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어느 마을에 오래된 나무 탁자를 식탁으로 사용하는 집이 있었다.
어느 해 봄날 밤 부엌에 물을 가지러 갔던 아이가 방으로 돌아와서 말했다.
"엄마, 부엌에서 무슨 소리가 나."
아이의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어머니가 아이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가 난다고 그러니? 네가 뭘 잘못 들었나 보다."
다음 날 새벽, 어머니는 아침밥을 짓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 때였다. 어머니의
귀에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자리에 멈춰 선 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주위를 기울이지 않으면 여간해서는 들리지 않을 아주 미세한 소리였다.
마치 연한 종잇장이 서로 부딪치며 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갑자기 전등의 스위치를 올렸다. 부엌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소리도 곧 멎고 말았다.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이렇게 생각한 어머니는 곧 돌아서서 싱크대로 향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다음 날 새벽에도, 또 그 다음 날 새벽에도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가 부엌의 전등만 켜면 불빛과 함께 그 소리도 멎고 말았다.
나흘째 되던 날, 어머니는 마침내 아이의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야기를 듣고 난 아이의 아버지가 말했다.
"쥐가 들어왔나 보지. 내일은 어디 쥐구멍을 한 번 찾아 보자구."
다음 날 아침 대대적인 부엌의 청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난 가을에 다시 뜯어 고쳐 단장을 한 부엌은 개미 구멍 하나 없이 말짱했다. 어디에도 쥐가 들어온 흔적은 없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당신이 뭘 잘못 들었어."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날 이후에도 새벽마다 어머니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전등만 켜면 그 소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다시 며칠이 지났다. 어머니도 이제는 귀가 무디어졌는지 더 이상 그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인 늦은 봄의 어느 화창한 일요일.
오랜 만에 온가족이 식탁에 얼굴을 마주하고 둘러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자리였다.
식사가 막 끝나갈 무렵, 어머니는 나무탁자에 놓인 물주전자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이 난 더운 물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 때 아이가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아빠, 저기 봐요!"
아이는 손가락으로 방금 엄마가 들고 일어난 물주전자가 있던 나무 탁자의 한 모서리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난데없는 벌레 한 마리가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아이의 말을
듣고 어머니가 달려왔다. 아이의 새끼손가락 끝마디 만한 그 생명체는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듯, 나무 탁자에 파인 구멍 속에 반쯤 몸을 묻은 채 마침 문틈으로 비친 햇살
아래 그 찬란한 자태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의 눈빛이 반짝, 하고 한
번 빛났다. 이어서 그 눈빛은 경이로움에 가득 찬 아버지의 눈빛과 한동안 마주쳤다.
지난 가을 아버지가 부엌을 새로 단장하기 전까지, 창고에서 수십 년 동안 먼지를 덮어쓰고 있던 나무 탁자… 그 것은 돌아가신 아이의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사과나무를 베어서 만든, 사십 년도 더 된 고물 나무 탁자였다. 그리고 벌레가 깨어난 탁자의
그 모서리는 지난 가을부터 올 봄까지 늘 따뜻한 물주전자가 놓여 있던 자리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할말이 없다. 벌써 십 년도 더 전에 우연히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에다, 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구였는지조차 기억에 없기 때문이다. 또 그 때 그 나무 탁자에서 기어나온 게 정확히 무슨 벌레였는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게 바퀴벌레였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렇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