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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565 두려워하지 말라1(요한계시록1장1-8절)
성경말씀은 요한계시록 1장 1절에서 8절까지 봉독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하나님 말씀을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오늘 드디어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도신경에 보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 이렇게 시작해서 맨 마지막 대목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예수님 그리고 죄를 사하여 주심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이렇게 고백을 하는데, 우리 설교도 역시 천지 창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즉 최후의 심판 그리고 영원한 세계까지 이렇게 설교를 해 왔습니다.
오래 걸렸죠.
아마 이번에도 거의 4년 반 정도 걸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들으시면서 아따 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너무 빨리 나가는 것 아니냐? 이런 분도 있을 텐데, 저로서는 어쩌면 이 설교를 하고 다 끝내고 내가 죽느냐? 다 못 끝내고 죽느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건강이 안 좋아졌었거든요. 한 때..
제가 2008년도에 건강이 갑자기 상당히 안 좋아지니까 그런 생각이 들고 또 아시는 대로 제가 몹쓸 질병 당뇨를 앓고 있으니까 갑자기 안 좋아질려면 심장이 안 좋아지고 여러 가지 합병증이 와서 눈이 안 좋아질지도 모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여러분 듣기는 어떤지 몰라도 제 딴에는 어쩌면 마지막 설교가 될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렇게 늘 지내놓고 보면 아쉬움도 남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계시록을 한번에 다 하면 사실 제일 좋은데, 한번에 다 할려고 하면 아마 한 10시간 넘게 걸릴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하기는 어렵겠고 그냥 평소 우리 예배시간에 하는 만큼 정도 하고, 맨 마지막에 가서 마지막 시간에 끝나는 부분은 이게 지금 진도상 밀렸다 앞으로 당겼다 하면서 설명이 안 되어서 납득이 안 되면 좀 더 설명하다보면 마지막 시간은 길어질런지 짧아질런지 모르겠어요.
다른 책과는 달리 계시록은 설명이 안 되거나 이해되면 안 되니까 제 생각에는 우리 성도님들이 계시록을 전부 다 함께 빠지지 않고 다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사실은 제가 지난 수요일 저녁에 계시록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제가 수요일 저녁에 결석을 하고 부목사님이 수요예배를 인도하고 주일 낮예배때 가능하면 모든 성도님이 계실 때 계시록을 시작하는 게 좋겠다. 그렇게 생각해서 수요일 제가 결석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아프신가 하고 전화가 왔더라고..
그리고 이번 수요일에는 제가 성경강좌 집회 때문에 수요일 저녁에 못 오니까 오늘 주일 낮 주일 밤 그리고 다음 주일 낮 주일 밤 그렇게 해서 가능하면 주일 오후예배에도 여러분이 빠지지 않고 다 참여해서 계시록은 마지막 책인데 가능하면 다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 시간 계획을 짠 겁니다. 그렇게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서론을 이야기한다 할지라도 벅찬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이게 신구약 전체의 결론이 되기도 하고, 또 신약의 마지막 책이기도 합니다.
새 언약이란 신약이 새 언약이 완성될려고 하면 계시록이 빠지면 완성이 안 돼요.
그래서 계시록을 해야 신약 새 언약의 완결판이 되기 때문에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신구약 66권 중에 제일 중요한 책이다. 그렇게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당연히 제일 중요한 책입니다.
여러분 구약성경 역시 옛언약 중에 가장 큰 언약이 있다면 인간이 죄에 빠져 타락을 했는데, 아무리 율법을 가지고 단속을 해도 안 되고 예언자를 가지고 단속을 해도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니까 마지막 희망이 뭐냐 하면, 메시야가 와야 된다는 거죠.
구약성경의 예언이기도 하고 약속이기도 한 말씀이 메시야가 와야 어떻게 된다 이렇게 하셨는데, 그것은 하나의 예언이기도 하고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메시야가 와야 어떻게 된다는 말씀이 예언이기도 하고 약속이기도 했는데, 그게 이루어졌지 않습니까?
복음서를 보면 그 예수님이 메시야가 구약성경에 예언한대로 오셨어요.
사실은 구약의 완성이 예수님 오심으로 완성 되었다면 복음서까지가 구약의 완성이 된 거예요. 사실은..
복음서에 보면 옛 언약에 완성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태가 특히 그런게 많은데, ‘이렇게 이렇게 하였다는 예언의 말씀이 응하였느니라. 성취되었느니라.’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굳이 구약 따로 신약 따로 나누니까 그렇지, 복음서까지 해야 옛 언약이 완성 된 거예요.
그러면 그런 입장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복음서까지가 옛 언약의 완성 성취로 본다고 할 때, 새 언약에 있어서 신약의 제일 큰 언약이 그 예수님께서 오시고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는데, 그 예수님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예요.
다시 오신다는 예언,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정확하게 어디에 기록되었느냐? 요한계시록이예요.
복음서에도 일부 산발적으로 산만하게 구절이 여기 저기 있고, 서신서 바울서신 베드로서신 예수님 오신다는 말씀이 더러 몇군데 있지만, 그게 체계가 안 잡혀 있어요. 전부 부분적이예요.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보면 예수님 오시는 게 어느 때 쯤에 세상 역사가 어느 때에 어떻게 돌아갈 때 어떤 방식으로 오신다 하는 것이 아주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이야말로 신구약 전체의 총 결론이기도 하면서, 특히 신약의 완성판이다, 새언약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거죠.
다른 말로 하면 듣는 분들이 아주 마음 상해할 분도 더러 계실텐데, 계시록을 모르면 신약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모르는 겁니다. 사실..
구약에서는 예수님을 구원하시는 분이다. 이렇게 구원이라는 개념이 구약에서는 희미했어요.
그것은 대개 외적으로부터 강대국으로부터 구원하신다. 이런 정도였습니다.
