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12. 6. 금요일.
<국보문학 2024년 1월호>에 낼 글 하나를 골라야 한다.
오래 전에 쓴 일기를 뒤적거리다가 아래 글을 보았다.
2008. 1. 23.에 쓴 산문일기.
여기에 올린다.
문학지에 낼 글을 더 골라야겠다.
도둑게를 보지 못한 우리 집 아이들
최윤환
내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충남 보령군 웅천면 구룡리 화망(九龍里 花望마을) 산골 아래에 있는 우리 집 샘 우물가에 놓은 나무통 안에는 이따금씩 도둑게*가 들락거렸다. 텁텁하고 쉰내가 나는 구정물*을 먹으려고 붉은 빛깔을 띈, 유난히 크고 억센 집게발을 가진 게는 민물과 바닷물이 어울리는 강연안, 시내물 줄기를 따라서 4~5km 내륙까지 따라 올라와 살았다.
지금은 이 게를 전혀 보지 못한다. 볼래야 볼 수가 없다. 아니 씨알머리조차도 깡그리 사라졌다. 웅천천(熊川川) 강물이 흐르던 갯벌을 여러 차례 막았고, 강둑에 제방인 부사방조제*를 높게 길게 쌓았다. 또한 웅천천 부근 새장터, 구장터의 석재산업단지에서 나오는 돌가루를 물에 가라앉히기 위해서 화공약품을 푼 탓으로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살던 생물체가 사그리 사라졌다. 은어, 피라미, 망둥이, 대합(참조개), 참게, 칠게, 농게, 황발이(농게), 방게, 밤게 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래를 채취한다고 웅천천 강바닥을 깡그리 긁어냈으며, 부사 간석지(干潟地)로 책정하여 바다를 막아버린 탓으로 보령군 웅천면(熊川面) 사그내, 광암갯벌이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강안(江岸)과 해변가를 오가며 산란(産卵)하던 숱한 물고기와 게 종류들이 사라졌다. 먹이사슬이 끊어진 탓이다. 이런 결과로 웅천면의 광암, 소황리, 황교리, 독산리, 관당리의 갯바다 개펄과 갯벌이 크게 훼손되어서 연안 해산물이 많이 줄었다.
또한 모래를 채취하고, 제방둑을 쌓았으며, 심지어는 대천항 위에 있는 오천면 고정리화력발전소*와 서천군 비인면 서천화력발전소까지 생겨서 이 두 곳에 끼인 웅천 바닷가는 화력발전소에서 쏟아버리는 뜨거운 물로 바닷속까지 데워졌다. 자연스러운 온난화 현상이 생겼으며, 화력발전소 터빈을 돌리기 위해서 불 때는 석탄의 부산물 찌꺼기(석탄-재)도 자연스럽게 바닷물 속으로 멀리 이동 유출되었다.
교통수단의 발달과 레저활동도 강과 갯벌, 바다를 망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웅천면 관당리 소재 무창포해수욕장*의 경우에는 '바다가 열리는 곳'으로 알려졌기에 숱한 외지인들이 들락거리면서 갯바위와 잔돌이 많은 갯벌 바닷가를 발로 짓이겨서 작은 생명체의 종자까지도 죽게 한다. 이런 결과로 지금은 무창포 갯바다에 숱하게 많았던 게, 고동류가 거의 사라졌다. 고동류의 예를 들어보자. 대수리, 눈머럭대(눈알고동), 총알고동, 소라(삐뿔고동)들이 거의 다 사라졌다. 잔돌과 모랫속에서 살던 모시조개, 바지락(반지락) 수확량도 크게 줄어들었다.
강 줄기를 바로잡기 위해서 강안(江岸)을 조금 건드릴 수 있으나 강물의 흐름을 본질적으로 변형해서는 안 된다. 강가 모래와 여울 속에는 숱한 어류와 조개들의 먹이가 숨어 있고, 여러 단계의 먹이사슬로 이어져서 연안과 원양어업이 발달하게 된다. 그 시원(始原)이 바로 시냇물과 강물이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눈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서 자연환경을 숱하게 훼손하였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내다보지 않았다는 증거가 참으로 많은 게 현실이다.
