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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우물이 필요합니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서처럼 고요한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 속에서 나를 미워하기도 하고, 가엾어하기도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나를 다독여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바로 산 속 외딴 우물입니다.
아이들에게도 우물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조용히 주변을 돌아보며 나를 알아갈 시간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바쁩니다. 40분의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면 수업 시간에 조용히 축적해 온 에너지를 발산하기 바쁩니다. 방과 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방과 후 수업이나 학원 등 여러 일정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지요. 숙제를 해결하느라 집에서 밤늦게까지 숙제와 씨름하기도 하고 미처 다 끝내지 못한 숙제를 학교에 들고 와 해내느라 바쁩니다. 때로 마음이 바빠 수업 중에 숙제를 해결하다가 교사에게 한 소리 듣기도 하지요. 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점심시간이나 중간놀이 시간에 홀로 앉아 숙제를 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쓰여 아이에게 물어보면 숙제를 미룬 것은 아닌데 절대적인 시간 부족이라는 말이 되돌아옵니다. 잔뜩 찌푸린 미간과 빠른 손놀림으로 미루어 보아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바쁠지 짐작이 되기도 합니다. 일정을 마치고 집에 가면 그동안 하지 못한 핸드폰을 하느라 또 분주합니다. 지쳐 쓰러져 자는 시간은 있어도 나를 돌아볼 시간은 없지요. 내 마음에 나도 모르는 감정의 찌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기도 합니다. 상황에 이르면 상황 속 나는 내가 아니므로 스스로를 조절하기 힘들어집니다.
동학년 선생님께서 강물이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주셨습니다. 체육시간에 강물이가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승부욕이 지나쳐 실수한 친구에게 비속어를 남발하기도 하고 가끔 산빛이와 몸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먼저 폭력을 휘두른 부분에 대한 지도를 하려 해도 "왜 나만가지고 그래요?" 말을 반복하며 진정이 되기는커녕 상황이 더 악화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고학년 체육 시간의 흔한 풍경이지요. 회복적 생활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은 동학년 선생님을 위해 전담 시간을 이용해 강물이 학급에 들어가 서클을 진행해보기로 합니다.
몸놀이와 여는 질문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은 다음 함께 해야 할 이야기를 던집니다. "우리 학급에서 일어난 불편한 일은?"이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저마다의 불편함, 후회되는 일, 속상한 일들을 토해냈습니다.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단연 `체육 시간 강물이와 산빛이의 일`입니다. 소중한 체육 시간을 싸움을 말리며 흘려보내는 것이 힘들고 불편하다는 아이, 싸움을 말리려다가 도리어 산빛이에게 맞아서 속상했다는 아이, 지켜만 봤는데 말려볼 걸 후회된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저마다 여러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강물이의 차례가 왔습니다.
"저도 그 순간이 되면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노력하고 있는데 잘되지 않아요. 나 때문에 불편한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싸움을 말리며 산빛이 편만 드니까 그게 또 억울해서 더 화가 났던 것도 있어요"
아이들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자신을 들여다본 강빛이는 "용기 내어 내 행동에 책임을 지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많이 부딪혔던 산빛이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지요. 산빛이는 사과를 받아주었습니다. 강물이를 시작으로 여러 아이들이 용기 내어 그동안 마음에 쌓아놓았던 감정을 표현하고 사과를 주고받았습니다. 오래되었지만 아직 찝찝한 마음이 남아있던 일을 밖으로 꺼내어 먼지를 털고 햇빛에 말려주었지요. 아이들의 얼굴은 후련해 보였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를 하는 아이를 볼 때는, 그동안 힘들었을 아이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해 덩달아 울컥해졌습니다. 무엇보다 강물이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본 친구들이 강물이가 노력하는 것을 알아주고 조금은 기다려줄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시간이 체육이에요" 누군가의 이야기에 다함께 와글와글 웃음꽃이 피어났던 것은 그 순간 모두 한 마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음 날 복도에서 강물이를 만났습니다. "체육 시간에 노력하고 있지?"하고 물었을 때 "그럼요, 당연하죠"하며 싱긋 웃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합니다.
그 순간 동그랗게 모여앉은 서클은 아이들 저마다의 우물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내 마음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기적과 같은 일들을 아이들과 함께 경험했습니다. 분주한 아이들의 일상에 조금쯤은 나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우물이 많이 있으면 합니다. 서클을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어준 아이들의 신뢰와 진지한 모습, 시간을 내어준 동학년 선생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의 잘못을 용기 있게 인정하고 행동을 바꾸어나가며 성장하고 있는 강물이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