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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8월 8일 금요일
[(백)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도미니코 성인은 1170년 무렵 에스파냐 칼레루에가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덕을 쌓는 데 몰두하던 그는 사제가 되어 하느님 말씀을 열정적으로 설교하여 사람들을 회개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1206년 설교와 종교 교육을 주로 담당하는 설교자회(도미니코 수도회)를 세우고, 청빈한 삶과 설교로 복음의 진리를 철저히 탐구하도록 독려하였다. 성인은 1221년에 선종하였으며, 1234년 그레고리오 9세 교황께서 시성하셨다.
말씀의 초대
모세는 백성에게, 주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키면 그분께서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 후손들을 선택하셨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4,32-4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32 “이제, 하느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너희가 태어나기 전의 날들에게 물어보아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물어보아라.
과연 이처럼 큰일이 일어난 적이 있느냐?
이와 같은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33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도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34 아니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가 보는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하신 것처럼,
온갖 시험과 표징과 기적, 전쟁과 강한 손과 뻗은 팔과 큰 공포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 가운데에서 데려오려고 애쓴 신이 있느냐?
35 그것을 너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주님께서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36 그분께서는 너희를 깨우치시려고
하늘로부터 당신의 소리를 너희에게 들려주셨다.
또 땅 위에서는 당신의 큰 불을 너희에게 보여 주시고,
너희가 불 가운데에서 울려 나오는 그분의 말씀을 듣게 해 주셨다.
37 그분께서는 너희 조상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 후손들을 선택하셨다.
그분께서는 몸소 당신의 큰 힘으로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38 그리하여 너희보다 크고 강한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내쫓으시고,
너희를 이 땅으로 데려오셔서,
오늘 이처럼 이 땅을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신 것이다.
39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40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4-28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코린 2,1-10ㄱ)와 복음(루카 9,57-62)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대단한 영광처럼 보일지라도, 적어도 그에게만은 피하고 싶은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모든 이가 인정하는 영광의 십자가라면 내심 뿌듯한 마음으로 기꺼이 지겠지만, 속내 모르는 이들의 질투 어린 시선을 받으면서까지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는 말 못 할 고통을 낳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주님께 여쭙게 됩니다, 이것이 ‘제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인지. 그러고는 주님께 용기를 청합니다, 이 길을 기쁘게 걸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십자가가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고.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십자가를 팽개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십자가는 무엇보다 나와 하느님의 관계입니다. 다른 이를 의식하는 한 십자가는 빛을 잃고 맙니다. 다른 이가 인정하는 십자가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한낱 자신만의 영광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십자가를 이해하고, 주님께서 나를 지켜보시듯 말없이 나의 등을 도닥이며 격려해 주는 소중한 벗들을 떠올립니다. 벗들의 십자가를 보며 그들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그들의 아름다운 결단을 나 또한 소중히 여기고 보듬으려고 노력합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듯이. 저마다 짊어진 십자가는 달라도 서로 이해할 때,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내가 나의 십자가로 힘들어하는 바로 그 순간이 어쩌면 나의 십자가와 벗들의 십자가와 주님의 십자가가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시간일 것입니다.(김상우 바오로 신부)
그릇된 신심과 이단 앞에 강력한 철퇴 같았던 도미니코 사제!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최근 시성된 성인 성녀들 가운데 초스피드로 그 과정을 거친 분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입니다. 2005년 선종하셨는데, 불과 9년 후인 2014년에 성인품이 올랐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을 꼽자면 마더 데레사 수녀님입니다. 그분은 1997년 돌아가셨고, 2016년 시성되셨으니, 19년만입니다.
예상컨대 최근 세상을 떠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초단기간, 7-8년 안에 시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살아 생전 이미 탁월한 성성을 드러내셨으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도미니코 사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분 성덕의 탁월성이 얼마나 출중했었던지, 세상을 떠난 후, 불과 13년만에 시성되었습니다.