신약에서 구원은 상당히 더 폭이 넓어지는데, 대적에게서 구원하는 것 보다는 죄에서 구원한다든지 심판에서 구원된다든지 그리고 몸이 영원히 사는 쪽으로 구원된다 이런 말씀들이 요한계시록에 가야 참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 중에서 어떤 면에서는 가장 중요한 책이 요한계시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대단히 외람된 얘기 같습니다만 지금 현재 온 세계 모든 교회 모든 목회자 거의 대부분이 계시록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예 모르고 있는 것을 자타가 공인하고 시인할 뿐 아니라, 그래서 아예 손도 안 대고 은퇴하는 목사님이 즐비합니다.
그렇게 하는 게 경건한 줄 알고 있어요.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유명한 목사님 교회에 제가 집회를 갔는데 자기는 계시록에 손을 안 된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얘기 하더라고..
한마디 할려고 하다가 나보다 연세가 더 많은 것 같아서 제가 참았습니다.
계시록은 몰라서 될 일이 아닙니다.
이게 참 굉장히 중요한 책이고, 또 우리에게 복스러운 소망이 담겨져 있는 책이기 때문에 계시록은 온 성도들과 같이 공부하기를 원합니다.
‘낮예배 마치고 볼 일이 있다, 명절에 집에 간다.’ 그것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작년에 갔다 왔잖아요.
내년에도 갈 수 있고 한나절 늦게 갈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우리 육체가 난 고향에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본향 하늘 본향 거기에 갈 준비를 하는 게 더 중요해요. 맞습니까? 그게 더 중요한 거죠.
아브라함이 자기 나온바 본향을 사모했다면 돌아갈 기회는 언제든지 있었지만, 그것은 나온바 본향이 아니라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으니 하늘에 있는 것이라.
하늘 본향을 사모하는 그런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지 뭘 명절 가봐야 가서 30분 이야기 하면 할 게 없어요.
그래서 다시 부탁드리는데 일부러 제가 지난 수요일에 시작할 수 있는 것을 오늘 주일 아침까지 미룬 것은 가능하면 우리 성도들이 다 함께 듣고 같이 나누자 하는 마음으로 주일 낮부터 시작하는 것이니까, 저녁 시간에도 여기 계신 분 다 앉아있기를 바라고 오히려 집에 가신 분도 오라고 해요.
자,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연대 혹은 계시받은 연대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대체로 95년 96년경으로 봅니다.
대부분이 95년 96년 경에 계시를 받았을 것으로 봅니다. 저만 그렇게 보는 게 아니라 다른 학자들도 그렇게 보는데, 계시 받은 연대와 기록된 날짜가 똑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밧모섬이라는 섬에, 파트모스라는 그 섬에 귀양살이 가서 무슨 필기도구가 준비되어 있어서 계시를 받아서 이 장문의 계시를 다 받아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누가 그렇게 배려가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만약에 그렇지 못했다고 하면 계시를 본 것은 밧모섬에 가서 계시를 받았지만, 기록한 것은 당시 로마 제 11대 황제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96년에 죽고 요한이 풀려나서 96년 말이나 97년에 에베소에 와서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것은 그렇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다.
저자는 요한이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고,
내용들은 나중에 본문 들어가서 살펴보겠습니다만, 내용은 크게 세가지가 있습니다.
세가지가 뭐냐 하면, 첫째는 그 때 당시에 1차 박해가 64년에서 68년까지 3년 반 동안 네로황제 박해가 지나갔고, 2차 박해가 90년에서 96년까지 7년 대박해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와 성도들이 굉장히 두려워합니다.
너무 너무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그 두려움에서 담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그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고,
또 두 번째는 그 때 당시 요한이 계시를 받을 당시에 교회들이 충분하게 성장한 것도 아니고 성숙한 것도 아니고 성화된 것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그 때 내려오면 지구상에 믿는 사람이 몇 사람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나마 신앙도 예수님을 영접할만큼 아무 준비도 안 되어 있으므로 그런 박해가 일어나니까 빨리 예수님 왔으면 좋겠다. 그런 상태에 있었어요.
그런 교회의 영적인 상황을 봐라. 내가 가도 되겠는지.. 그런 내용들이 한 대목이 있습니다.
그것이 2장 3장에 기록되어 있고,
세 번째는 4장 이후에 중요한 내용은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때에 어떻게 어떤 과정으로 거쳐서 어떤 단계를 지나서 어떤 환난과 고비를 넘어서 어떻게 오시느냐? 하는 장차 될 일이죠.
그래서 이것을 이른바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이렇게 해서 크게 세가지가 기록된 겁니다.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 이런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이 이 계시를 받을 때에는 요한도 물론 애가 탔겠죠.
성도들은 불안해 할 것이고, 자기 자신은 살만큼 살았지만 어떻게 될 것인지 지금 불투명한 가운데 있는데, 지금 두 번째 박해니까 이것 말고도 앞으로 여덟번이나 박해가 더 있을 거거든요.
그러한 상황에서 요한도 요한이고 성도도 성도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천국에서도 앞으로도 여덟차례나 더 박해가 가해 질 것인데, 성도들이 처음처럼 저렇게 벌덜 떨고 있어서 어떡하나.. 하고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이런 계시를 내려보냈다고 하는데, 여기 이 계시를 내려보내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지만, 8절에 보면,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주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두고 말하는 거죠?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하시면서 그 계시를 보낸 주체가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려오지만, 아마 하나님께서 이것을 천사들에게 호령을 해서 이런 계시가 마련되어서 예수님 이름으로 내려온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당시 제일 절박한 문제가 뭐냐 하면, 성도들과 교역자들이 두려워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까마득한 옛날 일이고 아니면 지금 현재 우리 눈앞에 어떤 박해나 순교가 없으니까 뭘 그렇게 겁내는가 하고 남의 일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때 당시로서는 정말 두려운 일이예요.
여러분 집에 가시는대로 에스라 하우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고문기구라고 하는, 로마의 고문기술자들이 쓰던 고문기구라는 그런 검색을 해보면, 에스라 하우스 홈페이지에 그런 고문기구가 사진으로 찍혀 있습니다.
우리 상상을 초월하는 겁니다.
