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 현실경과 이상경이 공존하는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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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좋아해?”
“응.”
“왜?”
‘그들이 되고 싶거든.’
영화 같이 살고 싶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잔뜩 치장을 하고 티파니 앞에 서 있는 모습을 할 줄 알면서도, 그런 모습에 정반대되는 모습으로도 사랑받는 홀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무역으로 억만장자가 된 레트, 대부에서 “I'm going to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 “Keep your friends close and your enemies closer.”라는 대사를 하는, 조직의 우두머리, 돈 비토 코를레오네, 위대한 개츠비에서 사랑을 위해 억만금을 벌고 사랑을 위해 억만금을 쓰던 개츠비.
그 어린 날, 오래된 영화들을 보며, 나는 그들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어린 날부터 예절과 예의를 배워 몸에 익히고, 외면과 내면을 가꾸고, 지식과 교양을 쌓고,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고, 이루고를 반복했다. 점점 넓어지는 집과 점점 바빠지는 아부지를 보며 나의 성공한 (가정, 넓은 집과 좋은 차, 그리고 많은 돈을 가진; 이것은 지극히 내 기준이다) 미래를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좁아진 거주 환경과 아부지를 못 보게, 혹은 안 보게 됐을 때도 내가 상기시키던 그림은 똑같았다. 그럴 때면 내가 하고 있는 것 중 그 어느것도 부질없지 않았고 그 어느것도 지겹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도 변수는 있었다. 꿈에, 목표에, 관계에, 결혼에 실패했을 때, 나는 늘 어마어마한 어둠과 우울에 잠식되었지만 결국은 어떠한 것들로 인해 다시 정신을 차렸다. 아직은 괜찮아, 아직 아니야, 아직 멀었어.
홀리, 레트, 코를레오네, 개츠비. 그들을 보고 또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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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봤던 거 아니야?”
“맞아.”
“근데 또 보게? 왜?”
“결말을 알고 있잖아, 내가.”
봤던 드라마나 영화를 또 보는 게 좋다. 대충의 굵직한 사건들과 결말을 알고 보는 게 좋다. 갈등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풀릴지 아니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든다. 늘 봤던 부분에서 늘 우는 게 좋다. 내 감정이 아직은 건재하구나. 그러나 안주하고 있는 내 모습은 이따금 나를 힘들고 괴롭게 하고, 가벼운 자책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나는 같은 영화를 또 볼 때면 늘 안도하고 안주한다. 아마도, 처음 보거나 아직 보지 못 한, 혹은 보지 않은 영화들은 내 인생의 흐름이다. 그리고 봤던 영화를 또 보는 건 내가 원하는 인생의 흐름이다.
정확했으면 했다. 늘.
내가 이 일을 했을 때 몇퍼센트의 성공률을 가지고 있는지, 실패할 변수는 무엇인지, 다른 플랜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이 사람과의 관계에선 어디까지가 선인지, 내가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잘 하고 있는 게 맞는지.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게 정말 맞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