저희 수도회 창립자 돈보스코의 시복시성 과정을 통해서 잘 알게 되었습니다. 성인이 되는 과정은 정말이지 길고도 지루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성인 후보자가 지닌 성덕의 보편성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시성시복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야 합니다. 지역이나 단체에서 시성 청원 작업을 시작하고, 자료를 수집해서, 교황청 시복시성청으로 보냅니다.
주도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겨우 하느님의 종이라는 칭호를 얻습니다. 그 후, 가경자, 즉 보편적 존경이 가능한 인물로 올라갑니다. 이어서 복자, 성인의 단계를 밟습니다.
어떤 후보자는 가경자 상태에서 몇십 년 몇백 년을 머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복자까지 겨우겨우 올라갔는데, 성인품이 계속 미뤄지기도 합니다. 몇십년 몇백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미니코 사제가 13년만에 초스피드로 성인품에 오르셨다는 것은, 이미 살아계실 때, 성인으로서의 확고한 모습을 세상 앞에 보여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상에 머물 때부터 그분은 이미 ‘살아있는 성인’이라는 칭호를 들었습니다. 과정은 큰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도미니코 사제가 지상에 머물던 순간, 우리 가톨릭 교회는 다양한 위기와 도전 앞에 서 있었습니다. 교도권의 추락, 이단의 출현, 신심의 약화...이런 어려운 시기 하느님께서는 도미니코 사제라는 선물을 교회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교회와 양떼가 겪고 있는 고통과 환란을 결코 나 몰라라하시지 않습니다. 눈여겨보시고, 예의주시하시고, 안타까워하시다가, 해결사랄까, 위로자를 보내주시는데, 바로 도미니코 사제를 비롯한 수많은 성인성녀들입니다. 우리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구체적 사랑의 표현이 성인인 것입니다.
알비파를 비롯한 여러 이단들이 창궐하던 시대, 도미니코 사제는 끊임없이 하느님께 여쭈었습니다. 이토록 어려운 시대,하느님께 위로와 기쁨을 드릴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 고뇌를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자신의 길을 찾았습니다. 설교 전문 수도회 설립!
도미니코 사제를 중심으로 양질의 교육으로 잘 준비된 설교수도자들은 이단의 척결과 회개를 위한 주님의 군사로 빛나는 활약을 시작했습니다.
도미니코 사제와 수도자들 당대 교우들이 그릇된 신심이나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잘 준비된 명쾌한 설교를 통해 흔들리던 교회의 중심을 굳건히 서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제발 “나는 죄인입니다” 좀 그만했으면….
전삼용 요셉 신부님
+찬미 예수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신앙의 가장 중심에 있는, 그러나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 하나를 우리 앞에 놓아두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잘 안 죽는 것 같습니다. 고해성사 들어와서, “저는 큰 ~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계속 같은 죄를 반복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죄인이라고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죽어야만 합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이지만, 깨닫기까지는 정말 힘이 듭니다.
‘농구 황제’라 불리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마이클 조던. 그의 개인기는 압도적이었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듯한 플레이로 수많은 득점을 올렸고, 모두가 그를 ‘코트의 왕’이라 불렀습니다. 그의 뜻은 명확했습니다. ‘내 능력으로 경기를 지배하고, 내 손으로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 그는 늘 자신이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팀 시카고 불스는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습니다. 왕은 있었지만, 왕조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필 잭슨이라는 감독이 부임하며 ‘트라이앵글 오펜스’라는 팀 전술을 도입합니다. 이 전술의 핵심은 공을 독점하지 않고, 모든 선수가 함께 움직이며 기회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조던은 격렬하게 반발했습니다. 팀의 시스템을 위해 자신의 개인기를 죽이라는 것은, 왕에게 왕관을 내려놓으라는 말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패배 속에서, 그는 마침내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내 방식대로 계속 왕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나를 죽여 팀을 우승시킬 것인가.’ 오랜 갈등 끝에, 그는 마침내 자신의 고집을 꺾습니다. 코트의 왕이었던 그가 기꺼이 자신을 시스템의 일부로 내어주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내가 최고’라는 자기 뜻을 죽이고, ‘팀의 승리’라는 더 높은 뜻에 순명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시카고 불스는 한두 번이 아닌, 무려 여섯 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왕조를 건설했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고독한 왕’을 넘어, ‘위대한 팀의 리더’라는 더 큰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죽어야 그분이 삽니다. 그러나 나를 죽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면 쉽습니다. 십자가는 정체성입니다. “저는 죽을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시는 분들은 어쩌면 아직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을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 자신이 죄인이라고 믿으면 영원히 죄인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고 믿게 하시기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런던의 거리에서 마약에 중독된 채 살아가는 노숙자, 제임스 보웬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그를 투명인간 취급했고, 그 자신도 스스로를 ‘쓸모없는 중독자’, ‘거리의 쓰레기’라고 여겼습니다. 그의 삶은 그저 오늘의 마약을 구할 돈을 구걸하고, 내일 아침 눈을 뜰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것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랬던 어느 날 밤, 그는 자신의 허름한 거처 복도에서 상처 입은 채 웅크리고 있는 길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그 순간, 그의 안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였습니다. 그는 며칠을 굶어야 할지도 모르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고양이의 치료비를 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에게 ‘밥(Bob)’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죠. 바로 그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쓸모없는 노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밥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정체성이 바뀐 것입니다.
