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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 있어 조선이라는 국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사용됐듯이 무려 2500여년 동안 사용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고조선, 왕검조선, 후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근세조선,이씨조선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역사학계'에서 얘기하는 '고조선'의 용어 부터 살펴보겠습니다.(사단법인 한배달, 고조선 다시보기를 참고했습니다.) 1)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까지를 고조선의 포함시키는 학자들. 2) 위만조선과 한사군을 분명히 고조선에 포함시키고 단군조선은 애매하게 처리하는 학자들. 3)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까지 고조선에 포함시키는 국정교과서. 4) 기자조선을 고조선이라는 학자. 5) 단군조선을 고조선이라는 학자들.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국내 학자를 포함한 국정교과서 조차도 고조선의 대해서 통일 되지 못하고 있는것이 우리 역사학계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고조선이 어떤 조선을 얘기하는지 고조선 용어가 등장하는 '삼국유사'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삼국유사』에서 일연스님은 '고조선'이란 제목 아래 단군조선과 기자에 대해 서술한 다음 위만조선이라는 별도의 제목을 잡아 위만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즉 조선을 위만조선과 그 이전 단군조선을 구분하기 위해 단군조선에 ‘고’자를 붙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조선과 나란히 ‘왕검조선(王儉朝鮮)’이라 써줌으로써 고조선이 왕검조선임을 밝혀놓았다.[인터넷 검색 참고] 즉, 고조선의 용어가 등장 하는 삼국유사에는 분명하게 왕검조선이 고조선이라고 명확하게 밝혀 놓았습니다. 다음은 기자조선의 대해서 조금만 살펴보겠습니다. 참고로 역사학계와 재야사학계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기자조선'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것은 일제가 조선사를 재편하면서 기자조선을 빼자고 한 사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日帝가 내세우는 箕子朝鮮 抹殺의 論據의 要旨를 살펴보면, ... 箕子는 中國사람(殷人)이므로 箕子朝鮮史는 朝鮮史에서 除外하여야 하고, 中國歷史의 일부로 취급하여야 한다고 하는데 있다.(1934년 7월 30일 朝鮮史編修會 第8會 委員會幹事 稻葉岩吉 報告, p. 68)[李相時, <겨레의 바른 正史>(1987), p. 66] 우리는 어려서 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을 많이 듣고 배웁니다. 또한 국사교과서와 각종 시험에서는 팔조법금(八條法禁)의 대해서 배우곤 합니다. 이는 고조선에서 부터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어를 연구하시는 박대종소장님께서는 제하의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명칭이 바뀐 교육인적자원부의 국제교육진흥원 사이트를 보면, ‘한국의 교육’란에 외국어로 “고조선(古朝鮮)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강력한 국가체계를 취하기 위해 팔조법금을 제정하여 백성들을 교화하였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리고 현 중고교 국사책과 국가공무원 7,9급용 국사 수험서 등에서는 팔조법금은 고조선사회의 기본법이라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교육방침이 담긴 이들 국사 서적에 기자 또는 기자조선이란 문구가 보이질 않는다. 고조선 부분은 단군조선에서 곧바로 위만조선으로 건너뛰었고, 팔조법금은 출처인 한서지리지를 언급하면서도 기자조선이 아닌 고조선의 법으로 기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체계에서 기자조선을 떼어내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면 기자가 제정한 8조법금과 동방예의지국(필자플러스)도 삭제해야 도리다. 