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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감당하는 요나(욘 3:1-10)
불순종하는 요나가 큰풍랑을 만난 것도,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난 모든 일은 우연이란 없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나에게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만나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흔들리지 않으면 그일로 인해서 믿음이 더욱 커지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가 되어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고 도피하는 요나, 결국 풍랑가운데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요나, 과연 그의 인생이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 본문은 이 질문에 대해서 긍정적인 답을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요나의 인생도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삶이 무너져 버렸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희망입니다. 요나의 이야기는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경제적으로 혹은 인간관계에서 결정적인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그 인생이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메시지를 던져 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장에서 어느 날 경험했던 갑작스러운 실패, 아픔, 그리고 우리가 받았던 상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생은 다시 회복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가운데서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회복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1. 하나님의 두 번째 말씀(1-2)
본문은 이 질문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1,2절,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요나에게 두 번째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세 개의 동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일어나라", "가라", "선포하라“
어디서 들어 본 말씀이지 않습니까? 사실 이 말씀은 요나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말씀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받았던 메시지와 동일한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요나서 1장 1,2절,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여기서도 "일어나 가서 외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왔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처음 주셨던 그 메시지를 다시 되풀이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번만 말씀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불순종했던 요나를 향해서 침묵해 버리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욥기 33장 1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사람은 관심이 없도다'란 말은,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가 그 음성을 듣지 못하거나 듣고도 거절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관심없이 외면하거나 불순종해도, 하나님은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다시 말씀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그를 또 부르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 실망을 안겨 준 사람을 구차하게 왜 또 찾으십니까? 하나님에게 사람이 없습니까?
얼마든지 부를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유대 나라에 가면 요나가 아니라도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이 요나를 찾아서 또 일을 시키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번 선택하시면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양이나 치면서 광야에서 살았기 때문에 옛날에 애굽의 왕자였다는 것은 흘러간 이야기일 뿐이고 이제는 아무런 매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이도 80이나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모세를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호렙산 중턱에서 양치기하는 모세를 찾아가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하시자 모세가 어떻게 했습니까? 나는 못갑니다. 나는 혀가 둔합니다. 말재주가 없습니다. 나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치기나 했는데 지금 어디를 갑니까? 못 갑니다. 몇 번을 못 가겠다고 버티어도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은 그를 보내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베드로가 예수의 제자가 되어서 화려한 꿈을 안고 주님을 3년 동안 따라다녔지만 결국 그는 실패자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친 정말로 비겁한 인간이었습니다. 그 정도면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포기했습니까? 아닙니다. 갈릴리 바닷가에 찾아가셔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진정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여라. 나를 따르라" 하시고 그를 다시 보내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이런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한번 선택한 사람은 반드시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으시고 또다시 부르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시는 일은 아주 분명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옥갈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이일만큼 소중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요나는 바로 이 일에 다시 부름받았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마땅한 사명은 바로 이 일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목사로, 권사로, 집사로 직분을 맡겨주신 것도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목사를 도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다시 점검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명 성도인가를 돌아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일어나라, 가라, 선포하라 세 가지 명령 앞에 우리가 온전히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요나의 순종(3-4)
요나는 니느웨성에 들어가 하룻길을 다니며 외칩니다. 요나가 외친 복음은 간단합니다.
3,4절,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이처럼 니느웨 성을 돌면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망한다는 이 단순한 메시지를 전했는데 첫날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붙들고 '정말이냐? 정말 40일이 지나면 이 성이 망하느냐? 누가 그러더냐? 하나님이라는 분이! 여호와라는 분이 누구냐?' 하면서 여러가지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요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이 진지해지더니 집으로 돌아가서 땅바닥에 앉아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고 회개하고 금식을 하는 등 야단이 났습니다. 그 소문이 왕에게까지 들리자 왕이 왕좌에서 내려와 왕복을 벗어 던지고 베옷을 입고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짐승들에게까지 금식을 선포하고 온 나라가 하나님 앞에 두 손 들고 돌아오는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에 니느웨는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대단한 도시였던 것 같습니다. 성벽높이가 30미터 정도였습니다. 즉, 10층 아파트보다 높은 성벽이 둘러있는 성입니다. 그 성벽의 두께가 전차 세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성벽둘레는 96km나 됩니다. 경비병들이 파수를 보도록 성곽에 둘러가면서 세워 놓은 탑이 1500개가 되었다고 합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어린아이들만 12만명이니까 학자들이 계산한 바에 의하면 인구가 거의 100만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2,800년 전에 이런 규모였다면 얼마나 대단한 성이었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초라한 요나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들어갔습니다. 그 사람 하나가 전한다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요나는 그 성에 들어가서 이길 저길 다니며 40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진다고 외치고 다녔다는 말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구경거리 밖에 더 되겠습니까?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엄청난 일이 일어났지 않습니까? 요나가 전한 말은 이 성경을 기록한 원문 히브리어에 의하면 다섯 마디밖에 안됩니다. 우리 성경에는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은 '호드 아르바힘 욤 베니네베 네파케트.' 이렇게 딱 다섯 마디입니다.