‘보호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습니다. 그는 이제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밥을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그는 밥을 어깨에 메고 거리로 나가 버스킹을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마약 중독자’를 본 것이 아니라, ‘어깨에 고양이를 멘 특별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자, 그 자신도 스스로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마약을 끊기로 결심합니다. 지옥 같은 금단 증세 속에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그의 곁을 조용히 지키는 밥을 보며 그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밥의 보호자다. 나는 무너질 수 없다.’
무엇이 제임스를 구원했습니까? 더 강력한 의지였을까요? 더 좋은 치료 프로그램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를 구원한 것은 ‘나는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새로운 정체성이었습니다. ‘노숙자’라는 낡은 정체성을 죽이고, ‘보호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믿었을 때, 그의 삶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로마서 6장 6절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이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소멸할 것이다’가 아니라, ‘소멸하였다’입니다.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가 아니라, ‘하지 않게 되었다’입니다. 우리의 옛 자아, 죄에 종노릇하던 나는 2천 년 전 골고타 언덕에서 예수님과 함께 이미 사형선고를 받고 죽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세례의 신비입니다. 세례는 죄를 씻는 세탁기가 아니라, 옛 자아를 장사 지내는 장례식입니다. 그리고 그 무덤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걷기 위해 걷는 아기는 없습니다. 아기는 그저 이미 걷고 있는 엄마, 아빠를 봅니다. 그리고 그 작은 머릿속으로, 그 온 존재로 믿습니다. ‘아, 걷는 것이 정상이구나. 나도 저렇게 걷는 존재구나.’ 그 믿음이 아기의 첫걸음을 떼게 합니다. 넘어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걷는 존재가 되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영적 정체성은 여러분이 노력해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 받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넘어지는 나에게 집중하지 마십시오.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이미 온전하게 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래서 오늘, 여러분께 아주 작지만 강력한 영적 실천 하나를 제안합니다. 마음속에서 ‘아, 나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죄인이구나’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그 생각을 알아차리고 잠시 멈추십시오. 그리고 그 자책의 언어 대신, 믿음의 언어로 이렇게 선포해 보십시오.
