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그래도] 천국의 본질은 하나님과 완전히 연합하는 관계의 완성
<24> 천국과 지옥이 믿어지지 않을 때
이명희2026. 6. 17. 03:09
게티이미지뱅크
“지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 고통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지옥을 이렇게 정의한다. 펄펄 끓는 고통스러운 불구덩이에 빗대 사랑의 결핍과 단절을 겪는 심리적 상태를 표현한다.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내가 천국을 믿는 이유는 내 안에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세상의 어떤 즐거움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내 안에 있다면 그것은 내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위해 지어졌다는 유일한 증거”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천국과 지옥을 ‘상과 벌’의 장소 개념에서 한 단계 승화시켜 인간 심리 상태와 연결지었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이븐 알렉산더는 2008년 희귀 박테리아성 뇌수막염에 걸려 7일간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다시 살아난 뒤 ‘나는 천국을 보았다’를 썼다. 우주의 근원이자 창조주인 하나님과의 만남 등 뇌과학자가 경험한 천국에 대한 생생한 기록은 당시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다.
임사체험을 한 이들이 증언하는 천국은 눈부시고 포근히 감싸는 따뜻한 빛과 평온함, 두려움과 고통이 사라진 완전한 평화가 깃들어 있는 모습이다.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색채와 천상의 화음이 가득한 곳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만난다. 고통도, 슬픔도 없는 그곳에서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된다. 심판 날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은 불구덩이 속에서 울며 고통을 당한다. 단테의 ‘신곡’이나 화가들의 작품 속에 그려진 천국과 지옥의 모습이다.
심판의 하나님이 필요한 이유
천국은 영원한 삶을 의미한다.
‘천국을 침노하라’의 저자 토마스 왓슨은 “에라스무스 같은 사람들은 천국을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계시하는 복음의 가르침으로 해석한다”며 “그러나 나는 천국을 ‘영광’으로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천국을 얻기 위한 올바른 방법은 침노하는 것이라고 했다.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겹게 싸워야 획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왓슨은 “육신은 거룩한 행위를 방해한다. 육신은 사탄과 한패가 되어 자신의 유익을 추구한다. 우리의 내면에는 기도도 하지 않고, 믿으려고도 하지 않는 원수가 도사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강력한 죄의 충동을 일으키는 육신의 유혹을 끊어내는 자만이 영광스럽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 그리스도장로교회 담임목사를 지낸 스캇 솔즈 목사는 ‘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에서 “예수님은 천국과 사랑 같은 더 인기 있는 주제보다도 지옥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다. 영원한 고통, 영원한 유황불, 슬퍼하며 이를 가는 자들, 이런 무시무시한 이미지들이 모두 그분의 가르침에 포함돼 있었다. 그분은 믿음을 통한 은혜로 인한 값없는 구원의 제시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계속해서 경고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영원을 어떻게 보낼지가 결정될 것이다. 우리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좋은 곳으로 들어가거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무시무시한 곳으로 던져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심판의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강자가 약자를 먹어치워 오직 강자만 살아남는 다윈의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만약 분노하는 하나님이 없다면, 자녀들을 보호하고 모든 악당과 가해자들을 이 세상에서 쓸어버릴 하나님이 없다면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야만적 세상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천국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결합
신학자들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깨어진 관계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회복되고 온 우주가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는 궁극적인 완성에 방점을 둔다. 신학에서 천국은 죽어서만 경험하는 미래의 영역이 아니다. 신학에서의 천국은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관계의 완성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천국을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는 것으로 정의했다. 장소보다 하나님과 완전히 연합하는 기쁨 자체가 본질이라는 것이다.
