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삼로드 1】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양의 문명교류는 잘 알려져 있죠.
여기 고대에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또 하나의 국제무역통로가 있습니다.
이 무역을 위해 중국인은 오래 전, 유럽인이 호주를 발견하기 전 부터 ,호주와 교역을 했고 싱가포르는 이 무역을 통해 그들 경제부흥의 중요한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일본 도쿠가와 막부에서 말린 해삼은 통화정책과 물가정책의 주요 수단이었다.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전역에서 해삼을 수집했다.
화교 집단의 주요 거래 품목 역시 해삼이었다.
그중에서도 동해 해삼이 으뜸이었다
극피동물인 해삼은 그 종류가 많아서 무려 1100여 종이 확인되고 있다.
해삼은 세계 모든 바다에서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얕은 바다에 산다.
한국인들은 해삼을 날로 먹는 방식을 선호하는 반면 중국인들은 말린 해삼을 선호한다.
유통의 문제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린 해삼을 오래 조리해온 역사에서 비롯된다.
중국 요리에서 해삼이 빠지면 요리가 성립될까 싶다. 중국인의 엄청난 식탐이 해삼에 걸려 있으니 중국 곳곳에 해삼 판매소가 즐비하고, 전 세계에서 해삼을 수집한다.
중국의 해삼 수입 역사는 그야말로 ‘태고적’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북방에서 환동해는 중요한 해삼 서식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분석한 아키미치 도모야의 연구에 따르면 한반도 동해안은 모두 중요한 해삼 서식지이며, 일본 환동해권 역시 예외가 아니다.
블라디보스토크가 해삼위(海蔘威)가 된 것도 전적으로 해삼 수집소에서 유래한다.
이래저래 환동해는 해삼의 길이기도 했다.
청나라 조정은 벼슬아치를 변방에 보내어 해삼 구입을 독려했고 해삼 장사꾼은 동해 해삼으로 큰돈을 벌어들였다.
해삼 무역은 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진상·공무역뿐 아니라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잠상(潛商)이 혼재되었다.
해삼을 채취해 말려서 바쳐야 했던 어민들의 실질적 고통이 짐작된다. 실제로 기록에는 환동해 어민들의 무한 고통이 곳곳에 등장한다. <만기요람>(1808)에는 “별사방물(別使方物)을 보면 사은(謝恩)에 황제에게 대구 200마리·해삼 200근·홍합 200근·다시마 200근·광어 100마리를 바친다”라는 대목이 있다.
사신을 통한 공무역으로는 양이 부족하므로 중국과 거래하는 개시(開市)가 마련된다.
중강개시(中江開市)에서 거래된 공식 매매 총수에 다시마 1만5795근, 해삼 2200근, 소금 310석이 등장한다.
말린 해삼 2200근이면 상당한 양이다.
함경도 회령개시, 경원개시와 더불어 압록강변의 중강개시는 명나라로 들어가는 물자의 통로 구실을 했는데, 후금의 요구로 다시 개설되었다.
개시에 내보내는 물자는 국가에서 엄격히 통제했다. 개시에 내보낼 해삼 문제로 비변사에 보낸 함경감사 성수묵의 장계를 보자.
“실로 바닷가 백성들이 지탱하기 어려운 폐막이 되고 있습니다. …개시(開市) 있는 고을의 해삼에 대한 행정이 포민(浦民)에게는 뼈에 사무치는 고통이 되지만 개시에 관한 정례와 관계되고, 또 바닷가 가호의 신역(身役)이 되기 때문에 변통을 하지 않고 어물어물 지금까지 내려왔습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