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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작가의 미의식, 수필의 자양분
- 고수부 제10수필집을 읽고 -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Ⅰ.
수필가 고수부 선생님이 열 번째 수필집을 선보인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서대문 경북신문사 문학연수원 수필연수반에서 본격수필을 배울 때만 해도 아홉 번째 수필집이 마지막이라고 했던 분이다. 내가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에서 수필강좌를 열자, 이곳에 등록해서 지금까지 열심히 수업에 임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본격수필을 배우지 않을까싶다. 제9집까지의 수필과 차별화되는 수필을 쓰겠다는 각오로 창작에 매진 드디어 제10집이 곧 에세이문예사에서 나온다. 수필집을 몇 권도 아니고 10권이나 내다니, 놀람이 먼저 앞선다. 35년 전 수필가로 등단한 평자도 겨우 수필집 두 권인데, 내보다 다섯 배나 많은 수필집을 내었으니, 고수부 선생님은 존경과 박수를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Numerology는 숫자와 그에 따른 의미를 연결시켜 사람들의 성격, 운명, 행운 등을 예측하려는 숫자학인데, 숫자학의 차원에서 ‘10’은 새로운 시작과 성취를 상징하며 완결된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긍정적인 측면이 강한 숫자다. 이러한 numerology 해석은 역학적인 신념이며, 개인의 신념과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맹신하지는 않지만, 재미로 숫자 10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하고 알아보니, 숫자 10은 모든 계산의 기본이 되는 수이고 법, 질서, 지배를 상징하는 수라고도 하고 또 창조와 완성을 나타내는 수로 쓰인다. 또한 10은 귀신을 쫓는 수이기도 하다. 그 결과 로마에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임으로써 최대 악귀를 쫓아냈다고 생각한 것이고 예수님 입장에서는 구원의 완성이란 의미로 십자가에 매달린 것이다.
‘10’이란 수는 어떤 것의 ‘충만, 완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담고 있는 창세기 1장엔 ‘God said’란 문구가 10번 나온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마치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란 구절이 영어 10단어로 구성된 것처럼, 10은 충만함을 의미하는 숫자다. 이집트에 내려진 10개의 재앙이 심판의 충만함을 나타낸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나라와 민족을 뜻할 때 ‘열국’, ‘열방’으로 표현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이런 숫자학 차원에서 고수부의 제1수필집『댓돌 위의 갈색 구두』에서부터, 『진주반지』 『「아침 한 때의 행복』 『손자의 비밀』 『아내』『석양에 물든 가을 바다』 『Beautiful Story(아름다운 이야기)』『이 모습 이대로』 『추억의 집』 에 이어 10번째로 나오는 『길에 선 나무는 웃지 않는다』 는 본격수필들로 충만한 그런 수필집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갖는다고 하겠다.
Ⅱ.
고수부는 2003년 <순수문학>으로 등단하였으니, 올해로 등단 20년 차를 맞는다. 순수문학회 상임이사,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한국본부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창작의 기쁨으로 제2의 인생을 행복하게 누리고 있는 그는 고려대학교 산림자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영어교육학 석사를 취득하였다. ROTC 3기로 맹호부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참가하였고, 미 육군공병학교 측지과정을 수료하고, 미8군 JUSMAG-K 연락장교로 복무하였으며,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국방부 관리정보실 육군 중령으로 예편, 전쟁기념관 학예관을 끝으로 정년 퇴임하였다. 국무총리 표창장, 대통령 표창장, 순수문학 우수상,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글쓰기는 선비정신을 계승하는 작업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리하여 문인은 마땅히 옛날의 선비와 같이 ‘세속에 물들지 않고, 인기에 영합하지 않으며, 높은 경지에 홀로 서서 자기의 줏대를 굳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읽을 가치도 없는 글을 써서 활자화하는 것은 사회 재산의 낭비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사람은 독자에게 아무 울림도 줄 수 없는 글은 발표해서는 안 된다. 독자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 것은 큰 죄다. 옛날에는 세 가지 삼상의 문학이 존재했다. 침상의 문학은 철학하는 사색의 글이고, 우상의 문학은 자연과 인생에 대한 관조의 세계를 보여주는 글이고, 측상의 문학은 배설의 욕구를 언어로 쓴 글이다. 고수부의 수필은 문학창작 과정에서 미적 울림을 창조하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감동전략을 구사하여 쓴 글인 만큼 독자들은 수필집을 읽어나가면서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리라 믿는다.