3. 니느웨성의 회개(5-8)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5절부터 6절까지 나와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한번 보십시오. 5-6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놀라운 일입니다.
니느웨 백성이 첫째는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요나가 이야기하는 하나님이라는 분을 믿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런 분이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런데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믿으니까 그 말씀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금식을 선포하고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무론 남녀노소하고 모든 사람들이 굵은 베를 입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이 이러자 소문이 왕에게 들어갔습니다.
왕이 당장 그 왕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땅바닥에 내려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선포했습니다.7절,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 어린 아이까지 금식해라. 짐승까지도 금식시켜라. 그리고 8절에 보니 무엇을 하라고 명령했습니까?
8절,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이 말을 한마디로 말하면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잘못한 것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입으로만 회개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각자 행하던 악한 일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말만으로 회개할 것이 아니고 실제 행동으로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내용 가운데서 최대의 집단 회심이 일어난 것입니다. 100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으니 이것만큼 큰 사건이 어디 있습니까?
게다가 그 회심이 철저한 회개를 동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이제부터 예수 믿겠습니다. 하면서 저 과거에 죄 많이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하는 정도로 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철저하게 회개하면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얼마나 놀라운 능력입니까?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복음은 이처럼 놀라운 힘이 있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미련한 방법 같지만 아닙니다. 전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문을 열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한 영혼이라도 주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에 관심을 집중하시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영혼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았습니까? 사명성도는 결코 하나님의 관심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에 집중하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4.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9-10)
니느웨성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요나의 심판의 메시지에 모두가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지금까지 믿었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앞에 엎드려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켰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렇게 돌이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저들은 막연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렸습니다.
9절,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니느웨 왕이 자신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의 회개와 금식하면 하나님의 심판올 돌이키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는 사죄와 구원의 은총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것으로 믿었습니다. 이러한 저들의 겸손한 회개가 있었기에 니느웨왕과 그 백성은 용서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0절,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10절)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 니느웨를 향한 재앙의 계획을 철회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대표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불변성'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심판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죄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 그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고 그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십니다.
심판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구원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 사람들을 향하신 본래 의도는 바로 그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4절)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40일은 심판의 유예기간인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요나서 3장 10절을 히브리어 원문의 뜻을 살리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돌이키면 하나님이 돌이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뜻을 돌이켜서 제대로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심판을 작정했다가도 그 계획을 바꾸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 얼마나 복잡하고 어렵습니까? 점점 살기 좋아지고 점점 죄악이 사라지겠습니까? 아닙니다. 수많은 문제를 안고 소돔고모라보다도 악하고 죄악이 관영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기후변화로 끊임없는 자연 재해가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기후는 가뭄부터 홍수, 열대야, 폭설 등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생태계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건조 기후가 늘어나면서 대형 산불이 자주 발생하고 폭우가 오는 탓에 많은 재해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북극곰은 갈 곳을 잃었고 바닷속 산호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동식물이 멸종위기에 처했습니다. 생태계의 건강 악화는 결국 인간의 삶의 터전이 점점 사막화되어가고 있습니다.그런가 하면 인위적인 사고와 범죄들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습니다. 깊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우리시대를 향한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러한 사건들이 얼마 안있으면 우리에게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징조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축복으로 헤아리지 못하고 죄에 깊이 빠져 타락해 가는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작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한 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뜻을 돌이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돌이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세례요한이 외친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은 불타고 그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가 종살이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우리 시대에 이런 심판의 메시지가 선포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도 뜻을 돌이키실 것입니다. 우리 민족과 이 시대를 심판하는 대신에 하나님은 새롭게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가 성숙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또 우리의 영혼이 회복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역사가 새로워지는 변혁을 체험할 것입니다. 영적인 각성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할 줄 모르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마 16:4)"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예수님은 표적을 보여 주어도 믿지 못하고 불신하는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요나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주님이 예언하신 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가도록 부활의 첫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복음을 전하여 죄와 사망의 법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에게 각각 회개하고 부활의 새생명 가운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요나의 순종으로 인해 요나와 함께 배를 타서 풍랑을 만났던 많은 사람들, 그리고 요나가 찾아가 외친 멸망의 도성 니느웨 성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며 돌이켰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며 영적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하다 할지라도 복음의 능력을 믿고 나아가서 믿음으로 증거하면 듣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 길로 가다가 물에 빠져 물고기 밥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인생이었습니다. 스올의 뱃속에서 요나가 회개하고 일어섰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다시 일어섰습니다. 다시 사명의 소리를 듣고 니느웨로 갔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전한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들이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을 듣는 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바는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것 같지만 증거할 때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서 선포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