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는 변덕스러운 처녀의 마음을 닮아 볼 수가 없습네다
백두산 천지는 변덕스러운 처녀의 마음을 닮아 볼 수가 없습네다.
민족의 성산 백두산은 언제면 좋을까? 여러 날짜를 종합해 보면 칠월 중순에서 팔월 중순까지일 것이다. 백두산의 여름꽃들이 만발했을 때 찾아가면 좋을 것이지만. 백두산은 워낙 날씨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열 번을 가고도 천지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나는 예닐곱 번을 갔던 중, 중국에서 올라간 북파, 남파, 서파 모든 곳에서 천지를 보았다. 운이 좋아서일까? 하지만 2003년에 북한의 삼지연을 거쳐 올라간 천지에서는 그때가 10월 2일이라 늦어서 그랬는지 눈보라 휘날리는 속에 천지 표지석만 보고 왔기 때문에 지금도 가끔 서운함이 남아 있다.
아래의 글은 2003년 남북핝 공동 개천절 행사 때문에 찾아갔던 백두산 탐방기의 일부분이다.
”삼지연공항에서 혜산까지는 80킬로미터. 삼지연 공항에서 삼지연군소재지까지는 16 킬로미터, 갑산까지는 54킬로미터다. 삼지연군의 인구는 1만 명쯤 된다고 한다. 잎갈나무, 사스래나무, 가문비나무 군락이 끝나면서 나무 한 그루 없는 고원이 펼쳐진다. 이름 하여 천리천평(千里天坪, 백두산 중턱의 엄청나게 넓은 들)이다. 단군이 처음 나라를 열었다는 천리천평엔 바람이 드세다. 나무 한 그루 자랄 수 없는 땅에 화산 폭발 당시 내렸다는 거무튀튀한 자갈들이 쌓여 있고, 백두산 13 킬로미터 푯말을 보며 백두다리를 건넌다. 홍안의 인민군이 얼굴이 파래진 채 지키고 서 있는 백두산 비를 지나 백두역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천지까지 2킬로미 터는 삭도를 타고 간다.
‘천지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올라간 천지의 바람은 매섭고, 눈보라 속에 천지 표지석만 보였다. 안내원은 “이곳 천지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이나 변덕을 부립니다. 백두산 의 천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만 년 전에 화산이 폭발해 만들어졌습니다. 백두산은 사화산이 아닌 휴화산으로, 백두온천의 물은 74~82도를 기록합니다. 백두산 천지에는 원래 물고기가 없었는데, 1984년에 위대한 김일성 원수님께서 산천어를 넣은 뒤로 몇 년 전에는 길이 84센티미터에 무게가 7킬로그램 나가는 산천어를 잡았습니다. 백두산 천지는 변덕스러운 처녀의 마음을 닮아 자주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백두산은 특히 해돋이가 좋은데 심장을 달구고 손과 발을 얼려봐야 그 진면목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백두산 천지의 위용을 볼 수가 없었다.
삼지연군은 과거 무산군의 서쪽 일부에 해당하며, 1961년 함경북도 무산군 지역인 연사군 일부와 보천군 일부 지역을 합해 신설한 군이다. 백두산 아래 소백산이 바라보이는 3개의 연못인 삼지연三池淵에서 이름을 따서 지었다. 수천만 평, 아니 그 크기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넓게 펼쳐진 노란 잎갈나무 숲과 가문비나 무 그리고 자작나무가 드문드문 병풍처럼 드리운 채 서 있는 삼지연은 바라보기 가 처연할 만큼 아름답다.
삼지연군의 서북쪽에는 백두산을 비롯해 북포태산, 남포태산, 간백산, 소연지 봉, 소백산 등의 높은 산들이 있다. 압록강과 두만강이 백두산 남쪽과 무두봉 동 북쪽에서 흐르고 이명수, 포태천, 소흥단수 등의 하천과 백두산 천지, 삼지연을 비롯해 30여 개의 호수가 있다.