기자는 왕따 시키면서 그가 만든 8조법금만은 한서지리지를 왜곡하여 ‘고조선의 것’으로 돌려 크게 써먹는 것은 이율배반적 행동으로 보인다. http://www.hanja.co.kr/ 게시판 기자 관련 논고 1,2,3 참고 즉, 기자조선은 유령국가로 만들면서 기자께옵서 만든 8조법금과 기자대왕으로 인해 동방예의지국이 만들어진것 또한 삭제해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용을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막연히 고조선이라고 하면 어떤 시대를 얘기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조선의 국호에는 단군께옵서 국호를 조선이라고 하였고 뒤를 이어 기자께옵서 조선이라고 하였으며 또 뒤를 이어 위만도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습니다. 즉 2천년이 넘게 조선이란 국호가 사용됐으며, 이성계가 개국한 조선까지 포함하면 무려 2500년이 넘게 조선이란 국호가 사용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학계에서는 2500여년 동안 존속한 조선을 명확하게 <조선,왕검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근세조선>이라고 해야 맞다고 봅니다. 여기서 잠깐 '이씨조선'의 대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이씨조선 즉, 이조는 일본의 조선 폄하 이전에 여러 조선의 왕조를 구분하기 위해 썼으므로 써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그 대표로 신채호 선생님의 예를 많이 들곤 합니다.(1) 또 어느 한쪽에서는 '이씨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성계의 조선을 하나의 씨족집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이며, 일본의 한 지방정권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절대 써서는 안될 용어다고 합니다.(2) 그렇다면 먼저 1번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조(李朝)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왕조 최대의 비극은 1592년 임진왜란과 1910년 멸망으로 모두 일본과 관계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그 날의 기억이 유전자에 오래도록 남아 사안에 따라선 공정을 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심화(心火)가 앞서는 때가 많다. 9년 전 “이씨조선이란 말은 일제가 우리 조선을 나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씨족 집단으로 전락시키기 위해 만든 말입니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이후 곳곳에서 “왕의 성을 함부로 부르는 건 큰 죄다. 이조는 일본이 조선을 강제합병 후에 그 왕조를 비하하기 위해서 쓴 말이니 이는 민족 말살 정책의 대표적인 경우이다.”라는 말이 들려온다. 현재 그러한 관념은 주로 젊은 세대 다수의 머릿속에 확고히 자리 잡아 ‘인조이 재팬’과 ‘인조이 코리아’ 같은 곳에서 일본인들에게 항의성 글로 게시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씨조선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식민교육의 영향을 받은 구세대로 간주하는 갈등수위 한계치까지 이르렀다. 그렇다면 독립운동가 신채호는 조선혁명선언문(1923)에서 ‘이조’라는 말을 썼는데, 식민교육을 받아서 그랬을까? 그런데 중국의 baidu.com에서는, “이조(李朝)는 이씨조선이다. 임금의 성이 李씨이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이씨조선이라 칭하며 줄여서 이조라 한다.”라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에서도 ‘이조’라는 용어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지(通志)에서 씨(氏)는 귀천의 구별이 되는 것으로 귀한 자는 씨가 있고 천한 자는 이름은 있되 씨는 없다고 하였다. 씨(氏)자는 성이나 이름, 친족 어른의 칭호에 붙이는 존칭으로, “에이 씨!”할 때의 씨와는 차원이 다른 말이다. 비하칭이 아니라 존경칭이기 때문에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처럼 상고시대의 전설적 인물이나, 그리고 주씨(周氏), 진씨(秦氏), 위진씨(魏晉氏)처럼 나라이름 밑에 붙여 썼다. 옛날에는 한 성씨가 나라를 건국하고 망할 때까지 지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나라 왕실의 성은 자(子)씨요, 주나라 왕실은 희(姬)씨, 한나라 왕실은 유(劉)씨, 당나라는 조선과 같은 이(李)씨였다. 현재 중국에선 이씨조선처럼 성씨+국명 방식의 용어인 자씨상(子氏商), 희씨주조(姬氏周朝), 유씨한조(劉氏漢朝), 이씨당조(李氏唐朝)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한서와 삼국지 위지에는 희주(姬周←희씨주조)가 나오고, 청나라 때 황조경세문신편에는 유한(劉漢←유씨한조)이 나오며, 청사고에는 이당(李唐←이씨당조)이 나온다. 