이번 발문에서는 작가가 이중 층위를 활용하여 창작한 몇 편의 작품 분석을 양자역학 이론에 기대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요즘 양자역학이 공중부양되고 있다. 양자역학이론을 고수부 수필의 이중구조화 전략에 응용해 보면, 어떨까싶다. 고전역학의 핵심이 미래예측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면,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평자는 양자역학의 원리만 알아도 차원이 다른 수필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문학의 주이야기, 글감 하나로 글을 쓰면 단순구조라서 복잡성을 갖지 못하고, 스토리 정도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예술성이란 복잡한 구성에서 나온다.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쓴 문학이 감동을 견인하는 문학성을 가지려면 하나의 이야기를 덧씌워 이야기를 이중구조로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이론이다.
양자역학적으로 이야기하면, 하나의 이야기가 입자라면, 여기에 파동을 덧씌워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물질은 입자이면서 파동이다. 빛은 알갱이면서 파동이다. 빛의 이중성을 문학 글의 구조에 적용시켜 보자는 것이다. 즉 문학의 이중성이란 원자와 전자의 관계이거나, 입자이면서 파동으로 이해된다. 고수부는 진정한 울림을 주기 위해, 문학적 상상력을 통한 방법을 잘 활용하고 있다. 질 좋은 작품은 독자의 상상력을 촉발시키고 정서와 사상을 고양시킨다. 고수부 수필 텍스트가 주는 감동은 그 구조로부터 나오는 미적 울림이다. 이야기의 메커니즘을 구축해주는 미적 배열의 핵심원리는 스토리를 이중 층위로 변형시키는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이때 스토리는 고수부 작가가 자신의 체험 속에서 선택한 글감으로써 아직 미적으로 변형되지 않은 원소재를 가리킨다.
문학의 원리는 메타포의 원리다. 변용, 전이 치환의 미학은 감동의 바로미터다. 중층구조를 갖는 문학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표층차원에서 작가가 수행해야 할 과제는 심층차원에서 획득한 제재의 성찰결과를 감동적인 이야기질서로 이중구조화하는 일이다. 고수부 수필가는 항상 자신의 작품에 본격수필시학을 접맥하려 한다. 한국현대문학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문제는 제재의 통찰 결과를 미적인 이야기로 이중구조화, x축과 y축으로 이원화하는 이야기 배열작업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야기의 미적 구조화에 대한 경시결과는 곧 작품의 미학성을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고수부 작가의 중층구조 활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이야기의 미적 배열은 독자를 감동의 세계로 이끄는 의미구조의 생성원리일 뿐만 아니라, 주제를 형상화하는 미적 원리라는 점에서 고수부 수필창작 원리의 핵심 부분을 차지한다.
책을 여러 권 펴냈더니 주위에서 칭찬도 많이 하고 수필작가라고 불러주었다. 하지만 아직도 글쓰기에 자신이 없는 것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매 한 가지다. 글쓰기는 동아리 모임과 함께 공부하면서 글을 써야지 혼자는 글이 써지지를 않았다. 처음 찾아갔던 용산문화원 수필반은 이런저런 이유로 해체되고 그후 마땅히 글공부할 곳을 찾지 못해 한동안 방황했다. 그러던 중 마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에서 본격수필론 저자인 권대근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되는 기회가 주어졌다. 여기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수필공부를 하게 되었다.
