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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 1: 4 남긴 것을 먹고 ( 1 )
욜 1: 4 남긴 것을 먹고 -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
하나님께서는 요엘을 통하여 메뚜기 재앙을 선포하셨다.
팥중이, 메뚜기, 느치, 황충이라고 번역된 말들은 다 메뚜기 종류이다(BDB).
이 메뚜기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회개의 필요성을 알게 한다.
이 재앙은 과거의 이스라엘 역사에 없었던 특이한 사건이었다.
1]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본 절에 나오는 '팥중이', '메뚜기', '느치', '황충'이 등은 메뚜기를 가리키는 각기 다른 네 개의 히브리어, 곧 '가잠'(*), '아립베'(*), '얄레크'(*), '하실'(*)을 번역한 것이다.
이들은 각각 다른 어원으로 메뚜기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
가잠'은 '자르다'는 의미이고, ‘
아립베'는 '많은 떼'를 가리키고,
'얄레크'는 '급하게 갉아먹는 모습'을 가리키며,
'하실'은 '끝장을 낸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다른 용어로 동일한 메뚜기를 언급하는 것은 메뚜기 재앙으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제시한다.
이러한 표현은 수사학적인 표현으로 장차 시행될 심판이 그만큼 철저하다는 개념과도 상통한다(Patterson).
* 렘 15: 3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 겔 14: 21 -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아니하겠느냐?
임박한 메뚜기 재앙에 대하여 설명하는 본문은 크게 4단락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즉 서두와 / 1절, 당면한 곤충 재앙의 성격과 / 2-4절, 재앙의 철저함과 / 5-7절, 재앙의 결과 / 8-12절 등이 언급되어 있다.
여기에서 요엘은 재앙이 역사적으로 반복되지 않는 유일무이한 사건임을 강조하는데
특별히 파멸과 황폐를 묘사하는 단어 즉 '끊어졌고 / 4, 9절 ''황무하고', '마르니', '떨어지며', '다하였도다’ / 10절. ‘다 없어졌음이로다’ / 11절. '시들었고, 말랐으며, 시들었으니‘ / 12절 등을 사용하여 상황의 심각성을 현실감있게 전달해 주고 있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요엘이 드러내려는 사실은 지금 직면한 메뚜기 재앙이 평범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구속사적으로 독특한 의미를 지닌 여호와의 날과 연관된 사건임을 암시한다.
(1)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먼저 팥중이가 헤치고 지나간 자리를 메뚜기가 나타나 다시 먹어 치웠다.
(2)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메뚜기가 미처 다 먹지 못한 부분은 이어 출현하는 느치가 먹어 버린다.
(3)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느치를 이어 계속되는 황충은 요한계시록 9장 1-6절에서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와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다.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고,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로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는데,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였다.
첫째, 메뚜기 재앙은 구속사적으로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 2-3절
선지자는 송사된 나랏일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늙은 자들에게 현재 임하고 있는 재앙의 특별한 의미를 생각하도록 호소하였다.
요엘의 동 시대인이나 열조들도 이러한 재앙을 결코 겪어보지 못한 것으로 미래의 세대에도 아주 굉장한 일로 전해질 것을 말한다.
* 삼하 19:11-15 – 다윗의 귀환 준비 – 11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14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15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 왕하 23:5 –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이러한 사실은 메뚜기 재앙이 당대에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전체 구속 역사를 통해 전달돼야 할 하나님 심판의 표본임을 알려준다.
둘째, 메뚜기 재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로 야기 되었다 / 9절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망각하고 포도주에 취하여 / 5절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결과이다.
* 사 5:11.22 – 1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2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 사 24:7-9 – 7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 8 소고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끊어지고 수금타는 기쁨이 그쳤으며, 9 노래하면서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이라.
* 사 28:7-8 – 7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8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 암 6:1-6 – 1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는 도다. 2 너희는 갈레로 건너가 보고 거기에서 큰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라. 너희가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영토가 너희 영토보다 넓으냐? 3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4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5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노래와 귀에 거슬리는 웃음으로 특징을 이루는 취한 자들로 인하여 메뚜기 재앙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 포도주가 끊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선지자는 취한 자들을 불러서 깨워 울며 곡하라고 말한다.
이처럼 이스라엘에 임한 재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신의 안일과 쾌락을 추구하는 타락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므로
요엘 선지자는 자각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선포했다.
셋째, 재앙은 생활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준다 / 10-12절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린 결과로 나타난 재앙은 밭 곡식과 포도나무, 감람나무, 밀, 보리, 무화과, 석류나무, 종려나무 등 모든 경작물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었다.
곡식과 포도주의 수확이 없으므로 모든 기쁨이 사라져 버렸다.
* 시 4: 7 -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또 성전에 드리는 제사가 끊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제사의 상실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하며
언약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영적영역뿐만 아니라 기본적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측면은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적 견해를 탈피하여 삶의 총체성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한다.
결론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미물인 메뚜기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 독특한 구속사적 의미를 계시하셨다.
우리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실 속에 내제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려야 한다.
커다란 재난을 앞에 놓고도 술에 취해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정욕에 이끌려 살다 보면 영적으로 무감각해져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에 걸리기 쉽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 우리에게는 아무런 행복이나 기쁨도 없다.
