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도에서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쪽빛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일찍이 한산도에서 여수까지를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이유를 알 것 같다. 통영항을 벗어난 여객선이 매물도를 향해 10여km를 내달릴 때까지 섬과 섬을 건너 뛰는 송전선로가 관측되더니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거리가 멀고 수용호수가 적으니 투자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가 개발되어 섬 사람들은 그 혜택을 두루 누리고 있으리라.
단체로 12명이 오른 우리 일행을 제외하면 여객선 승객은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다. 여객선상사로선 선박이 중간에 들르는 섬에서 주문한 생필품을 배송하는 것도 영업수익에 도움이 될 터이다. 물품을 배에 싣고 내리는 일꾼들도 서넛이나 붙었으니 인건비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세금을 좀 들이더라도 관광명소를 정기적으로 오가는 배편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름다운 섬 비진도에다 소주와 맥주상자를 잔뜩 내리고 배는 다시 출발했다.
소매물도 비경을 처음 접한 건 용역으로 업무를 맡아 영남지역을 돌면서였다. 업무량이 가벼운데도 시험장비가 장착된 차량이 있다보니 지나는 곳 인근의 비경을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그 뒤 소속 문인단체에서도 방문했고 부활절 지난 후엔 10여 명 은퇴사제 후원회에서 엠마오로 찾으면서 승합차 운전과 사진촬영을 맡았었다. 세 차례 모두 날씨가 흐리거나 강풍이 불었는데 오늘은 활짝 갠 하늘이 축복처럼 느껴진다.
부산을 출발할 땐 날씨가 흐렸고 기상예보도 내일까지 맑지 않을 거라고 했다. 여행에서 날씨가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높다. 흐리면 제대로 비경을 관람할 수 없는데다 기념으로 남길 사진마저도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비가 여행길을 우울하게 만드는 일이다. 비바람 몰아치는 섬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매물도 섬사람들에게 전기를 공급하느라 29년을 매달렸다는 L소장은 무심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지만 그가 겪은 고난은 짐작할 수가 있다.
도서발전사엄을 맡은 JBC에서도 도서지역 현직 근무자 격려차 우릴 방문토록 한 행사도 그런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등대지기 삶이 교도소 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하듯 섬에 갇혀 망망한 바다만 바라보며 산다면 그 애환 또한 얼마나 견디기 힘들 것인가. L소장을 초청한 만찬장에선 현직 때의 기억을 더듬어 '백두산 줄기따라'로 시작되는 사가社歌를 불렀고 애국가는 4절까지 제창하느라 노랫말이 앞뒤로 바뀌기도 했다.
섬사람들의 분노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큰돈을 들여 멋진 펜션을 짓고 편의점을 여는 때문이란다. 그 바람에 서로 갈등이 깊어져 감시까지 한다는 것. 음식점에서 식사 후 커피를 제공하면 카페에 장사가 되지 않으니 못하게 막는 식이다. 편의점이 상품을 쌓아놓고도 감시의 눈초리가 겁나 마음대로 팔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 심각성을 섬을 방문한 나그네가 우려할 정도이니 당사자들이야 오죽할까.
매물도에선 기암괴석과 총석단애가 절경인 소매물도와 등대섬 비경이 단연 압권이다. 용바위와 부처바위 거북바위 촛대바위 글씽이굴은 대자연의 박물관으로도 불린다. 거꾸로 등대섬에서 소매물도를 바라보면 기암괴석으로 이어진 바위들이 거대한 공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썰물일 때만 두 섬은 몽돌밭으로 이어져 건너다닐 수 있다. 섬 끄트머리 급경사 구간이 힘든 때문인지 우리 일행은 절반도 등대섬을 오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매물도 이름 유래는 옛날 척박한 땅에서도 재배 가능한 메밀이곳 방언으로 매물을 섬에서 재배한 때문이란다. 1904년경엔 김해김씨가 섬에 가면 굶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육지에서 이곳으로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해 나갔다는 기록이 전한다. 길 옆 집에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는 남녀 노인들도 김해김씨 후예가 아닐까 싶었다. 노파 다섯과 무심히 앉았던 할배는 행인이 섬 인구를 묻자 "이제 40명밖에 남지 않는다"며 고개를 돌렸다.
매물도를 다녀온 후 코로나로 미루어오던 OB-KEPCO 부산지회 체련대회를 열었다. 가을행사지만 보통 10월 중순을 넘기지 않는데 올핸 보름 정도 늦어졌다. 행사가 순조롭게 끝나고 인근 추어탕집에서 가진 오찬장에서 매물도발전소 L소장이 떠올랐다. 발전소 방문행사 때 그가 매물도에 29년 근무하는 동안 가장 많이 이곳 발전소를 챙겨준 당시 CEO 이름을 들었고 오늘 마침 본회의 회장으로서 그가 옆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던 것. 얘길 전해들은 당시 JBC사장은 자기가 오히려 일을 잘해준 소장에게 고맙다며 얘길 전한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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