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어젯 밤부터 내리든 비는 정오가 된 지금까지 그치지않네요 창문 밖에서 언제나 나를 기두리던 모악산 봉우리도 비 안개를 흠뻑 뒤집어 안은채 숨어 아무리 찾으려해도 흔적조차 찾을수없네요 오늘처럼 비 내리는 날이면 스위스 은행에 보관중인 내 마음에 보석 1호를 아무도 몰래 꺼내보는 습관이있지요.
그 동안 모아놓은 하늘에 울음보 연못이 터져 한꺼번에 쏟아지는가 봐요. 때론 세차게 어쩔 땐 숨어 울듯 그리고 한숨 쉬듯 다시 숨을 고르고 울고 또 울어 울음보 연못을 비우는 하늘님 어제부터 낼 모레 글피까지 하늘님 울음비가 내린다고 하네요. 몬순이 찾아오는 유월너머 칠월에 고개를 넘고 할매 다리 쉼하듯 내리는 비를 인간들은 장마라 부르지요 장마는 여름을 살찌우고 더위를 데려 와 열매를 키우며 온갖 생물의 천국을 만들어가죠. 내 유년에 시절 夏至(하지)가 시작되어 장마가 찾아 오면 하지에 수확을 한다고 하지 감자라고 불린 텃밭에 심어 가꾸던 감자를 모두 캐어 헛간에 멍석을 펴고 그 위에 계란닮은 감자를 쏟아 부어놓고 참으로 먹을 것 없었던 시절 오늘처럼 비 내리는 날 감자의 겉옷을 홀랑벗겨 주먹만한 감자는 반으로 쪼개고 알맞은 감자는 통으로 넣어 가마 솥에 적당히 물을넣고 사기 대접에 사카린 풀어 누나의 살색같은 감자에 골고루 뿌리고 마지막 남은 가장 중요한 감자의 맛을 가르는 유기 대접 그릇 솥 한 가운데 거꾸로 넣어 불쌈도 없는 보릿대를 아궁이에 넣어 불을 지피고 솥 안에 끓는 동정을 살피며 유기 그릇의 신호에 따라 불 때기를 멈추면 잘 익은 감자늗 구미를 당기고 또 당겼죠.
감자의 한쪽은 균열이 가고 다른 한쪽은 노릇노릇 불기에 탄 흔적이 남는 포근포근 찐 감자는 넘 맛이 있었지요. 나는 식지도 않은 감자를 솥 안에서 꺼내 달라고 보채면 나의 생떼에 못이겨 할머니는 솥 뚜껑을 열고 놋쇠 젓가락으로 감자 몸땡이를 꾹꾹 찔러보고 야 이눔아! 식지도 않했는데 벌써 먹을라고 하냐 입 천장 댄게 조심히서 먹어라 하면서 접시에 서너알 꺼내주면
사카리 물을 풀어 찐 감자가 덜 달다고 사카리 몇개를 더 넣어 양푼 안에 감자를 숫가락으로 짓이겨 퍼 먹던 내 유년에 시절 넘 행복했지요 할머니가 있어 행복했구요 할머니의 삼베 저고리와 치마에 언제나 묻어있는 여름 냄새가 있어 행복했구요 여름을 나누는 할머니가 있어 더 행복했답니다. 반 고흐에 감자먹는 사람들의 그림을 보았을 때 먹는 삶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음을 알았을 때 생존을 위해 먹는 것과 즐거움과 같이 먹는 것에 대한 論文(논문)도 발표할까 했지만.... 순 뻥이구요 ㅎㅎ 어렸을 적 내 이름은 개천이 였거든요 그러니까 개천이는 川(천) 보다는 작고 또랑보다는 조금 크고 중간 쯤 크기의 물이 흐르는 곳이 개천인데 그런 개천이죠 開天(개천)이 아니구요 ㅎㅎㅎㅎㅎ 할머니는 지게 작대기 서너개 뉘어놓은 넓이의 고샅을 사이에 둔 이웃 공자네 집에 감자를 찌는 날엔 노란 양푼 가득 감자를 담아 심부름을 시키켰는데요 그날도 어김없이
공자네 집에 감자 심부름을 시켰지요. 행여 빗 방울이 맛있게 찐 감자 위에 감자가 맞을까 봐 삼베 보자기로 덮은 감자를 들고 공자네 집에 종종 걸음으로 가지고 갔지요 공자는 나보다 두세살 나이가 많았지요 나는 초딩학교에 들어가기 전 이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도 공자는 예뻣어요 까만 단발머리 갸름한 얼굴 커다란 눈 오똑한 코 도톰하면서 핑크색 도는 입술 귀밑머리 아래 솜털 가냘픈 몸매 여나믄 살의 공자 예닐곱 나에겐 어머니 다음 이성을 느낀 첫 사랑이었지요 오늘처럼 장맛비는 쉼없이 내리고 초가 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은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고 감자 그릇을 들고 촐랑거리며 찾아 간 공자네 집엔 그의 어머니와 마루에 앉아 다림질을 하고 있었지요 덮개가 없는 민둥 동그라한 숯다리미로 공자는 어머니가 다림질하는 옷감을 잡아달라는데로 바지 저고리 쫙 펴 잡아 주고있었지요 그 땐요 어머니 