취제로 사용하는 무통분만법을 제시한 심프슨 ⓒ Free 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