CS 루이스는 천국을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갈망했던 모든 것의 실체”라고 봤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자연 음악 예술을 보며 느끼는 애틋한 그리움과 아름다움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진짜 고향인 ‘천국’을 가리키는 희미한 그림자이자 신호등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란 판타지 소설을 통해 끝없는 자기 집착이야말로 지옥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집착을 하고 있음에도 자기 안에 완전히 매몰돼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될 수 없는 것은 ‘육신’이라는 가시적 존재 틀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남들과 부딪히며 살 수밖에 없지만 육신을 벗게 될 때 자기 집착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극단으로 치닫게 될 것이고 그것이 곧 지옥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한다. 선과 악에 있어 혼합이나 중간, 타협은 없다는 사실도 주지시킨다. “악은 무위로 돌릴 수는 있어도 ‘발전시켜’ 선으로 만들 수는 없다. 지옥을 붙들고 있는 한(지상을 붙들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천국은 볼 수 없다. 천국을 받아들이려면 지옥이 남긴 아주 작고 소중한 기념품까지 미련 없이 내버려야 함은 물론, 나는 천국에 간 사람이 자기가 포기한 것들을(오른 눈까지 뽑아 버렸다 해도) 아주 잃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되리라고 굳게 믿는다.”
루이스의 정신적 지주이자 무신론자인 그를 회심하게 만든 조지 맥도널드 목사는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서 주인공의 안내자로 등장한다. 그는 “비상구는 없다. 아무리 조금이라도 지옥과 공존하는 천국이란 없다. 우리의 가슴에든 주머니에든 악마의 것을 넣어둘 생각을 해선 안 된다. 사탄은 털끝 하나까지 깨끗이 내몰아야 한다”고 했다. 루이스는 스스로 멸망을 원하는 사람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포기하지 못해 천국이 눈앞에 제시됐어도 거절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옥의 문은 밖에서 걸어 잠근 게 아니라 안으로부터 걸어 잠그는 것이라고 했다.
톰 라이트도 천국을 죽어서 가는 ‘저 멀리 있는 곳’만이 아니라, 장차 이 땅에 임할 ‘만물의 회복’과 부활의 의미로 강조한다.
지옥의 실재에 관한 변증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을 지옥에 보낼 수 있는가. 죽음 이후에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지고 결국 모두가 구원받게 되지 않을까.
프랜시스 챈 목사는 이러한 주장들에 반박하기 위해 2011년 ‘지옥은 없다?(Erasing Hell)’를 출간했다. 그는 “나 역시 지옥이 없다고 믿고 싶었다”고 고백하며 성경이 증언하는 지옥의 실재를 변증해 나간다. 챈 목사는 “지옥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감정을 지우고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복음서에서 지옥에 대해 가장 많이 말씀하신 분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다. 만약 지옥이 실제가 아니라면 예수님은 사람들을 겁주기 위해 거짓말을 하신 셈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판단을 넘어서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지옥의 실재를 믿는다면 이 끔찍한 현실을 지워버리려 할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긴박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옥은 하나님이 벌을 주는 장소라기보다 인간이 끝까지 하나님을 거부했을 때 도달하는 ‘하나님이 부재한 상태’다. 하나님과 분리돼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한다는 전통적인 영원 형벌설과 더불어 존 스토트 같은 복음주의 대가들은 악인의 존재 자체가 소멸한다는 ‘멸절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성경 속 천국과 지옥
성경은 천국을 눈물, 사망, 애통, 아픈 것이 없는 곳(계 21:4)으로 묘사한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천국의 화려한 묘사들은 영적인 실체를 표현하기 위한 상징으로 해석된다. 황금 길과 보석 성벽은 천국의 물질적 부유함이 아니라 그곳의 거룩함과 가치가 이 세상의 가장 귀한 것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하다는 의미다. 성전이 없는 지상에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특정 장소가 필요했지만 천국은 도시 전체에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하고 하나님 자신이 성전이 되므로 성전이라는 구분이 무의미해진다. 밤이 없는 곳, 어두움과 두려움, 무지, 악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의 빛만 가득한 상태다.
지옥은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으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돼 고통받는 것을 상징한다. 영원한 불(마 18:8~9),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고 밤낮 쉼을 얻지 못하는 곳(계 14:10~11), 빛으로부터 차단돼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고립의 장소(마 8)로 묘사된다.
결국 천국과 지옥은 단순히 물질적인 공간을 넘어 하나님과의 완벽한 연합을 통해 빛과 안식, 충만 속에 살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돼 어두움과 고통 속에 남겨질 것인가를 보여주는 영적 실체다.
이명희 논설위원·종교전문기자 mheel@kmib.co.kr
기사원문 : https://v.daum.net/v/2026061703090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