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3장 19~24장 9절]
19 네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20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22 네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리라 그러나
23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
24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25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24장
1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2 그 여자는 그의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3 그의 둘째 남편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또는 그를 아내로 맞이한 둘째 남편이 죽었다 하자
4 그 여자는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보낸 전남편이 그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범죄하게 하지 말지니라
5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
6 사람이 맷돌이나 그 위짝을 전당 잡지 말지니 이는 그 생명을 전당 잡음이니라
7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유인하여 종으로 삼거나 판 것이 발견되면 그 유인한 자를 죽일지니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8 너는 나병에 대하여 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에게 가르치는 대로 네가 힘써 다 지켜 행하되 너희는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지켜 행하라
9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리암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할지니라
[설교]
오늘 주제는 관심과 보호입니다. 그렇다면 이 관심과 보호의 궁극적인 의미는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본문 첫 번째 규정은 고리대금을 금하는 규정입니다. 이 내용은 출애굽기 22장과 레위기 25장에서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입니다. 동족 중 가난한 이웃이 생계 유지를 위해 돈이든 양식이든 빌렸을 때 그 이자까지 받으면 오히려 그들의 생계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따라서 약자를 보호하고 이웃을 사랑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모세는 율법을 통해 그들에게서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금한 것입니다.
이자를 받는 것은 세계 경제 원리에 따르면 지극히 당연한 원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경제 원리로 운영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공급하심으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꾸어 주고 채권자같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빌려준 돈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돈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돈을 빌려줄 때 받을 이자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 줄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말씀은 서원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키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서원에 대해서 민수기 30장은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조건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입니다. 그러니까 서원한 것이 한순간 분위기에 휩싸여서 즉흥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생각하고 내린 결정 끝에 이루어진 서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3절에 이렇게 설명을 보충합니다.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
서원의 핵심은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옆에서 누군가 충동질하고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심사숙고한 것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서원에 이러한 특성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서원은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서원하지 않았다고 비난할 사람은 없습니다. 비난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성도의 모습입니다.
세 번째는 욕심에 대한 말씀입니다.
앞에 19절은 가난한 이웃을 대할 때의 자세를 기록한 것이라면 24-25절은 반대로 자신이 어려운 형편일 때의 자세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형편이 된 사람은 그 포도를 먹는 것은 가능하지만 배를 채우는 것 이상으로 그릇에 담아 가져가지는 말라고 합니다. 또 곡식 밭에 들어가서도 손으로 그 이삭을 따는 것은 되지만 낫으로 베어가는 것은 금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포도원에서 배불리 먹고 손으로 이삭을 딸 수 있는 것은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릇을 들고 들어가 수확하고 낫으로 베어가는 것은 도둑질입니다. 이웃 사랑의 일환으로 베푼 것을 원수로 값는 행동입니다. 이것은 결국 욕심입니다. 내가 도움을 받는 상황에 처해서 도움을 받는다면 그 사랑에 힘입어 용기를 내고 힘을 내어 회복하는 모습으로 화답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24장의 1~4절은 이혼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모세는 이혼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해 서술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 주도록 조처한 것은 이혼을 허락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완악함을 인함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이혼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한 것보다 가정의 숭고함을 아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으시고 돕는 배필을 주셨습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결혼하면 포기해야할 것이 많아서 결혼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결혼은 돕는 배필을 주신 것이고 축복이라고 하셨는데 왜 포기해야하는 것이 많다고 그러는 것일까요? 이는 타락한 인간들이 만든 결혼의 결과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면 상대방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서로를 보호하고 이해하고 섬기는 가정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5-9절은 사회 질서를 위한 규례에 대한 말씀입니다. 23장과 같이 이 단락도 성격상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백성들의 기본적인 권익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제 막 장가든 남자의 경우 1년간 징집을 면제하도록 하였습니다. 신혼 부부에게 1년이라는 시간을 보장해 줌으로서 부부간의 애정을 정착시키고 대를 이을 자식을 출산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을 마련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또 가난한 자의 생활 필수품인 맷돌을 저당잡히는 것은 금하였습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인들은 곡식을 맷돌아 갈아 가루로 만든 후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따라서 맷돌은 이스라엘 가정에 없어서는 안될 생활 필수품이었습니다. 기본 의식주에 해당하는 물건을 저당잡지 못하게 하는 규례 또한 기본적인 권익을 보호해주는 규례들입니다.
두 번째는 유괴범에 대해서는 사형으로 다스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유괴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한 사람의 인격과 인생 모두를 빼앗는 것으로 살인에 준하는 것이며 타인의 생명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을 삼는 것은 제거해야할 악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문둥병에 걸린 사람을 격리 수용하는 것은 현대의 감염예방과 같은 것으로 모든 사람의 건강을 위한 조치입니다.
이와 같은 법규들은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권익을 존중하고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사회통념적인 법들과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여기에 중요한 하나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오늘 하루 우리가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 이웃사랑을 실천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