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무념'의 상태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활동할 수가 있는지요?
답 : 처음에는 불가능합니다.
다시 몸을 움직일 때는 땅을 걷는 것이 마치 흔들리는 배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몸이나 그것의 각 부분들이 정확히 어느 위치에 놓여 있는지 감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 상태에서는 몸과의 동일시가 없고 공간상의 거처도 업습니다.
참나는 보이지 않고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사람들이 이 몸이 '나'인 것처럼 말을 걸어올 때마다
그 상황에 익숙해지기 위해 어느 정도의 조정 과정이 필요합니다.
목소리는 사람들의 질문에 스스로 알아서 적절히 대답해 줍니다.
거기에는 세속을 영위해 나가거나 그것에 초점을 맞출 만한 마음이나 사고 작용이 없습니다
방향 감각도 잃어버립니다.
몸의 작용과 말과 행동이 그 어떤 내적인 지시나 의도도 없이 잍어납니다.
현존의 뜻에 따라서 모든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모든 것은 그 본질과 우세한 조건들의 표현으로서 저절로 일어납니다.
그 몸은 우주의 한 기능이요, 이 세계의 작용에 대한 적절한 순응과 적응의 소산입니다.
평상시의 모든 일상 활동들은 상당히 긴 기간 동안 정지됩니다.
말 같은 것은 필요치 않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할 때는 그 뜻을 파악하기 위해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문맥으로 번역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생각들이 선형적으로 연속되는 형태로 말을 건네고
그럴 때마다 성령의 현존인 참나.신성의 한 측면이 번역자의 역할을 해 주며,
그로인해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것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귀가 어둡거나 정신이 딴 데 팔린(역설적이게도 실제로 그러합니다.)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번역 과정은 사람들의 말속에 포함된 다양한 형상들을 취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한 핵심적인 것으로 바꿔 줍니다.
여느 사람들처럼 생각하는 것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상태나 작용이 못됩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조차도 그렇게 하려고 마음을 먹어야만 일어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본질과는 무관한 온갖 잡다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선형적으로 연속되는 형상들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피곤해집니다.
초점을 본질에서 형상을 전화하는데는 시간과 에너지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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