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여행지는 우리들의 고향 풍기. 친구들은 학교 다니던 곳이 향수병에 걸릴 정도로 가보고 싶다고 했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그들에게 가슴 설레는 풍기가 아닐 수 없다. 타임머신을 타고 풍기에서 추억여행을 하기로 했다. 다행히 오늘은 미세먼지가 보통이다 사실 나에게는 풍기가 별로 감흥이 없다.
시댁에서 담 너머로 고개만 내밀면 보이는 게 내가 자란 집이다. 지금도 시댁이 풍기니 그리울 것도 가보고 싶을 곳도 없는 동네다. 그러나 친구들과 함께라면 지옥도 천국처럼 생각 할 만큼 좋으니 덩달아 나도 좋다. 일찍 서둘러 소백산 자락 옥녀봉 근처에 자리한 국립산림 치유원 다스림으로 갔다. 출입이 통제되어 경비 아저씨께 카페에 간다고 하니 차단기를 올려준다. 치유림으로 올라가는 소로에 하얀 싸리 꽃의 군락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산속엔 물이 졸졸 흐르고 언덕에는 개복숭아꽃과 산벚꽃이 있어서 마음의 힐링이 되는 것 같다. 계절에 따라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 자연의 신비로운 섭리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멀리 이국적인 예쁜 집들이 보인다. 동화에 나오는 저런 곳에서 쉬면 저절로 치유가 될 것 같다. 이번에도 하룻밤을 자려고 했지만 방이 없어서 풍기 온천 리조트로 숙소를 잡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와서 하룻밤이라도 쉬고 싶은 집이다.
카페에 들어가서 대추차 한잔을 시켜놓고 얘기 꽃을 피운다. 곳곳에 그림도 전시해 놓고 분위기도 좋고 차도 맛이 있다. 하지만, 무작정 지체할 수 없는 일. 다음 일정이 있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그곳을 나왔다. 옛 추억 속으로 시간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선 친구들이 살던 집들을 찾아보았다. 옛 모습이 남아있는 집들이 하나도 없다. 70년이란 세월이 흘러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서운하다. 초등학교를 가보았다. 여기도 옛 모습은 없다. 학교가 깔끔하게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했다. 그렇게 넓던 운동장도 어릴 때 만큼 커 보이지 않고 작게 보인다. 뒤편에는 중학교, 앞에는 고등학교가 있었는데 중학교는 아주 오래 전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없다. 교정에는 수 백 년 묵은 은행나무만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7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 그 모습이 그대로 있을 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욕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짝꿍이 고등학교 교정을 바라보며 “니가 고등학교 다닐 때 결혼 안하고 독신주의자로 살겠다고 선언했지? 세계 일주는 꼭 하고 60세에 우아하게 죽겠노라고 하더니 자기보다 시집을 먼저 갔다“ 면서 그때 그 시절을 떠 올린다. 꿈 많은 여고 시절, 김찬삼 교수의 세계여행기를 읽고(감히 외국여행은 꿈도 못 꾸던 시절) 나는 세계 일주를 꿈꿨다. 그리고 60세가 아주 늙은 노인으로 생각되던 시절에, 구질구질하게 안 살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우아한 죽음을 맞겠노라고 호언장담하더니만 아직 안 죽고 사느냐고 웃는다. 지금 생각해도 하필이면 왜 60세었을까? 적어도 환갑은 지나고 죽는 게 맞는 것 아닌가? 꿈도 좋지만 참 어처구니없는 발상에 도도했던 나의 모습이다. 중학교 교정 뒷뜰에는 향교가, 향교 뒤편에는 작은 동산이 있었다. 그곳에 우리 반 친구네가 호떡집을 해서 쉬는 시간이면 그 호떡집에서 사먹는 호떡이 꿀맛이었는데 그 집도 있을리 없다. 다니던 학교를 둘러보니 풋풋했던 그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역시 꿈 많았던 학창시절이 그리워진다. 풍기는 사과의 주산지라 사과 꽃과 도화가 만발이다. 꽃들의 축제가 추억여행에 한 몫을 한다. 금선정이란 풍광이 아름다운 소나무 숲속에 명경지수와 같은 물이 있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팬티만 입고 바위에 올라가서 개울로 뛰어내리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하루의 추억 여행을 마쳤다. 학교 때 3총사 중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퇴직한 친구가 지금 비건식을 하고 있지만 풍기에 와서 한우를 안 먹으면 섭섭하단다. 꽃등심과 갈비살을 숯불에 구워먹으니 입에서 살살 녹는다. 밤이 깊도록 학교 다닐 때 친구들 얘기로 꽃을 피운다. 이튿날 영주 선비촌을 가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순흥 묵밥집에 들어갔다. 주변 땅을 사들여 주차장과 식당을 넓힌 것을 보니 평소 영업규모가 어떨지 상상이 된다. 식당 맞은편에 순흥 기지떡집이 있다. 남편들을 주기위해 그 떡도 한 박스씩 샀다. 어제부터 예보된 비는 우리의 여행을 축복이라도 하듯이 참고 있다가 헤어질 시간 부슬 부슬 내린다. 운전하던 친구는 김천으로 가고 우리는 풍기역으로 왔다. 풍기역도 단양역처럼 신축했다. 정겨운 시골 역사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이 깔끔하다. 풍기가 나에게는 흥미로운 여행지는 아니더라도 친구들과 함께라서 즐거웠다. 두 달 후에는 청송 주왕산 근처에서 2박하기로 했다. 단양에서 안동까지 이음이라는 KTX가 있다. 안동역에서 만나 김천 친구와 합류해 청송으로 갈 수 있다. 교통편을 생각해서 그곳으로 정했다. 가까운 바닷가에 가서 회도 먹을 계획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3박4일의 추억여행을 마쳤다. 그동안 혼자서 외로웠을 남편의 마중을 받으며 사랑의 보금자리로 가는 차안에서 벌써 6월 만남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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