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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 - 우리 차의 재조명
우리나라 차나무 분포에 관한 연구
- 북방한계지를 중심으로
박 용 구
경북대학교 임학과 교수
이 글은 2000년 5월 25일 경복궁 민속박물관에서 개최한 제1회 한국차학회 심포지움에서 발표된 논문이며 그중 일부를 발췌하였다.
우리나라의 차나무 분포지는 김재생(金在生), 김동연(金銅淵), 허인옥(許仁玉) 등 여러 학자들에 의해 널리 조사된 바 있다. 이를 종합하여
고찰해 보면 우리나라의 차 재배 북방한계지역은 서해안에 속해 있는
전라북도의 변산반도부터 동해안에 접해 있는 울산지역을 그은 선의
이남 전지역이라 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면 북위 34°30´~35°30´의 범위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들 범위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서는 차나무가 분포되어 있는 곳과 없는 곳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김동연은 전라북도의 금산사(金山寺)가 차 재배의 북방한계선이라 하였는데 이 금산사보다 북쪽인 전라북도 고창에 위치한 선운사에는 야생차가 있어 그 재배 면적을 늘리고 있는가 하면 그보다
남쪽에 위치한 전라북도의 내장사에서는 차나무를 찾아볼 수 없다.
같은 위도에 위치한 곳이라도 지형과 기상환경에 따라 차나무가 자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차나무 재배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즉 견당사 대렴이 828년에 중국에서 차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현재의 지리산에
심은 것이 우리 역사상 최초인데 이 차나무가 전북의 일부지역과 전남지역, 그리고 경상남도 지역에서 종자 번식을 되풀이하면서 여러
지역에 오랜 기간에 걸쳐 선발되어 적응된 것만이 살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재성(1968)은 우리나라 사찰에 심어져 있는 차나무 잎의
형질을 조사, 분석한 결과 중국 종에 속한 것으로 보고한 바 있다.
우리나라 차나무는 근세(1920~1930) 차밭을 형성하기 위하여 일본에서 들여온 도입종 차나무와 그 이전 수백년 간 우리의 기후와 풍토에
적용된 야생 차나무로 나눌 수 있다. 본 연구의 주요 내용을 간추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우리나라 차나무 분포지역의 최북단 한계는 35°13´인 김제군 금산사 일대로 알려져 왔는데 본 연구 결과, 익산군 웅포면 봉화산 남서쪽 계곡 임해사(臨海寺) 터로, 최북단 한계 북위 36°03´로 북상하였다.
② 익산의 야생 차나무는 우리나라 야생 차나무 중 수고가 높은 쪽에
속한다(2.5m~2.7m). 우리나라 차나무 중 키가 제일 큰 차나무(약
3m)는 통도사 금강계단 입구 서쪽에 있었으나 1985년 이전에 훼손되었고 현재는 돌산의 차나무와 밀양의 차나무, 봉화산의 차나무가 3m
미만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③ 익산의 야생차 집단은 우리나라 야생 차나무 중 상당히 좋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이곳 임해사는 익산 함라산의 숭림사(崇林寺)의 말사로 구전에 의하면 조선 초에 소실되었다고 하며 1486년에 발간된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그 후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이 지역은 임간도로 개설로 인하여 심하게 훼손되고 있는 중이다.
④ 이곳의 차나무는 예로부터 지금(1985)까지 차나무 야생지로 기록되었거나 발표되지 않은 곳이다. 『세종실록』을 비롯 『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등 문헌에 익산 지역까지 기록된 문헌은 없다.
그림에서 우리나라 최북단 차나무 분포지는 전북 익산군이며 동해안
지역의 최북단 분포지는 북위 35°34´인 울산(다운동) 지역이다.
연구자는 1982년부터 1985년까지, 그리고 1985년부터 2000년 현재까지 2차에
걸쳐 우리나라 차나무 분포지를 조사·연구하였다.
4개 도(광역시 포함)
47개 시·군 지역에서 조사·확인된 내용을 요약·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최초로 전북 익산지역이 차나무 분포지로 조사되었으며
그 위도는 36°03´였다.
둘째, 고문헌(『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에 토공지로 기록되었으나 현재 확인할 수 없는 단성, 함양 지역 등은 그동안 기후와 풍토조건으로 인하여 차나무가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승주의 낙안을 비롯 진주, 진해, 고성, 밀양 등의 여러 정황·여건으로 보아 차나무가 생장하고 있는 지역으로 판단된다.
넷째, 우리나라 야생 차나무는 주로 절(터) 주변에 많이 야생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이 완경사, 남향,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다섯째, 우리나라 야생 차나무 북방한계선은 익산, 순창, 곡성, 산청,
창원, 밀양, 울산을 잇는 선이다.
여섯째, 현존하고 있는 야생차 집단이 상당히 심하게 훼손되고 있어
야생 차나무 보호가 시급하다.
