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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 마가복음 12:18-44 요절/ 마가복음 12:30 | 2024. 8. 11 | |
마가복음 제 20 강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2024년 유럽수양회를 풍성한 말씀으로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유럽의 선교사님들을 만나고 말씀 안에서 교제하는 가운데 서로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유럽에 새로운 영적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마음에 큰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하나님은 슬로바키아 지부를 베이스 캠프로 쓰시고 세계선교 장막터를 넓혀 주셨습니다. 아일랜드, 영국, 헝가리, 독일 선교사님들 가운데 ‘길 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새롭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 비전팀은 수양회와 선교여행을 통해 예수님만이 길이 되시고 그 길을 따르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깊이 맛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선교지 심방하며 선교사님들과 말씀공부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정말 좋았습니다. 선교사로 사는 것이 고난의 연속이지만 길되신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삶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고, 춘천에서 더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해야 겠다는 기도제목을 붙들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 중에 가장 큰 문제는 사랑 문제입니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삶이야말로 인생을 의미 있게 하고 행복을 안겨줍니다. 저의 간절한 소망은 사랑이 메마르지 않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사랑 문제에 대한 답을 얻고 기쁨과 행복이 넘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그들은 대제사장들과 귀족 계급 출신이 속한 그룹으로 산헤드린 공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친로마적이었고 현실주의자들이요 합리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기록한 오경 다시 말해 다섯 권의 토라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다른 성경의 권위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활과 영의 세계와 천사와 심판과 내세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왜 부활을 믿지 않았을까요? 현재 누리고 있는 권력과 부를 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부활이 없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확증하려고 모세의 법을 가지고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들이 지어낸 이야기는 황당합니다. 칠 형제 중 첫째가 결혼하고 상속자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따라 둘째가 형수를 취했는데 그도 상속자 없이 죽었습니다. 셋째도 그리고 일곱째까지 그런 식으로 다 죽었습니다. 그러면 부활할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첫 사랑 첫째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마지막 사랑 막내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칠 형제 모두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부활이 있다면 그들은 혼란에 빠지고, 형제간에 한 아내를 두고 치열하게 싸워야 할지도 모르니 부활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 사두개인들의 견해였습니다. 그들은 부활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모세오경에 나온 형사취수법을 이용하여 해괴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두개인들은 성경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활에 대해서 잘못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이 된다고 하십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한 후에도 이 세상의 삶의 방식이 그대로 연장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은 이 세상에서만 존재합니다. 결혼은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제도입니다. 하지만 부활하면 더 이상 자녀를 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결혼 제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부활 후에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결혼이 없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부활 후에는 결혼 이상의 기쁨과 행복을 주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결혼을 창설하셔서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이 그보다 더 좋은 것을 부활 후에 주시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부활의 세계는 이 땅에서의 삶과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입니다. 부활은 현재의 삶의 연장이나 재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신령한 몸을 새롭게 입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성경이 부활을 증거하고 있다는 근거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을 예로 드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을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와 언약을 맺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이름으로 모세에게 자기를 소개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모세 당시로부터 400-600년 전에 죽었지만 하나님과 맺은 언약 때문에 세 사람은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아 있으며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고 하십니다. 부활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결과물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이 있습니다. 부활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먼 미래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부활을 경험할 수 없고, 그는 죽은 사람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돈과 권력과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기에 행복할 것 같지만 예수님께서 보실 때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며, 죽은 사람들이요, 가장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며, 인생의 목적지를 모르고 길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양 살고 있는 사람들,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고 부활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야말로 참으로 길 잃고 헤메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부활을 믿지 않을 때 쾌락주의자와 허무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부활을 믿음으로 여러 가지 유혹을 이기고 어떤 환난도 이기고 생명력과 능력이 넘치는 부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잘 대답하신 줄 알고 나아와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고 넘어뜨리기 위해서 질문했습니다. 하지만 이 서기관은 예수님께 진정으로 배우기 위해서 질문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모든 계명 중에서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물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613개의 계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모든 계명을 아우르는 근본적이고도 본질적인 계명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당시 랍비들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책 한권을 읽고 핵심을 요약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방대한 성경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성경의 핵심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29,3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예수님은 신명기에서 쉐마에 해당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신명기 6:4,5은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첫째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유일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신들과 우상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가짜이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짜이고 유일한 주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며 다른 모든 것들은 피조물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인간을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우리는 피조물로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주님으로 섬겨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고 죽음과 무서운 형벌에 던져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주시고 십자가에 대속물이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희생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아시고 찾아오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 아가페 사랑으로 제가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 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랑 받은 저는 사랑을 가진 자가 되었고, 이제는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사랑할만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나를 구원해주신 나의 주 하나님을 최우선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사랑할 때 하나님과 관계가 틀어지게 되고 축복을 빼앗기고 하나님 나라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행복의 길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많은 양이 아닙니다. 많은 업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나의 마음입니다. 마음을 세상에 빼앗기고 몸만 드리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달라고 하십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나를 살게 하고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하십니다.
저는 2024년 유럽수양회를 참여하며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선교사님들과 현지목자들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국의 폴리치 목자님은 주제강의 메시지를 전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법학을 공부한 똑똑한 변호사인 그가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의 변화는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그의 변화는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강력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스의 이사도라의 인생소감은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비만으로 인해 왕따 당하고 버림 받았을 때 그녀의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성경공부와 선교사님들의 희생적 섬김으로 그녀는 예수님을 만났고 인생의 길을 찾았고 희망찬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또한 말씀과 인생소감뿐만 아니라 찬양과 연주가 은혜롭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제가 세상의 좋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마음 첫 자리를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내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 자신을 끔찍이 사랑합니다. 배 고프면 먹고 지치면 쉼을 갖습니다. 끊임없이 몸을 돌보고 필요를 공급해 줍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내 자신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질 때만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내 몸을 돌보듯이 이웃을 돌볼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이 누구입니까? 부부에게 있어서 아내가 가장 가까운 이웃이고 남편이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아내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나요? 남편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나요? 아빠 엄마가 자녀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나요? 믿음의 동역자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으로 섬기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을 내 몸과 같이 돌보고 있나요? 가장 가까이 있는 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한 사람을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할 때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고, 이 땅에 사랑의 나라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가정에 자녀가 태어나면 그 자녀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부간에 틈이 생기기 쉽습니다. 엄마로서 아이를 먹이고 돌보느라고 에너지를 다 쓰게 되고 그래서 남편에 많은 요구를 하고 그 요구가 안 채워지면 짜증과 불평과 원망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요구를 들어주다가 지치고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부부가 자녀를 함께 돌볼 뿐 아니라 부부간에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서로 위로하고 칭찬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부족함을 채워주고 하나 되는 가정을 이루어갈 때 기쁨과 행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쾌한 대답을 들은 서기관은 ‘옳소이다’ 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계명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원치 않고 사랑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며 그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38-40절은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책망입니다. 서기관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 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서 과부들의 가산을 삼켰습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했습니다. 위선과 탐욕에 빠진 그들은 장차 엄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41-44절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 한 여인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헌금함이 잘 보이는 곳에 앉으셔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부자들은 많은 돈을 자랑스럽게 넣었습니다. 반면에 한 과부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헌금은 액수가 아니라 그것을 낸 사람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인색함으로 내거나 사람에게 보이려고 내는 헌금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자원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 열납하십니다. 두 렙돈을 드린 과부는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참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을 실천함으로 행복이 넘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