그래서 목을 달랑 잘라주는 식으로 그렇게 자비를 베풀어주면 모르겠는데, 장기 고문이 계속된다든지 아니면 십자가에 못 박는다든지 하면 그 고통이라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여러 순교하신 어른들 중에서 사도 바울이 그래도 로마 시민권이 있었고 해서 달랑 목을 잘라주는 참수형으로 순교를 했고, 나머지는 다 끔찍하게 어려운 그런 고문과 고통을 겪어서 순교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나중에 볼텐데, 버가모 교회 사자에게 편지하면서 거기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믿음을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하는 얘기를 하는데, 그 안디바의 순교를 보니까 놋쇠로 된 황소 같은 어떤 주물이 있는가 봐요.
놋쇠로 만든 황소같은 주물 안에 사람을 집어넣는 거예요.
그 바깥에서 놋쇠를 나누어서 안에 사람을 집어넣고 합해가지고 거기에 불을 때 가지고 죽였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상상을 초월하는 그런 대환난과 박해와 고문들을 생각할 때 너무 너무 두렵다는 거예요.
그런데 두려운 게 일반 성도들도 두렵지만 제일 두려운 게 사실은 교역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교역자는 체포 대상에서 일순위니까요.
박해가 났다면 제일 먼저 교회에서 어떤 직책을 가졌을 때 그 직책의 비중이 큰 사람부터 먼저 잡아가는 거죠.
첫째는 사도예요. 그 다음에 각 교회 교역자, 그 지역의 감독. 이런 사람들부터 잡아가는데,
그러니까 이 편지가 ‘일곱 교회 성도들에게’라고 되어있지 않고, ‘일곱 교회 사자 일곱 교회 사자들에게 편지하라’ 이렇게 주어진 겁니다.
지금 오늘날 우리 교회가 ‘예수님 믿고 복 받는다’ 이런 말을 예사로 함부로 하는데, 그런 말은 초대교회에는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얘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사형틀을 지고 나를 따라오라.’ 항상 죽을 준비해서 언제든지, 오늘 죽을런지 내일 죽을런지, 오늘 사형당할런지 내일 십자가에 못박힐런지 모르니까 항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와야 된다.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나중에 우리가 계시록까지 끝나고 나서 오늘날 미국이나 한국교회에서 얼마나 이단성이 있는지 볼 겁니다.
이단교회가 이단이 아닙니다. 정통이라는 교회 안에 침투한 이단성의 그런 운동들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지금은 계시록 강의도 준비하지만 계시록 끝난 후에 할 그 강의를 준비하고 있어요.
끔찍할 정도입니다.
어느 정도로 심각하느냐 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우리는 그렇게 믿죠?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이렇게 우리가 믿는데, 지금 미국에서 그렇게 믿는 것은 캐캐묵은 소리이고 매우 고질병에 걸려가지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고질병 환자 같은 근본주의 세상 말썽꾸러기 당장 죽여 없애버려야 될 근본주의자들이 믿는 미신에 불과하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오늘날 이른바 뉴에이지 신학이라든지 이머징 교회라든지 이런 데에 물든 그런 교회들은 뭐라고 하느냐?
예수님은 사람이다. 그것까지는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참 사람이요 참 하나님이니까 사람이라고 하면 괜찮아요.
그런데 그 다음에 가면 그리스도는 우주적 그리스도이다. 이렇게 나와요.
뭐 또 한결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 같죠?
그리스도는 우주적 그리스도다. 우주적인 그리스도라는 말을 쓸 때 그 사람들은 아주 경건한 사람으로 본다는 거예요.
아닙니다. 우주적 그리스도라는 것은 예수 안에 갇혀있는 분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우주적 그리스도는 옛날에는 모세 안에도 그리스도가 있었고, 또 석가모니 안에도 그리스도가 있었고, 마호멧 안에도 있었고, 마하트마 간디 안에도 있었고, 그리고 이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은 이미 모든 사람 속에 그리스도가 다 있다.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예수의 추종자가 되어야 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건데, 그게 아니고 그리스도를 따라하는 흉내내는 그리스도의 추종자..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라는 말과 그리스도의 추종자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고 그것을 옳은 줄 알고 막 그것을 따라 추종하는데, 그 맨 선봉에 닉 워렌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들백 교회 담임 목사인 닉 워렌이라는 사람이 그 선봉에 들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이 쓴 책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이 나오니까 누가 그것을 냉철하게 분석한 사람이 뭐라고 하느냐? 목적이 있는 속임수라고 했어요.
목적을 가지고 목적이 따로 있어요.
하나님이 목적이 아닙니다. 자기들 목적이 따로 있어요.
이런 신학들이 한국교회에도 이미 만연되어 가고 있는데, 목회자들이 분별력이 없으니까 모르고 있습니다.
신학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고 속아 넘어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야말로 대배도의 시대가 시작된 겁니다. 완전히 기독교 전면에서 대배도의 시대가 오고 있어요.
나중에 제가 그 교재를 몇권 사서 함께 읽으면서 공부를 해야 되겠어요.
그렇게 안 하면 우리 신앙을 부지하기 조차 어려울만큼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여기 요한 당시에도 그렇고 이 잘못된 변질된 기독교 이런 기독교가 내부에서 그렇게 교회를 변질시키고, 외부에서는 핍박이 있고 이러한 때인데, 요한이 계시를 받은 겁니다.
그래서 이런 계시를 받을 때 이 내용을 즉석에서 기록했는지는 모르지만 너무 선명합니다.
모를 때는 참 어려운데 알고 나면 매우 선명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선명한 계시록을 왜 지난 2천년 동안에 아무도 모른 채 덮여져 있고 봉해져 있었던 책이냐?
어려웠던 이유가 한 10가지 정도, 10가지 그 이상도 있지만 기억하기 좋게 왜 계시록이 어려웠는가 10가지 정도 말씀드리는데,
첫째, 요한계시록이 어려웠던 이유 중에 첫째는 요한은 영화를 보듯이 동영상을 보듯이 그렇게 계시를 받았습니다.
한 자 한 자 불러준 대로가 아니고 어떤 장면을 봤어요. 총천연책 동영상으로..