<제10집을 내면서>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고수부 수필가는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에 나가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수필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본격수필은 누구나의 글이 아니라 누군가의 글이다. 아무나 시도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써낼 수는 없는 글이 본격수필인 것이다. 고수부는 서문에서 또 “지금까지는 ‘수필은 붓가는 대로 쓰는 것이다’라는 이론에 따라 무조건 다작에만 몰두했으나 본격수필에서는 ‘수필은 문학이요, 문학은 언어로 하는 예술이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 해도 예술성이 없으면 문학이 아니요, 문학성이 없으면 유명한 수필가가 쓴 글이라 해도 수필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번 작품은 최대한 문학성을 살려 썼다.”고 하면서도 “그렇다고 단번에 그런 문학적인 글이 나올 리는 만무하고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며, 본격문학의 완성하는 날을 미래의 어느 날로 남겨두었다. 서두를 것이 없다는 의미다. 본격문학의 완성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 평자는 그가 걷는 본격문학가의 길을 지켜보며 격려와 박수를 보낼 뿐이다.
글쓰기를 생의 후반기 제2의 인생 목표로 정하기를 잘했다.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져 지금은 은퇴 이후에도 2〜30년을 더 살 수 있다. 글을 씀으로써 가슴 속에 있는 느낌, 사상, 삶의 의미 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만족감과 희열을 느낀다. 베란다에 핀 꽃 한 송이를 보고 감동하여 글 한 편을 만들어낸다. 그 감동을 글로 표현했을 때 결과물에서 느끼는 감동의 효과는 배가된다. 무엇이나 열중하고 몰입할 때 잡념이 없어지고 정신건강에 좋다. 언제 어디서나 내 머리 속에는 다음 주에는 어떤 소재로 글을 쓸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 다른 생각들이 들어올 틈이 없다. 한 가지 주제를 잡으면 그것을 붙들고 하루 이틀 아니 한 주 내내 늘어진다. 일단 글 한 편을 쓰고 나면 문장이 도무지 마음에 안 들어 계속 퇴고를 반복한다. 하룻밤 자고 고치고 그 다음 날도 수정하며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점점 글이 부드러워진다. 처음엔 탁한 물이었던 것이 여러 번 물갈이를 통해 맑은 샘물이 나오듯 산뜻한 글 한 편이 나온다. 그 순간의 희열, 완성했다는 성취감은 그것을 한번이라도 느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조의 순간, 뇌에서는 행복과 기쁨의 엔드로핀이 대량 분비된다.
오래 전에 나는 수필지도를 하면서, 고수부 선생님께 “선생님, 지금부터 10년 안에 장수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알약이 나올 것입니다. 건강관리 잘 하십시오.”라고 부탁한 바가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글쓰기’를 인생 후반기의 목표로 정하고, 창작을 통해 삶의 희열을 맛보고 있다는 진술에서, 평자는 수필의 지도교수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행복과 나눔에서 얻는 기쁨과 자연에서 얻는 영감, 믿음에서 구하는 평화 등도 전부 소중한 가치이고, 그가 추구하는 바이지만 그래도 글쓰기에 대한 집념과 몰입에 상대할 가치가 못된다. 그만큼 그가 글쓰기에 거는 기대와 글쓰기를 향한 열망은 어떤 사람도 따라 잡을 수 없을 만큼 강하고, 누구보다도 진실하고 뜨겁다. 나는 이렇게까지 수필을 사랑하고, 수필에 애정을 쏟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거의 2년에 한 권씩 수필집을 낸 것이니, 한 달에 2편 정도 수필을 썼다고 할 수 있다. 10권이나 되는 수필집 발간은 그의 성실성이 이루어낸 쾌거라 하겠다. 성실성을 이길 어떤 가치는 없다. 중용에서 말하는 ‘능구’는 성실의 다른 말이다. 반복되는 퇴고와 수정, 변형과 보수는 더 나은 글로 그에게 보답한다. 그는 이런 수정의 결과를 ‘처음엔 탁한 물이었던 것이 여러 번 물갈이를 통해 맑은 샘물이 나오듯’이란 비유를 써서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대학 졸업과 함께 ROTC장교로 임관하여 장기복무를 지원했고 군에서 장군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것도 별 네 개를 어깨에 단 4성 장군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대령도 못되고 중령에서 끝났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한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더라면 그마저도 달성 못한 채 중도 하차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수필을 쓰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베스트셀러 명수필집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나의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목표를 세우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간다면 안 될 일도 없지 않은가. 이순신 장군에게 열두 척의 배가 있었다면 나에게는 한 권의 책 『신념의 마력』이 있다.
