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야기/청첩장& 예단& 혼수
`신부의 아버지`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50년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
으로 처음 제작됐고 1991년 다이안 키튼 주연으로 리메이크됐지요. 딸
의 결혼을 앞두고 아버지가 겪는 갈등과 고충,미묘한 심리와 그때문에
벌이는 한바탕 소동을 다룬 것입니다.
사랑하는 딸이 결혼한다고 하자 사위감이 어떤 녀석인지 근심걱정에 휩
싸이는 것부터 시작, 부잣집 사돈과의 혼사를 앞두고 "웨딩드레스와 결
혼케익은 왜 그렇게 비싼지, 결혼식장 치장은 왜 그리 요란하게 해야 하
는지" 몰라 아내와 사사건건 부딪치다 끝내는 외진 곳에 갇히기도 하
는, 아버지의 코믹하면서도 딸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모습을 담고 있
지요.세상의 아버지란 동서양 할 것 없이 비슷하다는 걸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갑자기 옛 영화가 생각난 건 얼마 전 딸을 시집보낸 분께서 딸 가진 아
버지 두 사람에게 "딸을 결혼시키려면 참고 또 참아야 한다"고 강조한
까닭입니다. 평소 검소하고, 자녀 결혼식 또한 소박하게 해야 한다고 주
장해온 그분은 딸 아버지인 죄로 그렇게 못했다며 "아들 때는" 하고 벼
르셨습니다.
그래도 처음 사돈과 상견례를 하던 날 "검소하게 하자"고 제안, 사돈댁
에서 "그러자"고 했는데도 막상 결혼까지의 과정은 당초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사사건건 이의를 제기하면 아내와 싸
우는 건 물론 딸에게 상처를 줄 것같아 꾹꾹 눌러 참았다는 얘기였습니
다.
문제는 예단과 혼수 등 결혼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었지요. 아버
지는 결국 예단과 혼수는 딸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대신 결혼식날 입을
양복을 23만원짜리로 구입함으로써 `검소한 결혼`에 대한 소신을 표명했
다고 했습니다. 유일한 시위였다는 것이지요.
사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 치고 예단과 혼수문제로 한번쯤 감정이 상하
지 않는 경우는 드물 겁니다. 중매결혼은 물론 연애결혼의 경우에도 사
소한 문제로 서운하고 그러다 보면 티격태격할 수 있으니까요. 그날도
아는 사람중 결혼 전 예단비 문제로 얼굴을 붉혔던 부부가 끝내 6개월만
에 파경에 이르렀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문제는 서로의 기대치가 다른데서 비롯되는 듯합니다. 서로의 형편이 차
이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비슷해도 혼수나 예단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어긋날 수 있고 그러다보면 서로 삐걱거리는 것이지요. 게다가
아들쪽에선 "내 아들의 미래가 괜찮다"식이고 딸 쪽에선 "내 딸이 어디
가 부족해서" 하다 보면 서운한 감정이 쌓이고 부모들의 감정싸움이 격
해지면 괜찮던 자식들 사이에도 금이 갈 수 있는 겁니다.
글쎄요. 쉽지는 않겠지만 웬만하면 상견례에서 약혼식을 할지 말지, 결
혼식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치를 건지, 하객 숫자는 몇 명 정도로 맞출
지 합의하면 어떨까요. 돈이 거론될 수밖에 없는 문제인 만큼 영 껄끄럽
고 거북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나중에 얼굴을 붉히느니 부모들끼리 어느
정도 선을 그으면 좋지 않을른지요. 당사자들끼지 합의한 뒤 부모들에
게 지켜주십사 청할 수도 있을 테구요.
그댁에선 식후 폐백을 앞두고 바깥사돈이 "함께 받읍시다" 하는 바람에
그렇게 했답니다. 사실 요즘 세상에 신랑측만 폐백을 받는다는 것도 구
습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약혼식 때 양가 가족과 친척에게 인사를 했으
면 굳이 폐백을 따로 할 이유도 없을 테구요. 따라서 "약혼식을 할지 말
지, 한다면 초대범위를 어디까지로 할지 정하고, 약혼식을 하면 폐백은
하지 말자"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약혼식을 하지 않더라도 결혼 전 양가의 일가친척들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면 결혼식날 폐백 때문에 신랑 신부가 하객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는 일은 없지 않을른지요. "사진도 찍고 하는데" 할지 모르지만 결
혼사진 나중에 몇 번이나 보게 되는지요.
많은 분들이 개인적으로 만나면 자녀 결혼식 때 여기저기 청첩장을 돌리
지 말고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몇 사람만 초청해 정겹고 조촐한 예
식을 올리면 좋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정작 자녀를 결혼시킬 때
쯤 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수 있겠지요. 결혼이라는 게 대부분 아들 가진
쪽에서 주도하다 보면 딸 쪽에서 딱히 주장을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
고, 거꾸로 딸 쪽에서 주도권을 잡고 아들 쪽에 "그냥 좀 따라주십사"
해 어쩔 수 없이 하자는 대로 하는 수도 있을 겁니다. 막상 준비를 하
다 보면 이것저것 드는 돈도 만만치 않고, 그러다 보면 결국 남들 하는
대로 하게 되는 수도 있을 테지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쩌다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명함 한번 주고 받은
사람에게까지 몽땅 청첩장을 돌리거나, `남들이 예단으로 이만큼 받았다
니 우리도 그렇게는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거나, 자녀 결혼을 과시와 거
래의 수단으로 삼는 듯한 일부의 풍토는 이제 그만 척결해야 하지 않을
른지요.
웬만하면 꼭 초대하고 싶고, 기쁜 마음으로 달려와줄 사람들한테만 청첩
장을 돌리는 것만이라도 실천에 옮기면 결혼에 따른 허례허식의 상당부
분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폐백 대신 신랑신부의 성장과정 및 앞으로 어
떻게 살아갈건지 계획을 담은 비디오를 하객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해봄
직하구요.
신랑쪽은 신부에 대해, 신부쪽은 신랑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채 `카더라
`라는 말만 듣고 청구서(?)에 따라 부조만 하는, 그런 결혼식은 이제 그
만 고칠 때도 되지 않았는지요. 전통은 좋은 것이지만 시대에 맞게 방법
을 바꿀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른지요.
예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앙금이 생기면 결혼 후에도 쉽사리
치유되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되도록 검소하게 하고, 요란한 결혼식보
다 알뜰한 미래를 준비하면 하루 8백70쌍 결혼하는 동안 한쪽에서 3백
쌍 이상 이혼하는, 가슴 아픈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박성희의 맛있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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