그런데 요한은 그런 그림을 다 봐놓고는 그림은 한 장도 안 그리고 새까맣게 글씨로만 썼어요.
그러니까 어렵죠.
제가 가끔 전화를 많이 받지 않습니까? 에스라 성경강좌에 오겠다고 전화를 하는데, 오는 길을 자꾸 물어요.
그래서 어디에서 어떻게 어떻게 오라고 설명을 해줘요. 제딴에는 설명을 잘 해 주는데 듣는 사람은 어려운가봐요.
그래서 딱 지도를 그려 놓으면 참 쉽잖아요.
지도보다 더 상세하게 동영상 사진을 올려 놓았습니다.
홈페이지에 보면 오시는 길을 찾도록 해 놨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참 친절하게 동영상으로 보여주셨는데, 요한이 매체가 그 때는 그렇게 못하니까 글로 써버린 거야. 그러니까 어렵습니다.
지금은 그림 볼 수는 없고 나중에 요한계시록 총 정리할 때에는 그림을 볼려고 합니다.
어떻든 그림으로 동영상으로 보고는 그림 한 장도 안 그리고 글자로만 새까맣게 써 놓았기 때문에 어렵다는 겁니다.
둘째, 우리가 요한계시록이 어렵다고 하지만, 여러분 계시록만 어렵습니까? 다른 책도 다 어렵지 않습니까?
요한계시록만 어려운 게 아니라 66권 다 어려운 거예요. 사실은..
그런데 다른 책을 너무 몰라요.
우리가 구약성경을 그 동안에 너무 몰랐고, 특히 예언서를..
오경이나 예언서나 역사서를 너무 몰랐기 때문에, 또 신약 전체도 잘 모르기 때문에 이 계시록이 잘 안 보인다는 거예요.
반드시 앞에 서론과 본론을 공부를 제대로 안 했으면 결론이 안 보이는 거죠.
당연하지 않습니까?
서론도 알고 본론도 알고 배경도 알고 해야 결론이 보일텐데..
여러분 창세기부터 유다서까지가 서론 본론이라고 하면, 요한계시록은 결론인데, 결론을 알려면 서론 본론을 알아야 결론이 보이는 거죠.
그러니까 서론도 본론도 잘 모르기 때문에 결론이 되는 계시록은 당연히 어렵죠.
세 번째, 이른바 종말론이라는 이론을 펼쳐내는 어떤 학자들이 있었는데, 조직신학 일곱개 마당중에 마지막 마당이 종말론입니다.
맨 처음에 신론, 인론, 그리스도론, 구원론, 교회론, 성령론, 종말론. 이렇게 일곱마당 중에 일곱 번째 마지막 마당이 종말론인데, 그 종말론을 이론적으로 만들어서 주장하는 분들이 요한계시록도 모르면서 종말론을 만드니까 엉터리 종말론을 많이 퍼뜨렸어요.
나중에 요한계시록 공부하다보면 엉터리 종말론을 만나게 될텐데, 그런 엉터리 종말론이 우리 머리 속에 선입관으로 먼저 들어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우리 머리에 박혀 있으면 계시록 안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네 번째, 계시록 자체를 보는 분들이 가만히 편안하게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해석을 합니다.
조금 이상한 단어만 나오면 그만 해석을 할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저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그 상징도 첫째 둘째 셋째로 나누고 이렇게 해서 해석을 너무 많이 해서 과잉해석 때문에 계시록이 어렵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다섯 번째는 ‘계시’라는 말과 ‘묵시’라는 말을 분별없이 함부로 썼어요.
여러분 계시라는 말은 베일로 가려져 있던 것을 그 베일을 싹 열어서 걷어 재치고 완전히 볼 수 있게 보여준다. 그런 말이 계시라는 말이고,
묵시라는 말은 어떤 사람에게는 모르게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알게 하고, 알게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알게 하고 감추고 싶은 사람에게는 모르게 하는 그런 문학기법으로 쓰는 것을 묵시문학적 기법이라고 하는데, 옛날 목회자 옛날 신학자들이 멋모르고 요한계시록을 묵시록이라고도 하고 묵시문학적 작품이다. 이렇게 함부로 말 했습니다.
지금도 이런 말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절대로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도 아니고 묵시록이 아니라, 계시입니다. 계시.. 요한계시록.
그 다음에 여섯 번째, 계시록의 시점을 바라보는 시각이 유연하지 못했다.
즉 무조건 과거적 해석법, 무조건 현재적 해석법, 무조건 미래적 해석법, 무조건을 붙여가지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본 거예요.
여러분 어떤 분은 과거적 해석법을 적용하는 분들은 전부 요한 당시때의 일이지 여기 아무 미래적 예언은 없다. 이렇게 우기는 사람 지금도 많습니다.
전부 요한 당시 그 때의 일을 말하는 것이지, 여기 종말에 관한 예언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모르면서 종말론을 하는 대부분은 요한계시록은 종말론이 아니고 그 당시에 박해 시대에 묵시문학적으로 기록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아주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그런 소리를 합니다.
그 다음에 어떤 분은 전부 미래적 관점으로 볼려고 해요. 그것도 안 맞습니다.
여기 나중에 우리가 각론에 들어가서 볼텐데, 계시록은 세가지가 다 있습니다.
첫째는 과거적 해석, 실제로 과거를 말하니까 과거적 해석 혹은 역사적 해석으로..
역사는 과거죠. 과거에서 현재 이전이 역사니까 역사적 해석..
두 번째는 보편적 해석, 그 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언제든지 견지해야 될 보편적 진리가 있습니다.
보편적 관점으로 해석해야 될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순전히 미래적 관점, 미래적 사실..
미래적 사실을 기록한 것은 예언적 관점으로 봐야 돼요.
그러니까 과거적 현재적 미래적 다 있는데, 그것을 구별도 못하고 분별없이 쓰고 치우치게 보고 이렇게 하는 바람에 어려웠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일곱 번째, 계시록을 스스로 어렵다고 생각하고 남에게도 어렵다고 암시를 계속 줬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 선배 목사님들이 다 똑같이 하는 말이, 요한계시록을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큰일 난다고 겁을 줬어요.