- <푯대>
위 고수부 수필의 문학성은 형식이나 구조에서 나온다. 심층과 표층, 그리고 담론층이 유기적으로 생성하는 입체구조와 미적 배열의 핵심원리를 체험 ->해석 -> 형상화로 이어지는 삼 단계 과정의 유기성에서 찾을 수 있다. 삼 차원으로 전개되며 생성되는 수필 텍스트의 창조과정을 좀더 쉽게 설명하면, 체험은 한 일, 본 일에 해당하고, 해석에는 생각, 느낌이 들어간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단계인데, 그는 자기 삶의 목표인 ‘베스트셀러 수필집 만드는 것’을 체험과 해석을 압축하여 문학원리에 따라 지배적 인상, 즉 ‘이순신 장군에게 열두 척의 배가 있었다면 나에게는 한 권의 책 『신념의 마력』이 있다.’로 치환함으로써 한 편의 본격수필을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본격수필로 완성되려면 반드시 체험과 해석을 종합하여 형상적 체험으로의 변용을 시도해야 하는데, 그것이 수필의 문학적 성취에 가장 중요한 역할인 지배적 인상심기라 하겠다. 결국 이러한 작업이 제재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구조화하여 예술적 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는 결말에 가서 주제의식을 의미화하기 전에, 주제의식의 구체화를 전개부 마지막 단락에서 펼쳐놓는데, 이는 독자들이 주제를 보다 더 잘 파악하도록 하는 배려로 전략적 배치라 할 수 있다. 만약에 “그래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목표를 크게 세우고 성공한 모습의 자화상을 마음속에 그리고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청년시절부터 하나의 신념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신념은 한 권의 책이 밑거름이 되었다. 그것은 C.M.브리스톨의 『신념의 마력』이라는 책이다. 이 책을 수없이 반복하여 읽고 또 읽으면서 신념을 다졌다. 저자는 한 가지 원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라고 역설한다. 무엇이든 믿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신념을 강조했고 나는 그 말을 믿고 노력했다.”라는 구체적인 예시가 결말부 주제의식의 의미화 앞에 없었다면, 이 수필은 맥이 빠져서 감동의 고지로 독자를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을 것이다. 이런 이중 층위가 고수부 수필의 문학적 성취를 돕는다고 하겠다.
