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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17일.... 광주에는 2개의 거대한 불기둥이 솟았다. MBC, KBS가 불타는 것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귀가 버스를 타는데 버스 승객들이 한사코 타지 말라고 한다. 젊은이는 다 잡아가니 얼른 피하라고......... 설마 나야 하는 마음으로(사실은 버스를 안타면 집에도 갈수 없는 먼거리였지만...) 버스에 타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지금 광주에 난리가 났단다. 설마!............... 17일이니 토요일 오후였던것 같다. 시외버스 터미널에 공수부대가 들이닥쳐 젊은 사람만 보면 닥치는대로 곤봉으로 난타하여 트럭에 싣고 간단다. 백주에 수많은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그것도 부모들 앞에서 이유없이 피투성이가 된채 끌려가는 자식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그런데 바른 보도를 해야할 언론사가 폭도들을 진압한다고 방영했다나..... 그래서 분노한 어머니들이 방송국에 찾아가 항의를 했더니 오히려 폭도취급을 하여 어머니들의 분노로 방송국이 불탄다고 한다. 그때 그날 그랬었다.
5월 26일 난, 선천적으로 약골이어서 아침이면 운동을 하러 다녔다. 광복촌이 집이었으니 새벽에 진월동까지 뛰어 갔다 오는 운동을 했었다. 그 날도 운동복 차림으로 나서는데 군인들이 보였다. 설마 운동하러 가는데......... 그런데, 그런데 돌아 오는길에 군인들이 에워싼다. 첩자란다, 세상에...... 온 몸이 묶이고, 군화발에 무참히도 얻어 맞았다. 그들의 차량에는 죽창이 가득 실려있었다. 그걸 꺼내더니 찔러 죽여 버리겠다고 아우성이다. 갑자기 총성이 울린다. 몸은 묶여있는데 귓전으로 총알이 핑핑 날아 다닌다. 시민군과 일전이 벌어진것 같다. 다행히 총알은 빗겨갔지만 의심의 총알은 나를 관통하고 말았다. 내가 군인들의 위치를 알려 시민군들이 쳐들어 왔단다. 죽이자고 한다. 도로를 차단한 모래 바리케이트에 20여명의 군인이 엎드려 쏴 자세로 있다. 그 앞을 걸어나가 한 가운데 섰다. 거총! 천지현황이라고! 아니었다. 난 그때 처음으로 하늘이 노랗다는것을 알았다.
그때! 짚차 한대가 전속력으로 달려 오더니 군인들과 나 사이에 선다. '죽이지 마!' 계급이 중령이었다. '야 새끼들아! 시민들이 저렇게 보고 있는데 죽이면 돼냐?' 그 사람은 나?모든 인적 사항을 다 기록하더니 오늘 중으로 빨리 광주를 떠나라고 한다. 풀려나 집으로 오려는데 시민들이 박수를 쳐준다. '내가 무슨 박수받을 일을 했다고........' 이렇게 나는 두번의 삶을 살게 되었다.
난, 군대생활을 35개월을 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군인을 보면 섬찟한 마음에 머리끝이 선다. 그래도 난, 산자다. 수많은 주검들 사이에서 살아나온자다. 그래서 더 소중한 삶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5월 그 날이 아픈 과거를 되새기게 한다. 27년만의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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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담양가니깐 5.18 민주화운동 사진전시회 하길래 봤는데... 허탈하더군요... 마산 구암에도 3.15 국립묘지가면 아주 비슷한 사진들이 전시되어있던데... 독재와 맞선 희생자들에 대해 절로 고개가 숙여지더군요 ()()()
어머나
가끔은 인과의 법칙이 의심스러울때도...죄없는 무구한 사람이 피지도 못하고 죽어가니..전생죄라지만 그것도 읨스럽고..신은 없고..오직 그날의 운이 좋으면 살고 재수 없으면 죽고..
그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는 몰랐더이다...시간이 많이 흐른 뒤, 그들의 묘지에서 그들의 안녕을 빌었습니다...정의가 살아있는 사회,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그들의 피와 죽음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고3때 5월에 일어났던 광주사태...정치 경제 시간때 흉흉하게 떠도는 소문을 물어보니 선생님께서 광주 사태는 없다고, 그런 일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다고 거짓말하신 기억이 납니다.ㅠ.ㅠ...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