여러분도 겁을 먹었고..
그래서 손을 안 대죠. 다..
목사들도 거의 손을 안 댑니다. 너무 겁나니까..
신앙생활 잘 하는데 괜히 이것 하나 잘못 건드렸다가 이단 될 이유가 뭐 있느냐?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데.. 하면서 손 안 대는 거예요.
그래서 지나치게 어렵다고 암시를 받았고 암시를 주고 하기 때문에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도 눈을 감고 봐버려요. 그냥..
알지 않기로 결심하고 보는 거야.
이런 것들이 계시록을 어렵게 합니다.
그 다음에 여덟 번째, 미지의 세계, 미래라고 하죠. 미래..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 미래는 어차피 미지죠.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예언적 관점으로 봐야 되는데, 그것은 어렵습니다.
미래의 미지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어렵죠.
아홉 번째, 보통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는 전체적 해석 관점은 종교 개혁자들의 관점이죠.
루터와 칼빈이나 요한 웨슬레나 이런 사람들의 관점을 기본으로 해서 성경을 보는데, 그 유명한 마르틴 루터가 요한계시록을 두고 말할 때, ‘이 계시록은 얼마나 어려운지 마치 이 책 안에 수록된 단어 숫자만큼이나 수수께끼가 많은 책이다.’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그 말을 솔직히 말하면 무슨 얘기냐?
모든 단어가 다 수수께끼이고, 모든 단어를 하나도 알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하나도 모르겠다. 이런 얘기거든요.
위대한 신학자는 모른다는 말도 신학적으로 하는 거야.
여러분 만약 그 위대한 학자가 하나도 모르겠다 해봐. 그러면 당신이 아는 게 뭐요?
그래서 루터 같은 분이 그런 말을 하고는 계시록을 거의 해석도 못한 채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지금도 루터교 목사님들은 계시록을 모르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만 모르나 루터도 모르는데 하면서..
그러니까 북구라파 전부 다 독일 전체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이런 곳에 상당히 루터교가 많습니다.
루터교 목사님들이 몽땅 계시록을 모르는 책으로 덮어놔요. 그냥..
그 유명한 마르틴 루터가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를 가지고 3개국에 능통한 분이 성경을 독일어로 완전히 혼자 번역을 할 정도로 그 정도의 실력이 있는 분이 모른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한 시대를 바꿀만한 그런 인물에게도 안 보여준 것을 내 까짓게 감히 누구관대 계시록을 열 수 있느냐? 하면서 아예 루터교 목사님들은 계시록은 모르는 책으로 덮어 놓은 거예요.
그리고 그 뒤에 루터보다는 훨씬 더 정밀하게 성경을 연구한 분이 존 칼빈이죠.
존 칼빈은 철저한 분이고 얼마나 철저하냐? 자기 말 안 들으면 죽여버립니다. 그냥..
사형을 시켜버려요. 그 정도로 확신에 넘치는 분인데, 이런 분이 창세기 1장 1절부터 설교를 했어요.
설교를 해서 어디까지 했느냐? 요한계시록 3장까지 설교를 합니다.
설교하고 4장 이후는 ‘솔직히 모르겠다’하고 붓을 꺾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칼빈 주석을 읽어가다 보면 요한계시록 3장에서 끝이 나버립니다.
참 맥 빠지죠. 진짜..
한번 생각해보세요.
평생에 걸쳐서 창세기 1장 1절부터 쭉 설교를 해 오는 어른이 계시록 3장까지 해석 했으면 열아홉 장만 더 하면 완결판이 나오는 거죠.
그러면 완성하고 싶은 욕심이 오죽 했겠어요?
열아홉 장만 하면 끝나는 거야. 그런데 그것을 못하고 붓을 꺾었어요. 진짜로..
그래서 책을 쓰다가 중단이 된 겁니다.
시간이 없느냐? 시간이 충분히 있었어요.
그래서 장로교 목사님들은 따라서 요한계시록 모르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 안 합니다.
나만 모르나? 칼빈도 모르는데 하면서..
그래서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계시록 몰라도 괜찮다..
계시록 몰라도 구원받는데 지장이 없다..
우리가 다 모르는 것으로 하면 괜찮은데, 문제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모든 사람이 모른다고 그냥 있느나? 그렇지 않습니다.
엉터리가 나와서 거짓 학자들이 나와서 요한계시록을 엉터리로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이단 사이비가 나오는지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모른다는 게 굉장히 큰 책임이고, 아는 사람은 책임이 더 커요.
몰라도 책임이 있고 아는 사람은 아는 대로 책임이 더 큰 거야.
그래서 저는 나름대로 계시록이 정리 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다른 책도 마찬가지이지만, 요한계시록을 모든 교회 모든 목회자 모든 성도들이 다 알아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 이렇게 열가지 정도의 어려움이 있어서 지난 2천년간 계시록은 거의 모르는 채로 덮여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이 열가지 어려움은 거의 다 해소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열가지 어려움을 간파를 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원하게 볼 수 있는 거죠.
요한이 전부 그림을 봤으니까 나도 그림으로 번역을 해보자. 글로 된 것을 그림으로 번역을 하고,
신구약 전체를 우리가 잘 몰랐으니까 신구약 전체를 한번 공부를 해보자 하고 제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한 2백번 이상 강의를 했으니까 공부를 했어요.
잘못된 종말론 뭐가 왜 잘못되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뻔히 보이니까..
과잉해석된 것은 저는 과잉해석은 고사하고 거의 해석을 안 할 겁니다.
그리고 묵시가 아니고 완전히 계시록이고..
그리고 보는 관점도 반드시 과거적 현재적 미래적 구분 나니까..
그 다음에 어렵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어렵더라고..
그런데 정말 알고 싶어서 보채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저를 사랑하셨는지 알게 해 주신 거야.
저는 머리가 좋아서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는 신령해가지고 안 게 아닙니다.
