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기분 좋은 과거는 아니지만, 2년전의 나를 위로해주고 싶어서 글을 한번 써보려구요...
저에게 24살은 없습니다. 23살에서 바로 25살이 되버렸죠.
그 25살도 아토피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으니, 돌이켜보면 23살에서 바로 26살이 된 기분이에요.
24살 땐 아토피 정말 심했습니다. 보습제든, 스테든 아무리 써도 따갑기만 할 뿐 효과가 없을 정도로 심했고 잠도 못자서 우울증 약에 수면제를 장기간 복용해서 그마저도 듣지 않는 상태였죠.
당연히 모든 생활은 올 스탑. 도망치듯 3학년이 끝나자마자 휴학하고, 동아리 활동이든, 교우 관계든 뭐든 무시하고 잠수탔었어요.
처음엔, 스테 안쓰고 좀 쉬면 나을 줄 알았는데, 그 안이했던 생각이 병을 더 키웠던 것 같아요.
뭐, 이래저래 해서 운화한의원이란 곳을 알게됬고(광고 아닙니다^^;), 거기서 1년이면 될꺼라는 말에 우선 치료 시작했죠.
그 전에 하나한의원인가 뭔가에 2백만원쯤 꼬라박고요.(강남에 있는 한의원이요.)
여튼 운화한의원은 보습제도 안쓰고 스테도 안쓰고 한약먹는, 그런 치료를 하는 곳입니다.
보습제마저 안쓰니 처음 몇개월은 진짜 말이 안나올만큼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한 5개월쯤 치료하다보니, 각질은 엄청 나오지만 약간씩은 낫는 것 같더라구요.
그러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이렇게 집에만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영어학원 다니면서 토익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뭐 이래저래 몇개월 더 개고생하고, 그러는 사이에 복학해서 4학년 1학기까치 마치고 1년 반이 지났는데도 다 안낫더군요.
1년은 무슨 ㅋㅋㅋ
저는 운동 + 거의 완벽한 식단조절 + 한의사가 하라는 대로 다함. 이런 태도로 생활했는데, 뭐 완치가 늦는건 내 체질이니 어쩌니 하더라구요. 뭐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죠.(그런데 그런거면 첨부터 말해주던가..^^)
그렇게 2년가까이 지났습니다.
토익 때문에 시작했던 영어공부에 흥미가 생겨서, 나중에 '해외영업'쪽에서 일해볼까? 라는 나름대로의 진로에 대한 생각도 생겨서
회화학원도 다니고, 스터디도 하면서 준비는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학교 선배로부터 모회사 해외지사 인턴을 모집하는데, 관심없냐는 정보를 듣게됬고, 정말 끌렸습니다.
그 모든 조건과 기회.. 그리고 어학연수 경험이 없다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취업시장에 뛰어들 수 있겠다라는 희망...
그런데 어머니가 거절하시더라구요. 이해는 했습니다. '너 또 그렇게 무리하다가 건강상하면 어떡할꺼냐고...'
진짜 눈물을 머금고 그 기회를 포기했었죠.(물론 지원한다고 다 붙는 것도 아니지만요 ㅋㅋ)
그리고나서 막연한 감(?)으로 몇개월 후에도 기회가 있겠지란 마음에, 영어나 더 준비하고 건강관리하며 기다리다가
마침내 3개월 후에 다시 공고가 난 곳에 지원해서 현재는 미국 뉴저지(뉴욕에서 버스로 30분 거리) 지사에서 인턴 생활 중입니다.
여기와서도 참 많은 애로사항과 에피소드가 생기고 있습니다.
걱정했던대로, 회식자리에서의 술.. 그리고 음식 등등..
그런데 술을 2년만에 소주 한병 넘게 마셨는데 멀쩡하더라구요.(극구 안마시려고 했지만, 회식 문화라는게ㅠㅠ)
음식 같은 경우는, 가능한대로 야채나 생선 위주로 먹고 있긴합니다만, 가끔 피자를 먹어도 괜찮더라구요.(그래도 길거리 핫도그는 한번도 안먹고 있습니다.ㅋㅋ)
아무래도 아토피가 정말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았습니다.(노스테,노보습제,운동,음식조절을 2년 넘게 하고 있으니..)