이승헌 씨가 쓴 『나는 120세까지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예화가 있다. ‘2015년에 92세로 최고령 여성 마라톤 완주자가 된 미국 산디에고의 헤리엇 톰프슨은 76세에 처음 마라톤을 완주해 보겠다고 결심했다. 피아니스트이자 암생존자였던 그녀는 그 결심 이후 거의 해마다 백혈병 임파종학회를 위한 기금마련 마라톤대회에 출전하여 16년 동안 10만 달러 기금을 모았다. 그녀는 마라톤 종주 기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한 번도 달리기 트레이닝을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면 노력하면 불가능이란 없다. 인간의 생각을 초월한 성경의 말씀 속에는 기적의 힘이 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 : 13).’ 라는 말씀에 의존하여 내 비록 나이 많지만 지금부터 노력하여 92세에 베스트셀러 명수필집을 만들어야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 <흙에 묻은 진주>
글쓰기의 기본은 나와 나를 위요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해석에서 출발한다. 세계란 사물뿐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건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세계라고 하는 텍스트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해석은 해석으로 끝나지 않는다. 설혹 그런 경우가 있더라도 그 해석된 내용이 구체적 형체를 갖추는 단계까지 올라가야 한 편의 글이 완성되는 것이다. 고수부는 “내 비록 나이 많지만 지금부터 노력하여 92세에 베스트셀러 명수필집을 만들어야겠다는 상상”이 상상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가능태로 보이게 하기 위해 이승헌 씨가 쓴 『나는 120세까지 살기로 했다』라는 책에 나오는 미국 산디에고의 헤리엇 톰프슨의 76세에 처음 마라톤을 완주해 보겠다고 결심해서 2015년에 92세로 최고령 여성 마라톤 완주자가 된 예화를 메인 아이디어에 스포팅했다. 이렇게 이중구조를 활용해 자신의 상상이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님을 증명하며 독자를 설득해 나가는 방법은 고도로 훈련된 작가의 감동전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형상화란 추상적 개념을 구체화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구체적 사물이라도 위와 같이 그것을 감각적으로 강화시킬 경우에 적용된다.
이 카페를 만들 때 목사님은 이름을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물댄동산’이다. 이는 성경 이사야서 58장 11절에서 따온 단어이다.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우리 교회에서는 예배를 마치고 맨 마지막에 온 성도가 합창하는 노래가 ‘물댄 동산’이다. “주님 너를 항상 인도하시리/ 매마른 땅에서도 너를 만족시키리/너는 물댄동산 같겠고/마르지 않은 샘 같으리/너는 물댄동산 같겠고/마르지 않는 샘 같으리”
예배가 끝날 때 전 교인이 손을 흔들며 서로 마주보고 이 노래를 부르면 메말랐던 영혼에 맑은 샘물이 솟아난다. 아무리 세상이 말라 비틀어졌어도 여기에 오면 항상 물이 끊어지지 않는다. 메마른 세상에서 땀 흘리며 수고한 끝에 목말라 갈증을 느끼거든 이 곳 약수동 신일교회 ‘물댄동산’으로 오시라. 당신은 물댄동산 같겠고 마르지 않는 샘 같이 되리라.
- <물댄 동산>
위 수필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한 교회에 30여 년을 다녔다면, 신앙심이 얼마나 깊은지는 알고도 넘친다. 그는 교회 예배를 마치면, ‘물댄 동산’이란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하기에 바쁘다. 테이블에 자리 잡고 ‘서너 명의 성도님들과 이야기의 꽃을 피우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한나절을 보냈다.’는 건 그만큼 다니는 교회에 대한 애착이 크다는 걸 말해준다. 당연히 전도와 선교도 열심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예배가 끝날 때면, ‘전 교인이 손을 흔들며 서로 마주 보고 이 노래를 부르면 메말랐던 영혼에 맑은 샘물이 솟아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말라 비틀어졌어도 여기에 오면 항상 물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그는 전도 이상의 힘을 갖는 문장을 수필에 쏟아붓는다. 직설적인 발화는 우리에게 별 다른 감동을 전달하지 못한다. 하지만 고수부처럼 비유를 써서 이중구조로 나타내는 경우, 직설적으로 이야기했을 때보다 더욱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의 언술 양상은 이미지가 전달하는 미적 감각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이미지는 단순히 장면을 재현하는 차원을 넘어 지배적인 정황dominant impression을 제시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즉 구조화에 의해 성패가 갈린다. 묘사와 설명은 미적 인식의 측면에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 고수부는 미적 묘사, 즉 이중구조라는 전략을 통해 우리의 미적 인식을 자극하여 감동을 준다.
