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테미즘>이란?
동물과 인간의 유전자를 합해 만들어낸 생물체들의 통칭.
그들의 육체적 능력은 동물보다 뛰어나며, 그들의 머리는 인간보다도 비상하다.
평소에는 인간의 모습이기에 구분할 수 없지만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라는 건 별로 상관없다.)
* * *
인간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잣대에 맞춰 진리를 내새우고 있지.
그들을 봐.
아무리 발버둥쳐도 인간들 자신의 잣대로는 영원히. 진리가 무엇인지 깨우칠 수 없어.
그 사실이 바로, 그들이 핏대를 세워가며 외치고 있는 '진리'거든.
* * *
그는 노인이었다.
그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저 아득한 옛날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 이야기는 50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의 머릿속에 슬프고 잔혹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었다.
「저리 가! 기분 나빠!」
「네 형의 발뒤꿈치라도 따라가 봐라! 정말 저런 게 내 뱃속에서 태어났다니...」
「너, 또 어머니한테 혼났냐? 한심하기는......」
그의 가족들에게선 여느 가정의 '유대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꽤나 중요시되는, '핏줄'로 연결된 혈연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가족들의 멸시와 핍박뿐이었다.
그렇게 자란 그가, 학창시절을 정상적으로 보냈을 리 없었다.
가정에서 구박받는 여느 아이가 그렇듯이, 그 또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해 준 한 사람이 있었다.
김복수라는 이름의 그 친구는 마음을 열지 못하는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 주었고
또, 그에게 가족에게서조차 느끼지 못했던 따뜻한 연대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친구와의 우정은 오래 가지 못했다.
친구는 교통사고로 1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누구를 위해 살아왔던가?
누구 덕분에 살아왔던가?
오직 '친구'였다.
그는 혼란 속에서 하나의 탈출구를 찾았다.
친구가 가장 이루고 싶었던 꿈을 대신 이루어 주는 것.
친구가 살지 못한 여생을 대신 살아 주는 것.
그게 그의 삶의 '이유'였다.
"후....."
삶의 이유를 찾은 그 날로부터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오로지 친구가 되고자 했던 최고의 과학자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50년을 달려왔다.
'생물학의 아버지, 정상인'
'대한민국에 없어서는 안될 인재'
그게, 정상인. 그가 얻은 칭호였다.
그렇게도 바라고 바라던 꿈. 인간 복제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정상인의 얼굴엔 근심만이 가득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까?
자신의 삶은 정상인의 것이었는가, 김복수의 것이었는가?
66살.
결코 적지 않은 나이였다.
보통의 60대라면 이제 안락한 노후를 찾아야 할 때, 그는 배우자조차 없었다.
그는 과연 옳은 삶을 살아온 걸까.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마치 친구가 죽었던 그 때 같았다.
자신을 핍박했던 가족들..... 주변에는 다시 아무도 없었다.
혼란은 혼란을 낳았고, 그 혼란은 또 다른 혼란을 품었다.
수많은 혼란에, 정상인 자신마저 혼란의 일부인 것만 같았다.
그런 광(狂)적 상태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복수... 나를 무시한 인간들에게 복수하겠다.
신(新)종족을 만들어내서 인간들을 멸망시키고...
내가 주신(主神)이 되겠다...!
주신을 능가해 보이겠다!!!!!!"
미친놈이 따로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의 눈엔 그야말로 뵈는 게 없었다.
혼란의 근원도 과학, 해결책도 과학....
그는 다시 66년 세월의 문턱으로 걸어나갔다.
* * *
모든 것이 어둠 뿐인 공간에 원형의 탁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주위를 밝히는 건 탁자 위의 촛불 7개 뿐이었다.
탁자 주변에는, 촛불의 수와 맞추기라도 한 듯 7명의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있었다.
[나 원. 어이가 없어서!!! 뭐? 주신을 능가해??
한낱 창조물 주제에? 저런 미친 놈을 봤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은색 일색을 한 남자가 핏대를 세우며 흥분했다.
옆에 있던 검은 머리의 생기발랄한 소녀도 그에 동조하듯 고개를 정신없이 끄덕였다.