언약 백성의 본분을 저버린 이스라엘은 모든 희락이 말라버렸다.
우리도 명예, 쾌락, 부귀 등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으려고 한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오로지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길 때만 가능하다.
2] 종말을 대비하며 살라 ( 요엘 1장 1-4절 ) / 엘리야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마지막 때는 미혹과 군중심리로 정신을 차리기 힘든 때가 된다는 암시다. 이단 교주가 가장 애용하는 말은 “종말이 가까웠다.”는 말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두려움으로 정신을 잃기 쉽다. 그러나 종말이 가까워졌다고 느낄수록 더욱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하라.
기도할 때 몰아 경에 빠지는 기도만 너무 좋아하지 말라. 기도할 때는 믿음의 확신도 얻고 하늘의 지혜와 창조성도 받아서 기도한 후에는 더욱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되어야 한다.
소도 도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자기 종말을 예감하고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있다. 하물며 사람이 종말의 때를 망각하고 산다면 큰 불행이다.
베드로가 약 2천 년 전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라고 했으니까? 지금은 훨씬 더 가까워졌다. 이때 더욱 종말 의식을 가지고 매일을 내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진지하게 살라.
어느 날 초만원을 이룬 극장에서 불이 났다. 그때 “불이야!”라고 급박하게 외치면 더 난리가 날 것 같아서 한 배우가 연극을 중단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여러분! 지금 큰 불이 났습니다. 먼저 살겠다고 한꺼번에 뛰어나가면 다 죽습니다. 뒤쪽과 좌우의 출입구 쪽에 있는 분들부터 차례대로 나가십시오.”
관중들은 그것도 연극인 줄 알고 박수를 치며 웃었다. 곧 극장 안이 불길로 뒤덮였다. 그때야 사람들이 탈출하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지금도 종말에 대해 말하면 잘 믿도록 하려는 말인 줄 아는 관객 교인들이 많다. 물론 영혼을 두렵게 해서 낚아채려고 종말 얘기를 자주 하는 거짓 목자들도 있다. 그런 거짓에 미혹되지 않도록 자기 영혼을 지키되 기본적으로는 늘 종말을 대비하며 살라.
추수 때가 되면 참새 떼가 날아들어 알곡을 가로채려고 하듯이 마지막 때에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영혼을 찾는다. 이때 인본주의, 물질주의, 세속주의, 쾌락주의, 기복주의 등에 영혼을 빼앗기지 말고 더욱 정신을 차려서 종말을 대비하라.
말씀을 잘 들으라.
종말의 심판을 대비하기 위해 요엘이 첫 번째로 강조한 말씀이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말씀이었다(2절).
마지막 때는 영적 전쟁이 심한 비상시기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이라. 평상시의 복과 비상시의 복은 다르다. 평상시에는 재산이 중요해도 비상시에는 양식이 중요하다.
요새 많은 현대인이 돈과 정욕과 미움과 상처에 빠져 정신력과 자제력을 잃고 있다. 이때 정신을 잃지 않도록 영적인 양식인 말씀을 가까이하라. 사람의 마음을 끄는 최고의 매력 포인트는 잘 들어주는 것이다.
미국에서 신학교 다닐 때 어떤 친구는 “Listen(귀 기울여 들어라)!”이란 말을 자주 해서 늘 조심스럽고 어렵다. 반면에 다른 한 친구는 그저 남의 말을 잘 listen 해서 그를 만나면 늘 즐겁고 편했다.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잘 들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잘 들어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는 사람이다. 최고의 목회자 대접은 목회자가 전하는 말씀을 잘 경청하는 것이다. 게다가 실천까지 잘하면 더욱 기쁨이 된다.
다른 대접을 아무리 잘해도 말씀을 잘 듣는 것처럼 목회자의 마음에 큰 임팩트를 주는 것은 없다. 좋은 인물은 대개 좋은 인맥에서 나온다.
어떻게 좋은 인맥을 얻는가? 잘 들어주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최고의 비결이다. 심지어 십자가의 놀라운 헌신을 하는 것보다도 더 우선적인 것이 말씀을 잘 듣는 것이다.
말씀을 잘 들으려면 너무 분주하지 말라. 흐르는 물에 얼굴을 비추어볼 수 없듯이 분주한 마음에는 진리의 말씀이 새겨지기 힘들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관습에 얽매이기 쉽고 우유부단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런 사람이 오히려 영혼의 자유를 크게 누린다.
또한 군중심리에도 잘 휩쓸리지 않고 낙심될 일이 있어도 잘 낙심하지 않기에 영혼의 강자가 된다.
모든 비전과 가치 있는 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풍성한 영혼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지속성이 있고 창조성도 생기고 방향도 잃지 않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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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잠 4:7).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생은 우리에게 행복과 고난을 안겨 주지만 우리는 그것을 선택해서 받아 들일만한 권리는 없습니다.
행복과 고난은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이지만 그 두가지는 언제나 나란히 놓여 있답니다.
행복과 고난의 끝에서도 지금의 순간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며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 할줄 안다면 당신은 이미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도 상쾌한 마음으로 미소 가득히 힘차게 출발 하시여 멋진 하루길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