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사
晉永嘉之亂,鮮卑慕容廆據昌黎大棘城,元帝授平州刺史。位宮玄孫乙弗利頻寇遼東,廆不能制。
서진에서 영가의 난(307-312)이 일어나자 선비 모용외가 창려의 대극성에 거했는데 원제가 평주자사를 수여했다. 위궁(산상왕)의 현손인 을불리(미천왕)가 자주 요동을 침략해도 모용괴가 능히 쫒아내지 못했다.
중국사가나 우리사학계나 극성을 요녕성 금주로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극성을 황해도 황주로 기록하기도하였다.
그런 주장을 하는분들이 현재 국정교과서에 앞장선 폴리페서 김정배 같은류 이다. 시거든 떫지나 말지...
棘城1.삼국(三國) 시대(時代) 만주(滿洲)의 금주에 있던 성. 선비족(鮮卑族)의 모용씨가 294년에 북부여(北夫餘)의 세력(勢力)을 몰아내고 도읍(都邑)을 정(定)함. (네이버) 2.옛날 황해도 황주(黃州)에 있던 성(城). (한국고전용어사전)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스스로 밝힌 서진 북위시대의 창려(대棘城)는 아래와 같다.


위-진시대의 창려.
하북성 보정시 북쪽 인근이었다.
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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