알고 싶어서 그냥 몸부림을 치니까 하나님께서 짠 하고 보여주셨는데, 세상에 간단하게 한번 터치하니까 그냥 보이는 거예요.
그 다음에 미지의 미래라 할지라도, 이제는 그 요한 당시의 미래의 일이 이제는 거의 그 미래가 거의 현실처럼 우리 앞에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사는 바로 이 시대를 두고 한 말이다.
그 다음에 루터가 모른다고 우리도 모를 수 없죠.
칼빈이 모른다고 우리도 몰라야 된다. 그것은 칼빈주의야.
어떤 사람은 칼빈이 지옥가면 따라갈거야.
저는 칼빈주의에서 벗어납니다. 칼빈주의가 몰라도 우리는 알아야 돼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여러분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고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자 그쯤하고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조금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이 사람은 자기 아버지도 로마황제이고 자기 형님도 로마황제이고 자기도 로마황제이고, 그래서 3부자가 9대 10대 11대 로마황제예요.
로마 9대 황제가 플라비우스 베스파샤누스 황제이고, 10대 황제가 플라비우스 티투스 황제이고, 11대 황제가 플라비우스 도미티아누스 황제예요.
그래서 이 3부자가 다 로마황제를 지냈는데, 그 3부자 중에 아무리 봐도 자기 아버지가 제일 낫고 그 다음에 자기 형님이고, 갈도록 나아져야 되는데, 이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제일 겁약한 겁이 많고 허약한 사람이야.
이 겁이 많고 허약한 사람일수록 독재를 합니다. 전제주의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확 억압을 하면서 국민들이 자기 손에서 누가 벗어난 사람이 있는가 싶어서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서 이렇게 허약한 사람인데, 나중에 말년에 정신분열증 비슷하게 해서 사람이 돌아버려요.
그런데 놀랍게도 로마황제치고 정신이 온전한 사람 별로 없어요.
여러분 네로도 미친거죠.
네로도 아주 더럽게 미쳤어요. 나중에..
네로도 미치고 이 사람도 미치는 거야.
왜 미치는가 보니까 여러분 권력자가 교만을 떠는 이유가 있습니다.
권력자가 교만하게 되는 이유를 제가 낱낱이 다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유형으로 하면 대개 세가지입니다.
왜 교만하냐 하면, 첫째 어리석어서 교만한 거예요.
자기가 황제가 되었다고 무슨 말 한마디하면 모든 게 움직이니까 자기가 신이라도 된 것처럼 우쭐대는 그런 시건방을 떠는 그런 아주 어리석어서 하는 그런 교만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견문이 너무 좁아서..
많은 사람들과 많은 인물과 많은 학자를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가 최고인줄 아는 그런 교만이 있습니다.
견문이 좁아서 교만한 거예요.
세 번째가 중요한 건데, 세 번째 교만은 교만한 영이 들어간 거야. 악령 사탄이 들어갑니다.
사탄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면 반드시 교만을 떱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면 바벨론 왕이죠.
이사야 14장에서 나오는 바벨론 왕이 바로 마귀가 사탄이 들어가서 교만한 거야.
그 다음에 에스겔 28장에 나오는 두로왕이 마찬가지로 역시 사탄이 들어가서 교만한 거예요.
여기 네로황제가 역시 사탄이 들어가서 교만한 것이고, 도미티아누스 황제 역시 사탄이 들어가서 교만한 겁니다.
이를 테면 히틀러라든지 뭇솔리니라든지 히로히또라든지 전부 이런 괴악한 놈들이 전부 다 사탄이 있다고 봅니다. 사탄이..
저는 김일성이나 김정일이도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그리고 스탈린이라든지 모택동이라든지 사람을 막 몇백명 몇천명 몇만 몇백만 몇천만을 죽여버릴 정도로 할 때는 순전히 사탄입니다. 사탄.. 본 정신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자기가 자기 자신을 두고 부를 때 ‘주와 신이다.’ ‘도미누스 에 데우스.’ 내가 바로 주요 내가 신이다. 이런 교만을 떠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쯤 되면 교만이 극에 달한 거죠.
그러면 죽어야 돼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오래가지 못합니다.
내가 주요 내가 신이다. 도미누스 에 데우스..
이름도 도미티아누스예요. 자기가 주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러한 사람이 로마 황제가 되니까 거들먹거리기 시작하는 거죠.
배경 설명에 시간이 많이 갔는데, 이러한 배경 하에서 2차 박해가 시작된 것이고, 이 2차 박해는 한 7년 정도 지속되었어요.
그래서 전체를 보면 네로황제 박해가 3년 반, 그 다음에 도미티아누스 황제 박해가 7년, 그 다음에 트라야누스 황제 박해는 20년이예요.
그 다음에 4차 하드리아누스 황제 박해는 21년 동안이예요.
5차 박해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박해는 19년 진행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셉티무스 세베리우스 황제 박해가 AD202년부터 211년까지 9년간 진행되었고, 막시미누스 황제가 1년 동안 박해 하다가 죽었습니다.
그 다음에 데키우스 황제 박해는 2년 동안, 그 다음에 발레리아누스 황제 박해는 3년 동안, 맨 마지막 박해 10차 박해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갈레리우스 박해는 8년 동안 진행 되었습니다.
이것을 다 합산하면 103년입니다.
250년 동안에 103년이 박해가 계속된 기간이예요. 103년 동안..
이 백년 동안에 열차례의 박해가 지나가면서 교회는 망했느냐? 망하지 않습니다.
이게 기독교 역사에서 박해가 교회를 망하게 하지는 못했다는 거예요.
오히려 교회가 순수해졌어요.
가짜배기 성도는 남아 있지 못합니다. 겁나서..
누가 가짜 신앙을 가지고 목숨을 걸겠어요?
그러니까 순수하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금을 연단하듯이 은을 연단하듯이 계속 불시험이 오니까 교회는 진짜 목숨을 건 사람, 정말 확신이 있는 사람만 남아 있지, 예수 믿고 복이나 받겠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무슨 복을 받아요? 죽을 판인데..
