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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의 영성 (렘2-25)
2026년 10월 14일 (수요일)
찬양 :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본문 : 예레미야 25:1-38절
☞ https://youtu.be/zcUYTy8iUH0?si=z7S7klb_gVpfquJJ
어제 한 목사님과 만남이 있었다. 이분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자녀가 부모의 집중적인 돌봄이 필요한 상태로 태어나자, 섬기던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담임목사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사역을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자녀의 절실한 시간에 곁을 지키며 섬기게 되었다. 그러나 순간순간 목사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지면서 흔들리는 가운데 왓이프 개척학교에 오셔서 자신을 향한 부르심을 느끼면서 다시 목사로서의 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선교회 공간에서 금요일 저녁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요청하여 허락했고 두 부부가 금요일 저녁 오셔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부부만의 시간을 가지며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다시 힘을 얻어 사역의 길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야기를 들으며 선교회 공간이 이렇게 소중한 자리가 되었음에 얼마나 감사하고 뿌듯했는지 모른다. 감사함으로 찾아와 고백해 주신 목사님의 겸손한 발걸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축복하고 기도한다.
오늘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나누기와 목회사관학교 강의를 준비하는 날이다. 모든 시간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하고, 함께하시는 모든 분들의 삶과 사역과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충만하시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1절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왕의 원년에 유다의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예레미야는 지금 자신에게 예언이 임한 시기를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원년>이라고 정확히 밝히고 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기점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도대체 이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기원전 605년은 고대 근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 중 하나다. 그 유명한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애굽의 느고를 완파하고 중동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등극한 해이기 때문이다.
이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불러 선지자로 사명을 감당하게 한지 23년이 지났을 때임을 본문 3절은 밝히고 있다. 3절
‘유다의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 왕 열셋째 해부터 오늘까지 이십삼 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오늘 아침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라는 문장이 내게 큰 울림을 준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 원어는 '아쉬켐 베다베르(אַשְׁכֵּים וְדַבֵּר)'다.
핵심 뿌리가 되는 동사 '샤캄(שָׁכַם)'은 본래 '어깨에 짐을 지우다' 또는 '아침 일찍 일어나다(to rise early in the morning)'라는 뜻으로 여기에 '말하다'라는 뜻의 동사 '다바르(דָּבַר)'가 결합되어, 원어를 직역하면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말했다"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메시지 성경은 이 부분을 번역하면서 이 어감을 살려서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매일 그것을 너희에게 전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히브리 문학에서 '아침 일찍 일어난다'는 것이 어떤 일을 향한 '애타는 열정, 부지런함, 다급함,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을 상징하는 관용구라는 점이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샤캄)' 순종의 길을 나섰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토록 뜨거운 열정과 성실함으로, 그리고 다급함으로 임했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백성들을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예레미야를 통해 간절하고 다급하게 외치셨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을 발견한 예레미야 역시 자신의 온 생애를 걸고 성실함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전했던 것이다.
23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23년을 매일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백성들을 향해 뜨거운 열정과 성실함으로 부지런히 외친 예레미야의 고독한 모습과, 어떻게든 내 백성을 구원하고자 포기하지 않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이 겹쳐져, 오늘 아침 나를 이 말씀 앞에 멈추어 서게 한다.
그리고 이제, 이토록 애절했던 23년의 눈물 어린 사역 끝에 마주한 것은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너무도 참담하고 '아무 소용없어 보이는 현실'이다. 11절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물론 이 70년이라는 기한 속에는 영원한 진멸이 아니라는 '한정된 심판의 소망'이 담겨 있다. 이어서 12절에 유다를 짓밟았던 바벨론을 심판하시어 영원한 폐허로 만드시겠다는 대조적인 선언 역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지난 23년 동안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샤캄) 피 토하듯 말씀을 전하며 달려온 예레미야의 가슴에, 자기 민족을 향한 이 폐허와 70년 포로의 선고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황금기인 20대와 30대, 그 23년의 청춘을 온전히 바친 사역의 결과가 조국의 완벽한 폐허와 멸망의 선고로 이어졌을 때, 과연 나라면 어떠했을까. 나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되는 아침이다.
예레미야도 나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연약한 사람이 아닌가. 그토록 땀 흘려 열심히 달려왔다면, 단 한 줌의 열매나 성과라도 눈앞에서 보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머리로는 알고 있던 심판이라 할지라도, 막상 "모든 땅이 폐허가 되고 70년 동안 바벨론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최종 선고가 떨어졌을 때 그가 겪었을 충격과 상실감은 감히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그 실망스러운 폐허의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말씀을 전하는 종의 걸음을 묵묵히 이어갔음을 깊이 묵상하는 아침이다.
돌아보면 22살 교육전도사로 첫발을 내디딘 후 숨 가쁘게 달려온 나의 사역도, 이제 그 치열했던 전반전을 마무리하고 내려놓아야 하는 시간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바로 이 은퇴의 길목에서 나로 하여금 예레미야서를 묵상하게 하시며, 눈앞의 성과나 보장이 아닌 오직 부르심에 순종하는 종의 모습을 보게 하신다.
나 역시 선교단체를 섬기며 주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 숱한 도전을 이어왔다.
'신문지 한 장의 정신'으로 족하다며 겸손을 외쳤지만, 정작 뒤를 돌아보면 뚜렷한 성과 없이 실패한 자국만 남은 것 같아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기가 어렵다. 비우겠다고 했지만, 실상 내 안에는 크고 화려한 결과로 응답하실 하나님을 향한 기대와 야망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부인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눈앞의 현실에 무너지지 않고, 23년을 성실하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달려간 예레미야를 묵상한다. 이제 사역의 전반전을 마치고 내려가야 하는 나의 길 위에서도 <꾸준히, 샤캄> 이 단어 하나를 굳게 붙잡고, 묵묵히 주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걸어가는 종이 되기를 다짐한다.
'성과'가 곧 그 사람의 가치라고 외쳐대는 이 세상에서, 23년이라는 길고 긴 '무(無) 성과' 앞에서도 묵묵히 사명을 이어간 예레미야를 묵상한다. 이제 사역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향해 나아가는 나의 걸음 역시, 이 위대한 '꾸준함(샤캄)의 영성'으로 채워지기를 간절히 다짐한다.
오늘 나는 예레미야의 삶을 통해 참된 '꾸준함(샤캄)'이 무엇인지 배운다.
첫째, 꾸준함은 나의 기대와 다른 현실이 주는 '실망'을 넘어서는 것이다.
둘째, 꾸준함은 아무리 외쳐도 변하지 않는 굳은 현실 속에서 찾아오는 '나태함과 허무'를 넘어서는 것이다.
셋째, 꾸준함은 이 모든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변함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붙잡는 것이다.
주님 이 종이 부르시는 날까지 꾸준히 당신의 명하신 뜻을 이루는 종으로 서기를 원합니다. 나의 기대와 소망은 다 내려놓고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종으로 오직 주님 앞에 꾸준히 사명을 감당하는 자로 서게 하소서.
한줄 묵상 :
<참된 사역은 화려한 성과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폐허만 보일지라도 매일 아침 일어나 변함없는 하나님을 묵묵히 신뢰하는 '꾸준함'입니다.>
적용 질문 :
1. 나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내심 내가 원하는 '성과와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 깊은 실망과 낙심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2. 아무리 기도하고 애써도 변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영적인 나태함과 허무함에 무너져 사명의 자리를 놓아버리지는 않았습니까?
3. 눈앞의 결과가 '폐허'처럼 보일지라도,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샤캄)' 성실하게 걸어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