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
김영숙
호랑나비의 그 우아한 자태는 번데기에서 우화하여 성충의 고통
을 감내한 기다림의 화려한 변신이다. 국어사전에서는 호랑나비
번데기 상태를 “피용”이라 한다고 했다.
어머니 없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동생이 밝게 자라주길 바랬고 따
스한 식구들의 배려를 받았지만 항상 충만하지 못했던 그의 마음을
채워주려고 노력했다.
짧지만은 않았던 시간, 동생이 올바르게 성장되길,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길 기원했었고 굳은 마음으로 믿었었다.
"내가 육사에 가면 누나는 시집을 더 좋은데로 가겠지?" 어느날
동생은 이렇게 말하며 씩웃었다. 나는 아직 결혼은 생각지 않고
있는데 동생의 불쑥 던진 말속에서 그의 마음을 엿본 것 같이 괜시리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아름답다라는 낱말은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줄 생각했는데
동생을 곁에서 바라보며 마치 조각가가 한방울 한방울 땀으로 최고의
숙련된 솜씨를 내어 다듬어 놓은 것처럼 그는 점점 눈부시게 모든 것이
완벽하게 완성되어 갔다. 햇볕이 안드는 어두운 곳에도
바람이 쓸쓸히 외로움을 보이는 곳에도 동생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곳은 전혀 다른 상황으로 변했으며 사람들의 은근한 부러움과 찬사는
나에게 벅찬 희열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는 진솔함과
꾸미지 않는 건강함을 가지고 우리들에게 호랑나비의 빛나는 날개
짓을 펼쳐보여 줄날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었다. 드디어 동생은 해
내었다. 나는 동생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슬픔이 아닌 기쁨의 눈물
을 흘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어머니 얼굴이 보였다.
육사에서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가족들을 초대하는 초청장을 보내
왔다. 이제는 연로하신 아버지께선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시며 그
날을 달력에 표시해 놓으시고 무척 행복해 하셨다. 입학한 생도들
중 동기회장으로 뽑힌 동생은 백 만평 넓은 운동장을 무전기를 갖
고 다니며 이곳, 저곳으로 지시를 보내고 있었다. 벅차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충만된 동생을 향한 나의 사랑과 대견함은
흘러간 모든 아픔을 이토록 아름답게 승화시킨 동생에게 감사의
꽃다발을 보내고 있었다.
다시 재도전이었다.
그는 무엇을 추구하는 걸까? 무엇을 얻고자 다시 가시밭길에서 피
를 흘리는 걸까? 동생은 넉넉한 웃음을 나에게 보내며 부끄럽지
않은 동생이 되겠노라 스스로 다짐을 했지만 그는 외로웠고 고독해
보였다.
모든 것들을 다아 배제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매달렸다.
낙엽이 뚝뚝 떨어지던 날 고요 그 자체인 고시원은 적막감만 흐르
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빛나는 화려함, 찬란한 것을 꼭꼭 누르
며 번데기에서 나비로의 고통어린 변신을 다시 꿈꾸고 있었다. 남
편이 뜬금없이 말했다. “처남 굉장해 고시원에 가보았어 새벽3시
에 아마 처남은 모를거야. 런닝 차림에 두 눈이 초롱초롱했어”
남편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이 아파왔다. 하지만 현실은 금방
동생에게 달려갈 수 없었고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이끌어 주는 걸
까? 생각했지만 그도 이 아름다운 나날을 느껴도 보고 낭만과 인
생을 이야기하는 동생의 행복한 미소를 진정 보고싶었다.
“누나 1차 합격이예요” 어느 날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넘어도 넘
어도 끝이 안보이는 것만 같았고 시간은 서서히 그의 젊음에 탐을
내고 있었다.
어느 날 동생이 풋풋한 내음을 풍기며 살포시 그의 마음을 열어
보여 주었다.
“향기나는 아이가 있는데 누나가 보세요” 내가 원했던 미소를 동
생은 지으며 마치 부끄러운 소년처럼 쑥스러워했다. 그런데 진정
내가 바랬던 일인데 갑자기 내 마음에선 찬바람이 휑하니 불어옴을
느꼈다. 그는 내가 아꼈던 보물이였는데 하지만 이제 내 마음에서
서서히 동생을 놔주어야 할 때가 왔다. 너무나 사랑한 동생.
영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 숙녀는 동생을 보고 반했다고 했지
만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고은 심성에 고마워했다. “항시 찾았
어 내가 소중하게 아끼는 이 보물을 더욱 빛이 나게 해줄 마음을...”
그녀와 나는 서로 글을 나누며 마음을 가깝게 했다.
둘이는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 싱싱함과 반짝이는 빛을
발하며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뿌듯함을 선물했다.
그는 “피용”에서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드디어 호랑나비의 그 멋지
고 화려한 날개짓을 하며 넓은 창공을 향해 비상했다.
1999.
첫댓글 둘이는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 싱싱함과 반짝이는 빛을
발하며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뿌듯함을 선물했다.
그는 “피용”에서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드디어 호랑나비의 그 멋지
고 화려한 날개짓을 하며 넓은 창공을 향해 비상했다.
형제의 우애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엄마의 마음으로 보는 누나
가끔 육십이 훌쩍 넘은 막내동생이 늦은 밤 누나하고 전화를 할 때가 있다.
그날은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그런다고 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