그런데도 얼굴은 아직 매끈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한번은 테니스 치고 사진찍을 때 '넌 특히 늙어보이니 웃어야되.'라고 농담하시더라구요. 그래서 회식 때 아토피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그 하늘같으신 사장님께서 사과하셨어요. 영광이더라구요 ㅋㅋㅋ
오늘도 제 이름 불러주시는거보니, 절 기억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한낱 인턴 따위의 이름을 기억해주시니 기분 좋았습니다.
전 정말 잘하는게 하나도 없는 어린애같은 사회초년생입니다. 아토피 때문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고, 주위 친구들처럼 경험이 다양한 것도 아니죠.
그래서 회사에서 정말 많이 혼나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얻게된걸, 정말 송구스러울 정도로 감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주중엔, 온 몸으로 부딪혀 할 수 있는대로 최대한 배우고, 일하고.. 주말엔 뉴욕의 명소들을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저번 주말에는 하루에 9시간 이상씩 박물관을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피카소, 반 고흐의 그림도 보고, 중세시대 유럽의 실제 그림도 보고... 정말 환상 같았습니다.
마치, 지난 날 무의미하게 보냈던 시간을 압축해서 보상받으려는 듯.. 제 몸이 그냥 무작정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것 같아요. 다리가 더이상 안움직일 때까지 걷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마냥 좋지만은 않은게, 아직도 업무에 대한 부담(?)이나 내 능력에 대한 자격지심은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냥 내가 부족하다는걸 인정하고, 많이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가려구요.
한국 돌아가면... 연애도 해보려구요. 나 자신이 너무 준비가 안되서 연애를 안하는 것이다라고 합리화하긴 했었지만.. 사실 아토피 때문에 외적인 자신감이 떨어졌던게 큰 원인이였던 것 같아요.
이제 많이 나았고, 또 계속 낫고 있으니까 완치도 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올해 하반기에 취업시장에도 뛰어들어보고..
그 동안 움추렸던 모든 열정들을 쏟아보려구요.
돌이켜보면 2년전에 정말 힘들었던 이유는,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희망이 안보인다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나을꺼라는 희망 말이에요. 그리고 남들처럼 자기 꿈들 추구하며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들..
2년전에는 지금의 나의 모습을 감히 상상도 못했었어요.
그래서, 2년전의 나에게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라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다면, 그 시간들을 조금은 덜 힘겹게 이겨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아직도 2년전의 나를 회상하면 목이메이고,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는데... 그 친구를 위로해주고 싶어요..
첫댓글 많이 좋아지셧다니 정말 축하드려요.. 지금 넘 힘든 우리아들도 2년뒤 좋아져 있을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2달 있으면, 만 15세 되는 우리 아들,3개월 탈스하다 확 나빠져, 학교도 다녀야되고 해서, 우선 탈스 접고, 우선 약으로관리 하며 학교다니게 해주려고 하고 있거든요. 약쓰시는분들도 다들 약 줄이고 귾으시는게 대세인데.. 제 아들은 많이 나빠져, 휴학할수는 없고.. 우선 살게 해주어야되어서 약 시작했는데.. 우울하지요뭐.... 역시 탈스하시고, 운동과 식사조절로 좋아지신건가봐요..
보습제까지 안쓰는 극단의 처방이 득이된건지, 독이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부에서부터 치료한다는 한방이나 자연치료의 개념으로 접근한게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물론 시간이 길어지니.. 힘들더라구요.) 아드님분이 학생이시면 걱정이 더 크시겠네요.. 저도 18살 때 너무 심해져서 학교도 그만두고 집에만 있었던 시간이 있었거든요.
제 좁은 소견으로는.. 공부? 수능은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좀 늦어져도 따라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일수록 건강에 투자하는게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공부때문에 조바심 내면서 아토피 관리를 소홀히 했던 과거가 스스로 좀 안타까워서요..
멋져요. 저도 그랬는데.. 뭐 암튼 좋아질수있을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