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학교 동북아사아인문사회연구소와 류코쿠대학 안중근 평화연구센터 공동 주최
지난 2월 20일 온종일 일본 류코쿠대학 오미야캠퍼스에서 원광대학교 동북아사아인문사회연구소와 류코쿠대학 안중근 평화연구센터 심포지움을 열었다.
두 나라의 여러 전공 학자와 연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안중근 의사가 남긴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영향과 효과를 발표하고 토론했다.
먼저 개회사에서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 인문사회연구소 김정현(51회) 소장은 이번 행사를 준비하고 발표와 토론에 참가하는 여러 관계자에 고마움을 전하고,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넘어서 동북아시아의 공생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 문명의 평화와 미래를 준비하는 초석이 되기를 희망했다.
환영사에서 류코쿠대학 안중근 평화연구센터 오쿠노(奥野恒久) 센터장은 공생을 주제로 여는 이번 발표가 사상, 문학, 경제, 영화 등 실로 다양한 측면에서 공생을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1910년 3월 26일 형이 집행되어 사형에 처해졌다. 이번 심포지움에서 역사적인 과정이나 사실, 재판 과정이나 판결문들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객관적 사실은 그동안 많은 토의와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번 발표에서는 안중근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기호화되었는가를 다각적으로 분석 발표하였다. 역사적 사실은 사실 그 자체가 영원한 진리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와 시간 속에서 역사적 사실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처지와 형편 인식에 따라서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역사가 사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장르의 속성은 인식의 진실이나 상상의 틀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사람의 도덕적 가치의 기준은 입장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다. 영원하고, 절대적인 진리는 무엇인가? 안중근 의사의 역사적 평가는 나라와 사람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저격하고, 이후 일본의 이후 만주국 수립과 태평양 전쟁, 종전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많은 대중의 희생이 뒤따랐다.
일부 일본 정치가나 역사를 무시하는 사람들 가운데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이토 히로부미가 추구했고, 일본 제국죽의의 군국주의자들이 저지른 만행을 미화하고, 당시 일본인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의 희생을 무시하거나 잊으려는 듯하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으로도 일본의 만주 진출과 확전으로 치닫는 일본의 군국주의의 만행을 막지 못했다. 다만 안중근 의사의 저격으로 일본의 야욕이 드러났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야만적인 전쟁과 만행을 예견하고 있었다. 115년이 지난 지금도 안중근을 기억하고, 그의 업적을 기억하고, 기호화하려는 까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