[저도 그 점에선 동감합니다!!! 안 그래도 지금 인간들의 행동은 모두 우리 주신의 뜻에 거슬리는 것 뿐!
그런데 저런 죄악까지 범하다니, 인간이란 생물은 지독하군요!!!]
그들의 말에 온화해 보이는 햇빛의 머릿결을 가진 여자가 그들을 나무랐다.
[...하지만, 인간들은 우리가 가장 공들여 우리를 본떠 만든 마지막 창조물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필시, 우리들의 탓도 있겠지요. 우리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게 아니라도 너무 극단적인 벌은...]
[후, 목련. 너는 저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술술 잘도 나오는군. 난 지금 저 오만한 벌레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싶은 생각뿐이다.]
냉정하다고 얼굴에 써있기라도 한 듯,
푸른색 일색을 한 남자가, 온화해 보이는 목련이라고 한 여자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붉은 머리의 남자는 신이 나서 말했다.
[수국, 저 얼음덩어리가 나랑 의견이 맞을 때도 있군!
저 오만한 놈과 오만한 놈이 만들어낼 실험체를 죽여버리고,
인간들까지 쓸어버리는거야!!!! 전쟁이다-!!!!!]
[그런 건 재미없잖습니까~ 전 저 자가 어떻게 나올지 보고싶은데요...]
금발머리의 눈이 작은 남자가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중얼거렸지만, 그의 의견은 무참히 묵살되었다.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미친놈은 원래 다 저러니까. 저런 버러지 놈 하나 붙잡고 있지 말고 빨리 결정해. 일륜!!! 답답해 죽겠네!!!]
[........]
일륜이라고 불린 하얀 머리의 무표정한 소년은 대답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관심없다는 듯한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두 불평 않고 무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그에게 결정을 맡겼다.
무일의 역할은 주신들 중 가장 컸다. 그들 중 서열이 가장 높을 뿐만 아니라,
그가 무(無), 자체를 상징했기 때문에 가장 공평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결정은 항상 그에게 맡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너무 무관심한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랄까.
[일륜 님. 부디 우매한 인간들에게 넓으신 아량을 베푸시길....]
목련이 손을 모아 간청하듯 애절히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무표정하던 무일의 얼굴에 능글맞은 웃음기가 번져나갔다.
[결정한다.]
주위의 정적 속에서 일륜의 입이 열렸다.
들리는 건 침 넘어가는 소리 뿐이었다.
[난 저 인간이 만들 실험체에게 막대한 힘을 쏟아부을 거다.]
[...예에?]
[너 미쳤냐?!]
일륜은 주위의 비난에도 아랑곳않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가 만들어낼 첫 번신종족에게는 숙명을 부여하지 않겠다.
그 신종족에게 있는 건 오로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운명 뿐이야.
다시금 말하자면, 그 녀석은 우리의 '대리인'이지.
그녀석이 내키면 인간족을 파멸시킬 것이고, 반대로 그냥 인간 속에 화합될 수도 있겠지.
아무튼 인간의 존속에 대한 결정은 모두 저 생명이 내릴 것이다.
어때,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아무튼, 인간에 대한 모든 사항과, 저 생명체에게 허튼 짓을 하는 주신은, 제명이다.]
일륜이 촛불에 손을 갖다대며 말했다.
주신의 제명이라?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곱 주신에겐 모두 맡은 바 역할이 있었고, 지가 아무리 잘났어도 그 중 한 자리가 비게 되면
그 타격은 무지막지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런 조그마한 일에 주신의 제명 운운하다니, 어이없을 따름이었다.
그래서인지 일륜을 제외한 나머지 주신들은 모두 얼빠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놀란 건, 주신의 제명 운운하는 말 때문이 아니었다.
'무(無)가 감정은 느낀다?'
그들이 알기론, 아니. 여태까지 몇백 억 년을 그와 지내 온 바로는.
일륜이 감정이란 걸 느낀 적은 결단코 단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탐탁치 않은 결정임에도 반발하지 못하는 주신들이었다.
인간들이 주신을 본뜬 것이라면 주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상사 명령에는 무조건 복종.
생계를 이어나가려는 이에게는 철칙이었다.
첫댓글 오홋! 재밌어요 건필하세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