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박일우 형제를 생각하며 )
그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만나 수년간 주님의 몸 된 교회의 한 지체로 영혼의 쉼터이며 사랑의 공동체인 목장 안에서 영적인 가족으로 어울리면서 서로 위로하고 축복하며 섬김과 나눔을 함께했던 故 박일우 형제가 너무도 갑작스레 전혀 예상할 수도 없고 이별연습 할 준비도 없이 허망하게 우리 곁을 그렇게 떠나버리는 상황을 겪으며 정말 아쉽고 안타깝고 당황스러운 심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주 안에서 하나 된 친구를 잃은 내 마음이 왜 이토록 공허하고 애절한지 실로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한 주간을 보내고 주일을 앞둔 토요일 밤이면 의례히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 목장 가족들에게 박 집사만의 특유의 웃음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기도하고 맏형으로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형제인데, 부족하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아껴주며 멀리 있는 가족보다도 더 가깝게 지내왔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제는 만날 수도, 다시는 그 얼굴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왜 이리도 섭섭하고 그가 떠난 빈자리가 허전하고 커다랗게만 느껴지는지 아무래도 한동안은 그와의 우정을 회상하며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들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이라도 당장 나타나 어이~ 장 집사하고 부를 것만 같고 이번 주 목장모임에 환하게 웃으면서 달려 나올 것만 같아 아직은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게 솔직히 잘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한평생을 올곧게 나라의 안위를 담당하는 군인의 길을 걸으며 장교로서 지휘관으로서 강직함과 책임감이 남달랐고 직업군인으로서 명예를 소중히 여겼던 집사님이셨지만 교회에 오면 그냥 수줍어하고 말이 없고 그저 웃음으로 대하며 겸손한 모습만 보여주었던 그였기에 가끔 성경말씀을 나눌 때 질문을 하면 늘 믿음이 부족하여 잘 모른다고 말하던, 지나치게 겸손하다 못해 어린아이처럼 순전한 표정이 너무도 생생히 기억나고 아마 오래오래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는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어 언젠가 서예전시회를 가지면서 기념책자를 발간 했노라 하며 가져와 건네주며 자랑하기도 했고 나에게 선물로 써준 글이 지금도 나의 안방 벽에 걸려있어 잔잔하게 그의 숨결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在信者 無不能也~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때때로 목장모임이 길어질 때면 마을버스가 끊어진다고 염려하던 모습이 재미있어 목장가족들이 놀려주기도 했고 얼마 전엔 자가용을 구입해 모임이 늦더라도 마을버스 걱정 안 해도 되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그 모두가 지나버린 우리들만의 애처로운 추억이 되고 말았으니 삶과 죽음이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해서 미처 잊고 살았던 많은 것들을 새삼 깨닫게 되는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다.
가까이 곁에 있을 때 그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들이 자꾸 생각나고 더 살갑게 다가가 사랑으로 섬기지 못한 것이 이제 와서 돌이켜볼 때 못내 지울 수 없는 회한으로 남는다.
좀 더 관심을 갖고 그만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숨겨진 아픔과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야 했는데 그래서 함께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했더라면.......
최근에 와서 힘들다는 말을 자주했고 지역예비군 동대의 정기 감사가 다가오면서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말을 종종했지만 그것 때문에 그렇게까지 혼자 고통스러워하며 괴로워해야했던 것을 헤아리지 못했으니 목장의 리더로서 전후사정을 제대로 파악 못한데 대해 부끄럽고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을 숨길수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그가 나에게 들려준 속내의 요지는 대략 이렇다.
곧 감사가 있게 되는데 준비를 못했다는 것이고 오래전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많은 날들을 밖에서 겉돌며 친구를 만나 시간을 허송했다고 했다.
한때는 근무성적이 좋아 표창을 받기도 했는데 근래에 와서는 근무에 태만했음을 시인하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가 당면한 문제를 가지고 목장에서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으로 마치 책임을 다한 것처럼,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는 말로 위로하며 안심하고 있었는데........
자세한 내막을 모르겠으나 짐작하기로는 무엇보다 명예를 중시하는 지휘관으로서 불명예 보직해임 당할 것을 지나치게 염려하여 고민하다가 과중한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결국 쓰러지지 않았나싶다.
지난 3월 두 번째 목요일에는 얼마나 견디기 힘들고 감사에 대한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좀 체로 찾지 않던 나를 다 찾았겠으며 그날 밤 부목사님과 아내인 이 권사와 함께 근무지인 동사무소 건물 동대본부로 찾아가 위로하며 함께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리는 시간을 갖기도 했고 그리고 토요일 밤 목장모임에 와서는 전과는 다르게 찬송도 크게 따라 부르고 밤늦도록 같이 즐겁게 어울렸는데 그것이 우리들과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그 이튼 날인 주일날에도 교회에 나와서 목장친구인 최 집사님과 나란히 앉아 예배를 드렸다고 하던데 월요일 저녁 부인되시는 배 집사님으로부터 직장에서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옮겼다는 비보를 듣는 순간 얼마나 놀랐고 크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그 밤에 병원으로 달려가 그를 보았을 때는 침대에 누운 체로 의식이 없었고 연락을 받고 찾아온 가족들과 친지들 또한 얼마나 경황이 없었을까싶다.
의사는 비관적인 소견을 말했다고 하는데 그날 밤 밤새도록 배 집사님과 아내가 하나님께 매달려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고 담임목사님을 비롯해 교구목사님까지 중환자실을 찾아가 기적을 바라며 회복을 위해 기도했지만 그와의 이별을 슬퍼하기라도 하듯 간간히 찬비가 내리는 목요일 아침에 끝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애석하게도 한마디 작별인사도 못 나눈 체 우리 곁을 먼저 그렇게 말없이 떠나버리고야 말았다.
장례식장에서 몇 차례 예배를 드리는 동안 목사님과 교회의 많은 성도님들의 위로가 참으로 컸으며 박 집사님 고향인 경상북도 영주의 문수리 고향마을 장지까지 괘나 많은 성도님들이 찾아가 교회 장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어서 그나마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전통적인 유교집안의 9남매 중에 오직 박 집사님 가정만이 믿는 집안이라서 장례식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지만 아내인 배 집사님 남동생 되시는 분의 설득으로 교회 장을 치르게 되었고 함께 장지까지 가게 되었는데 마지막 안장예배를 마친 후 흙을 한 삽 퍼 담아 그가 누워있는 관위에 뿌릴 때는 그와 함께 지냈던 정겨운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라 참았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는 그렇게 무거운 짐을 벗고 주님나라에 갔지만 살아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 세 가지를 나로 하여금 깨닫게 했는데 첫째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웃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우리가 받은 사랑으로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살아남은 우리 모두 에게 남겨진 몫이 아닐까?
바쁘신 중에도 병상을 찾아와 위로해주시고 장례식장까지 찾아주셔서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목사님을 비롯한 사랑하는 목장가족들, 모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며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이제 다시는 고통 없고 눈물도 없고 근심이나 아픔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부디 부디 편히 안식을 누리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