이 중에서도 특히 노년건강에 있어서 긍정적 사고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해도 우울증이나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그것만으로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늦었지만 수필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편의 수필을 완성하기 위해 독서를 하고 사색을 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가운데에 정신은 활기를 띠게 되고 사고는 긍정적으로 바뀌게 된다.
수명이 연장된 100세 시대에 건강을 잃고 불행한 노후를 보낼 것인가 아니면 건강하게 축복된 노후를 맞이할 것인가. 이는 건강관리를 얼마나 잘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즉 긍정적 사고,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휴식, 균형 잡힌 영양 이 네 가지를 조화롭게 실천하는 자에게 건강한 노후가 보장된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노력하는 자에게 건강이 주어지는 것이다. 노년은 평등하게 오지만 노화는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
<노년과 노화>
이 수필의 압권은 마지막 한 줄의 문장, ‘노력하는 자에게 건강이 주어지는 것이다. 노년은 평등하게 오지만 노화는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이다. 노년과 노화라는 개념을 동등하게 놓고도 그 둘의 접근방법이 다르다는 역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누구나 노화는 노년에 자동으로 따라오는 현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반전이나 역설을 통한 주제의식의 의미화에 앞서 이번에도 설득을 위한 밑밥을 잘 뿌려놓았다. 이를테면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노력하는 자에게 건강이 주어지는 것이다.’라는 전제다. 어떤 판단이든 한 판단을 토대로 해서 내릴 때 논리적 정당성을 갖는다. 고수부의 문장은 논리적인 구조로 짜여져 어떤 수필보다도 설득력이 있다. 수필의 설득력은 가슴과 머리를 동시에 겨냥한다. 수필의 논리적 구조는 현대수필에서 필수적이다. 판단의 논거 가 되는 근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주제와 관련성이 있으면 더욱 더 좋다. ‘긍정적 사고,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휴식, 균형 잡힌 영양 이 네 가지를 조화롭게 실천하는 자에게 건강한 노후가 보장된다.’는 진술도 ‘노년은 평등하게 오지만, 노화는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는 명제를 잘 뒷받침하는 전제다. 고수부는 ‘노년’과 ‘노화’를 견주고, 다시 여기에 ‘노후’라는 개념을 추가하여 건강하고 축복된 노후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하는 문제에 답을 던지고자 한 의도를 잘 관철시켰다고 하겠다.
그러기에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보를 만들고 댐과 둑을 설치하는 것처럼 마음의 강에도 인격의 댐과 수양의 둑을 높게 쌓아 마음 그릇을 크게 해야 할 것 같다. 그러기에 사람도 인격과 수양이 잘 된 사람을 그릇이 크다고 비유적으로 말하지 않는가. 자연의 둑을 쌓기 위해서는 모래, 자갈, 시멘트가 재료로 들어가지만 마음의 둑을 쌓기 위해선 문학, 철학, 신앙 등 인문학이 재료가 되어야 하리라.
자연의 지산 치수 정책이 국가 백년대계인 것처럼 마음의 강을 다스리기 위한 인격의 댐, 수양의 둑을 쌓기 위한 준비도 평생토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에서 수필문학을 공부하는 행위 역시 인격 수양의 댐과 교양의 둑을 쌓기 위한 일환이 아닐까.