내 고향에서 사라진 '도둑게'를 수십 년 만에 다시 본 곳은 내 고향이 아닌 경기도 인천직할시 바닷가였다.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용유도(龍游島)* 잠진도에서 철부선을 타면 바로 코앞에 있는 무의도(舞衣島)의 국사봉, 호룡곡산. 산자락 하단 냇물이 흐르는 음산한 습계곡에서 무리 지어 사는 게들을 보았다. 그 반가움이란 무척이나 컸다.
'도둑게'라는 고약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 게들이 바닷물과 합쳐지는 냇물의 상류까지 기어들어와 논두렁 밭두렁을 타고 넘나든다. 이따금 민가 부엌까지 들어와 밥을 훔쳐 먹는다는 누명 때문이다. 내 밥 훔쳐 먹어도 좋으니 내 고향에서 다시 보았으면 싶다.
강물을 막아 방조제를 쌓아올리고, 강 연안(沿岸)을 시멘트로 쳐바르고, 제방둑을 높게 쌓은 탓으로 강물과 바닷물이 합수(合水)되는 것을 막고, 갯벌 간사지를 없애서 만든 논 경지정리(耕地整理)도 한 마당이기에 도둑게 종자가 깡그리 사라졌다. 내가 바라는 소박한 꿈은 영원히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 강물과 바닷물이 합수되는 갯벌에서 놀았던 쌍둥이 형제. 쌍둥이 동생이 만 20살 때인 1969년 8월 여름방학 때 서울에서 고향집에 내려왔다. 저녁 무렵에 울안 변소간에 가다가 뱀한테 물렸고, 다음날인 8월 10일 대천병원에서 처절하게 몸부리를 치다가 죽었다. 그 이후로 형인 나 혼자만 기억하는 '도둑게'로 끝맺음했다고 지금도 아쉬워한다.
* 도둑게 : 바닷가에 가까운 육상 습지나 냇가의 방축 돌 밑, 논밭 등에 산다. 우물가나 심지어 부엌까지 들락거리며 여름철에는 해안 인근의 산 위 개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둑게라는 이름은 부엌에 들어가서 음식물을 훔쳐 먹는다 해서 생겼다.
* 구정물 :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쌀과 보리 등을 씻은 물을 버리지 않고 큰 통에 담아서 소 돼지 등 가축용 물로 재활용.
* 부사방조제(扶士防潮堤) :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과 보령시 웅천읍을 연결하는 방조제. 서해 바다에서 밀려오는 조수(潮水)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1986년에 착공하여 1997년에 완공. 길이 3.474km. 민물낚시와 바다낚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방조제.
* 보령화력발전소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오포리에 위치한 화력발전소. 처음에는 고정화력발전소(高亭火力發電所)로 불렀으나 1984년 4월부터 현재의 보령화력발전소로 개칭.
* 무창포해수욕장 : 일제강점기인 1928년 서해안에서 최초로 개장된 해수욕장.
* 용유도(龍游島) : 인천광역시 중구에 속하는 섬. 을왕리해수욕장이 유명함
2008. 1. 23. 수요일.
* 후기 :
내 소년기, 청년기의 이야기이다. 산골 아래에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 시절에 대전으로 전학 갔고, 여름방학이면 대전에서 고향집으로 왔다. 산자락 개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해서 걸어서 내려가면 웅천천이 나오며, 강물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노천리, 광암 갯펄 갯벌 등지에서 갯것을 잡으면서 놀았다. 물론 서쪽 무창포해수욕장 등에도 숱하게 걸어 다녔다. 내 자식 네 명(딸 둘, 아들 둘)은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만 자랐기에 강가, 바닷가의 경험은 없다. 그래서 내가 제목을 위처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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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