우리나라 차나무 북방한계지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 세계 다른 나라의 차나무 북방한계지 및 차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유래, 차나무 자생지에 대한 역사적 고찰, 차나무 생육환경 및 분포 등에 대해 조사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 차가 생산되고 있는 산지를 정리해 놓은
것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35개소,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37개소, 『조선의 선과 차』에는 28개소가 차를 재배하는 장소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 연구에서는 47개 산지를 조사 확인하였다.
차나무 재배의 북방한계는 북위 45°인 흑해 연안에 위치한 러시아의
크라스노다르 지방이며, 남방한계는 남위 30°에 가까운 아프리카의
나탈과 북부 아르헨티나이다. 중국의 북방한계선은 북위 37°인 산동반도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은 북위 42°인 아오모리현의 구로이시
시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나라 야생 차나무 북방한계지는 북위 36°03´인 익산시 웅포면이며 재배지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다원은 한국제다 장성다원으로 북위 35°13´에 달한 지역이다.
우리나라 차의 북방한계지는 전북 금산사로 북위 35°13´으로 알려져 왔으나 연구결과 우리나라에 현존하고 있는 차나무 북방한계지는
북위 36°03´인 전북 익산시 웅포면 봉화산 남쪽사면에 자리잡았던
임해사 터에 자라고 있는 차나무로 확인되었다. 이로써 차의 북방한계선은 익산시를 거쳐 순창군, 곡성군, 산청군, 창원시, 밀양군을 거쳐
울산시를 이은 선을 만들고 있다.
이곳 차나무 밭의 생태 유전학적인 고찰 결과 강진군에 있는 백련사
차나무와 일본의 재배종 차나무와는 유전적으로 매우 다르게 나타나고 있어 오래 전에 분화 적응된 생태종으로 추정되었다.
봉화산 임해사 옛 터에 자리잡고 있는 약 360㎡에 달하고 있는 차나무 자생 집단은 최근 새로 시작된 임간도로 개설로 크게 파괴되고 있다. 임해사 터 차나무 자생지는 우리나라 차나무 북방한계지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되어 현재
문화관광부 천연기념물 지정 부서에 천연기념물 지정을 신청중에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차나무 분포지와 관련성이 많은 다소(茶所), 다촌(茶村) 등의 땅 이름이 많다. 그러나 20여 개의 다소 중, 현재 어느 곳이라고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며 전문적이고 계속적인 조사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본 연구와 관련하여 다음 몇 가지 사항을 제언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야생 차나무와 재배 차나무와의 생태 유전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다원조성 가능지역을 학문적인 조사연구와 행정적인 지원·보급활동을 펼쳐 넓혀 나갈 것을 제언한다.
셋째, 차나무의 원산지와 도입과정을 연구할 것을 제의한다. 특히 웅포 지역은 공주·부여가 백제의 수도였을 때, 황해로 나가는 출구 지역이었다. 즉 백제 때 중국과 통하는 관문이었고 대렴이 중국에서 차
종자를 가져온 828년보다 약 100년 전에 우리의 차 종자를 김지장이
휴대하여 중국 구화산에 심었는데 그때 봉화산 임해사의 야생차 씨를
가지고 갔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넷째, 우리나라에서 제일 키가 큰 차나무(最高樹)를 조사·연구하여
차나무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할 것을 제의한다.
다섯째, 한국 최북단 차나무 야생지인 전북 익산군 웅포면 웅포리, 봉화산 남쪽기슭 봉화산 임해사터 일대를 천연지념물로 지정·보호해
줄 것을 건의한다.
임해사 터 차나무 자생지는
우리나라 차나무
북방한계지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되어
현재 문화관광부 천연기념물
지정 부서에 천연기념물 지정을
신청중에 있다.
산세와 어우러진 숭림사는 봄에는 벗꼿과 어우러진, 여름에는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소리, 가을의 농촌풍경, 겨울의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풍경은, 아담하면서도 넉넉하여
홀로이
사색을 하거나, 정겨운 연인들의 데이트장소로서 손색없다 할 것이다.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함라산(咸蘿山)에 있는 사찰.
종파 :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 8세기
창건자 : 진표
소재지 : 전북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본문 |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경덕왕(재위:742∼765) 때
진표(眞表) 가 창건하였다. 일설에는 1345년(고려 충목왕 1)에 창건했다고도 하며, 절
이름은 달마가 숭산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 동안 벽을 바라보며 좌선한 것을 기리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보광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탔다. 1697년(숙종 23)과 1819년(순조 19), 1892년(고종 29) 각각
전각을 중수하여 절의 면모를 새롭게 했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황성렬(黃成烈)이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키고 1957년 고광만(高光滿)의 시주로 시왕전과 나한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보광전과 우화루·정혜원·영원전·나한전·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보물
제825호로 지정된 숭림사보광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비로자나불·아미타불·관세음보살의 삼존불과 1913년 정연(定淵)과 만덕(萬德)이 그린 후불탱화가 모셔져 있다. 우화루는 본래 신라 때 석덕(碩德)이 세웠다고 하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이다. 이곳에 절의 연혁을 살필 수 있는 현판이 많이
걸려 있다. 영원전은 1926년에 성불암 칠성각을 옮겨 지은 것으로 명부전 역할을 한다. 한편 나한전은 1929년에 지었으며, 요사로 쓰이는 정혜원은 조선 후기 건물이다.