김일성이 항일 유격 활동 당시 잠시 쉬어 갔다고 하는 곳에 소백산을 등지고 15미터쯤 되는 대형 동상을 세우고 사적지로 단장하였다. 《여지도서》 〈형승〉조 에 “삼지연은 관아의 서쪽 200리, 천평天坪의 상단, 허항령虛項嶺 아래에 있다. 연 못이 맑고 깨끗하며, 물결이 흩날리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라고 기록되어 있 는 삼지연을 최남선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여기는 삼지라 하여 옛날부터 이름이 들린 곳이니, 크고 작은 여러 늪이 느런히 놓 인 가운데 셋이 가장 뚜렷한 고로 삼지라 일컫는 것이라 하는데, 옛날에는 더 많았을 것이 분명하니 혹 칠성지라는 이름이 있음은 필시 일곱으로 보이던 시절에 생긴 이름 일 것이다.
세 호수 중에서 크기로나 아름다움으로나 으뜸이 되는 것은 가운데 있는 것이니 둘레 가 7~8리에 파란 물이 잠자는 것처럼 고요한데, 동쪽과 북쪽에는 속돌 부스러진 무게 없는 모래가 백사장을 이룬 밖으로 나직나직한 잎갈나무 숲이 병풍처럼 에두르고, 서쪽으로 들어가면서 얽은 구멍 숭숭한 돌들이 운치 있게 꾸며진 정원처럼 물가에 깔리다가 그것이 거의 다할 만하여서 잘록한 목장이가 되고, 둥글 우뚝한 조그만 섬 하나가 바로 소담스럽게 호수 가운데에 솟았는데 나무가 우거지고 돌 모양이 운치 있다.
그러나 삼지의 아름다움은 삼지 하나만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일면으로는 백두산 이하 간백, 소백, 포태, 장군 등 7000~8000척의 높고 험한 산들이 멀리서 둘러싸고, 일면으로는 천리천평이라고 하는 큰 들의 깊은 수풀이 끝없이 퍼져 나가서 웅장하고 호쾌한 갖은 요소를 다 드러내 보였으니, 이러한 외곽을 얻어서 삼지의 아름다움은 다시 몇 백 배의 가치를 더하여 다른 아무 데서도 볼 수 없는 천하의 독특한 지위를 얻었다. 이러한 것은 어쩌다가 한 번 있을 일이요, 어쩌다가 한 군데 생길 것인 만큼 그 신기하고 소중함이 여간일 수 없다. 삼지를 초점으로 하여 나타난 미의 한 서클은 백두산 아름다움의 클라이맥스인 동시에 실로 조화의 가장 자신 있는 대걸작이요, 인류의 가장 의의 있는 한 재산일 것이다. (……) 삼지는 세계적 절경이요, 또 두드러진 특색과 특별한 맛을 가졌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항일 정신을 부각하기 위해 항일 전적지로 개발된 이곳에는 김일성 이 항일 투쟁 당시에 외쳤다는 선전 구호를 새긴 구호 나무와 빨치산의 아지트, 배움의 천리길 등이 만들어져 있다. 삼각주 모양의 북포태산과 나라 안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남포태산이 있고, 특산물로는 북한의 천연기념물 제345호인 이명수 폭포와 아름답고 고기 맛이 좋은 삼지연 메닭이 있다. 또한 이곳은 북한에서 손꼽히는 통나무 생산지이며, 남한에서 고로쇠나무 수액을 채취하듯 자작나무 수액을 채취하여 약용으로 가공한다.“
그 때 이후 금세 다시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는 가지 못할 것 같은 북한의 삼지연과 천지, 그러나 우연처럼 필연처럼 중국을 경유 올라간 백두산 천지 남파에서 고산자 김정호를 촬영하러 온 강우석감독과 차승원을 만나 현대판 김정호라고 불리는 나 신정일과 영화 속 김정호 차승원이 만나 사진을 찍었으니, 세상은 얼마나 신기한 일로 가득차 있는지, 언제일지 모르나 어느 날 문득 백두산 천지를 다시 찾아갈 날이 있지 않을까?
2026년 7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