“주님, 저의 옛사람은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습니다. 이제 제 안에 사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신은 죄가 없으십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며칠 전 교구 사제 모임이 있어 코네티컷에 다녀왔습니다. 그곳 신부님 사제관에서 참 인상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신부님께서 화초를 정성껏 키우고 계셨는데, 알고 보니 교우들이 키우기 어렵다고 맡긴 화초들이라고 합니다. 신부님은 그 화초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어떤 건 햇볕이 더 필요하고 어떤 건 그늘을 좋아하는지, 물은 얼마나 줘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제관 입구에는 하얗고 노란 야생화가 피어 있었습니다. 그 꽃을 보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공동체도 이렇게 돌보는 거구나.” 화초를 돌보듯 교우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살피며 함께하려는 신부님의 마음이 본당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같은 본당이라도 사목자의 태도에 따라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신부님의 그 모습에서 저는 ‘착한 목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 독서 말씀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온갖 시험과 기적, 전쟁과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 가운데서 데려오셨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하실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을 지켜라.”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너희와 자손이 잘살고, 오래도록 그 땅에 머무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은 단순합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라.” 그리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여라.” 이 말씀 안에 우리의 삶의 방향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이 말씀은 쉽지 않습니다. 누구도 십자가를 지고 싶어 하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길에서 세 번이나 넘어지셨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고, 그 길 끝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목숨’은 단순한 생명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다시 말해 차원이 다른 삶을 말씀하십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듯,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생명을 약속하십니다. 저는 예전 본당 마당의 대추나무가 생각났습니다. 그 나무는 작은 열매, 부실한 열매는 스스로 떨어뜨렸습니다. 그래야만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앞에 좋은 열매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불필요한 욕심, 자존심, 미움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나무가 뿌리가 없으면 가뭄에도, 바람에도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집이 기둥 없이 서 있을 수 없듯, 공동체에도 뿌리와 기둥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분들이 바로 봉사자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저는 늘 생각합니다. 제가 드러나는 ‘꽃’이라면, 봉사자분들은 땅속에서 조용히 양분을 찾아주는 ‘뿌리’와 같습니다. 그 뿌리가 튼튼해야 꽃도 건강하게 피울 수 있습니다. 더운 여름 날씨에 시원한 소나기처럼, 봉사자 여러분이 계시기에 공동체가 숨 쉴 수 있습니다. 오늘 성 도미니코 사제를 기리는 날입니다. 도미니코 성인은 참된 가르침과 사랑으로 교회를 이끌었던 분입니다. 그분의 삶처럼, 우리도 진리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서로를 돌보며, 함께 십자가를 지는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화초를 사랑으로 키우던 신부님처럼, 대추나무처럼 불필요한 것을 버릴 줄 아는 지혜로, 나무의 뿌리처럼 공동체를 지탱하는 믿음으로 우리 모두,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성인
성 도미니코(Dominic)
신분 : 신부, 설립자, 설교가
활동연도 : 1170-1221년
같은이름 : 도미니꼬, 도미니꾸스, 도미니쿠스, 도미니크, 도미닉, 도밍고
펠릭스 데 구즈만(Felix de Guzman)과 아자(Aza)의 복녀 요안나(Joanna)의 아들인 성 도미니코(Dominicus)는 에스파냐 북부 부르고스(Burgos) 지방의 칼라루에가(Calaruega)에서 태어났고, 1184-1194년 사이에는 팔렌시아의 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아마도 학업을 계속하는 중에 그곳에서 서품된 듯하다. 그는 1199년에 오스마(Osma)에서 주교좌성당 참사회원으로 임명되었다.
또 그는 1203년에 오스마의 복자 디에고 데 아제베도(Diego de Azevedo, 2월 6일) 주교를 수행하여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Languedoc)로 가서 알비파 이단을 상대로 설교하였고, 시토회의 개혁을 도왔다. 1206년에 그는 알비파(Albigenses) 지역인 프루이유(Prouille)에서 여자 수도회를 설립하였고, 수많은 수도자들에게 강론하였다.
1208년 교황대사 베드로 카스텔란이 알비파에 의해 피살되었을 때,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는 그들을 상대할 십자군을 조직하고 그 대장으로 몽포르의 시몬 4세(Simon IV de Montfort) 백작을 임명하였다. 이때의 전투는 7년간이나 계속되었다. 성 도미니코는 이 군대를 따라다니며 이단자들에게 설교하였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1214년 시몬 4세가 그에게 카세네일의 성을 주었는데, 이때 그는 여섯 명의 동료들과 함께 알비파의 회개를 위하여 활동할 수도회를 세웠다. 그리고 이 수도회는 그 다음 해에 툴루즈(Toulouse)의 주교로부터 교회법적으로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1215년 제4차 라테라노(Laterano) 공의회에서 자신의 설교자회가 승인받는 데는 실패했지만, 다음 해에 교황 호노리우스 3세(Honorius III)로부터 승인을 받고 도미니코 수도회 일명 설교자회가 설립되었다.
