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 천사에게
드디어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의 삶이 기뻤든지, 슬펐든지, 행복했든지, 고통스러웠든지, 승리했든지, 실패했든지 그리고 얻었든지, 잃어버렸든지, 그 모든 생애의 순간들은 과거 라는 무덤 속에 묻혀 버리고, 이제 이렇게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모두 비장한 각오로 새하얀 페이지를 엽니다. 총명하게 반짝이는 당신의 눈동자가, 그리고 기록하는 펜이 들려진 배려 깊은 당신의 손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이제 시작되는 새해의 페이지에는 아름다운 기록들만 쓰이기를, 그래서 당신의 순결한 마음을 졸이게 하는 일이 더는 없기를 바라면서 이 편지를 씁니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이 당신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순간들로 채워졌었는가를,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이 당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그늘지게 하였는가를&.그렇다고 늘 그랬던 것은 아니지요? 말해 주십시오. 그래도 당신의 얼굴에 미소 띠게 하였던 순간들이 그리 적지는 않았다고&. 새해를 맞으면서, 지난해에 한순간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슬픔과 고통과 환희를 함께 나눈, 그리고 하늘의 뜻과 사랑을 전해 주려고 끊임없이 애쓴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유혹과 시험 속에서
아직도 기억합니다. 마치 벼랑 끝에 선 듯 흔들리던 그 순간, 세찬 겨울바람에 나부끼는 잎사귀처럼 떨며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던 그 순간을&. 인간의 욕망이 꽈리를 틀며 머리를 내밀고, 내 뜻대로 들이대고 싶은 격정이 휘몰아쳐, 뼈처럼 남아 있는 뾰족한 자존심이 겸허한 굴복을 거절하려고 싸우던 순간, 화살처럼 쏘아 올린 기도에 대한 하나님 사랑의 응답으로 보내진 당신은 유혹의 갈등 속에서 우리를 빼어 내는 일에 넉넉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울의 추가 흔들리듯 세상을 향한 욕망의 추가 더 무거워지고, 그래서 하늘의 뜻이 우리 마음속에서 흔들리려던 순간마다 당신은 어김없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분주히 행해 주었습니다. 늘 섬기는 일에서 기쁨을 얻는 겸손한 당신은&.그러면 갑자기 하나님께로부터 당신이 가져온 하늘의 빛과 힘이 우리를 감싸고, 호수의 파문이 멈추듯 조용히 가라앉은 마음속에 하늘의 멜로디가 은은하게 흘러넘쳤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상기시켜 준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떠올라 성령의 감화와 평화로움에 잠겨 들며 영적인 힘을 얻곤 했습니다.
외로웠을 때
그냥 그런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지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의기소침해지고, 지속되는 실패로 낙심되고, 그리고 모두 떠나버린 것 같은 소외감으로, 또 자신의 쓸모없는 존재감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가을 이슬처럼 적셔지는 외로운 순간들이 있지요. 낙심의 감정과 우울한 그늘을 두르는 어둠의 세력은, 곧잘 연약한 인간의 감정에 호소하여 구름 위에 늘 빛나는 태양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는 우리의 마음속에 환희의 빛으로 임하고, 그리하여 세상의 어떤 슬픔도, 어떤 재난과 고통도 이겨내게 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지 않도록, 당신은 늘 우리가 영의 눈을 더 크게 뜨기를 원했습니다. 섭섭함과 서운함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아무런 억제나 훈련 없이 원망의 쓴 뿌리가 마음대로 뻗어가도록 상상의 날개를 펴는 대신, 당신은 우리가 암흑의 구름 너머 아름다운 하늘의 빛을 보기를 무던히도 바랐습니다.
십자가 주위를 덮은 암흑에서 숨 가쁘게 헐떡이며 운명하실 때, 하나님의 모습도, 하늘 아버지가 자신을 가납하셨다는 증거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자신을 부탁하시며, 인간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끝까지 고난을 견디시던 예수님처럼, 당신은 우리가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 현재의 고난을 참아내기를 원했습니다. 외로움과 서운한 감정에 휩싸인다는 자체가 그리스도의 임재를 잃어버리는 부주의한 순간이며, 그리스도인의 충만한 영적 생활을 경험하지 못하는 증거라는 것을 잘 압니다. 바라기보다는 먼저 주고 베풀며, 나 자신의 부족보다는 다른 사람의 부족을 메워 줌으로 기쁨을 얻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한 해를 열어 봅니다. 하나님과 당신을 무척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 열망과 함께&.
기록하던 손이 떨렸을 때
부끄러운 기억들이지만 그래도 한번 이야기해 보아야 할 것 같군요. 당신의 기록하던 손이 떨렸을 때의 이야기를&. 겸손하게 인정합니다. 그때 더 주의했어야 하고, 우리의 감정을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의 지배력에 더 단단히 붙들어 맸어야 했음을, 그리고 어떤 땐 침묵이 백 마디의 말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음을&.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순간의 소홀함과 부주의함 때문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과 행동을 한 뒤,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고 성령을 근심시킨 그 일을 뉘우치던 그 밤이 얼마나 길었던가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당신이 차마 듣기 힘들어하던 우리의 모난 말과 당신의 얼굴을 가리고 싶게 만들던 우리의 덜 성숙한 행동들이 기록하는 당신의 손가락을 얼마나 떨리게 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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