이처럼 중국에서 고래로 국명 앞에 성씨를 붙여 씀은 관례적인 일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조(1457) 편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 세조 편을 보면, “곧바로 본조의 의례로 하여금 이당(李唐)과 짝하게 하고”라는 구절이 나오고, 명종․인조․효종 편에도 “이당”이란 말이 나온다. 현재 북경에는 ‘이씨당조광고예술전파센터(北京李氏唐朝广告艺术传播中心)’라는 곳이 있는데, 이러한 기록들이 당나라를 비하하며 쓴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또한, 연암집과 필원잡기에선 고려를 왕씨고려(王氏高麗)라 하였고, 세종실록에선 조조의 위나라는 조위(曹魏), 조광윤의 송나라는 조송(趙宋)이라 하였으며, 영조실록에서는 주나라를 희주(姬周←희씨주국)라 칭하였다. 역사에서 강씨의 제나라를 강제(姜齊)라 하고 전씨의 제나라를 전제(田齊)라 하여 둘을 구별하는 것이 상식이듯, 이재유고에 나오는 것과 같은 단씨조선 등과 구별키 위해 이씨조선이라 하는 것은 결코 비하칭이 아니니 괜히 심화를 함부로 내뿜어 냉소를 초래해선 안될 것이다. 2009년 1월 9일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朴大鍾 http://www.hanja.co.kr/ 1번의 경우 고대에도 사용했고, 중공도 사용했으며 우리 조선에서도 사용한 흔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씨조선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일제와는 상관 없이, 여러 조선을 구별하기 위해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2번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일본-한일합방(경술국치) 이전에 '이조'(李朝) 사용 강요 [문화] 日, 한일병합전 '李朝' 사용 강요 후손 기증 유길준 유품서 밝혀져 '보통학수신서' 등 5천여점 공개 1908년에서 10년 사이 일제 통감부 시기에 발행된 교과서 '보통학수신서(普通學修身書)' 4권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기존에 알려진 교과서 총서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자료다. 특히 일제 통감부의 조선 교과서 검열을 비롯한 식민화 교육정책을 입증해 주고 있어 주목된다. 이 교과서를 보면 당시 통감부는 '본조(本朝)→이조(李朝)''일본→내지(內地)''아국(我國) 및 본국(本國)→조선'으로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조선왕조를 비하하는 표현인 '이조'라는 말이 '한일병합'이전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쓰였음을 확인케 한다. 또 조선 인물을 소개하는 소목차에는 "어린 학생의 교육상 너무 강경한 인물은 넣지 말 것"이라는 식의 요구사항이 적혀 있다. 이같은 수정 사항은 페이지마다 덧댄 종이에 일본어로 쓰여 있다. 이 교과서는 갑오개혁(1894)을 주도한 개화사상가 유길준(1856~1914)의 유품 가운데서 발견됐다. 유길준의 증손자인 유석재씨가 보관해 오던 방대한 양의 유품 5천여 점을 고려대 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알려지게 됐다. 고려대 박물관은 올해 12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유길준의 유품 기증을 기념한 특별 전시회를 2일부터 16일까지 개최한다. 5천여 점의 유품 가운데는 유길준이 일본에서 제공하는 남작(男爵) 작위를 거부했음을 보여주는 문서도 포함돼 있다. 유길준의 작위 거부를 문서로 확인하는 것은 처음이다. 일제는 '훈공있는 한국인에 대한 표창 및 작위를 준다'는 조항('병합 조약'제5조)에 따라 조선인 80여명에게 작위를 준 바 있다. 이와 함께 '유길준 전집'(1970년 간행)에 빠진 갑오개혁과 관련된 문서 등 새로운 기록물이 다량 포함돼 있다. 조선의 의정부 관제, 중추원 관제뿐만 아니라 일본의 대장성 관제, 내무성과 외무성의 규정 등을 담은 문서들은 유길준이 당시 일본의 관제를 참고했음을 증명한다는 평가다. 또 갑오개혁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교도태(吏校淘汰)''향회(鄕會)''군분합사의(郡分合事宜)''징세사의(徵稅事宜)'라는 제목의 인쇄본도 눈길을 끈다. '이교도태'와 '군분합사의'에는 1894년 지방재정의 중앙 집중화 조치로 인한 지방 관직의 정비안이다. '향회'에는 1894년 9월에 발포된 '결호전봉납장정'(結戶錢奉納章程)의 의미와 내용이 담겨 있다. '징세사의'는 징세제도 개혁과 관련된 글이다. 고려대 박물관 측은 "내용으로 보아 이 4개의 문서는 갑오개혁 기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갑오개혁에 대한 기록이 매우 적게 남아 있는 현 시점에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갖는다"고 밝혔다. 이 밖에 김윤식.박영효.