그래서 우리가 이 초대교회 특히 계시록을 잘 공부하면서 박해 시대를 공부하게 되는 것은 기독교가 처음 출발할 때 순도높은 아주 순전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박해가 있었고,
그 다음에 세월이 흘러가다가 보면 교회가 때가 묻고 오염되고 변질되고 잡탕이 되고 혼합되고 혼잡되고 이렇게 됩니다.
이미 지금 그렇잖아요. 현재..
그러면 마지막 때에 또 한번 박해가 있는 거예요.
그 박해는 어느 정도냐?
여기 열차례 박해를 합한 것보다 더해요.
예수님 말씀을 보면 마지막 때 예수님 재림 직전에 전무후무한 타락과 전무후무한 대박해가 있을 것이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아무 육체라도 구원받지 못하겠는데, 택하신 백성들을 위해서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큰 그림을 생각하세요.
맨 처음에 출발할 때 교회가 순수하게 출발할 수 있도록 한 250년 동안에 박해 연도만 100년 동안 박해로 얼룩지게 그렇게 해서 교회를 순수하게 만들었는데, 역사가 흐르다 보니까 교회는 변질되고 타락되고 여러 갈래로 분열되고 이렇게 되어가지고 도대체 뭐가 진짜인지 잘 모를 정도가 될 때, 또 다시 마지막 때 대박해가 일어나면서 가짜는 다 날아가고, 그리고 참 진짜만 그 고난을 통과한 후에 마지막에 휴거가 되는 쪽으로 해서 끝이 난다는 거야.
여러분 그래서 기독교 역사를 볼 때 출발도 대환난이요 끝도 대환난입니다.
이게 기본틀인데, 지금 잘못된 이머징 교회라는 사람들이 잘못된 게 뭐냐 하면, 마지막 때에 큰 부흥이 일어난다. 그런 사기를 치는 겁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 재림 직전에 큰 부흥이 일어난다는 구절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흥은 무슨 부흥이냐? 마귀의 부흥이야.
사탄의 부흥인데, 그것을 성령의 부흥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 이야기는 계시록 다 끝내놓고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이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제일 겁낸 게 기독교인을 겁을 냈다는 거야.
왜 겁을 냈느냐?
기독교인은 순교를 했다는 거거든요.
다른 종교는 잘 순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목숨을 걸고 그리고 하늘에서 자기들 대왕이 내려온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내려오면 세상을 불태운다고 그렇게 말하는 어떤 불순한 무리가 있다..
이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그래서 너무 너무 겁이 나서 기독교인을 박해를 하는 거죠.
그런데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죽이려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라 자기 아내였어요.
여러분 오랑캐가 저 북쪽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 곁에 있는 사람을 조심해야 돼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 그런 말도 있잖아요.
자기 아내가 아그리콜라라고 하는 근위대 장관과 눈이 맞은 거예요.
여러분 진시황제 보세요.
진시황제도 그 북쪽에 오랑캐가 무서워서 만리장성을 쌓았다니까..
그런데 진시황제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던 사람은 자기 아들이었어요.
역사의 아이러니죠.
그래서 역사를 공부해보면 배울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여기 어려운 게 없죠.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읽는 자’는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 듣는 자들과,
‘듣는 자들’은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처럼 듣는 분들이예요.
그리고,
..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제일 복있는 사람이 세 번째예요. 세 번째..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죠.
읽고 듣고 지켜야 복이 있다.
읽어서는 아무 의미가 없고, 들어서도 아무 의미가 없고, 읽고 듣고 가르치고 배워서 깨닫고 그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그러면 우리가 읽기도 해야 되겠고, 듣기도 해야 되겠고, 깨닫기도 해야 되겠고, 배웠으면 지켜야 돼요.
그런 사람이 복이 있다는 거예요.
요한계시록에는 복이 있다는 말이 일곱번 나옵니다.
첫 번째 나오는 얘기가 이 복이예요.
계시록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사람..
그러니까 계시록 펴 보지도 않은 목사님은 복이 없는 사람이죠.
계시록 들을 수 없는 교회는 복 없는 교회죠.
그리고 뻔히 알면서도 안 지키는 사람은 진짜 복 없는 사람이죠.
그래서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 듣고 배우고 깨달아서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일곱 교회에 편지하게 되면, 일곱 교회만 읽으라 그 말이 아니라, 그 일곱 교회에서 옆으로 옆으로 돌려서 회람문서처럼 돌려가면서 읽고, 마침내 여기 마산까지 왔잖아요.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이 읽어야 돼요.
여러분 에베소 교회에도 에베소서가 회람문서였다는 말씀을 드렸고, 골로새서도 회람문서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라오디게아서라는 것도 있었는데, 역시 회람문서였는데 지금 보존되지 않았고..
그래서 나중에 사실은 모든 성경이 다 회람문서죠.
..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이분은 성부 하나님이죠.
성부 하나님이라는 말은 뭘로 보증하느냐? 8절에 아까 봤지 않습니까?
8절에,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완전한 영이신데 성령을 말씀하시고,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이렇게 말할 때, 이 ‘성부와 성령과 성자’ 이렇게 되는 거죠.
우리는 보통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하는데, 계시록에는 성부 성령 성자 이런 식으로 되어 있어요.
여기 보면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바로 충성된 증인이예요.
충성된 증인은 어떤 증인이냐? 목숨을 아끼지 않고 목숨을 바쳐서 순교하기까지라도 진리를 증거하는 사람을 충성된 증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서머나 교회 사자에게 편지할 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이 바로 죽도록 충성한 참 증인이죠.
다시 이 말은 우리들도 지금 현재나 그 때 요한 당시나 증인인데 충성된 증인은 어떠해야 되느냐?
예수님께서 충성된 증인으로 어떻게 하셨느냐? 목숨을 버리면서 증거했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서 증거했는데, 우리도 충성되다면 목숨을 버리면서 증거해야 된다 하는 암시가 여기 들어있는 겁니다.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그러니까 예수님도 목숨을 버려서 충성스럽게 증언했더니 예수님도 부활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도 만약에 목숨을 버리고 목숨을 잃어버려도 부활한다 하는 것이 암시되어 있는 겁니다.