유물로는 청동은입인동문향로(靑銅銀入忍冬紋香爐)가 1974년 9월 27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되었다. 몸체 앞면에 2개의 사자머리 손잡이가 달려 있는데,
은입상감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고 조선 초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절 입구 오른쪽에 조선 후기에 만든 4기의 부도가 전한다.
2000년 편찬부 탐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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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속의 불전 닫집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산세는 대체적으로 무난하여 절묘한 절경을 이루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소박하고 무난한 모습들은 어느 깊은 계곡에 들어서도 편안하고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고 찾는 사람들의 노고를 풀어주고 있다. 이러한 산들처럼 그 안의 사찰의 모습 또한 수수한데, 우리나라의 사찰은 그 도량을 산 전체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불전을 제외한 다른 건축물들을 필요이상으로 크게 짓는다거나 주위 환경에 거슬릴 정도로 화려하게 지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불전을 둘러싼 건축물들의 단순함과 수수함은 주위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그 안에서 우아한 멋을 잃지 않고 이 단아함과 소박함은 불전의 장식이라든가 단청등의 화려함을 한층 더 부각시키고 있다. 화려함만으로 장식된 장소에 들어섰을 때 경외감과 동시에 어느 정도의 거부감을 일으키는데 우리나라의 사찰의 경우 그러한 거부감이 없는 이유는 조화로움 속에서 아름다움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푸르름이 한창인 날에 푸른 하늘과 나무들을 배경으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색들의 집합인 단청을 바라보면 시간과 공간을 잊을 정도의 신비로움에 저절로 탄성이 나올 때가 있다. 가람의 배치나 거기에 장식된 문양들의 상징성들은 불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진리의 가르침들을 우리의 하늘과 산과 사찰이 조화를 이룸으로서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그 진리의 향기를 맛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사찰에 깃든 아름다움은 무엇보다도 그 안에 진리의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욱 소중하다고 생각하여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의 자연과 그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찰에 담긴 진리의 가르침을 찾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석림지는 이번 34집의 닫집 탐방을 시작으로 여러 해에 걸쳐 사찰 전반에 걸친 상징성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닫집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행 닫집 탐방에 앞서 가진 세미나에서는 편집부원 스님들의 각자의 소임을 정하고
그동안 준비해온 자료를 정리하고 탐방을 떠날 장소와 시간등을 계획하였다.
우선 닫집의 형식과 설치된 사찰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반야용선(般若龍船)의 목적지 법당은 여러 가지 상징성들이 함축되어 구성되어진 건물이다. 법당이 사바세계에서 피안으로 건너갈때타는 반야용선임을 상징하기 위해 법당 어간의 양쪽에
용두(龍頭)를 장식하여 반야용선(般若龍船)의 선수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법당의 외형은 불, 보살이 이끄는 반야용선임을 상징하고 있으며, 법당의 안에는 항상 삼매에 들어 말없는 가르침을 펼치시고 계신 부처님과 보살님들을 봉안하고 여러 가지 장식을 통하여 반야용선(般若龍船)의 목적지인 불국정토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모든 사찰의 법당 천장에는 연꽃을 비롯하여 다채로운 형태의 온갖 꽃들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부처님이 삼매에 들때나 정각을 이루었을 때 나타나는 법화육서(法華六瑞)중
우화(雨花)의 상서(祥瑞)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삼매에 들면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기 위해서 하늘이나 천신들이 꽃비를 흩날리는 광경이 여러 경전에 나타난다.―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 제 6권에는 "부처님이 도리천궁에 들어가서 미간의 백호광(白毫光)을 놓으니 그 빛이 의 칠보(七寶)의 대개(大蓋)를 이루어 마야부인의 위를 덮었다.", "동방의 선덕불(善德佛)이 묘보화를 석가모니불과 마야부인의 위에 흩었더니 변화하여 화개를 이루었다."등 여러경전의 기록에서 보이는 상서의 현상들을 화개(花蓋)로서 부처님의 머리위에
장식하게 되었다.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 지금도 화개의 형태로 금속과 천으로
만든 파라솔모양의 화개를 설치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경우 꽃들의 흩날리는 모습은 법당의 천장 전체로 그 공간이 확대되고 화개의 모양은 닫집으로 변화하여 부처님의 거주처인 불국정토의 궁전으로 발전된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나라의 불전(佛展)은 부처님의 설법시의 상황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탄 모두가 깨달음을 얻어 도달해야할 피안의 모습까지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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