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거처를 벗어났다고 짐을 보내라 한다. 아들은 갑자기 발령이 나는 바람에 임시 거처인 고시원에서 한 달을 이불 없이 지냈다. 택배로 이불 짐을 보내겠다고 하여도 집을 구하고 나면 보내라며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롱 패딩을 입고 자면 된다며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한참 실랑이를 벌였지만 소용없었다. 낯선 곳에서 몸도 마음도 추울 터인데 부모의 마음이 얼음송곳에 찔린 듯, 했는데 드디어 서울로 간 지 한 달 만에 이불 짐을 싼다.
목소리가 한결 밝아진 것 보니 이직한 직장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자존감을 회복함과 동시에 따뜻한 쉴 곳을, 찾은 마음까지 보태어지지 않았을까, 잘 갈무리된 이불과 베개, 필요한 용품까지 포장하는 손길이 분주하지만, 이것이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짐들인가 싶어 서운하기까지 하다. 서울서 정착해 살다 결혼이라도 한다면 더이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기나 할까. 앞서가는 마음이 주책을 부리니 괜스레 이불을 쓰다듬어 본다.
이불의 기억은 따스하다. 겨울날 아랫목에 깔린 이불 안에 옹기종기 발을 밀어 놓고 서로의 몸을 간지럽히던 순간들은 근심이 없었다. 동생을 이불 위에 앉히고 끌며 놀아주고 뒤집어씌워 놀려주던 기억들이 목화솜처럼 몽글거린다. 젊었던 부모님과 어린 형제자매들이 한 방, 한이불 아래 오글거리면서도 불편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 불을 잘 때지 않던 방에 솜 이불을 챙겨 들고 혼자서 들어앉았다. 동생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이불을 둘러쓰고 앉아 빌려온 책을 읽었다. 손끝이 시렸지만, 마음에는 알 수 업는 열기가, 가득했다. 책 속의 말들과 내 안의 말들이 뒤섞여 울컥거리며 신열을 토해냈다. 태초의 자세로 이불속에 몸을 말았다. 이불 밖 차가운 공기와는 다르게 이불 속은 몸의 열기까지 보태어져 따뜻했지만 이가 딱딱 부딪히는 한기를 느꼈다. 그렇게 실컷 앓고 난 후 부쩍 말이 없어졌고 세상이 많이 달라 보였다.
아이를 낳고 목욕을 시킬 때면 작은 몸이 놀라 발버둥을 쳐대었다. 그럴 때면 시어머니는 아이의 가슴에 벗어둔 배냇저고리를 따뜻한 물에 적셔 얹어주시곤 했다. 때로는 잠결에 놀라는 아이의 가슴께에 작은 베개를 올려 지그시 눌러주시기도 했다. 뱃속 따스한 물속에서 엄마의 들숨과 날숨의 압력을 적당히 느끼며 지낸 아기가 아무렁 저항이 없으면 오히려 불안하였을지 모른다. 아이는 그래서 엄마의 가슴에 안겨 자거나 등에 엎드려 자는 것에 더 안정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잠든 남편의 몸이 꿈쩍거리다 조용하다. 잠시 뒤 낮에 언짢은 일이 있었던지 미간에 주름마저 잡으며 웅얼거린다. 퇴사 후 적지 않은 나에게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일의 무게는 만만하지 않나 보다. 알지 못할 중얼거림과 알아들을 수 있는 파편적 단어들 사이에서 연결된 이해는 중간관리자로서의 부대낌인 듯하다.