- <둑>
위의 수필은 고수부 수필집의 제일 마지막에 있는 작품이다. 양자역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자연의 둑’ 이야기가 입자라면, 여기에 ‘마음의 둑’ 이야기는 파동이다. 고수부는 빛의 이중성이라는 양자역학의 이론을 수필창작에 적용하여, 입자에 파동을 덧씌웠다. 모든 물질은 입자이면서 파동이다. 빛은 알갱이면서 파동이다. 빛의 이중성을 수필의 제재인 ‘둑’의 구조에 적용시킨 것이다. 즉 문학의 이중성이란 원자와 전자의 관계이거나, 입자이면서 파동으로 이해된다. 고수부 수필의 멋과 맛은 수필의 구조를 이중 층위로 변형시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대상, 같은 소재, 같은 장소, 같은 공간, 같은 분위기를 두고도 주관적 해석은 각기 개인화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되고 있는 대부분의 고수부 수필들은 예외 없이 개인적 내면체험을 빌어 메시지의 이중성을 통해 정서적 환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이중 층위는 각기 중층에도 불구하고 수필이 정서에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이때 환기하는 정서가 정서의 직접적인 표출이 아닌 문학적 변용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수필은 작가의 비범한 현실인식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수필집의 마지막을 충분히 장식할 수 있다. ‘마음의 강을 다스리기 위한 인격의 댐, 수양의 둑을 쌓기 위한 준비도 평생토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작가의 주장은, ‘수양’의 다른 표시다. 고수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에서 수필문학을 공부하는 행위 역시 인격 수양의 댐과 교양의 둑을 쌓기 위한 일환이 아닐까.’ 하며, 더 깊이 나아가 실천적인 명제를 제시하며, 설득력을 재고한다. 재해석을 통해 메시지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 수필은 우리 사회가 정신적인 면에서 어둡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서 작가의 의식이 빛난다. 도구화된 이성 하에서 물질의 노예가 되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세속화된 인간의 슬픈 현실을 잘 묘사하고 있다. ‘마음의 둑’이 무너지면,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현실을 이 수필은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둑이 무너져 정신을 잃고 자신의 영토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내면의 어둠을 목격하고 그것을 읽어내고 역설적이게도 성숙의 길을 제시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는 물론 성취도 빛난다고 하겠다.
Ⅲ.
고수부 수필가는 감각을 통해 자아를 포함한 세계와 만나고, 독자는 감각을 통해 수필과 교감한다. 수필가는 수필을 쓰면서 감동의 고지를 오르기 가장 쉬운 전략을 선택하고, 자신이 선택한 전략적 방법을 통하여 자연적으로 주제를 문학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선택하는 제재는 의식의 지향성에 의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와 가장 밀접관 사물이나 상황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긍정적인 사고’ ‘성실한 자세‘ 등의 화두는 그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코드화된 어휘들이다. 특히 고수부의 수필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삶의 진리를 담고 있어 좋다. 수필은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현실적 요소에 필수적으로 인간적인 요소가 가미될 때 그 지점에서 비로소 수필이 문학이 되는 것이다. 수필가는 언제나 깨어 있는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존재다. 그러나 육안은 사물의 겉만 볼 수 있다. 그의 수필은 첫수필집에서 열 번째 수필집으로 나아가면서 다른 많은 변화를 보인다. 무엇보다도 본격수필의 이론을 관통하면서, 문학적 성취가 빛난다.
이런 질적 변화는 고수부의 본격수필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결과라 하겠다. 고수부 수필가는 이중 층위의 활용으로 목표영역을 잘 변용시켜 자신의 수필시학을 완성했다. 이 수필집에는 곳곳에 비유가 있음으로 독자들은 한층 문학적으로 확장된 맥락에서 수필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삶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대상을 응시하고, 그 대상을 직접적인 수필의 대상으로 삼아 미적 경로라는 프리즘을 가지고 응시하는 고수부 수필가의 미의식이야말로 바로 수필을 쓸 때 기본으로 삼아야 할 자양분이 아닐 수 없다. 가슴에 문을 닫고 나와 나와 식물, 나와 동물 사이에 벽을 높이는 단절의 공간에서 자기도취에 만족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현대인이라면 고수부는 가슴과 눈을 열어 세상이 보내는 발신음을 듣고자 세계 속에서 언제나 내포적 자아를 취한다. 여러 가지 형상으로 다가오는 현상을 직관하고, 정서적 반응을 보이며, 현상의 속살을 환히 볼 수 있는 영안을 가졌기에 그가 창조해낸 창작물은 결코 예사로울 수가 없다. 이 수필집은 아직 베스트셀러는 아닐지라도 베스트에세이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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