할머니들은 날마다 한짐 세탁을 하구요 그 세탁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건사하여 다림질을 해야만 했거든요 다름질만 하는 것이 아니었지요 다름질 전 모든 옷가지들은 요 다듬이질을 해야했어요 모시나 삼베 옷은 풀을 먹여 가볍게 다듬이질 약한 불에 다름질 무명은 세게 다듬이질 그리고 다림질도 불기 세게 이런 일들이 내 유년에 시절 할매 어매가 늘 해 오는 일이었지요 88 올림픽 때 다듬이 소리는 한국에 소리라고 폐회식 때 그 소리가 전 세계인이 가득찬 운동장에 울려 퍼졌죠 한국에 소리라고 이 어령 선생이 KBS 백년의 서재에서도 다시 되풀이하는 우리에 소리는 다듬이질 소리라고... 난 동의하지 못해요 이 어령 샌님의 말을...... 다듬이질 소리는 우리들 할매 어매들 인고의 소리지 한국의 소리가 아니죠 이 어령 샌님은 조상부터 대대로 금수저 출신이라 소리의 어원을 너무도 모르지요 당신의 할매 어매는 다림질 다듬이질을 하지 않했으니까 그 소리 천상에 소리 한국의 소리로 밖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야기가 엇박자를 맞췄군요 공자는 비를 맞고 감자를 가지고 온 나를 보고 어서 와 비 맞았구나 하면서 오매 우리 감자 먹고하자 하고는
붙들고 있던 모시 바지 끝을 놓아버리자 야 요년아! 다리미 숯불 다시 피우고 옷 다리기가 얼맹큼 힘든데 냉큼 끝내고 먹자며 하든 일을 계속했는데 나는 옆에 앉아 어린 나이에 힘에 부쳐 다림질을 도우는 공자의 얼굴이 땀으로 범벅되어 귀밑 머리까지 젖은 그녀의 하얀 목 선에서 이성의 목마름이 전해 오기도했지요. 공자네 아버지는 인테리였지요 왜정 때 대학까지 다닌 아버지는 동양척칙회사에 취직해 부유하게 살았죠 그 시절 하이칼라였죠 늘씬한 키에 이지적인 잘 생긴 얼굴 좋은 직장에 늘 여유로웠죠. 술집 어디를 가두 기생집에 가두 심지어 막걸리 파는 주막에 가두 그를 따르는 여인네들이 가득했다 하는데요 공자의 어머니도 선이 고운 여인이었어요 양친 모두가 선남 선녀여서 공자가 이뻣나 바요 그러다 해방이되고 일본인이 물러 가고 회사는 없어지고 가산은 기울고 도박에 빠져 폐인이 되다시피 하여 진즉부터 눈이 맞아 살아온 작은이 집에 기거하며 본 댁 공자네 집엔 발걸음도 하지않고 늘 힘든 일만 공자 어머니에게 시켰죠 여름 엔 모시 옷 삼베 옷 손질 철이 바뀌면 이불 세탁을하며 솜을 틀고 이불을 깁고 홑창을 씌우고 내의 옷 가지 세탁도.... 반찬 준비까지 도맡아 하는 본 댁 공자 위로 언니 둘에 오빠 하나가 있었고 아래로 세명의 남 동생 칠남매였죠 돌보지 않는 아버지 언니 둘은 일찌기 출가를 하였지요 그래서 공자는 어머니와 같이 어린 나이에 가삿일을 거드렀죠. 공자! 그 때 초딩 2학년 핵교 구경도 못한 난 코흘리개 개구장이 난 공자가 넘 좋았어요 학교에서 공자가 돌아오면 불이나케 공자네 집에 갔지요 그리고 괜히 심술을 부렸지요 책 감추기 공책 감추기 연필 감추기 옷도 감췄지요 그가 어디다 감췄냐구 물어도 난 웃기만 할뿐 쉽게 알려주지 않했죠 그러면 공자는 상고머리 내 머리칼을 잡아 당기며 말 안할래? 하고 다그치죠 난 그의 품에 파고들면서 누나야! 니 참 좋다하면 야 징그럽다 저리가라............. 공자는 학교를 졸업하고 누구의 소개로 잘 사는 집에 보모로 갔었는데 결국 그 집 며느리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답니다 심성이 좋아 착하고 부모를 닮아 예쁘고 손끝이 매워 살림 잘하고 이런 규수를 어디서 찾겠어요 장마가 져 진 종일 비 내리면 처마에 떨어지는 낙숫물 낙숫물이 만드는 동그라미 할머니 얼굴이 감자 모양과 겹치고 공자의 흐릿한 얼굴이 떠 오르지요 아마 이게 나에게는 첫 사랑인거 같아요. 첫 사랑은 연상의 여자라는데 나두 비켜가지 못하는군요. 비 오는 일요일 밤 추억을 깨우는 부드러운 맥주를 마시면서 된소리 민 소리 약한 소리 늘어놨네요 음악 한 곡 SCARBOROUGH FAIR ( 스카보로의 추억이네요) ㅎ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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