그 후 성 도미니코는 수도회의 조직을 위해 여생을 보내면서 이탈리아, 에스파냐 그리고 프랑스 등지를 다니며 순회 설교를 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많은 회원이 새로 입회하면서 수도회도 정착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새로운 수도회는 지성적인 생활과 대중들의 요구를 잘 조화시켜 회개운동을 꾸준히 전개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220년에 볼로냐(Bologna)에서 수도회의 첫 번째 총회를 소집하였고, 그 이듬해 8월 6일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헝가리 순회 선교에서 얻은 병으로 인해 일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그는 1234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천문학자의 수호성인이다.
성 알트만 (Altman)
활동년도 : 1020-1091년
신분 : 주교
지역 : 파사우(Passau)
같은 이름 : 앨트먼, 올트먼
독일 베스트팔렌(Westfalen) 파더보른(Paderborn)에서 태어난 성 알트만은 파리(Paris)에서 수학한 후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파더보른 주교좌 학교의 학장이 되었다. 그 후에는 아헨(Aachen)의 의회 의장 그리고 하인리히 3세의 전속 사제가 되었다. 1064년 성지를 순례하던 그는 팔레스타인의 사라센인들에 의하여 수많은 다른 동료 순례자들과 함께 포로가 되었다가, 우정 깊게 사귀던 어떤 족장의 중재로 석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향하였다. 그 당시의 순례자들은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순례 길에 나섰다. 그 태반이 병이나 어려움 때문에 숨지거나 혹은 사라센인들의 공격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던 때였다.
그는 1065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파사우의 주교로 임명된 후 교구를 개혁하고 교육을 개선하며 가난한 이를 구제하는 사업을 착수하였다. 또 그는 괴트바이그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을 세웠으며, 다른 수많은 수도원을 재건하였다. 성직매매와 성직자 결혼을 금하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의 쇄신 칙서를 강력히 시행하고자 했을 때 그는 대부분의 성직자들로부터 큰 반대를 받았고,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다.
그 다음 해 평신도 성직수여를 금하는 그레고리우스의 칙서에 대한 그의 지지는 자기 적들의 명단에 하인리히 왕을 추가하는 결과가 되어 주교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는 로마(Roma)로 가서 교황으로부터 독일의 교황청 사절이 되었으나, 1081년 로마로 돌아왔을 때에는 그 자신이 재차 해임되어 있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괴트바이그 수도원에서 여생을 지냈다. 교황 레오 13세가 그의 공경을 확인하였다.
성 치리아코 (Cyriacus)
활동년도 : +303년
신분 : 부제, 순교자
지역 : 로마(Roma)
같은 이름 : 치리아꼬, 치리아꾸스, 치리아쿠스, 키리아코, 키리아쿠스
이탈리아 로마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 키리아쿠스(또는 치리아코)는 어른이 되어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부제가 된 그는 로마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욕실 건립에 참여한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돌보는데 힘썼다. 전설에 의하면 성 키리아쿠스는 마귀에 들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딸을 치유해주었는데,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인 성녀 세레나(Serena, 8월 16일)를 따라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었다. 또한 그는 페르시아(Persia)의 사푸르 왕의 딸도 마귀로부터 구해주었고 왕실 가족들의 개종을 이끌었다고 한다.
결국 성 키리아쿠스는 체포되어 성 라르구스(Largus, 8월 8일), 성 스마락두스(Smaragdus, 8월 8일)와 다른 12명의 동료들과 함께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박해 동안에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로마의 살라리아노(Salariano) 가도에서 사람의 피부를 벗겨내는 고문을 받고 참수된 그는 그 근방에 묻혔다가 후에 라타(Lata) 가도에 있는 성녀 마리아(Maria)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그리고 다시 프랑스 알자스(Alsace)에 있는 성 키리아쿠스 수도원으로 옮겨 모셔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