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복음: 마태 9,14-15
더 이상 슬퍼하고 통곡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구약 시대를 종결짓는 동시에 신약시대를 활짝 여신 예수님의 선구자로서 세례자 요한이 풍기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강렬한 투사의 이미지입니다.
그는 사악하고 구린 유다 고위층 위선자들과 죄인들의 악행을 강력한 어조로 경고했습니다.
하느님과 세상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신속히 회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회개를 선포하는 과정에서 세례자 요한의 당당함은 예수님을 꼭 빼닮았습니다.
적대자들의 위협 앞에서도 단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칭찬이나 격려의 말이 아니라 듣기 싫은 쓴소리를 거침없이 퍼붓는 그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의 무고한 죽음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서막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니 세례자 요한의 삶은 참으로 씁쓸하고 고독하고 팍팍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닦느라고 그는 일찌감치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광야는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라고는 전무한 황량한 장소였습니다.
그저 하늘과 구름, 흙과 먼지만이 전부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세상 조용하고 고독한 광야에서 하루 온종일 기도하고 수행하며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진
소명에 충실했습니다.
그의 특기는 단식이었습니다.
그의 취미는 기도였습니다.
그의 필살기는 고행이었습니다.
메뚜기나 들 꿀 같은 최소한의 음식과 보기가 민망할 정도의 낙타 털옷을 입고 그야말로 자연인처럼
그렇게 살았습니다.
세상적인 재미라고는 단1도 없는 삶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의 쇠락과 더불어 구세사의 전면에 등장하신 예수님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견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타나신 메시아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가시는 곳 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그분은 잔치 초대에 기꺼이 응하셨습니다. 얼마나 자주 초대받으셨던지,
설교 말씀 중에 비유를 드실 때, 자주 잔치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공생활 기간 내내 그분의 삶은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잔치를 좋아하시고 축제를 즐기셨던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분과 그분의 제자들을 향해 먹보요 술꾼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이 세상 도래로 인해 이제 죄와 죽음의 노예살이는 끝났습니다.
더 이상 슬퍼하고 통곡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분과 함께 하는 대대적인 혼인 잔치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 여정 내내 함께 하시기에 당연히 우리들의 이 세상 여정 역시 지속되는 축제입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니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 9,15)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공생활 기간 내내 그분의 삶은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평화를 빕니다
아멘 🙏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