..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거기 줄을 그으세요.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당시에 까딱하면 사람들이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땅의 임금들의 머리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성경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하면서 예수님께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라는 거예요.
이런 것도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죠.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가 있어야 되겠고, 평강이 있어야 됩니다.
이 평강은 평안할 때 평안이 아니고, 평안할 때 다 평안할 수 있죠. 그게 아니고 네로 황제 박해나 도미티아누스 황제 박해나 앞으로 남은 여덟번 더 반복될 그런 엄청난 박해 하에서도 평강을 누리는 평강이예요.
대단한 거죠. 이런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종처럼 부려 먹을려고 아닙니다.
예수님의 하신 행위는 사랑으로 하신 거예요.
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한마디 하고 지나가야 되겠는데, 지금 뉴에이지 신학이라든지 이머징 교회 신학에서는 우리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떠듭니다.
그것은 아주 원시문화에서도 잠깐 있었지만 계속되어서는 안 되는 아주 악한 법이라는 거예요.
만약에 내가 죄를 지었는데, 너 내 대신에 죽으라 그런 악법이 세상이 어디 있느냐?
이 사람들은 뭐라고 오늘 우리 기독교의 정통적인 속죄교리를 욕하느냐 하면, 아내가 간음을 행했어도 용서하라. 대신 개를 발로 차라.. 성나거든 개를 차라..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자기 아들을 발로 찼다는 거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게 말이 되느냐?
원시적인 세계에서도 있어서 안 되는 법이다.
하물며 우리가 죄를 지었는데 예수님께 덤태기를 씌우는 게 말이 되느냐?
여러분 이게 미국에서 유럽에서 아주 합리적으로 역시 기독교는 전부 거짓말이구나.. 하면서 이제는 교리를 초월하고 신학을 초월하고 종교를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고 모든 것을 초월하는 종교를 만들자.
이것이 이머징 교회라는 거예요.
새로 떠오르는 교회예요.
그런데 거기 그런 대열에 로버트 슐러나 닉 워렌이 제일 앞장을 서 있다는 겁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교회 큰 교회가 그런 사람의 이론을 제일 먼저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레노발이라든지 관상기도라든지 전부 다 이머징 신학에서 온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정신 안 차리면 언제 어느 이단 사이비에 물려갈지 몰라요.
..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구름에 가리워서 밑에 사람이 볼 때 구름에 가려서 보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구름타고 올라갔다는 거예요.
그리고 ‘갈릴리 사람들아 뭘 그렇게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에서 올리워 가신 예수님은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구름에 쌓여 올라갔으니까 구름에 쌓여 내려오실 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구름이 뭐냐 하고 첫째 둘째 셋째 아무리 해석해봤자 쓸데없는 소리예요.
모든 주석을 읽어보세요.
구름이란 뭐냐 하고 해석이 구름같이 올라옵니다.
그런 쓸데없는 해석할 필요 없습니다.
구름은 그냥 구름이예요.
그리고 구름타고 오신다고 하면 구름타고 오시는 것이지, 또 구름타고 오시든지 바람타고 오시든지 티코를 타고 오시든지 뭘 타고 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죠. 오시는 그 자체가 중요한 거죠.
그리고 우리에게 구름 준비하라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여러분 예수님 재림하시는 것은 각 사람이 다 봅니다.
여러분 지금 젊은 사람도 보고 연세 많은 사람도 보고 산 사람도 보고 죽은 사람도 보고 음부에 있는 사람도 다 볼 것이고,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람들도 다 봅니다.
여러분 예수님 재림한다는 것은 우주적 대뉴스이기 때문에, 산 자와 죽은 자 천사 귀신 다 볼 수 있게 다 알 수 있게 이렇게 오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몰래 오셨다.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것은 안 맞는 말입니다.
1846년인가 예수님께서 몰래 재림했다. 이렇게 주장하는 종파가 있어요.
그렇게 오지 않습니다. 다 알게 오십니다.
..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람들도, 음부에 있다가도 다 봅니다. 예수님 재림하는 것..
..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자 예수님 재림하게 될 때에는 세상에 있는 사람 다 울고 통곡할 건데, 왜냐? 믿지 않는 사람들은 두려워서 ‘나도 믿을 걸..’ 하고 울고 난리를 칠 것이고, 우리 믿는 사람들은 ‘좀 더 충성할 걸, 더 열심히 할 걸..’ 하고 울 것이고..
아무도 기뻐하지 못할 겁니다.
저는 기뻐하고 춤출 일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도 다 예수님 오실 때 물론 기뻐서 반가워서 우는 사람도 있지만, 애곡한다는 것은 슬퍼서 애곡하는 거죠.
애(哀)가 슬플 애(哀)자예요. 다 슬퍼해서 운다..
말이 그렇지 마지막 때가 되면 신앙생활 정말 개떡같이 할 겁니다. 보세요.
엉터리예요. 엉터리..
나중에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고,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할 정도로 그렇게 편한 예수 쉬운 예수 게으른 예수 믿다가 예수님 올 때에는 다 애곡합니다.
지금도 제가 볼 때 신앙생활이 전혀 바른 경건이 아닙니다.
너무 엉터리가 많아요. 너무..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거기 줄을 그으세요.
‘전능한 자라.’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그 때는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오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합니다.
하나님 따로 사람 따로가 아니고,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과 함께 있어서 저희 모든 눈물을 눈에서 씻겨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아들이 되어서 영원무궁토록 함께 하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하나님이시라.’
성부 아버지 하나님의 보증이죠.
9절 이후에는 저녁 시간에 보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성경 전체의 마지막 책 신구약 전체의 결론이 되는 요한계시록을 우리 스스로 혼자 보기에는 너무 벅찬 책인데, 함께 읽으며 배울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말씀을 잘 분별하고 우리도 충성된 증인들처럼 주님처럼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주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참 증인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마지막 때까지 깨어있는 신실한 증인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