조희연 등 개화파 인사들 사이에 주고받은 미공개 서신들은 개화파 내부의 인적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한성순보' 발행에 관여했던 이노우에 가쿠고로(井上角五郞) 등 일본측 정치인들이 보낸 편지도 상당수 남아 있다. 또 갑신정변.갑오개혁.독립협회 등과 관련해 일본으로 망명한 인물들에 대한 목록과 간략한 직책이 적힌 문서도 발견됐고, 김홍집.김학우 등의 개인기록도 다수 포함돼 당시 인물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배영대 기자<balance@joongang.co.kr> 일본에서 뵌 역사학자가 말하는 재밌는 일본역사의 왜곡과 날조 이씨조선이라..그것은 바로 일본의 한 지방정도로 취급한다는(즉 속국)..다이묘정도(지방정권 지도자정도로)급으로 격하시키는 내용이랍니다.. 일본에서는 유명무실한 왜왕(천황)------> 중앙정부인 막부(쇼군)가 다스렸고------>지방정부인 한을 다이묘가 다스렸다... (이씨조선이라는 것은 지방정부인 다이묘정도로 격하시키는 말이라는것을 확실히 알아야한다...) 일본인이 우리나라사람들 보고 이씨조선이라는 것은 너희는(한국) 일본의 속국인이야(다이묘정도의 지방정권) 말하는 것이다 왜 일본인들이 이씨조선,이씨조선하는 이유를 제발 좀 알아야 겠어요 ..(일본의 속내를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이씨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너희는 우리의 노예정도야...(일본인들의 속내를 조금이라도 알자).. 요즘에는 춍(조센징의 줄임말) 우리는 쪽바리라고 해주자..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229905 또한 후소샤 <새 역사교과서>에는 조선반도에서는 14세기에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국(이씨 조선)을 건국하였다..(87쪽) 고 합니다. 이 내용대로라고 하면 우리는 '이씨조선'이란 용어를 절대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일본의 역사왜곡과 일제청산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저 또한 이씨조선, 즉 이성계가 개국한 조선을 이조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일제가 우리 조선을 폄하의 의미를 가지고 사용했다면 아무리 타당성이 맞다 하더라도 써서는 안될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왜곡과 일제 청산을 부르짖으면서 이런 용어 하나도 청산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타당성이 맞다고 하더라도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씨조선이란 용어 대신 근세조선이라고 해야 맞을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성계가 개국한 조선을 국호가 조선이기때문에 조선이라고 해야 맞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마찰이 일어납니다. ‘삼국유사’에는, 처음 단군이 나라를 세우고 국명을 ‘조선’(朝鮮)이라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조선이라는 국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호로써 기원전 2333년 부터 쓰여져 내려 왔는데 단군께옵서 건국한 조선이 이성계가 개국한 조선에 밀려 '푸대접'을 받는 꼴이 되니 이 어찌 표기할 것입니까/// 따라서 일연스님께서도 조선을 옛 조선이라 하였듯이 용어는 시대에 따라 바꿀 수 있고 역사학계에서는 고조선의 용어를 명확하게 구분질 필요가 있으며, 단군께옵서 건국한 조선을 조선,고조선,왕검조선이라고 표기하고 기자조선,위만조선 근세조선이라고 해야 맞을것입니다. 맑은무인™ |
첫댓글 남북통일되면 국호를 대한조선민국으로 바꿨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현재는 제2의 남북국시대이고 현대조선이라고 명명하는 그날이 제가 살아있을때 보고 싶군요.
통일되면, 고려민국이나 고려인민 공화국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군요. 대한민국이나 조선은 남북 어느 곳 중 하나선택하면, 좀 그러니까..
코리아에 맞게, 고려가 제일 좋다고 ㅋㅋ
우리에겐 단군조선만이 있습니다. 기자조선은 중국이 만들었던 조선, 위만조선은 일본이 인정하는(?) 조선이죠. 기자조선이 성립해야 조선의 역사는 중국의 식민지가 될수가 있었고 , 위만조선이 성립해야 혹은 일본건국보다 늦은 조선이되며 일본의 식민지설인 임나일본부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본은 기자조선마저도 일본건국연대보다 오래되므로 떼어낸것이라봅니다. 기자도 위만도 단군조선에 전혀 정통성이 없는 이들이죠. 위만은 삼조선의 번한땅 모퉁이를 잠시 점령한자이고 상황을 보면 그래서 정통성이 없기에 위만정권이라해야 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