스웨덴 카를린스타 의과대학 연구팀이 평균 40세 이상 성인 120명을 대상으로 실험해 보니 6~8Kg 정도의 이불 무게가 수면 장애 개선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너무 가벼운 이불 보다는 무게가 나가는 이불이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하여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남편이 잠이 잘 온다며 묵직한 목화솜 이불을 고집한 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요즘 다양한 소재의 이불이 많은데 가벼운 침구로 바꾸어보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오래된 신혼 이불을 거두어 버리려고 했더니 안 될 말이라며 단칼에 잘랐다. 본인이 직접 솜을 타는 곳에 가서 퀸사이즈 이불 두 장과 싱글 이불 한 장으로 만들어 왔다. 이불 한 채가 석 장의 덮는 이불로 변신한 것이다. 나 역시 한결 젊어진 이불을 덮고 생활하다 보니 다른 곳에서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덮고 자면 뒤척일 때마다 잠을 방해하기도 했다. 부부가 나이 들어가며 이불 취향까지 닮아가는 것은 허허로운 세상에서 이불의 포옹까지 더하여 위로받고자 함인지 모른다.
병실에 누워 지낸 봄이었다. 이불에 수 놓인 꽃만큼이나 세상이 온통 꽃 천지였지만 격리된 듯 무력감에 젖던 날들이었다. 그 한 달여의 입원 기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봄 이불 같은 사람들의 방문 덕분에 무사히 병상 생활을 마쳤다. 금속이 들어간 수술한 다리를 노려대던 친구들은 뒤돌아 건강이 최고라며 다독였다. 좋아하는 커피와 간식을 건네며 빠른 회복을 빌어준 지인들과 심심할까 봐 읽을 책을 보내준 시동생과 매주 달려와 주는 가족들이 있어 병실에 누운 몸에도 뒤늦게 건강에 대한 희망이 가득했다.
여름 장마처럼 그날이 그날 같은 날이었다. 무엇하나 해놓은 것 없이 나이만 먹은 듯해 허무해 하던 날, 내 등짝을 가볍게 치면서 세상 뭐 별 게 있더냐며 분위기를 바꿔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세상이 뭐 별거냐’는 별스럽지 않은 지극한 한마디에 움츠렸던 가슴이 쫙 펴진다. 여름 이불처럼 시원한 한마디는 늘어졌던 마음이 풀 먹인 듯 꼿꼿해지고 두 주먹 불끈 쥐게 하는 힘이 생긴다.
때로는 겨울 이불 같은 묵직한 눈빛 덕분에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 천방지축 들뜨는 순간이나 평정심을 잃고 마음이 부산스러울 때이다. 욕심인 줄 알면서 무언가를 시도하려 눈치를 살피는 순간, 조용히 바라보는 눈길이 있다. 말로 하는 질책이 아닌 무언의 눈빛으로 지긋이 꾸짖을 때 부끄러움의 무게가 짐짓 다르다.
각양의 사람들이 꾸려가는 세상. 조각보 이불처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잠결에도 벗어나지 못할 인생의 무게가 짓누르는 날, 삶을 견디는 방법이 저마다 다르다. 자신만의 동굴에 숨어 자신을 버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남을 탓하며 세월을 낭비하기도 할 것이다. 자책할 시간, 남 탓할 시간을 무의미하다며 새로운 길에 도전한 아들에게 마음의 말을 쓸어 담는다. 이불을 널어 말리듯 조밀한 햇살 아래 하루쯤 자신을 내맡겨도 된다고, 몸과 마음이 보송해지면 새롭게 또 하루를 시작할 힘이 어느새 생길 것이라고 말이다.
드디어 이불을 보낸다. 두꺼운 목화 솜이불처럼 삶이 늘 가벼울 수만은 없겠지만 적당한 삶의 무게가 먼 훗날 누름돌이 되어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짐을 싸 보내며 자식에게 나는 어떤 계절의 이불이었을까 궁금해진다. 계절별 이불처럼 꼭 필요할 때마다 맞춤한 부모 노릇을 하였는지, 미련한 탓에 철 지난 충고나 조언으로 자식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는지 되짚어 본다. 어쩌면 부모가 자식에게 이불 같은 사람이 되어 준 게 아니라 자식이 자식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이미 든든한 이불 한 채 노릇을 톡톡히 한 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이불은 내게 따뜻한 그리움이다. 벌써 아들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